회개의 여정 -“회개는 오늘 지금 여기서!”-2021.10.23.연중 제29주간 토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Oct 2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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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23.연중 제29주간 토요일                                                           로마8,1-11 루카13,1-9

 

 

 

회개의 여정

-“회개는 오늘 지금 여기서!”-

 

 

 

“주님의 산으로 오를 이 누구인고?

 거룩한 그곳에서 있을 이 누구인고?

 그 손은 깨끗하고 마음 정한 이

 헛군데에 정신을 아니 쓰는 이로다.”(시편24,3-4ㄱㄴ)

 

지체없는 회개가 답입니다. 회개를 통한 겸손과 순수입니다. 우리 삶은 회개의 여정입니다. 믿는 이들의 삶에 가장 우선적이고 기본적인 것이 회개입니다. 죄에서 벗어나 하느님 안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회개입니다.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새롭게 살아가는 회개입니다. 진정한 회개없이는 겸손도 순수도 없습니다. 그러니 회개와 겸손은 함께 갑니다. 무지와 허무에 대한 답도 회개뿐입니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예수님의 복음 선포의 주제가 하느님의 나라와 회개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를 맞이하기 위해, 살기 위해 회개를 통한 개방의 준비가 우선이라는 것입니다. 언젠가의 회개가 아니라 바로 오늘 지금 여기서 회개입니다. 결코 미룰수 없는 즉각적 회개입니다. 아니 숨쉴 때 마다 회개입니다. 새벽에 깨어 일어나 카톡을 보니 지난 밤 조카 글라라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신부님, 저희 어머님이 오늘 저녁 9시 37분에 선종하셨습니다. 장례미사에 대한 세부 사항은 확정되는 대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지난 토요일 병자성사를 드린 99세 큰댁 둘째 형수님 윤여임 엘리사벳이 선종하신 것입니다. 약 3주전부터 미국에서 돌아와 병석을 지키고 있던 글라라 조카로 부터의 연락이었습니다.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요즘도 계속되는 이런저런 죽음의 소식을 통해 죽음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가까이 있음을 깨닫습니다. 이런 죽음이 우리의 지체없는 즉각적 회개를 촉구합니다.

 

“죽음을 날마다 눈앞에 환히 두라.”

 

참 자주 인용한 베네딕도 성인의 말씀입니다. 죽음을 생각할 때 즉각적 회개요, 환상이 걷힌 오늘 지금 여기서의 본질적 삶입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한다’, 바로 오늘 복음 앞부분의 소주제입니다. 빌라도가 갈릴래아 사람들을 죽여 그들이 바치려던 제물을 피로 물들이게 한 일을 보고 받자 주님의 즉각적 응답입니다.

 

“너희는 그 갈릴래아 사람들이 그러한 변을 당하였다고 해서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처럼 멸망할 것이다.

 

또 실로암에 있던 탑이 무너지면서 깔려 죽은 그 열여덟 사람, 너희는 그들이 예루살렘에 사는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큰 잘못을 하였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멸망할 것이다.”

 

예나 이제나 많은 사람들은 불행한 일이나 죽음을 당하면 조건반사적 반응이 인과응보의 생각입니다. 하느님의 벌이 죄인들에게 내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들은 옳게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단편적 견해를 배격하십니다. 그리고 불행한 일에 모든 사람에 대한 경고가 담겨 있음을 보여주십니다. 모두가 죄인이기 때문이 다 회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전 오랜만에 만난 자매로부터, ‘신부님은 늙지 않을 줄 알았어요!’ 들은 말도, 오랜만에 만난 초등학교 동창으로부터 ‘수도원에 살아도 늙네.’ 들은 말도 생각납니다. 하느님은 공평무사합니다. 수도원에 산다고 병고나 불행이 비켜가는 것이 아닙니다. 

