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여정, 믿음의 전사 -믿음과 희망이 답이다-2021.1.30.연중 제3주간 토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Jan 30,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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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30.연중 제3주간 토요일                                                       히브11,1-2.8-19 마르4,35-41

 

 

 

믿음의 여정, 믿음의 전사

-믿음과 희망이 답이다-

 

 

 

피정지도중 수없이 강조한 예화가 생각납니다. 

 

“노년의 품위 유지를 위한 우선적 순서는 1.하느님 믿음, 2.건강, 3.돈이다. 이 우선적 순서가 절대 바뀌어선 안된다. 하느님 믿음이 있어야 마음의 건강에 이은 육신의 건강이요, 돈의 탐욕에 대한 절제도 가능하다. 믿음이 우선이다 품위의 우선적 기초가 믿음이다. 믿음이 없으면 건강이 돈이 우상이 되어버리고 만다. 영혼은 황폐화 된다.”

“물보다 진한게 피이고 피보다 진한게 돈이고 돈보다 진한게 믿음이다. 믿음이 있어야 돈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삶의 중심에 하느님 믿음이 자리 잡고 있어야 함을 강조한 말입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것이 믿음입니다. 삶은 그대로 믿음의 여정이라 할 수 있고 주님의 전사들인 우리는 믿음의 전사라 할 수 있습니다. 참으로 영적성장은 믿음의 성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 사실 옛 사람들은 믿음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어찌 옛사람들뿐이겠습니까? 오늘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믿음으로 살아가는 지요! 믿음의 힘은 그대로 하느님의 힘입니다. 믿음이 있어야 튼튼한 영혼이요 내외적으로 무너지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믿음으로 저산도 옮기리 믿음으로

믿음으로 믿음으로 바다도 가르리 믿음으로

믿음으로 믿음으로 한생명 다하리 믿음으로

믿음으로 믿음으로 한넋을 다하리 믿음으로”

 

때로 힘차게 부른 성가 480장이 생각납니다. 오늘 제1독서 히브리서 말씀은 얼마나 웅장한지 그대로 믿음 찬가요 믿음 예찬같습니다. 무수한 믿음의 전사들이 흡사 하늘의 별들같습니다. 우선 아브라함이 믿음의 모범으로 제시됩니다. 

 

“믿음으로써, 아브라함은 장차 상속 재산으로 받을 곳을 향하여 떠나라는 부르심을 받고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떠난 것입니다.”

 

순종으로 표현되는 믿음입니다. 또한 믿음은 희망과도 직결됨을 봅니다. 하느님께 궁극의 희망을 두고 있는 믿음입니다. 이어지는 대목도 우리 믿음에는 좋은 격려가 됩니다.

 

“이들은 모두 믿음 속에 죽어갔습니다. 약속된 것을 받지는 못하였지만 멀리서 그것을 보고 반겼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은 이방인이며 나그네일 따름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함으로써 자기들이 본향을 찾고 있었음을 분명히 드러냈습니다. 실상 그들은 더 나은 곳, 바로 하늘 본향을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하늘 본향에 대한 갈망과 희망이 백절불굴의 탄력좋은 믿음의 뿌리였음을 봅니다. 참으로 하늘 본향에 대한 희망에, 하느님께 깊이 뿌리내려야 하는 믿음입니다. 바로 그의 모범이 오늘 복음의 예수님이십니다. 거센 돌풍의 풍랑중에도 예수님만은 참으로 침착 태연합니다. 그 위태한 상황중에도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니 하느님께 깊이 뿌리 내린 믿음의 반영입니다.

 

흡사 호수의 풍랑중에 흔들리던 배들이나 불안해 하는 제자들, 그대로 오늘 우리의 상황을 상징하는 듯 합니다. 세상 풍랑중에 참으로 위태해 보이는 공동체의 배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답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제자들은 가까이 중심에 계신 주님을 잠시 무지에 눈멀어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잊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바로 우리 삶의 자리 깊이의 중심에 자리잡고 계신 주님을 찾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것입니다. 애당초 타고난 믿음은 없습니다. 믿음의 여정중인 우리들이요 시행착오를 통해 깊어지는 믿음입니다. 그러니 믿음이 약하다고 부끄러워하거나 좌절할 것은 없습니다. 어차피 우리는 사랑에서처럼 믿음에도 영원한 초보자이기 때문입니다.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습니까?”

 

그대로 간절한 기도나 마찬가지입니다. 답은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 지금 여기 있습니다. 멀리 밖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하여 간절하고 절실히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삶의 중심에 늘 함께 계신 예수님은 그대로 하느님의 현존이자 권능임을 깨닫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깨어나시어 바람을 꾸짖으시고 호수더러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하시니 바람이 멎고 아주 고요해집니다. 그대로 이런 외적 상황은 내면의 혼란을 상징합니다. 제자들의 내면은 두려움의 풍랑에 요동쳤지만 주님의 내면은 참으로 평온했습니다. 믿음 부족으로 흔들리는 내면이 문제입니다. 

 

지금도 선명한 기억은 작년 9.29일 고속도로에서의 대형교통사고중에도 제 마음이 한없이 고요했던 것은 지금 생각해도 불가사의입니다. 아마도 내면 깊이 에 계신 주님의 은총이라 믿습니다. 예수님이 꾸짖으시는 바, 이들의 부족한 믿음입니다. 결국은 믿음 부재가 문제였던 것입니다.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그대로 배안의 제자들뿐 아니라 우리 모두를 향한 말씀입니다. 탓할 것은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아닌 나의 믿음 부족입니다.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제자들의 말중에 답이 들어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은 하느님의 현현이었던 것입니다. 시편 말씀들이 연상됩니다.

 

“바다의 노호를, 그 파도의 노호를, 민족들의 소요를 가라앉히시는 분”(시편65.8)

“당신께서는 오만한 바다를 다스리시고 파도가 솟구칠 때 그것을 잠잠케 하십니다.”(시편89,10)

“주님, 큰 물의 소리보다, 바다의 파도보다 엄위하십니다.”(시편93,4)

“광풍을 순풍으로 가라앉히시니 파도가 잠잠해졌다.”(시편107,29)

 

지구가, 세계가, 국내 정세가, 온갖 공동체들이 흡사 오늘 복음중 풍랑 속의 배처럼 위태해 보입니다. 많은 이들이 불안과 두려움으로 마음이 들떠있습니다. 가까에 중심 깊이에 계신 주님께 귀기울여할 때입니다. 

 

어제 읽은 “말의 힘 절감, 귀 열어 마음 얻겠다” 기사도 잊지 못합니다. 류지현 LG 야구 감독이 감독실에 걸려있는 액자의 좌우명입니다. 이청득심以聽得心, 귀기울여 경청하는 일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최고의 지혜’라는 말로, 류감독이 예전부터 늘 마음 속에 담아 둔 말이라 합니다. “류감독監督님, 류감동感動님이 되어 주십시오.”라는 어느 팬의 당부도 잊지 못한다 했습니다. 

 

이청득심以聽得心, 사람의 마음뿐 아니라 하느님의 마음도 얻는 최고의 지혜이며, 사람은 물론 하느님도 감동시키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수도원 십자로 예수님 부활상 바위판에 새겨진 성구입니다.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믿음이 두려움을 몰아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마음의 풍랑을 잠잠케 하시고 참 좋은 믿음을 선사하십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시편23,1)

시편 성구에 이어 덧붙여 고백하고 싶습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두려울 것 없어라.”

“주님은 나의 목자, 겁낼 것 없어라.”

“주님은 나의 목자, 걱정할 것 없어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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