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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5.30.요셉 수도원 성전 봉헌 축일                                                                에제47,1-2.8-9.12 요한2,13-22

 

 

 

주님의 집

-영원한 정주처, 안식처, 피신처-

 

 

 

오늘은 자유롭게 묵상을 나누고 싶습니다. 가끔 생각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갈 곳이, 가고 싶은 곳이 없습니다. 만날 분이, 만나고 싶은 분이 없습니다. 하여 요셉 수도원에 만 31년 동안 정주한 이후 휴가 안간지가 수십년이 됩니다. 이젠 휴가란 말도 잊었습니다. 갈 곳이란 오직 지금 머물고 있는 주님의 집인 요셉 수도원뿐이며, 만날 분은 오직 주님의 집에 계신 주님뿐입니다. 

 

오늘은 우리 요셉 수도원 성전 봉헌 축일입니다. 13년전 2006.5.30. 성전 봉헌식날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참으로 우여곡절迂餘曲折, 천신만고千辛萬苦의 어려움 중에 지어진 성전입니다. 이 성전이 세워진 후 전례도 제대로 꼴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큰 성전에 큰 제대에 서서 복사와 함께 미사를 봉헌하게 되었고 독서대도 분리되어 성전전례중 독서도 따로 나와서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는 모두가 감격스런 변화였습니다. 얼마나 수도원을 사랑했던지 성전 봉헌식날은 무려 300명 이상이 참석하여 축하해 주었습니다.

 

“주님의 집에 사는 자 얼마나 행복되리.”

“주님의 집에 가자 할 제, 나는 몹시 기뻤노라.”

 

제 즐겨 부르는 시편 구절입니다. 특히 뒷 부분의 시편 성구는 5년전 2014년 안식년중 산티아고 순례여정중 가장 많이 불렀던 성구였습니다. 산티아고 대성전이 가까워질수록 힘차게, 기쁘게 뛰다시피 발걸음을 재촉했던 추억이 지금도 선명합니다. 

 

또 이 성구는 제 사랑하는 주님의 집 요셉 수도원 성전을 향해 곧장 나있는 수도원길, 하늘길을 걸을 때마다 가장 많이 부르는 성구이기도 합니다. 이 하늘길 수도원길을 사랑하여 매일 주님과 함께 걸으면서 휴대폰으로 사진찍기도 합니다. 아무리 봐도, 아무리 걸어도 늘 새롭고, 늘 좋은 주님의 집에 이르는 하늘길, 수도원길입니다.

 

주님의 집, 수도원에는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줄기차게 한결같이 수도원에 봉사하는 두 분이 있습니다. 참으로 많은 분이 수도원을 통과해 갔지만 이 두분은 30년여동안 한결같이 주님을 섬기듯 수도원을 섬긴 분입니다. 큰 축일 때마다 꽃꽂이를 해준 자매와 성전 청소에 제의방 성작수건과 주수 수건을 빨아 준 자매입니다. 참으로 사람이 아닌 주님을 사랑하여 섬기는 마음이었기에 이런 항구한 봉사가 가능했을 것입니다.

 

예전 에버랜드 소풍 때의 깨달음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진짜 에버랜드는 주님의 집, 성전이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수도원이라는 것입니다. 하여 고향집을 찾듯이 무수한 이들이 끊임없이 찾는 진짜 에버랜드 주님의 집인 수도원입니다. 많은 분들이 늘 찾아 봐도 늘 그립고 보고 싶은 수도원 아버지의 집이라 고백합니다. 오늘 성전 봉헌 축일을 맞이하여 떠오른 생각들입니다.

 

주님의 집인 성전은 믿는 우리들에겐 영원한 정주처요 안식처요 피신처가 됩니다.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는 가시적 주님의 집인 성전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보다시피 주님의 성전 사랑도 뜨거웠습니다. 성전을 속화하는 주변 분위기를 정화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이것들을 여기서 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세상을 성화시켜야 할 마지막 보루와도 같은 성전의 속화보다 더 큰 재앙은 없습니다. 성전 사랑은 그대로 하늘 아버지에 대한 뜨거운 사랑의 표현입니다. 정말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은 아버지의 집인 성전을, 성전 전례를 사랑합니다. 이런 예수님의 뜨거운 성전 사랑에서 제자들은 “당신 집에 대한 열정이 저를 집어 삼킬 것입니다.” 라는 성경 말씀을 상기했습니다.

