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중심의 삶 -끊임없는 회개와 말씀의 실행-2021.9.11.연중 제23주간 토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Sep 1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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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9.11.연중 제23주간 토요일                                                         1티모1,15-17 루카6,43-49

 

 

 

하느님 중심의 삶

-끊임없는 회개와 말씀의 실행-

 

 

 

“마음의 치유는 경청에서 시작한다.”

 

깊이 마음에 와닿은 교황님 말씀이 생각납니다. 참으로 깊이 경청할 때 마음의 치유요 순수라는 이야기입니다. 경청이야말로 영성생활의 시발점입니다. 경청을 위한 침묵이요 이런 겸손한 경청에서 순종도 뒤따릅니다. 그러니 하느님 중심의 삶에 경청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어제 노자老子 강의를 들으며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공자에는 성인聖人이란 말이 안 나오지만 노자에는 성인이란 말이 많이 나오고 성인이 되는 것은 삶의 궁극 목표라는 것입니다. 여기 노자가 말하는 성인은 덕성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잘 듣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들을, 자연의 말들을 잘 듣는 경청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거룩할 ‘성聖’ 한자만 봐도 ‘귀’를 뜻하는 ‘이耳’자가 앞에 나옵니다.

 

그러니 하느님 중심의 삶에서 경청은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하느님과의 소통인 기도나 성독 역시 경청에서 시작됩니다. 경청의 수련이 참 절실합니다. 지난주 복음의 “에파타!” “열려라”는 말마디를 기억할 것입니다. 정말 열려야 할 것은 마음의 귀입니다. 마음의 귀가 닫혀 있으면 아무리 육신 귀의 청력이 좋아도 듣지 못합니다. 그러니 마음의 순수와 열림이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참 쏜살같이 빠른 세월입니다. 월요일인가 했더니 벌써 토요일입니다. 매일 같은 일과의 반복이기에 어떤 때는 요일의 구별이 안되어 그날이 그날같습니다. 하루가 영원같고 평생이 하루같다는 느낌도 들 때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라틴어 두 격언,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멘토 모리’, ‘지금 여기를 살라’는 ‘카르페 디엠’ 이란 말마디가 요즘 절실히 마음에 와 닿습니다.

 

죽음을 늘 눈앞에 두고 지금 여기를 살 때 저절로 뒤따르는 회개의 삶입니다. 끊임없는 회개가 하느님 중심의 삶을 확고히 해줍니다. 회개를 통해 살아나는 사랑이요 순수입니다. 마음의 순수는 고정된 실재가 아니라 유동적 실재입니다. 참으로 끊임없는 회개의 수행을 통해 사랑할수록 마음의 순수라는 것입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마태5,8)

 

죄가 없어 마음의 순수가 아니라 사랑할수록 마음의 순수입니다. 이런 마음의 순수에서 샘솟는 열정의 사랑입니다. 순수와 열정은 함께 가며 수도자들은 물론 믿는 이들의 기본적 자질이기도 합니다. 회개의 사랑을 통한 마음의 순수요 확고해지는 하느님 중심의 삶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오늘 말씀의 이해도 확연해 집니다. 오늘 루카복음은 산상설교의 끝부분에 속하며 둘로 이뤄져있습니다.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안다’는 내용과 ‘주님 말씀을 실행하라’는 것입니다. 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지 않고 나쁜 열매는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포도를 따지 못합니다.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압니다. 결국 사람이, 마음이 좋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자는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내놓는다.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

 

언어는 존재의 집입니다. 그가 하는 말을 통해 그의 마음이, 그가 누구인지 그대로 드러납니다. 100% 순도의 마음도 없고, 100% 선인도, 악인도 없습니다. 끊임없는 회개와 경청의 수행과 더불어 말씀의 실천이 마음을 순수하게 합니다. 안이, 마음이 깨끗하면 겉은 저절로 깨끗해 집니다. 무슨 옷을 입어도 어울립니다. 화장이나 성형 수술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래서 살아 있는, 죽는 그날까지 영원학 현역으로서 치열한 말씀 실천의 분투의 노력이요 수행입니다. 다음 복음 말씀은 우리 모두의 회개를 촉구합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주님, 주님!’하고 부르면서, 내가 말하는 것을 실행하지 않느냐? 나에게 와서 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어떤 사람과 같은지 보여 주겠다. 그는 땅을 깊이 파서 반석 위에 기초를 놓고 집을 짓는 사람과 같다. 홍수가 나서 강물이 집에 들이닥쳐도, 그 집은 잘 지어졌기 때문에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바로 우리 정주의 삶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유비무환입니다. 이런 회개를 통한 말씀의 실행이 마음의 순수와 더불어 튼튼한 반석위의 하느님 중심의 삶을, 정주의 삶을 이뤄준다는 것입니다. 반석 위의 정주의 삶은 완성이 아니라 영원한 현재진행형입니다. 

 

우리의 영성생활은 복잡하지 않습니다. 아주 기본에 충실한 삶, 기초를 튼튼히 하는 삶입니다. 바로 끊임없는 회개와 경청에 이어 한결같이 깨어 말씀을 실행하는 삶입니다. 이래야 마음의 순수요 하느님 중심의 삶입니다. 이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다음 말씀의 실행이 없는 삶입니다. 

 

“그러나 내 말을 듣고도 실행하지 않는 자는, 기초도 없이 맨땅에 집을 지은 사람과 같다. 강물이 들이닥치자 그 집은 무너져 버렸다. 그 집은 완전히 허물어져 버렸다.”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것이 안으로부터 무너져 내릴 때입니다. 결국 우리의 영성생활도 내적으로 무너지지 않기 위한 부단한 자기와의 싸움입니다. 이것이 영적전쟁의 본질입니다. 사실 공동체든 개인이든 외부의 침입으로 망하는 경우보다는 내부의 분열로 무너져 내리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새삼 하루하루 회개와 말씀의 실행으로 기본에 충실한 삶, 기초를 튼튼히 하는 하느님 중심의 삶이 얼마나 본질적인지 깨닫습니다.

 

어제에 이어 바오로는 자신의 회심의 사건을 다시 고백하면서 하느님 중심의 삶, 그리스도 예수님 중심의 삶을 확고히 합니다. 

 

“나는 첫째가는 죄인입니다. 그 때문에 하느님께서 나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먼저 나를 한없는 인내로 대해 주시어,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고 당신을 믿게 될 사람들에게 본보기로 삼고자 하신 것입니다.”

 

평생 이런 회심의 살아 있는 추억이 바오로를 깨어 있게 했고, 순수하게 했고 하느님 중심의 삶을 확고히 해줬음을 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회개한 우리를 깨끗하게, 거룩하게 하시며 하느님 중심의 삶을 확고히 해줍니다. 

 

“영원한 임금이시며, 불사불멸하시고 눈에 보이지 않으시며, 한 분뿐이신 하느님께 영예와 영광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1티모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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