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7.1.연중 제12주간 토요일 창세18,1-15 마태8,5-17
사람을 찾는 하느님
-환대의 사랑, 환대의 믿음-
시인은 떠났어도 시는 영원히 남습니다. 아니 시와 더불어 영원히 살아 있는 시인입니다. 오늘은 7월 첫날, 7월이면 떠오르는 시, 이육사의 청포도입니다. 윤동주처럼 일제 강점시 옥중에서 순국한 애국시인으로 두분 다 시와 삶이 일치된 한없이 고귀하고 청순한 시인들이었습니다. 청포도 전문을 인용합니다.
-내 고장 칠월(七月)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 주저리 열리고
먼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 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야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결코 감상적 나약한 시가 아닙니다. 희망과 기쁨이 싱그럽게 피어나는 청신淸新한 시입니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아마 우리 나라 역사를 통해 가장 많이 인재를 배출했던 때가 선조시대 임진왜란과 그 전후와 영.정조시대, 그리고 일제강점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청포도를 읽으며 저는 청포를 입고 우리를 찾아 오시는 주님의 환대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시인이 그린 손님은 빼앗긴 곤고한 나라를 상징하겠지만, 저는 고달픈 몸으로 우리를 찾아 오신 주님을 생각했습니다. 참으로 고달픈 세상, 고달픈 손님들을 통해 부단히 수도원을 찾는 고달픈 주님이십니다. 베네딕도 규칙을 읽을 때마다 감동과 동시에 뉘우치는 참 아름다운 구절이 있습니다.
“찾아오는 모든 손님들을 그리스도처럼 맞아들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장차 ‘내가 나그네 되었을 때 너희는 나를 맞아 주었다’라고 말씀하실 것이기 때문이다.”(성규53,1)
수도원을 찾아오는 모든 손님들이 또 하나의 그리스도라는 놀라운 진리를 설파하는 성 베네딕도가 존경스럽습니다. 그러니 정주의 베네딕도 수도원은 환대의 집이며, 수도자들은 환대의 사람들입니다. 정주영성과 환대영성이 하나로 연결됨을 봅니다. 교회내에서 큰 가정 역할을 하는 것, 바로 이것이 베네딕도회의 자랑일 것입니다. 이에 근거한 제 사랑하는 좌우명시 한연이 생각납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활짝 열린 앞문, 뒷문이 되어 살았습니다.
앞문은 세상에 활짝 열려 있어
찾아오는 모든 손님들을 그리스도처럼 환대하여
영혼의 쉼터가 되었고
뒷문은 사막 고요에 활짝 열려 있어
하느님과 깊은 친교를 누리며 살았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찬미받으소서.-
수도원 앞문은 세상에 늘 활짝 열려 있어 찾아오는 모든 손님들을 그리스도처럼 환대하고, 뒷문은 늘 사막의 고요에 활짝 열려 있어 하느님을 환대하는 삶, 얼마나 멋진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의 삶인지요!
환대전통은 예로부터 동서방이 일치합니다. 예전 어렸을 적 제법 산다는 집에는 손님맞이 사랑방이 따로 있었습니다. 이제 아파트 문화가 대세라 사라진 환대전통이 참 아쉽습니다. 옛 서방은 물론 중동에서도 환대전통은 계속되었고 교회의 전통이 되었으며, 정주의 베네딕도회가 그대로 수도영성에 담아낸 것입니다.
환대의 사랑, 환대의 믿음, 환대의 기쁨, 환대의 행복, 환대의 아름다움...환대 예찬에는 끝이 없습니다. 환대의 기쁨은 짧지만 냉대의 아픔은 오래갑니다. 오늘 말씀도 환대라는 렌즈를 통해 보면 그 내용이 확연히 이해됩니다.
하느님을 찾는 사람에 선행하는 사람을 찾는 하느님입니다. 하느님이 우리를 찾아오셨기에 하느님 찾기가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찾는 사람만 강조하다가 사람을 찾는 하느님을 잊어 버리면 안됩니다. 더불어 짧은 자작시가 생각납니다.
-나무에게 하늘은 가도가도 멀기만 하다.
아예 고요한 호수가 되어 하늘을 담자.-
짧지만 엄청난 깊이를 함축한 시입니다. 하느님을 찾기전 이미 와 계신 하느님안에 머무는 관상의 행복을 누려보자는 것입니다. 이래서 향심기도를 비롯한 온갖 묵상기도의 수행입니다. 부단히 끊임없이 하늘로부터 땅으로 우리를 찾아오시는 겸손한 사랑의 하느님입니다.
오늘 제1독서 아브라함의 지극정성의 환대가 감동적입니다. 혼신의 힘을 다해 고달픈 몸으로 찾아온 손님들을 환대했는데 놀랍게도 하느님과 그 일행이었습니다. 제1독서 전반부가 아브라함의 손님환대하는 모습이 그림처럼 선명하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마침내 아브라함의 환대에 감격한 하느님 일행은 아브라함의 늙은 아내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 축복하셨으니 환대의 축복입니다. 이어 사라는 못미더워 속으로 웃었고 전개되는 주님과 다툼이 참 유머러스합니다.
‘사라가 두려운 나머지 “저는 웃지 않았습니다.”하면서 부인하자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다. 너는 웃었다.” 저는 이를 하느님의 유머라 부르고 싶습니다.
사람을 찾는 하느님의 결정적 표현이 예수님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친히 병자를 방문하시어 치유하시는 모습들로 가득합니다. 어제는 나병환자, 오늘은 백인대장의 병든 종, 베드로의 장모, 많은 병자들 치유하노라 온힘을 다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똑같은 주님께서 우리를 치유해 주시고자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를 방문하십니다.
오늘 백인대장의 주님을 맞이하는 겸손한 믿음, 환대의 믿음이 놀랍습니다. 주님 환대의 정신으로 충일한 참 단순하고 순수한 백인대장의 겸손한 믿음에 감탄하신 주님의 고백에 이어 주님은 그에게 하늘 나라의 축복을 약속하시며 종의 치유를 선언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도 이런 믿음을 본적이 없다....가거라. 네가 믿은 대로 될 것이다.”
주님을 감동, 감탄시켜 종의 치유를 가져온 백인대장의 순수하고 겸손한 믿음입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시간, 온마음을 활짝 열어 주님을 환대하면서 백인대장처럼 겸손한 믿음을 고백하면서 주님의 성체를 모시도록 합시다.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