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일치 -그리스도 중심의 공생共生, 평화平和, 조화調和의 아름다움-2020.4.4.사순 제5주간 토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Apr 0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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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4.4.사순 제5주간 토요일                                                          에제37,21ㄴ-28 요한11,45-56

 

 

 

사랑의 일치

-그리스도 중심의 공생共生, 평화平和, 조화調和의 아름다움-

 

 

 

헨리 뉴먼 추기경의 기도문으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이 기도문에 바탕한 ‘가톨릭 성가 26장, “이끌어 주소서”는 언제 불러도 잔잔한 위로와 평화를 줍니다. 코로나 사태로 침체되어 있는 요즘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를 밝혀주는 기도입니다.

 

-“온유한 빛이여, 
이 암울한 세상 한복판에서 저를 인도하소서.
밤이 깊은데 저는 집에서 멀리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저를 인도하소서.
먼 거리까지 내다보기를 바라진 않습니다.
한 발짝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제 걸음을 지켜주소서.”

 

오늘 강론 주제는 “사랑의 일치-그리스도 중심의 공생共生, 평화平和, 조화調和의 아름다움-”입니다. 코로나 사태를 통한 깨달음의 일단입니다. 날로 심각해지는 탐욕과 무지, 교만에 바탕한 빈부 양극화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하느님께서 내리신 철퇴의 심판같기도 한 코로나 사태입니다. 전세계가 연대와 협력으로 함께 살아야 할 운명공동체임을 깨닫게 합니다. 

 

이젠 코로나 사태의 교훈으로 서로간 살상의 전쟁은 종식되고 인류 공동의 적인 악성 바이러스와의 공동전선이 형성되게 되었습니다. 아마 이번 코로나 사태가 우리 인류에 긍정적 획기적 전기가 되리라 봅니다. 얼마전의 깊은 깨달음도 생생합니다. 

 

“기생이 아닌 공생이요 상생이다. 지구위에 잠시 손님으로 와서 함께 살다가 떠날 인생들이다. 호오, 우열의 비교는 신성 모독이다. 차별이 아닌 구별이다. 상호보완의 조화와 균형, 평화이다. 이게 공동체 일치의 신비이다. 

 

빈틈은 숨통이다. 빈틈의 공간이 많아야 약하고 부족한 이도 더불어 살 수 있는 복음적 사랑의 좋은 공동체이다. 빈틈이 없는 완벽한 공동체 숨막히는 공동체이다. 그러니 서로에게 감사할 일이다. 

 

혼자서는 못산다. 누구를 본받을 것도 아니다. 각자 고유의 자기를 살 일이다. 자기만의 모습, 색깔, 크기, 향기로 서로 조화되어 살 일이다. 공생과 조화의  아름다움이다. 각자 그리스도 예수님을 닮아갈수록 각자 고유의 모습에 사랑의 일치의 공동체이다.”-

 

어제 소개했던 제 ‘증조부(李敦器1851-1925)’님에 관한 ‘슬프고도 유머러스하고, 따뜻하고도 아름다운’ 일화를 나눕니다. 사촌 형님이 예전 할머니께 들은 일화랍니다.

 

-‘증조부는 고을에서 학덕과 인망을 지닌 분으로 덕산 현감이 부임할 때는 꼭 찾아 인사와 더불어 대화를 나눴다 합니다. 증조부께서 언젠가는 원님에게 손자의 혼사에 필요한 사모관대와 원삼 족두리를 빌려다 쓰고 며칠 후 하인에게 덕산 관아에 반납하라고 일렀는데 여기서 사단이 일어난 것입니다. 하인이 행랑채로 가저와, 

“여보! 우리가 언제 혼인하고 살았나? 좋은 기회이니 냉수 한 사발 이라도 떠놓고 혼인식을 올려보세.”

하니 부엌에서 불때던 여자가 냉수 떠들고 들어와 낄낄거리며 사모관대와 원삼족두리를 입고 서로 맞절을 하는데 아궁이 불이 나뭇간에 붙어 화재가 났다는 것입니다. 

“불이야!”

다른 하인들과 이웃 사람들 모두가 불을 끄느라 난리였답니다. 그런데 웬 신랑신부가 옷입은 채로 재티를 다 뒤집어 쓰고 옷고름도 다 떨어져 나간채 맨발로 뛰어 다니니 참 가관이었을 것입니다. 그후 증조부 진사공께서 원삼족두리를 새로 장만하여 덕산 원님게 반납하였다는 일화입니다.’-

 

이런 너그럽고 자비로운 후덕한 인품의 증조부였기에 신분의 차이가 엄존했던, 난리가 빈번했던 그 옛 시절에도 가족은 물론 주변 고을 사람들과도 평화로이 공존하며 ‘사랑의 일치’를 이루며 사셨다는 것입니다. 새삼 지도자(리더)의 역할이 얼마나 절대적으로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지도자중의 지도자가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마침내 제1독서 에제키엘 예언자의 남북왕국의 통일에 대한 예언은 오늘 복음의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성취됨을 깨닫습니다. 

 

“나는 그들과 평화의 계약을 맺으리니, 그것이 그들과 맺는 영원한 계약이 될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복을 내리고 그들을 불어나게 하며, 나의 성전을 영원히 그들 가운데에 두겠다.”(에제37,26)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실현된 영원한 평화의 계약이요, 우리 한가운데 언제나 현존하시는 주님의 성전, 파스카의 예수님이십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대사제 가야파의 예언이 본인 의도와는 달리 진짜 예언이 되고 말았습니다. 복음은 가야파 예언의 깊은 의미를 다음과 같이 해명합니다.

 

‘그해의 대사제로서 예언한 셈이다. 곧 예수님께서 민족을 위하여 돌아가시리라는 것과, 이 민족만이 아니라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려고 돌아가시리라는 것이다.’

 

모든 것을 합력하여 구원의 선으로, 사랑의 일치로 이끄시는 하느님의 섭리를 봅니다. 이제 온 인류는 죽으시고 부활하신 파스카의 그리스도 예수님 사랑 안에서 공생과 평화, 조화의 일치를 이루며 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 거룩한 은총의 사순시기, 전 세계가 코로나 사태로 위기를 겪고 있지만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계기가 되리라 믿습니다. 사순시기 재의 수요일부터 계속되는 코로나 사태에서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오묘한 섭리의 손길을 감지합니다. 

 

믿는 이들은 물론 모두가 내적으로 주님을 만나 진정한 회개와 정화의 시기가 되리라 믿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사랑의 아름다운 일치의 공동체를 이루어 살게 하십니다. 참으로 본질적인 것을 추구해야할 시절, 예전에 써놓았던 글을 나눕니다.

 

-“언제나

높이보다는 깊이를

화려함보다는 소박함을

드러나기보다는 드러나지 않기를

복잡함보다는 단순함을

특별함보다는 평범함을

큰 것보다는 작은 것을

시끄러움보다는 고요함을

외적인 것보다는 내적인 것을

부수적인 것보다는 본질적인 것을

보이는 것보다는 보이지 않는 것을

추구하라.

언제나 하느님만을 추구하라!”-2006년

 

“오, 주님을 찾는 마음은 즐거워하여라. 늘 그분의 얼굴을 그리워하여라.”(시편105.3ㄴ,4ㄴ).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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