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2022.1.22.연중 제2주간 토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Jan 22,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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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2.연중 제2주간 토요일                                      2사무1,1-4.11-12.19.23-27 마르3,20-21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

 

 

어제 면담성사중 어느 형제의 말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수년간 만나온 형제로 몇 달전 40대 후반의 나이에 40대 중반의 자매를 아내로 맞아들인 성실한 분입니다. 결혼생활의 근황에 물었을 때 형제의 답변입니다.

 

“대박입니다. 하느님 은총입니다. 하느님께 감사합니다. 정말 훌륭한 아내입니다. 저에게 함부로 대하지 않고 존중해 주며 제가 부족하다 싶어도 격려해 줍니다. 시부모에게도 잘합니다. 요즘은 교리공부를 하는데 저보다 열심하고 기도도 많이 합니다. 대박입니다.”

 

결혼전 배우자 점수를 100점 만점에 120점, 200점을 줬던 형제였습니다. 이런 영적 도반의 부부관계라면 주님의 전사로서 더불어의 영적전쟁도 훌륭히 치러낼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이 참 짧습니다. 단 두절입니다. 예수님의 삶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얼마나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찾았는지 봅니다. 참으로 생명의 진리를 찾는 인간의 갈망을 반영한다 싶습니다. 마지막 구절, 미쳤다는 말마디가 마음에 와 닿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친척들이 소문을 듣고 그분을 붙잡으러 나섰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마르3,21)

 

참으로 미치기 쉬운, 때로 위태하게 생각되는 사람들입니다. 미칠 광자가 들어가는 많은 말마디가 이를 입증합니다. 광기, 광태, 광증, 광신, 광인, 광폭 등 찾으면 또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생각나는 말마디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바로 오늘 복음을 강론할 때 마다 인용했던 불광불급입니다.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 미쳐야 미친다라는 말입니다. 

 

참으로 자신 만의 일가를 이루기 위해, 참나의 실현을 위해 미칠 정도의 분투의 노력을 다해야 함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천재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불광불급의 부단한 투지로 노력한 것이 천재들의 특징입니다. 여기서 제가 자주 인용하는 말마디가 생각납니다. ‘제대로 미치면 성인이요 잘못 미치면 괴물이나 폐인이다.’라는 말마디입니다. 

 

참으로 험하고 힘든 생존경쟁 치열한 인생 광야 삶의 전쟁터에서 세가지 인간 유형의 결과로 나타난다고 저는 강조합니다. 바로 성인과 폐인과 괴물입니다. 참으로 치열하게 제대로 미쳐 정진할 때 성인이지만 이런 저런 죄악의 유혹에 빠져 시간과 정력을 탕진하고 세상 보이는 것들에 중독될 때 괴물이나 폐인이 되기 십중팔구입니다. 

 

참으로 제대로 사람되기가 얼마나 힘든 평생 과정인지 깨닫습니다. 정말 평생 삶의 목표로 할 바는 참 사람이, 참 내가, 내 고유의 성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고백상담중 착한 신자분들에게 자주 권하는 말씀이 성인이, 성녀가 되라는 것입니다. 20세기의 대 영성가 토마스 머튼에 대한 평가도 생각납니다.

 

“그는 가톨릭인이기 보다는 그리스도교인이었고, 그리스도교인이기 보다는 종교인이었고, 종교인이기 보다는 사람이었다.”

 

영성의 절정에 사람을 놓습니다. 사람이 되는 것, 바로 참내가 되는 것, 성인이 되는 것이요 이 또한 평생과제입니다. 흔히 우리가 수도원에 온 것은 무엇을 ‘하기 위해서’가 아닌 하느님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라 합니다. 과연 날로 내적으로 성장 성숙함으로 주님을 닮아 주님의 사람이, 참내가 되어가고 있는지 살펴봐야 하겠습니다. 괴물처럼, 폐인처럼 인생 마감된다면 얼마나 허망하겠는지요!

