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4.10.주님 수난 성금요일 주님 수난 예식 

이사52,13-53,12 히브4,14-16;5,7-9 요한18,1-19,42

 

 

 

십자가의 주님의 사랑

-관상, 공부, 추종-

 

 

 

오늘 성삼일 두 번째 날 성금요일, 우리는 주님 수난 예식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교황님은 코로나 사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신자들에게 성삼일 동안 십자가를 관상하면서 복음을 읽으라고 강조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의 표현인 십자가안에서 용기와 힘, 그리고 희망을 지니라 격려하셨고 결국은 하느님의 사랑과 더불어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의 주님의 사랑, 바로 오늘 수난 성금요일은 물론 강론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더불어 우리 각자의 십자가도 생각합니다. 십자가의 수난없이는 부활의 영광도 없습니다. 십자가 없이는 구원도 없고 사람이 되는 길도 없습니다. 십자가의 길이야 말로 참 사람이,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유일한 길이기도 합니다. 천국의 열쇠 역시 각자 고유의 십자가입니다. 

 

뿌리없이는 꽃도 없듯이 십자가의 수난 없이는 부활의 영광도 없습니다. ‘뿌리 없이는 꽃도 없다’라는 아주 예전에 써놓은 시를 나눕니다.

 

-“뿌리없이는 꽃도 없다

뿌리로 살아야지

세월속에 묻혀 뿌리로 사는거야

꽃사랑으로 피어날 때까지 기다리며 뿌리로 사는 거야

뿌리살이 고달플 때 꽃사랑 추억으로 갈증 축이며

하늘 사랑 꽃으로 피어날 그날 그리며

뿌리로 사는거야

뿌리없이는 꽃도 없다”-1999.1.2

 

전임 베네딕도 16세 교황님의 이임사 두 번째 말씀, “저는 십자가를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에 대한 해명 말씀에 공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십자가를 떠날 수도 없고 떠나서도 안됩니다. 이어지는 교황님의 말씀입니다.

 

“기이하게도 저의 사임 선언이 제가 십자가에서 내려와 더 안락한 삶을 추구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저는 사임이 일종의 도피나 어떤 실제적인 압박으로부터의 피신이 아니었다고 분명히 확신합니다. 거기에 실제적인 압박도 없었으며, 십자가로 향하게 하는 신앙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마음도 없습니다. 이것은 침묵의 고요 속에서 온 교회를 위해 기도에 집중하면서, 고통을 겪으시는 주님과 결합하여 머무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사임은 도피가 아니라 저의 봉사직에 충실히 머무는 또 다른 방식입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의 주님을 피해 갈 곳 세상 어디도 없습니다. 어디에 가도 십자가의 주님은 우리를 바라 보고 계시며 나와 함께 하자고 호소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이런 베네딕도 16세 교황님을 ‘위대한 교황’이라 칭하며 하신 찬사의 말씀이 아름다워 인용합니다.

 

“그분은 자신의 지성의 능력과 통찰력 때문에 위대했고, 신학에 대한 지대한 공헌 때문에 위대했으며, 교회와 인간에 대한 사랑 때문에 위대했고, 자신의 성덕과 신앙심 때문에 위대했습니다. 그분의 정신은 세세대대로 항상 더 위대하고 더 강력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참으로 항구히, 묵묵히, 충실히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위대한 두 교황을 지닌 우리 가톨릭 교회는 축복받은 교회입니다. 하느님은 주님의 십자가위에서 자신을 완전히 드러내셨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십자가는 ‘하느님의 옥좌(the chair of God)’임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그러니 주님의 십자가를 사랑해야 합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사랑할수록 각자의 내 십자가를 잘 지고 주님을 따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가시는 십자가의 주님께서 끊임없이 힘을 북돋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성인성녀들이 가신 하늘길이 바로 십자가의 길입니다.

 

첫째,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보는 관상입니다.

사랑의 관상입니다. 우리가 참으로 언제나 바라볼 관상의 대상은 십자가의 주님뿐입니다. 우리가 늘 향해야 할 눈길과 눈빛은 십자가의 주님뿐입니다. 이런 영원한 바라볼 관상의 대상인 십자가의 주님을 모신 우리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제1독서 이사야서 주님의 종의 넷째 노래에서도 주님은 당신의 종을 바라볼 것을 권합니다. 그대로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가신, 우리의 고통과 죄악을 짊어지신, 우리를 의롭게 하신 십자가의 주님을 상징합니다. 

