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하신 주님의 참 좋은 선물 다섯 -평화, 기쁨, 희망, 성령, 공동체-2020.4.19.부활 제2주일(하느님의 자비주일) ​​​​​​​

by 프란치스코 posted Apr 1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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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4.19.부활 제2주일(하느님의 자비주일) 

사도2,42-47 1베드1,3-9 요한20,19-31

 

 

 

부활하신 주님의 참 좋은 선물 다섯

-평화, 기쁨, 희망, 성령, 공동체-

 

 

 

오늘은 부활 제2주일이자 하느님의 자비주일입니다. 자비는 하느님의 얼굴이자 하느님의 마음이며 하느님의 이름입니다. 성무일도 매주 제2주간 토요일 독서의 기도시, 시편 136장 되풀이 되는 후렴은 얼마나 감미롭던지요.

 

“주님은 어지시다 찬양들 하라, 당신의 자비는 영원하시다

모든 신에 뛰어나신 주님을 찬양하라, 당신의 자비는 영원하시다”

 

136장1절에서 26절까지 얼마나 풍요로운 하느님 자비의 선물인지 깨닫게 됩니다. 방금 부른 화답송 후렴도 참 흥겹고 감미롭습니다. 산책때마다 끊임없이 참 많이 되뇌이며 부르는 시편 성구입니다.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 좋으신 분을, 영원도 하시어라, 그 사랑이여.”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대희년인 2000년 부활 제2주일에, 하느님의 자비에 대해 신심이 탁월했던 폴란드 출신의 파우스티나 수녀를 시성하셨고, 이어 교회는 2001년부터 부활 제2주일을 하느님의 자비주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자비하신 하느님이십니다. 계속되는 “알렐루야” 봄꽃들 만개한 부활 축제에 신록의 기쁨 가득한 온누리도 자비하신 하느님의 선물로 가득합니다. 어제 써놓은 글도 생각납니다.

 

-“세상 곳곳 온갖 꽃향기

신록의 기쁨과 평화

'오, 여기도 하느님 다녀가셨네!'

 

어디를 가도

아름다운 하느님

다녀가신 발자취로 가득 하구나”-

 

어디를 가도 아름다운 자연에 하느님 다녀가신 발자취로 가득한 느낌이었습니다. 참 좋은 하느님의 선물로 가득한 세상, 어제는 수도원을 찾은 신자분들도 참 많았습니다. 자비하신 하느님의 최고의 선물은 부활하신 파스카의 예수님이십니다. 자비하신 하느님은 부활하신 주 예수님을 통해 참 좋은 선물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부활하신 주님과의 만남이, 선물이 우리를 자비로운 사람이 되게 합니다. 자비하신 하느님의 단 하나의 소원은 우리 모두가 당신을 닮아 자비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6,36).

 

방법은 간단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통한 하느님의 자비의 선물에 끊임없이 찬미와 감사로 응답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자비로운 주님의 선물을 깨달을 때 저절로 끊임없이 샘솟는 찬미와 감사의 기도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참 좋은 선물은 무엇입니까?

 

첫째, 평화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참 좋은 자비의 선물이 평화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 때 두려움의 벽은 활짝 열린 평화의 문으로 바뀝니다. 벽이 문으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 때 일어나는 기적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십시오. 세차례나 제자들을 만날 때 마다 참 좋은 평화를 선물하십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세상에 이보다 더 좋은 선물도 없습니다. 가짜 거짓 평화가 범람하는 세상에 참 평화는 주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의 빛이 두려움의 어둠을 몰아냅니다. 복음의 똑같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에게 참 좋은 평화를 선물하십니다. 그러니 평화의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둘째, 기쁨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참 좋은 자비의 선물이 기쁨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기쁨의 샘입니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주님과 만날 때 평화와 더불어 기쁨의 선물입니다. 기쁨이야 말로 참된 신자의 표지이자 참 힘입니다. 우울함이나 심각함은 믿는 이들에게 정말 어울리지 않습니다. 하느님께 대한 모독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만날 때 꽃처럼 피어나는 기쁨의 얼굴입니다. 이웃에 줄 수 있는 참 좋은 선물도 기쁨입니다. 기쁨의 사도 바오로 역시 ‘항상 기뻐하십시오’, 권합니다. '그래서' 기쁨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자비하신 주님의 선물인 기쁨입니다. 그러니 기쁨의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셋째, 희망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참 좋은 선물이 희망입니다. 아니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의 희망입니다. 가짜 희망, 거짓 희망이 범람하는 세상입니다. 희망 없는 곳이 지옥입니다. 희망을 잃을 때 황폐화되는 인성입니다. 서서히 망가지고 무너지는 삶입니다. 급기야 본능적 욕망만 남는 야수도 악마도 괴물도 좀비도 됩니다. 