 

이래서 치열한 영적전투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합니다. 미쳐야 미칩니다. 참으로 제대로 미쳐 항구히 인내의 분투의 노력을 다할 때 참나의 실현이요 성인입니다. 갈수록 내적으로 치열해 지는 삶이어야 할 것입니다. 살아있는 그날까지 영적전쟁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하여 하루하루 일일일생, 하루를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평생처럼 살아가는 영적 전의가 절실합니다. 얼마전 읽은 말마디에 공감했습니다.

 

“힘든 일이 있었다면

이제는 일어날 차례.

쓰러져도 괜찮아.

무너지지만 말아.”

 

하느님 희망의 끈을 놓치면 곧장 무너지는 삶입니다. 살아 있는 한 희망은 있습니다(Dum vita est, spes est). 이와 더불어 생각나는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말마디가 있습니다. 

 

“넘어지는 것이 죄가 아니라 절망의 자포자기로 일어나지 않는 것이 죄다. 넘어지면 곧장 일어나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다.” 

 

이래야 영적 탄력 좋은 삶이요 무너지지 않습니다. 영적 삶이란 결국 무너지지 않기 위해 끝까지 버텨내고 견뎌내는 수행이요, 이의 구체적 수행이 일과표의 준수에 따른 반복의 삶, 질서의 삶입니다. 삶이 무질서할 때 내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바로 일과표의 일상화, 습관화에 의한 규칙적인 삶이 우리를 무너지지 않게 합니다. 

 

또 자주 사용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주님의 전사戰士는 싸우다 죽어야 전사戰死해야, 사고사나 객사, 교통사, 병사가 아니라 싸우다 전사해야 비로소 주님의 전사라는 것입니다. 기도하다, 일하다, 공부하다, 죽을 때 비로소 영적 전사라는 것입니다. 베네딕도 성인은 양손을 들고 기도하다 성전에서 또렷한 정신으로 임종했으니 거룩한 영적 전사戰死라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오늘 사울과 요나탄의 전사가 상징하는 바입니다.

 

참으로 치열하게 하느님의 전사로 살다가 전쟁중에 전사한 이들을 애도哀悼하여 바치는 오늘 제1독서의 다윗의 애가哀歌가 감동적입니다. 참으로 주님의 전사戰士로 치열하게 살다가 장렬하게 전사戰死한 사울과 요나탄 일화가 우리에겐 강렬한 영적 가르침이자 깨우침이 됩니다. 주님의 전사로서 살다가 전사다운 전사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아, 

네 영광이 살해 되어 언덕 위에 누워 있구나! 

어쩌다 용사들이 쓰러졌는가?

사울과 요나탄은 살아 있을 때에도, 서로 다정하더니, 죽어서도 떨어지지 않았구나.

그들은 독수리보다 날래고, 사자보다 힘이 세었지.

어쩌다 용사들이, 싸움터 한복판에서 쓰러졌는가?

요나탄이 네 산 위에서 살해되다니! 나의 형 요나탄, 형 때문에 내 마음이 아프오.

형은 나에게 그토록 소중하였고, 나에 대한 형의 사랑은, 여인의 사랑보다 아름다웠소.

어쩌다 용사들이 쓰러지고, 무기들이 사라졌는가?“

 

다윗의 애가가 감동적이라 심금을 울립니다. 말그대로 주님의 전사戰士로 살다가 치열한 전투중 전사戰死한 사울과 요나탄에 대한 애도입니다. 사울과 요나탄의 기억은 주님의 전사인 다윗에게 끊임없는 분발과 용기, 영감의 원천이 되었을 것입니다. 

 

미쳐야 미칩니다. 제대로 미치면 성인이고 잘못 미치면 폐인입니다. 바로 예수님을 비롯한 제1독서의 다윗, 그리고 무수한 성인들이 그 좋은 모범이자 증거입니다. 참으로 하느님 사랑, 이웃 사랑에 제대로 미쳐 참나의 성인이 된 주님의 전사들인 성인들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제대로 미친 성인이, 주님의 전사가 되게 해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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