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생명은 발견이자 선택 -주님, 지혜, 말씀-2021.10.10.연중 제28주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Oct 10,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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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10.연중 제28주일                                                지혜7,7-11 히브4,12-13 마르10,17-30

 

 

영원한 생명은 발견이자 선택

-주님, 지혜, 말씀-

 

 

추호도 환경 탓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궁극 목표는 훌륭한 사람이, 거룩한 사람이, 성인이 되는 것입니다. 누구나 평생 분투의 노력을 다해 주님을 사랑하여 발견, 선택하여 살면 이렇게 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의 고유의 성소입니다. 하느님 친히 도와 주십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도우십니다.

 

어제가 한글날이었고 새삼 한글이 얼마나 고맙고 좋은 글인지 세종대왕에게 거듭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언뜻 책상 앞에 놓여 있는 32년전 사제서품식 때 사진을 보니 갑자기 이미 오래전 세상을 떠난 어머니와 세분 형님들이 참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월 흘러 나이들어갈수록 더욱 그리워지고 보고 싶어집니다. 

 

‘보고 싶다’. ‘그립다’는 순수한 우리말을 아무리 다른 외국어로 번역해도 이런 ‘말맛’은 못느낄 것입니다. 손, 발, 목, 몸, 불, 물, 길, 돈, 빛, 등 끝이없는 한 음절로 된 우리말입니다. 한 음절로 된 중요한 우리 말은 끝이 없습니다. 역시 다른 외국어로 번역해도 이런 말맛을 못 느낄 것입니다. 

 

서로 잡으라 있는 손이요, 등을 두드리며 격려하라 있는 손이요, 악수하라 있는 손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활짝 편 손이 아니라 주먹쥔 손으로 서로 맞대는 모습이 참 불편하고 어색합니다. 며칠 전 손잡았을 때의 참 편안하고 따뜻했 느낌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저녁식사전 방문을 여니 도미니코 수사가 문을 열고 나왔습니다.

 

“천국 입장은 이렇게!”

“하, 그렇군요.”

 

좁은 복도를 도미니코 수사와 잠시 웃으며 손을 잡고 식당까지 걸었습니다. 순간 따뜻한 손의 감촉과 더불어 참 편안한 느낌이었습니다. 지금도 잊지 못하는 손잡고 걸었던 선명한 추억들입니다. 반가운 좋은 이를 만나면 저절로 손잡게 되듯이 좋아하는 이들을 보면 마냥 손잡고 함께 걷고 싶은 생각도 듭니다. 

 

가장 행복한 시간은 좋아하는 분과 함께 손잡고 걷는 시간일 것입니다. 임종시도 사랑하는 이를 가장 잘 떠나보내는 방법은 조용히 따뜻한 손잡아 주는 일이라 합니다. 이런 손잡아 주는 사랑 역시 선택입니다. 행복도 선택입니다. 삶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어제 미사중 갑작스런 깨달음에 원고에 없던 내용을 강론 전에 장황하게 길게 나눴던 다음 내용입니다.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처럼 생각됩니다. 가정을, 부모를, 형제를, 성향을, 재능을, 건강을, 외모를, 탄생을, 죽음을 선택할 수 없습니다. 참으로 타고나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자유로운 듯 하나 자유롭지 못한 것이 한둘이 아닙니다. 이래서 원망이나 절망이 실망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외적 환경들은 우리의 선택의 영역이 아닙니다. 하느님도 이런 것들을 보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약함과 부족함과 한계에 아파하는 사람들에 대해 무한한 연민을 지니라는, 자비로우라는 것입니다. 참 좋은 것들을 타고난 이들은 감사하며 주님을 대하듯 부족한 이들을 돕고 섬기며 함께 나눠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살 줄 아는 이들은 절대로 이런 비교를 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각자 이런 타고난, 유리한 것들을 보지 않습니다. 참으로 각자 잘 선택하여 기쁘게, 감사하며, 행복하게, 보람있게 사는 것을 봅니다.”

 

이런 요지의 말이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행복합니다. 이런 말씀을 듣고 지킴도 선택입니다. 기쁨도, 행복도, 감사도, 웃음도, 사랑도, 선행도 선택입니다. 그러고 보니 선택할 수 있는 것도 무궁합니다. 가톨릭과 정교회는 칠죄종을 말합니다.

 

칠죄종중 교만이 아닌 겸손을, 인색이 아닌 자선을, 질투가 아닌 친절을, 분노가 아닌 인내를, 음욕이 아닌 순결을, 식탐이 아닌 절제를, 나태가 아닌 근면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불신이 아닌 믿음을, 절망이 아니 희망을, 무관심이나 미움이 아닌 사랑을, 즉 신망애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영적전쟁중 자기와의 싸움의 요체는 바로 이런 것들입니다. 부단히 좋은 덕목을 사랑하여 선택하는 것입니다. 선택하여 실천하여 습관이, 제2천성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간절하고 항구한 기도요 성령의 은총을 청하는 것입니다.

 

이런 선택의 관점에서 볼 때 오늘 말씀의 이해도 확연해 집니다. 그러니 우리 삶은 선택의 여정입니다. 죽을 때까지 끝까지 절대 포기하지 않고 하루하루 날마다 영원한 생명의 행복을 발견, 선택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다음 셋의 발견과 선택입니다.