 

오늘 제1독서는 아버지의 집인 성전 은총을, 성전 전례 은총을 상징합니다. 창세기의 비전이 새롭게 표현되고 있으며 묵시록에서도 다시 우리의 영원한 꿈이 실현되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성전에서 시작된 생명의 강이 세상 곳곳 흘러 닿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아납니다. 강가 양쪽에는 잎도 시들지 않고 과일도 끊이지 않고 다달이 새 과일을 내놓습니다.

 

“이 물이 성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 과일은 양식이 되고, 잎은 약이 된다.”

 

그대로 이 거룩한 성전 미사 전례 은총을 상징합니다. 성전 전례 미사은총이 생명의 강이 되어 세상 곳곳으로 흘러갑니다. 우리는 매일 미사를 통해 영원한 생명의 양식이자 약인 말씀과 성체를 모십니다. 묵시록의 비전은 얼마나 아름답고 환상적인지요. 이런 천상 비전을 앞당겨 사는 우리들입니다.

 

“그 천사는 수정처럼 빛나는 생명수의 강을 나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그 강은 하느님과 어린양의 어좌에서 나와, 도성의 거리 한가운데를 흐르고 있었습니다. 강 이쪽 저쪽에는 열두 번 열매를 맺는 생명나무가 있어서 다달이 열매를 내놓습니다. 그리고 나뭇잎은 민족들을 치료하는 데 쓰입니다.”(묵시22,1-2).

 

바로 이 거룩한 성전 미사전례를 통해 앞당겨 체험하는 천상 비전입니다. 다달이 열매가 아니라 우리는 매일 열매를 받아 먹습니다. 그러나 보이는 가시적 성전이 전부가 아닙니다. 가시적 성전이 빛나는 것은 바로 미사전례가, 주님의 몸인 성전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여 본기도 말씀에 더욱 공감합니다.

 

“주 하느님, 주님의 교회에 성령의 선물을 더욱 풍성히 내려 주시어, 주님의 백성이 천상 예루살렘을 향하여 끊임없이 나아가게 하소서.”

 

주님의 몸이, 미사전례가 빠진 건물만의 성전이라면 알맹이가 빠진 껍데기뿐이라 일고의 가치도 없습니다. 가시적 성전을 거룩한 살아있는 성전으로 만드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인 성전 덕분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에서도 주님은 이점을 분명히 합니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새로 세우겠다.”

 

바로 예수님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죽으시고 부활하신 파스카의 예수님이, 예수님의 몸을 이루는 우리가 바로 성전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가시적 성전에서 그리스도의 몸인 성전으로, 그리고 마지막 지점이 우리 각자가 주님의 성전이라는 놀라운 사실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열화같은 말씀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하느님의 성전이며 하느님의 성령께서 자기 안에 살아 계시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만일 누구든지 하느님의 성전을 파괴하며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을 멸망시키실 것입니다. 하느님의 성전을 거룩하며 여러분 자신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이기 때문입니다.”(1코린3,16-17).

 

우리 각자가 주님의 거룩한 성전입니다. 참으로 자신을 잘 가꾸고 돌봐야 할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함부로 막살며 절망의 자포자기로 자기를 방치하는 것보다 더 큰 죄는 없습니다. 우리의 존엄한 품위의 근거는 바로 우리 각자가 주님의 거룩한 성전이라는 사실에 있습니다. 

 

주님의 성체를 모시는 우리가 바로 주님의 성전이자 성체임을 입증합니다. 그러니 미사중 가난한 빈손으로 성체를 모시며 “아멘!” 할 때의 감격과 은총을 결코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가장 진실하고 겸손한 본래의 내가 되는 순간이자 주님의 성전으로 새롭게 변모되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당신을 모심으로 성령의 성전이, 은총의 성전이 되게 하십니다. 끝으로 우리의 소망을 담아 기도로 바칩니다.

 

“하느님, 교회를 통하여 저희에게 천상 예루살렘을 미리 보여 주셨으니, 저희가 은총의 성전, 성령의 성전이 되어, 거룩한 생활로 주님 영광의 빛을 드러내게 하시고, 마침내 영광스러운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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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안젤로 2019.05.30 07:11
    주님, 저희가 성체를 모실때마다
    우리가 바로 주님의 성전이자 성체임을 깨달아 가장 진실하고 겸손한 본래의 내가 되는 순간이자 주님의 성전으로 새롭게 변모되는 순간을 기억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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