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예수님처럼!-2023.9.3.연중 제22주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Sep 03,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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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9.3.연중 제22주일                                                     예레20,7-9 로마12,1-2 마태16,21-27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예수님처럼!-

 

 

“하느님, 저의 하느님. 

 저는 새벽부터 당신을 찾나이다.

 제 영혼 당신을 목말라하나이다.

 물기 없이 마르고 메마른 땅에서, 

 이 몸은 당신을 애타게 그리나이다.”(시편63,2)

 

화답송 후렴 시편이 마음에 절절히 와닿습니다. 오늘 9월3일도 참 좋습니다. 강론 제목도 마음에 듭니다.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예수님처럼-” 얼마나 멋진 제목인지요! 교황님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니 몽골을 방문한 교황님에 관한 기사와 글이 가득했습니다. 흡사 풍부한 영적수확물을 발견한 듯 기뻤습니다. “Hoping Together(함께 희망하기)” 방문 모토는 얼마나 멋집니까? 교황은 희망의 순례자와 우정의 순례자로 작은 교회를 방문한다며 넘치는 기쁨을 표현했습니다.

 

제43차 몽골 사목 방문을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교황님의 이런 분위기는 처음입니다. “스텝지대의 침묵중에 속삭임 소리를 들으라” 촉구하시며, 몽골의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하늘처럼 되어라(Be like the sky)” 격려하시는 말씀도 좋았습니다. 몽골 도착후 주교좌 성당에서의 교회 지도자들을 위한 연설에서 “교회는 끊임없이 예수님을 선포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오늘은 주일이라 아쉽게도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540-604) 기념미사를 봉헌하지 못하지만 이 교황은 성 예로니모, 성 암브로시오, 성 아우구스티노와 더불어 서방의 4대 교부에 속하며 만능의 천재로 예수님을 그대로 닮은 참으로 멋진 착한목자 교황이었습니다. 교황을 일컫는 “하느님의 종들의 종(Servus Servorum Dei)”이라는 칭호도 그레고리오 교황으로부터 유래됩니다. 

 

위 베드로의 후계자 두 교황처럼 우리도 예수님을 끊임없이 선포함과 동시에 예수님처럼 살아야 합니다. 며칠전 수녀원 성사를 드리고 귀원하던중 한 수녀님이 차 안에서 저에게 수도생활중 어느 때가 가장 행복했던지 물었고, 저는 지체없이 “매일 끝기도후 잠자리에 들 때와 새벽 일찍 일어날 때”라 답했고 수녀님은 의외인 듯 깊이 생각하는 듯 했습니다. 아마도 거창한 특별한 행복한 일들을 기대했던 듯 합니다. 

 

그러나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온종일 예수님과 함께 하루의 치열한 영적전투를 끝내고 잠자리에 들 때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고, 또 설레는 마음으로 주님 뵈올 기쁨에 다음날 새벽 일찍 일어나 강론을 쓰면서 하루를 새롭게 시작할 때의 행복 또한 얼마나 소중한지요! 그대로 하루하루 파스카의 리듬을 사는 행복한 삶입니다. 살아있는 그날까지 이러하길 소망합니다. 자주 생각나 자주 인용했던 25년전 성탄절에 썼던 시가 생각납니다.

 

“당신이 꽃을 좋아하면

 당신의 꽃이,

 당신이 별을 좋아하며

 당신의 별이,

 당신이 하늘을 좋아하면

 당신의 하늘이,

 되고 싶다

 늘 당신의 무엇이,

 되고 싶다”-1998.12.25.

 

물론 당신이 가리키는 바, 제 삶의 전부인 예수님이요, 예수님께 대한 사랑의 고백시입니다. 어떻게 예수님처럼 살 수 있을까요? 참으로 믿는 이들 누구나의 소망일 것입니다. 답은 하나 사랑입니다.

 

첫째, 말씀을 사랑하십시오.

하느님의 말씀이자 하느님의 지혜이신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막연한 예수님 사랑이 아니라 한결같은 말씀 사랑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 말씀이신 예수님을 만납니다. 날로 예수님을 닮아갑니다.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습니다. 말씀은 빛이요 생명이요 영입니다. 