 

첫째 주님의 사랑, 주님의 발견과 선택입니다.

우선 주님을 열렬히 항구히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을 사랑할 때 주님의 발견이요 주님의 선택입니다. 오늘 복음의 어떤 부자는 주님을 발견, 선택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선하신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구도자들의 한결같은 궁극의 질문으로 누구나의 영원한 소망일 것입니다. 십계명을 다 지켰는데도 영혼의 갈증은 계속됐던 부자에게 주님을 결정적 처방을 제시합니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재물이 아닌 주님을 선택하여 따르라는 것입니다. 정말 주님을 발견, 선택했다면 무조건 주님을 따랐을 것입니다. 재물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집착하는 욕심이 문제입니다. 부자도 주님을 열렬히 사랑하여 주님을 선택할 때 재물의 소유에 관계없이 이탈의 은총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복음의 부자는 주님을 선택하여 따르는데 실패했습니다. 그는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갔으니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 자체가 영원한 생명의 행복입니다. 그러니 자나 깨나 주님을 발견, 선택하여 주님을 따를 때 영원한 생명의 행복입니다. “주님께 아뢰옵니다. ‘당신은 저의 주님, 저의 행복 당신 밖에 없습니다.”(시편16,2), 시편의 고백을 기억할 것입니다.

 

둘째, 지혜의 사랑, 지혜의 발견과 선택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사랑하듯 지혜를 사랑하여 갈망하는 것입니다. 지성이면 감천입니다. 간절히 지혜를 찾을 때 지혜의 발견이요 지혜의 선택입니다. 때가 되면 주님은 지혜를, 혜안慧眼을 선물하십니다. 이미 지혜를 사랑하여 선택한 자체가 지혜로운 삶입니다. 착해도 무능하면 착함은 무용지물입니다. 착함보다 먼저 선택하여 찾아야 할 지혜입니다. 지혜로워야 착함도 빛납니다. ‘착하라!’ 보다는 ‘지혜로우라!’ 강력히 권고합니다. 

 

오늘 제1독서 지혜서의 말씀 전체가 살아있는 보석처럼 빛납니다. 참으로 항구히 기도하며 간청할 때 주어지는 지혜의 선물입니다.

 

“나는 지혜를 왕홀과 왕좌보다 더 좋아한다. 나는 지혜를 건강이나 미모보다 더 사랑하고, 빛보다 지혜를 갖기를 선호하였다. 지혜에서 끊임없이 광채가 나오기 때문이다. 지혜와 함께 좋은 것이 다 나에게 왔다. 지혜의 손에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재산이 들려 있다.

 

지혜에 비기면 재산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였으며, 값을 헤아릴 수 없는 보석도 지혜와 견주지 않았다. 온 세상의 금도 지혜와 마주하면 한 줌의 모래이고, 은도 지혜 앞에서는 진흙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흡사 지혜 예찬처럼 들립니다. 바로 이런 지혜를 사랑하여 지혜를 발견, 선택할 때 참 행복에 영원한 생명입니다. 바로 이런 지혜의 결정체가 하느님의 지혜인 파스카의 예수님입니다. 

 

셋째, 말씀의 사랑, 말씀의 발견과 선택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사랑하여 선택하는 것입니다. 말씀의 발견이요 말씀의 선택입니다. 참 행복도 말씀을 듣고 지킬 때 선사됩니다. 말씀은 인간의 본질입니다. 우리 영혼에 말씀은 식이자 약입니다. 말씀은 생명이요 영이요 빛입니다. 무지와 허무의 어둠을 밝히는 말씀이요, 삶에 의미를 주는 말씀입니다. 제2독서 히브리서 고백 그대로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속 생각을 가려냅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어떠한 피조물도 감추어져 있을 수 없습니다. 그분 눈에는 모든 것이 벌거숭이로 드러나 있습니다. 이러한 하느님께 우리는 셈을 해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 주님을 만납니다. 말씀은 주님의 현존입니다. 말씀을 사랑하여 선택할수록 하느님 앞에서 날로 진실하고 순수한, 투명한 삶입니다. 말씀 사랑이 우리 영혼에 얼마나 결정적인지 깨닫습니다. 

 

영원한 생명의 행복을 원하십니까? 누구에게나 활짝 열려 있는 하느님 나라의 구원의 문입니다. 환경탓할 수 없습니다. 순전히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것들을 탓할 것이 아니라 행복을, 영원한 생명을 하루하루 날마다 발견, 선택하여 사는 것입니다. 성령의 은총이 결정적 도움이 됩니다.

 

무엇보다 주님을 사랑하여 주님을 발견, 선택하는 것입니다.

평생 주님의 연인이 되어 사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지혜를 사랑하여 지혜를 발견, 선택하는 것입니다.

평생 지혜의 연인이 되어 사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말씀을 사랑하여 말씀을 발견, 선택하는 것입니다.

평생 말씀의 연인이 되어 사는 것입니다.

 

결론은 하나로 압축됩니다. 주님의 연인!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주님의 연인, 지혜의 연인, 말씀의 연인이 되어 살게 하십니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구원의 기회입니다.

 

“저희 날수를 헤아리도록 가르치소서, 

 저희 마음이 슬기를 얻으리이다. 

 아침에 당신 자애로 저희를 채워 주소서, 

 저희는 날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리이다.”(시편90,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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