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삶 -삶의 중심을 잡읍시다-2020.1.14.연중 제1주간 화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Jan 1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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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4.연중 제1주간 화요일                                                     사무상1,9-20 마르1,21ㄴ-28

 

 

 

온전한 삶

-삶의 중심을 잡읍시다-

 

 

 

사제서품후 초창기부터 아마 강론중 가장 많이 사용한 주제가 ‘삶의 중심’일 것입니다. 삶의 중심에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삶의 의미요, 삶의 질서입니다. 삶의 중심을 잃었을 때 복잡하고 혼란한 삶이요 방황과 표류에 온갖 영육의 질환입니다. 

 

삶의 중심이 확고할 때 안정과 평화요 삶의 중심이 불확실할 때 점증하는 두려움과 불안입니다. 참으로 삶의 중심이 확고할 때 단순하고 투명한 삶에 한결같이 충실한 삶입니다. 그러니 참으로 우선적으로 정립해야 할 것이 삶의 중심임을 깨닫습니다.

 

우리 분도 수도자들의 정주의 첫 서원 역시 삶의 중심과 직결됩니다. 참으로 하느님 중심의 언제나 늘 거기 그 자리의 한결같고 확고한 삶이 우리의 정주입니다. 다음 고백 그대로입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하늘 향한 나무처럼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덥든 춥든

봄, 여름, 가을, 겨울,

늘 하느님이 불러 주신 이 자리에서

하느님만 찾고 바라보며

정주의 나무가 되어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살다보니 

이제 작은 나무가 울창한 아름드리

하느님의 나무가 되었습니다”-

 

정주의 나무가 상징하는 바, 그대로 우리 정주의 분도회 수도공동체요 분도회 수도승들입니다. 참으로 하느님만을 찾는 하느님 중심의 공동체 삶을 지향하는 우리 수도승들입니다. 다음 시편 고백과 자작 고백시 역시 하느님 중심의 삶을 분명히 합니다.

 

-주님께 아룁니다. 

“당신의 저의 주님, 저의 행복 당신밖에 없습니다.”(시편16,2)-

 

-“주님. 당신은 저의 전부이옵니다.

저의 생명, 저의 사랑, 저의 기쁨, 저의 행복이옵니다.

하루하루가 감사와 감동이요 감탄이옵니다.

날마다 새롭게 시작하는 아름다운 선물의 하루이옵니다.”-

 

바로 주님만이 삶의 중심이자, 삶의 의미임을 고백하는 고백시입니다. 이런 ‘삶의 중심’이란 관점에서 보면 오늘 말씀의 이해도 확연해 집니다. 

 

오늘 복음은 어제 예수님의 갈릴래아 전도의 시작과 어부 네 사람을 제자로 삼은 후 즉시 이어지는 더러운 영을 쫓아내신 일화입니다. 바로 더러운 영이 상징하는 바, 삶의 중심을 잃었을 때 야기되는 온갖 정신질환을 상징합니다. 

 

살아 계신 주님이 있어야 할 삶의 중심 자리에 더러운 영이나 우상들이 자리잡고 있을 때 파생되는 온갖 심신의 질환들입니다. 그러나 오늘 더러운 영에 들렸던 이는 살아 계신 주님을 만나자 치유의 구원입니다.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더러운 영은 주님의 권위있는 말씀에 그 사람의 중심 자리에서 퇴출되었고 그 중심 자리에 살아 계신 주님이 자리 잡으니 비로소 치유의 구원입니다. 이어지는 반응이 바로 주님이 우리 삶의 중심임을 분명히 합니다.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새롭고 권위있는 가르침이다. 저이가 더러운 영들에게 명령하니 그것들도 복종하는 구나.”

 

우리 삶의 영원한 중심이신 새롭고 권위있는 말씀 자체이신 주님과의 일치가 얼마나 결정적으로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치유보다는 예방이 백배 낫습니다. 하여 우리 삶의 중심을 확고히 하기 위해 온맘으로 평생, 매일, 끊임없이 바치는 시편과 미사의 공동전례기도입니다.

 

오늘 제1독서 사무엘 상권의 엘카나의 아내, 한나의 하느님 중심의 삶이 감동적입니다. 한나가 온갖 시련과 역경중에도 좌절하지 않고 자신을 지킬 수 있었음도 역시 하느님 중심의 삶에서 가능했음을 봅니다. 엘리와의 대화를 통해 한나가 참으로 하느님 중심의 기도의 사람이었음이 확연히 드러납니다.

 

“만군의 주님, 이 여종의 가련한 모습을 눈여겨 보시고 저를 기억하신다면, 그리하여 당신 여종에게 아들 하나만 허락해 주신다면, 그 아이를 한평생 주님께 바치고 그 아이의 머리에 면도칼을 대지 않겠습니다.”

 

마침내 한나는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고 감격에 넘쳐 “내가 주님께 청을 드려 얻었다”고백하면서 아이의 이름을 사무엘이라 합니다. 오늘 복음에 이어지는 화답송은 바로 한나의 하느님께 드리는 감사와 찬미의 기도입니다.  

 

사무엘 아기뿐 아니라 태어난 모든 생명들이 하느님의 선물임을 깨닫습니다.  얼마 전 번 피정하고 갔던 5남매의 자녀들을 둔 40대 중반의 신심 깊었던 젊은 부부도 기억하실 것입니다. 바로 5남매의 아버지가 보내 준 메시지에 놀랐습니다.

 

“또 하나 하느님께서 저희 가정에 축복을 주셨습니다. 올 7월에 저의 가정에 여섯째가 태어납니다. 태명은 ‘축복이’라고 지었습니다. 축복이가 건강하게 태어나도록 신부님의 기도를 청합니다. 시몬 드림”

 

저희 수도원 수도자들의 반려견伴侶犬들중 ‘복돌이’ 이름이 연상되어 절로 웃음이 나왔습니다. 참으로 하느님 중심의 삶을 한결같이 충실히 살아가는 젊은 부부의 삶이 감동스러웠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안에 내재한 온갖 더러운 영들을 쫓아내시고 심신의 질환을 치유해 주시며 당신 중심의 삶을 확고히 해 주십니다.

 

“주님, 당신께는 생명의 샘이 있고, 저희는 당신 빛으로 빛을 보나이다.”(시편36,10).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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