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구원救援, 참 나의 실현實現이자 발견發見 -찾으라, 만나라, 일어나라-2021.6.27.연중 제13주일(교황주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Jun 27,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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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6.27.연중 제13주일(교황주일)

지혜1,13-15;2,23-24  2코린8,7.9.13-15 마르5,21-43

 

 

 

치유의 구원救援, 참 나의 실현實現이자 발견發見

-찾으라, 만나라, 일어나라-

 

 

 

자주 물었던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란 질문입니다. 자주 답답할 때 묻는 질문이요, 강론 제목이기도 했고 앞으로도 계속 묻게 될 것입니다. “수도자는 누구인가?”날마다 묻는 자가 수도자라 했습니다. 비단 수도자뿐 아니라 누구나 물어야 할 질문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신원에 관한 근원적 물음입니다.

 

누구나의 보편적 소망이 잘 살고 싶다는 마음일 것입니다. 행복하고 보람있게 살고 싶은 마음일 것입니다. 이런 잘 살고 싶은 욕망의 청정욕淸淨慾은 얼마든지 좋습니다. 아주 예전 개신교 목사님과의 주고 받은 짧은 문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수차례 인용했던 내용입니다.

 

-“신부님의 소원은 무엇입니까?”

“잘 살다 잘 죽는 것입니다!”-

 

내심 만족했고 지금 묻는 다해도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잘 사는 것도 은총이고 잘 죽는 것도 은총입니다. 삶은 선물이자 과제입니다. 선물로 주어진 은총의 삶이자 살아있는 그날까지 부단히 살아내야 할 과제가 인생 여정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답은 단 하나 하루하루 살면 됩니다. 어떻게 하루하루 삽니까? 하루하루 날마다 ‘치유의 구원’을 살면 됩니다. 치유의 구원은 ‘참 나의 실현’이자 ‘참 나의 발견’이기도 합니다. 그대로 파스카 신비의 삶입니다. 이를 위한 결정적, 필수적 세 요소를 소개합니다.

 

첫째, “찾으라!”입니다.

‘찾는 인간’ 바로 이것이 인간의 정의이자 참으로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무엇인가 끊임없이 찾는 인간입니다. 무엇을 찾느냐가 그 삶의 꼴을 형성합니다. 사람마다 찾는 양상은 다 다를 것입니다. 출세, 명예, 건강, 재산, 부귀영화, 사람, 일 등 끝없이 다양할 것입니다. 과연 여러분은 무엇을 찾습니까? 궁극의 찾을 대상은 무엇입니까?

 

답은 단 하나 하느님을 찾습니다. 궁극의 그리움의 대상인 주님이신 하느님을 찾습니다. 우리의 구원자 예수님을 찾습니다. 한 두 번의 찾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평생 새롭게 찾아야 합니다. 바로 다음 유명한 시편 구절이 우리의 갈망을 대변합니다.

 

“암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내 영혼, 하느님을 그리나이다. 

내 영혼, 하느님을, 생명의 하느님을 애타게 그리건만 그 하느님 얼굴을 언제나 가서 뵈오리까”(시편42,2-3)

 

“하느님 내 하느님, 당신을 목말라 하나이다. 물기 없이 마르고 메마른 땅, 이 몸은 당신이 그립나이다.”(시편63,2)

 

바로 끊임없이 주님을 찾는 갈망이, 주님을 찾는 열정이 믿음이요 성소의 원동력이자 영성생활의 시발점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찾는 열정이 있을 때 마음의 순수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갈망에서 배움에 대한 사랑도 샘솟습니다. 모든 힘들고 어려운 일들은 주님을 찾으라는 신호입니다. 이들을 주님을 찾는 계기契機로 삼는 것이 구원의 지혜입니다. 

 

‘정녕 하느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불멸의 존재로 창조하시고, 당신 본성의 모습에 따라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악마의 시기로 세상에 죽음이 들어와, 죽음에 속한 자들은 그것을 맛보게 됩니다.’(지혜2,23-24). 오늘 제1독서 지혜서 말씀입니다. 참으로 간절히, 열렬히 끊임없이 주님을 찾을 때 비로소 죽음에 속하지 않게 됩니다.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진짜 죽음은 무엇입니까? 살아있다고 다 살아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로부터 분리되어 떨어져 나가는 것이, 주님을 까맣게 잊고, 잃고 사는 것이 진짜 죽음이요 살아서 겪는 죽음 체험입니다. 그러니 주님을 찾을 때 비로소 참으로 살아 있다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야이로라는 회당장이, 열두해 동안 하혈병을 앓던 여자가 그 구도자求道者의 모범입니다. 놀라운 것은 이분들이 포기하거나 좌절함이 없이 간절히, 한결같이 주님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둘째, “만나라!”입니다.

간절히 찾을 때 참으로 적절한 때 주님을 발견합니다. 주님을 만납니다. 주님과의 은혜로운 만남을 통한 회개이자 자기 발견의 겸손이요 지혜입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주님께서 찾아오시니 만남은 바로 은총의 선물임을 깨닫습니다. 찾지 않으면 평생 주님을 못만납니다. 정말 큰 죄는 의욕을, 열정을 잃고 주님을 찾지 않는 것입니다. 마침내 예수님을 만난 야이로 회당장은 그분 발앞에 엎드려 간청하니 그대로 간절한 기도입니다.