 

“보라, 나의 종은 성공을 거두리라. 그는 높이 올라 숭고해지고 더없이 존귀해 지리라.”

 

참으로 십자가의 주님을 사랑의 눈길로 바라볼 때 두려움은 사라지고 안정과 평화가 선물처럼 주어집니다. 십자가 경배 예식시의 사제의 권고와 우리의 응답과 고백은 얼마나 아름답고 은혜로운지요.

 

-“보라, 십자 나무 여기 세상의 구원이 달렸네.”

“모두 와서 경배하세.”

“주님의 십자가 경배하오며, 주님의 거룩하신 부활을 경축하오니, 십자나무 통해 온 세상에 구원이 왔나이다.”-

 

하여 우리 삶의 중심에 모시고 늘 바라보며 경배하는 마음으로 살라고 성전 제대 뒷면 중앙벽에 높이 달린 십자가의 주님이십니다. 히브리서 저자 역시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보며 힘차게 살아갈 것을 권고합니다.

 

“우리에게는 하늘 위로 올라가신 위대한 대사제가 계십니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을 굳게 지켜 나아갑시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는 대사제가 아니라, 모든 면에서 우리와 똑같이 유혹을 받으신, 그러나 죄는 짓지 않으신 대사제가 계십니다. 그러므로 확신을 가지고 은총의 어좌로 나아갑시다. 그리하여 자비를 얻고 은총을 받아 필요할 때에 도움이 되게 합시다.”

 

참으로 우리가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보는 관상에 항구히 충실할 때 은총의 어좌로 나아갈 수 있고 필요할 때 주님의 자비와 은총도 받을 수 있습니다.

 

둘째, 십자가의 주님을 배우는 공부입니다.

사랑의 관상에 이어 사랑의 공부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배우는 공부입니다. 어디서 배웁니까? 바로 십자가의 주님 아래에서입니다. 언제 어디나 우리 믿는 이들의 삶의 자리는 십자가의 주님 아래입니다. 주님은 오늘 요한 수난 복음 후반부에 서 바로 우리의 자리를 알려 주십니다. 

 

십자가의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말씀하십니다. 어머니는 우리 교회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이시고 사랑하시는 제자는 바로 우리 모두를 가리킵니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그러니 우리가 우선 스승으로 모시고 평생 보고 배워야 할 분은 십자가의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뿐임을 깨닫습니다. 사랑을 배우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성모님의 사랑을 배우는 것입니다. 역시 평생 사랑을 보고 배워야 하는 평생학인인 우리들입니다.

 

셋째, 십자가의 주님을 따르는 추종입니다.

사랑의 추종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사랑의 추종은 진리에 순종함으로 이뤄집니다. 평생 주님은 진리를 추종했고 진리에 순종하셨습니다. 아니 예수님 자체가 진리였습니다. 그러닌 주님을 충실히 따를 때 우리 또한 주님의 진리가 됩니다. 수난복음중 주님은 이를 명백히 밝히십니다.

 

“나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왔다.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빌라도의 “진리가 무엇이요?”란 엉겁결의 물음이 우리에게는 평생화두가 됩니다. 우리는 확신을 지니고 “십자가의 예수님이 바로 진리다.” 말할 수 있습니다. 참으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서 순종하는 법을 배우셨습니다. 하여 완전하게 되신 뒤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바로 이에 대한 감격의 응답이 복음 환호송, 필리비서의 그리스도의 찬가입니다. 그대로 우리가 십자가의 주님의 진리를 따라 ‘순종의 여정’에 항구했을 때 우리의 영광스러운 미래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네. 하느님은 그분을 드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네.”

 

십자가의 주님을 통해 환히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에게는 끊임없는 감사와 감동, 감격의 원천이 됩니다. 그러니,

 

1.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보며 관상합시다. 사랑의 관상입니다. 

2.십자가의 주님을 배우며 공부합시다. 사랑의 공부입니다. 

3.십자가의 주님을 따라 추종합시다. 사랑의 추종입니다. 