 

참 알 수 없는 불가해한 불행한 일이나 죽음도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왜?” 하느님께 묻고 싶은 일이 한 둘이 아닙니다. 왜 착하게 살다가 살만한 데 죽게 되었나? 왜 젊은 가장이 암으로 처자식을 남기고 죽어야 하나? 왜 젊은 엄마가 아이를 낳다가 아이는 살고 자기는 죽어야 했나? 왜 어린 나이에 암으로 죽어야 하나? 결혼도 하지 젊은 처녀가 왜 유방암이나 자궁암으로 수술해야 하나?---끝이 없습니다. 

 

얼마전 수도원 미사에 잘 왔던 60대 중반의 부부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알고보니 남편은 뇌경색으로 쓰러져 요양병원에 의식불명 입원중이고 부인은 췌장암 수술을 했다 합니다. 부부의 자리는 아직 결혼하지 않은 40대 아들이 미사에 가끔 모습을 보이곤 합니다. 좌우간 하느님이 어디 계신가? 도대체 하느님의 뜻은 무엇인지 묻게 됩니다.

 

참으로 경솔히 이런 불행을 하느님의 뜻이라 단정해서는 안됩니다. 마음 혼란할수록 침묵중에 일체의 판단을 유보하고 더욱 기도하며 열렬히 주님을 믿고 사랑하고 희망해야 합니다. 결코 하느님을 떠나려는 유혹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느님께 대한 절대적 신뢰요 기도뿐입니다. 

 

그리고 즉각적인 회개로 나 자신을 추스르고 유비무환의 자세를, 진인사대천명의 믿음을 굳건히 하며, 하루하루 깨어 오늘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바로 이어지는 열매를 맺지 못한 무화과 나무의 비유가 이를 분명히 합니다. 열매 맺지 못하는 포도나무를 베어내자는 주인에게 청하는 포도 재배인은 흡사 우리를 변호하는 예수님처럼 생각됩니다.

 

“주인님, 이 나무를 올해만 그냥 두시지요. 그동안 제가 그 둘레를 파서 거름을 주겠습니다. 그러면 내년에는 열매를 맺겠지요. 그러지 않으면 잘라 버리십시오.”

 

회개의 열매를 맺으라 연장되는 날들입니다. 살아있을 때 회개요 기도요 사랑이요 찬미와 감사이지 죽으면 모두가 끝입니다. 그러니 살아 숨쉬는 동안 온마음으로 회개하고 기도하고 사랑하고 찬미하고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죽음에 임박해선 늦습니다. 유비무환, 바로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지체없이 회개를, 사랑을, 기도를, 찬미를, 감사를 실천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라 연장되는 날들이요 이래야 후회함이 없는 복된 선종입니다.

 

막연한 회개가 아닙니다. 죄로부터 떠나 그리스도 예수님을 향하는 것입니다. 날로 그리스도 예수님과 우정의 사랑을 돈독히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회개의 여정은 그대로 예닮의 여정이 됩니다. 바로 오늘 제1독서에서 로마서의 가르침입니다. 회개한 사람들은 육을 따르는 이들이 아니라 성령을 따르는 이들입니다.

 

“무릇 육을 따르는 자들은 육에 속한 것을 생각하고, 성령을 따르는 이들은 성령에 속한 것을 생각합니다. 육의 관심사는 죽음이고 성령의 관심사는 생명과 평화입니다.”

 

회개는 죄로부터 떠나 하느님을 향하는 것이자 성령께 활짝 마음을 여는 것입니다.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본능적인 욕망의 육적 삶으로부터 하느님 중심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진리와 선, 사랑과 정의, 생명과 평화의 영적 삶으로의 전환을 뜻합니다. 그러니 우리의 회개, 기도, 성사, 사랑등 모든 수행은 성령의 통로가 되고 이런 수행을 통해 성령은 우리 마음에 흘러 들어와 그리스도 안에서 살도록 도와주십니다. 

 

부단한 회개를 통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의 삶과 성령에 따른 영적 삶은 하나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끊임없는 회개와 더불어 부단히 육적 삶에서 성령에 따른 영적 삶으로 전환시켜주십니다. 

 

“보라, 주님의 눈은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

 당신 자비를 바라는 이들 위에 머루르나니

 죽음에서 그들의 목숨을 건지시고

 굶주릴제 그들을 먹여 살리신다.”(시편33,18-19).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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