 

“제 어린 딸이 죽게 되었습니다.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 아이가 병이 나아 다시 살게 해 주십시오.” 간곡히 청하자 지체없이 그와 함께 가시는 주님이십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똑같은 주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시는 이 거룩한 미사시간, 아프거나 병든 곳이 있으면 주님께 손을 얹어 낫게 해달라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열두해 동안 하혈병을 앓던 여자가 주님을 만나는 장면도 감동입니다. 그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군중에 섞여 예수님 뒤로 가서 그분의 옷에 손을 댑니다.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간절한 소망을 지니고 손을 대니 곧 출혈이 멎고 병이 나은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말그대로 만남의 축복입니다. 만남의 치유이자 구원입니다. 만남중의 만남이 부활이자 생명이신 파스카 예수님과의 만남입니다. 바로 이런 주님을 만나는 미사시간입니다. 당신에게서 힘이, 생명의 힘이 나간 것을 알아 챈 주님은 “누가 나에게 손을 대었느냐?”묻습니다. 마침내 부인은 두려워 떨며 나와서 예수님 앞에 엎드려 사실대로 아룁니다. 주님과의 결정적 구원의 만남입니다.

 

셋째, “일어나라!”입니다.

주님을 만나 치유의 구원이요 새롭게 부활한 하혈병을 앓던 여자입니다. 다음 주님의 여자에 대한 말씀은 이 거룩한 미사에 참석한 우리 모두를 향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그리고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져라.”

 

‘평안히 가거라’는 ‘일어나라!’로 바꿔도 좋겠습니다. 이제부터 불운의 늪에서,  질곡桎梏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육신의 병만이 아니라 영혼까지, 영육의 전인적 치유의 구원이 일어난 것입니다. 바로 ‘딸아!’라는 호칭이 이를 입증합니다. 예수님을 만나 치유됨으로 이제부터 ‘하느님의 딸’로서 영원한 생명을 살게 된 여자입니다. 아마 예수님과 만남의 구원체험은 평생 삶의 기반이 됐을 것입니다. 우리 역시 이 거룩한 미사중 주님을 만나 전인적 치유의 구원으로 ‘하느님의 아들’로, ‘하느님의 딸’로 살게 되었으니, 이제 하느님의 자녀답게 사는 일만 남았습니다.

 

주님께서 야이로 회당장의 딸을 살리시는 일련의 과정도 감동적입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불안과 두려움에 떠는 회당장을 격려하는 예수님입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나다.” 바로 수도원 십자로 중앙, 예수 성심상 아래  바위판에 새겨진 성구입니다. 무려 성서에 “두려워하지 마라.”는 말씀이 366회 나온다니 일년 365일 날마다 우리를 두려워하지 마라 격려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참으로 믿음의 빛만이 두려움의 어둠을 몰아냅니다.

 

회당장의 집에 이르렀을 때 무지한 중생들이 큰 소리로 울며 탄식하는 것을 보시고 하시는 말씀 또한 은혜롭기 한이 없습니다. “어찌하여 울며 소란을 피우고 있느냐? 저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화두같은 말씀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믿는 자들에게 죽음은 없습니다. 그래서 미사경문중에도 죽은 이를 위한 기도중에 ‘부활의 희망 속에 고이 잠든 교우들’이라 표현합니다. 믿는 이들은 죽은 것이 아니라 부활의 희망 속에 고이 잠들어 있는 것입니다. 얼마전 새롭게 마음에 와닿은 금요일 끝기도 참 아름답고 깊은 기도문도 소개하고 싶습니다.

 

“전능하신 하느님, 무덤에서 편히 쉬신 아드님과 같이 저희도 편히 쉬게 되었으니, 내일도 잠에서 깨어나 부활하신 그분과 함께 새 생활을 시작하게 하소서.”

 

그대로 파스카 신비의 삶을 요약한 기도문이요, 믿는 이들에게는 이미 생사를 넘어 주님과 함께 영원한 삶만이 있을 뿐임을 깨닫게 됩니다. 정말 무섭고 두려운 영원한 죽음은 하느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바로 이를 일컬어 지옥이라 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비웃는 무지몽매한 이들을 가차없이 다 내쫓으시고 아이 부모와 당신의 일행인 애제자들 즉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만을 데리고 들어가신 다음 아이의 손을 잡고 말씀하십니다.

 

“탈리타 쿰!”(“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오늘 복음을 다 잊어 버려도 “탈리타 쿰!”, 아람어 “일어나라!”는 말마디만은 평생 화두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일어나라!”, 부활을 뜻하는 말마디입니다. 정녕 대죄는 넘어져 자포자기의 절망으로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언제나 넘어지면 곧장 일어나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바로 파스카의 삶입니다. 

 

우리 인생 여정은 선물이자 과제입니다. 치유의 구원의 여정입니다. 참 나의 실현의 여정이자 참 나의 발견의 여정입니다. 바로 파스카의 예수님을 닮아가는 여정입니다. 파스카의 예수님께 대한 바오로 사도의 참 멋진 표현이 감동입니다.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부유하시면서도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어, 여러분이 그 가난으로 부유하게 되도록 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을 만나 치유의 구원을 받은 하혈병을 앓던 이와 살아난 회당장의 딸, 그리고 우리가 바로 이를 입증합니다. 부유하신 예수님께서 자발적 사랑의 가난으로, 자기 비움으로 부유하게 된 우리들입니다. 그러니 우리 또한 주님을 닮아 부단한 비움의 가난으로 이웃을 부유하게 하는 삶을 살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말 그대로 역설적으로 텅빈 충만의 부요하고 행복한 삶입니다. 

 

그러니 여기 치유의 구원의 여정에, 참 나의 실현의 예닮의 여정에 날마다, 하루하루 살아내야 할 필수적 결정적 세 요소를 꼭 마음에 새기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이렇게 우리 모두 파스카 신비의 삶을 살도록 도와 주십니다.

 

1.찾으라! 

평생 날마다 하루하루 끊임없이 주님을 찾는 것입니다.

2.만나라!

평생 날마다 하루하루 끊임없이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3.일어나라!

평생 날마다 하루하루 끊임없이 일어나 새롭게 시작하는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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