 

말씀은 주님의 살아 있는 현존입니다. 말씀을 통해 주님을 만나 위로받고 치유받는 우리들입니다. 말씀이야말로 우리 인간의 본질입니다. 말씀을 통하지 않고서는 자기실현도 불가능합니다. 고난 중에도 힘차게 일으켜 세우는 살아 있는 말씀입니다. 예레미야 예언자 역시 불꽃같은 말씀의 사람이었고 그의 고백이 우리를 격동케 합니다.

 

“그분을 기억하지 않고, 더 이상 그분의 이름으로 말하지 않으리라 작정하여도, 뼛속에 가두어 준 주님 말씀이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오르니, 제가 그것을 간직하기에 지쳐, 더 이상 견뎌 내지 못합니다.”

 

저도 조금은 예레미야 예언자의 심정을 이해합니다. 도저히 차오르는 말씀이 미사주례에 관계없이 날마다 강론을 써야 살 수 있게 된 현실입니다. 때로는 “말씀의 수인(囚人)”이라 자탄(自嘆)도 해보지만 날마다 하루를 시작하면서 강론을 쓰지 않고는 도저히 살 수 없는 몸이 된 듯합니다. 하느님께 사로잡힌 이몸, 다시 산대도 이렇게 뿐이 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둘째, 하느님의 일을, 하느님의 뜻을 사랑하십시오. 추구하십시오.

공선사후, 하느님의 일을 하느님의 뜻을 앞자리에 놓는 것이요, 사랑하는 것이요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래야 하느님 중심의 공동체의 일치이며 질서입니다. 하느님의 뜻따라 오롯한 사랑으로 살았던 성모님이요 성자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이야 말로 그대로 하느님 뜻의 실현이자 하느님의 예스-맨이었습니다. 그 멋진 신앙고백으로 반석이라 극찬을 받던 수제자 바오로가 졸지에 사탄이 됐던 것은 바로 하느님의 일을 잠시 잊고 사람의 일에 몰두할 때 였습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사실 우리 모두가 사탄의 가능성을 지니고 삽니다. 아니 늘 우리 안에 자리 잡고 있으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사탄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는 부단한 영적훈련으로 사탄을, 마음 안의 야수(野獸)를 순하게 길들여야 합니다. 아마 위 예수님의 호된 질책은 수제자 베드로를 평생 하느님의 일에 깨어 있게 했을 것입니다. 어찌 이 충격적 말씀을 잊을 수 있겠는지요! 

 

바오로 사도가 아주 시의적절한 가르침을 주십니다. 세속에 살되 속화되지 말고 세상을 성화하는 성인의 삶을 살라 하십니다. 시궁창 세속에 뿌리를 두고 있어도 거룩하고 순수한 연꽃같은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지옥같은 세상에서 천국을 사는 성인들의 삶이 이러했습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드려야 하는 합당한 예배입니다. 여러분은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게 하십시오.”

 

분별의 잣대이자 지혜는 사랑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사랑하여 부단히 하느님의 뜻을 찾을 때 발휘되는 분별력의 지혜입니다.

 

셋째, 예수님 추종을 사랑하십시오.

평생, 한결같이, 끊임없이 예수님 따라 사는 것입니다. 누구나 예외없이 해당되는 구원의 길, 생명의 길, 진리의 길, 성인의 길은 이길 하나뿐입니다. 이 주님을 따르는 길은 감정따라, 마음따라, 기분따라 사는 길이 아니라 일편단심 주님따라 사는 사랑의 길이요, 순교자 성월 9월 우리가 기리는 모든 순교성인들이 이렇게 살다가 순교의 월계관을 받았습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당신을 따라 살라 촉구하시는 주님이십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

 

참으로 영원한 생명의 길을 사는 길은 순교적 삶, 하나뿐임을 깨닫습니다. 날마다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사랑하는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사랑할 때 주님은 우리에게 넘치는 은총을 주시어 끝까지 자발적 기쁨으로 주님을 사랑하듯 제 책임의 십자가, 제 운명의 십자가를 사랑하며 주님을 항구히 따르게 할 것입니다. 바로 날마다의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결정적 힘이 되어 주십니다. 끝으로 자주 나눴던 제 좌우명 고백기도문을 다시 나눔으로 강론을 마치겠습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일일일생(一日一生), 하루를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평생처럼 살았습니다.

저에겐 하루하루가 영원이었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이렇게 살았고 내일도 이렇게 살 것입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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