 

참으로 고귀하고 존엄한 품격의 사람이 되게 하는 참 희망입니다. 이런 희망이 우리를 기쁘게 행복하게 합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베드로 사도의 ‘희망에 대한 감사’의 인사가 참 고맙고 고무적입니다. 우리의 참 희망의 소재를 환히 보여줍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크신 자비로 우리를 새로 태어나게 하시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우리에게 생생한 희망을 주셨고 또한 썩지 않고 더러워지지 않고 시들지 않는 상속 재산을 얻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즐거워하십시오. 우리는 그리스도를 본 일이 없지만 그분을 사랑합니다. 우리는 지금 그분을 보지 못하면서도 그분을 믿기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 속에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정말 그렇습니다. 참으로 부활하신 주님을 믿을 때, 사랑할 때 주어지는 희망이 선물입니다. 그러니 희망의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넷째, 성령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참 좋은 선물이 성령입니다. 성령의 사랑, 성령의 생명, 성령의 창조, 성령의 구원입니다. 성령은 모두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평화와 더불어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 모두에게 성령을 선물하십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얼마나 은혜로운 말씀입니까? 평화와 더불어 성령의 선물, 용서의 선물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 모두 평화의 사람, 성령의 사람, 용서의 사람으로 각자 삶의 자리로 파견하십니다. 그러니 성령의 사람으로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다섯째, 공동체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참 좋은 선물이 공동체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성령의 은총으로 끊임없이 공동체를 ‘리모델링’해주십니다. 공동체의 풍요로움입니다. 토마스같은 의심많은 사도가 있었기에 사도들의 공동체는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이란 고백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오늘 제1독서 사도행전의 공동체는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하느님의 자비가 환히 드러나는 공동체, 부활하신 주님의 선물인 공동체입니다. 교회 공동체에, 수도공동체에 끊임없는 영감의 원천이 되었던 사도행전 초대공동체입니다.

 

“형제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친교를 이루며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 신자들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날마다 한 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즐겁고 순박한 마음으로 음식을 함께 먹고, 하느님을 찬미하며 온 백성에게 호감을 얻었다. 주님께서는 날마다 그들의 모임에 구원받을 이들을 보태어 주셨다.”

 

진짜 사랑의 공산주의 공동체입니다. 일체의 갑질이, 차별이, 혐오가, 탐욕이 사라진 만민평등의 공동체입니다. 위로와 격려, 그리고 힐링의 치유 공동체입니다. 이런 공동체 삶 자체가 치유요 복음 선포이자 구원의 표지입니다. 

 

바로 이런 공동체를 꿈꾸는 우리 성베네딕도회 요셉수도공동체입니다. 모든 공동체가 지향해야할 공동체의 원형이 사도행전 공동체입니다. 공동체를 떠나서는 구원도 없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중 한 구절이 긴 여운으로 남아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혼자 구원받지 못한다(No one is saved alone)!”

 

각자도생, 혼자만의 1등의 구원은 없습니다. 함께 구원입니다. 부부는 둘이 합쳐서 평균냈을 때 60점 넘어야 함께 구원이고, 열두명의 요셉공동체는 열둘 합친다음 평균내어 60점 넘어야 함께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부족한 점수는 성인성녀들이 채워줄 것이요 결국은 모두의 구원일 것입니다. 그러니 잘 살든 못 살든 함께 사는 형제들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모두가 하느님의 선물인 형제들이요 나름대로 힘껏 사는 데 누가 누굴 감히 잘 산다 못 산다 판단합니까? 그러니 감사하며 공동체의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선물이 차고 넘칩니다. 하느님의 선물에 대한 감사의 응답은 저절로 다음같은 다짐에 이르게 합니다. 그러니 자비하신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1.평화의 사람으로, 

2,기쁨의 사람으로, 

3,희망의 사람으로, 

4.성령의 사람으로, 

5.공동체의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부활하신 파스카의 주님께서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이렇게 살도록 도와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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