 

십자가의 주님은, 파스카의 주님은 우리 모두 이렇게 살도록 도와 주십니다. 제 좌우명 애송시 마지막 연으로 강론을 마칩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일일일생(一日一生), 하루를 평생처럼,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살았습니다.

저에겐 하루하루가 영원이었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이렇게 살았고 내일도 이렇게 살 것입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아멘-

 

 

 

 

 

 

 

  • ?
    고안젤로 2020.04.10 09:13
    사랑하는 주님, 부족한 저희가 각자의 십자가를 잘 지고 갈수 있도록 저희의 몸과 마음을 오로지 주님께 맡기게 하소서. 아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903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은총의 삶, 찬미의 삶, 순종의 삶-2022.12.8.목요일 한국 교회의 수호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프란치스코 2022.12.08 336
2902 하느님은 누구인가? -언제나 우리를 먼저 초대 하시는 분-2022.12.7.수요일 성 암브로시오 주교 학자(340-397) 기념일 프란치스코 2022.12.07 235
2901 착한 목자 영성 -하느님 닮기-2022.12.6.대림 제2주간 화요일 프란치스코 2022.12.06 199
2900 주님과 만남의 치유와 찬양 -믿음이 답이다-2022.12.5. 대림 제2주간 월요일 프란치스코 2022.12.05 236
2899 하느님의 자녀다운 삶을 삽시다 -꿈. 공부, 찬양, 회개-2022.12.4.대림 제2주일 프란치스코 2022.12.04 251
2898 배움의 여정 -늘 주님께 배우고 치유받읍시다-2022.12.3.토요일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제(1506-1552) 기념일 프란치스코 2022.12.03 185
2897 개안開眼의 여정 -무지無知에 대한 답은 예수님뿐이다-2022.12.2.대림 제2주간 금요일 프란치스코 2022.12.02 193
2896 반석 위의 인생집 -주님의 말씀(뜻)을 실행하는 슬기로운 삶-2022.12.1.대림 제1주간 목요일 프란치스코 2022.12.01 192
2895 “나를 따라 오너라” -하루하루 날마다 주님을 따르는 삶-2022.11.30.수요일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 프란치스코 2022.11.30 192
2894 오소서, 성령이여 -성령님께 마음을 열라-2022.11.29.대림 제1주간 화요일 프란치스코 2022.11.29 215
2893 새 예루살렘 -참 겸손한 이들이 영원히 머무는 곳-2022.11.28.대림 제1주간 월요일 프란치스코 2022.11.28 185
2892 대림의 기쁨, 대림의 희망, 대림의 평화 -늘 깨어 있어라!-2022.11.27.대림1주일(가해) 프란치스코 2022.11.27 202
2891 “늘 깨어 있어라!” -깨어 있음, 천상의 꿈, 깨어 있기 훈련-2022.11.26.연중 제34주간 토요일 프란치스코 2022.11.26 232
2890 -“새 하늘과 새 땅” -오늘 지금 여기가 하느님의 나라이다-2022.11.25.연중 제34주간 금요일 프란치스코 2022.11.25 201
2889 “끝은 새로운 시작, 절망은 없다” -희망하라, 찬미하라, 인내하라-2022.11.24. 목요일 성 안드레아 둥락 사제(1785-1839)와 116명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프란치스코 2022.11.24 261
2888 하느님의 궁극적 승리 -“인내의 승리, 찬미의 승리”-2022.11.23.연중 제34주간 수요일 프란치스코 2022.11.23 191
2887 정주의 영성 -하루하루, 한결같이-2022.11.22.화요일 성녀 체칠리아 동정 순교자(+230년?) 기념일 프란치스코 2022.11.22 180
2886 예수님의 참가족 -늘 새로운 봉헌, 예수님 중심의 삶-2022.11.21.월요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프란치스코 2022.11.21 199
2885 그리스도왕 중심의 삶 -찬미의 삶, 평화의 삶, 섬김의 삶-2022.11.20.연중 제34주일(세계 젊은이의 날, 성서주간)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 프란치스코 2022.11.20 191
2884 부활의 희망속에 살아가는 우리들 -선종의 죽음-2022.11.19.연중 제33주간 토요일 프란치스코 2022.11.19 187
Board Pagination Prev 1 ...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 170 Next
/ 170
©2013 KSODESIGN.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