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신비 체험 -용기와 지혜, 기쁨과 감사, 찬미와 감사-2021.10.2.연중 제26주간 토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Oct 02, 202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2021.10.2.연중 제26주간 토요일                                              바룩4,5-12,27-29 루카10,17-24

 

 

하느님 신비 체험

-용기와 지혜, 기쁨과 평화, 찬미와 감사-

 

 

하루하루가 새 하늘과 새 땅의 하느님의 참 좋은 선물입니다. 저절로 샘솟는 하느님 찬미와 감사입니다. 아침성무일도시 찬미가도 아름다웠습니다.

 

“또다시 새날빛이 밝아왔으니

즐겁고 감사하는 목청돋우어

예수님 깊은은총 찬미하오며

하느님 크신영광 노래하리다”

 

이어지는 시편136장1절 “주님은 어지시다 찬양들 하라, 당신의 자비는 영원하시다”에서 시작하여 26절 “하늘의 하느님을 찬양들 하라, 당신의 자비는 영원하시다”로 끝나는 시편136장도 은혜로웠습니다. 매절마다 반복된 “당신의 자비는 영원하시다”라는 말마디가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이 또한 평범하나 참 소중한 하느님 신비 체험입니다. 시간되면 시편136장 꼭 소리내어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좋으니이다 지존하신 님이여,  주님을 기려 높임이,

그 이름 노래함이 좋으니이다.

아침에는 당신의 사랑, 

밤이면 당신의 진실을 알림이 좋으니이다.”(시편92,1-2)

 

이어지는 아침기도 첫 시편도 참 은혜롭습니다. 시편 찬미의 하느님 맛으로 살아가는 우리 수도자들입니다. 매월 첫 주 금요일은 수도원의 고백성사날이고 어제 10월 첫 주 금요일에도 우리 수도형제들 모두가 고백성사를 봤습니다. ‘수도자들 고백성사 보나마나’라는 우스개 말도 있지만 고백성사를 기다리는 모습 또한 영성체를 하고자 줄 선 모습만큼 아름답습니다. 믿음과 겸손의 표현이 고백성사요, 하느님을 만나 죄를 용서받고 마음의 순수와 기쁨을 회복하니 이 또한 하느님 체험입니다.

 

마침 반려견을 쓰다듬으며 성모님 상을 배경한 한 수도형제의 모습이 참 평화롭고 아름다워 즉시 사진에 담고 카톡으로 전송하며 나눈 메시지입니다. 이 평범한 장면 또한 저에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의 하느님 체험입니다. 

 

“성 프란치스코의 후예! 사랑하는 안토니오 수사님! 파이팅!”

“감사합니다! 성 프란치스코의 아들, 사랑하는 프란치스코 신부님! 파이팅!”

 

비상한 하느님 체험만이 아니라 우리는 알게 모르게 무수히 일상에서 평범한 하느님 체험을 합니다. 또 가난한 자매가 오랜만에 고백성사차 들렸는데 몇 켤레의 양말을 선물했고 이 또한 저에겐 하느님 감사의 체험이었습니다. 마침 고마운 마음에 냉장고에 있던 배즙도 대접했습니다. 얼마전 출판계 스타 편집자 이연실님의 김훈 작가님의 인터뷰 기사도 감동이었고 저에겐 이 또한 하느님 체험이었습니다.

 

“제 조카 이름까지 김훈 작가님의 소설 속 캐릭터 ‘나루’의 이름을 가지게 되었어요, <남한산성>에서 마지막 희망의 상징이 된 아이, ‘나루’의 한자 이름을 김훈 작가님이 지어 주셨어요. 엄마가 농사를 지으시는데, 그 흙묻은 채소들을 김훈 작가님이 보물처럼 껴안아 들고 가시면서, 출판사에서 보내주는 비싼 와인보다 나한텐 이게 더 큰 보물이라고 말씀해주시니까 정말 뿌듯했어요.”(한겨레9.25일;15면)

 

성웅聖雄 이순신을 바탕으로 <칼의 노래>라는 스테디 셀러 소설을 쓴 가톨릭 신자인 김훈 작가의 따뜻한 인간미가 참 자랑스러웠습니다. 요즘 아낌없이 사용하는 이름 앞에 붙이는 ‘사랑하는’이란 말마디입니다. 그냥 이름 부르기보다는 이 좋은 호칭을 아낄 필요가 전혀 없다는 깨달음 때문이었습니다. 일단 ‘사랑하는’ 이라는 고백의 호칭을 쓰고 나면 마음도 깨끗해지고 또 그대로 이루어 진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어제 저녁기도시 시편 121장이 새삼 감미롭게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이스라엘은 지키시는 그분은, 

졸지도 잠들지도 않으시리라

 

하느님은 너를 지키는 분, 

네 오른쪽의 그늘이시어라

 

낮이면 해도 너를 해치지 못하고, 

밤이면 달도 너를 해치지 못하리라

 

주께서 너를 지켜 모든 액을 막으시고,

당신이 네 영혼을 지켜 주시리라

 

나거나 들거나 너를 지켜 주시고,

이제부터 영원까지 그러하시리라”(시편121,4-8)

 

이 또한 하느님을 체험한 시편 작가의 고백입니다. 이런 고백을 그대로 내 체험으로 만드는 것이 시편성무일도의 은총입니다. 이런 하느님을 체험한 사람들은 결코 절망하거나 원망하거나 실망할 수 없습니다. 우울이나 정신적 질환 역시 있을 수 없습니다. 성서의 사람들은 모두가 하느님을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참으로 이런 하느님을 체험해야 영혼이 삽니다. 

 

도대체 하느님 맛이 없으면 이 광야인생 어떻게 살아낼 수 있을런지요! 중독에 급기야 폐인으로 만드는 ‘세상 맛’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하느님 맛’입니다. ‘찬미와 감사’의 하느님 맛으로 살아가는 여기 수도형제들입니다. 인생 무지와 허무에 대한 유일한 처방의 답答이자 약藥은 하느님뿐입니다. 하느님을 체험한 용기와 기쁨의 예언자 바룩이 영적 이스라엘인들인 우리를 향한 권고입니다. 

 

“이스라엘인이라 불리는 내 백성아, 용기를 내어라.

너희는 너희를 길러 주신 영원하신 하느님을 잊어버리고, 너희를 키워준 예루살렘을 슬프게 하였다. 아이들아, 하느님께 용기를 내어 부르짖어라. 이 재앙을 내리신 주님께서 기억해 주시리라. 너희 마음이 하느님을 떠나 방황하였으나, 이제는 돌아서서 열 배로 열심히 그분을 찾아야 한다. 그러면 그분께서 너희를 구원하시고 너희에게 영원한 기쁨을 안겨 주시리라.”

 

바룩의 하느님 체험이 얼마나 감미롭습니까! 하느님 망각으로 인한 무지의 병보다 큰 영혼의 병도 없습니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할뿐 아니라, ‘메멘토 데이’, 하느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참으로 영원한 기쁨의 근원이신 영원하신 하느님을 끊임없이 찾아 만나야 합니다. ‘용기를 내어라’ 이 또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단골 말마디입니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마태14,27)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16,33)

 

오늘 복음의 주제도 주님을 체험한 제자들의 기쁨과 감사입니다. 일흔 두 제자들이 기뻐하며 돌아 와 활동을 보고하자 예수님께서는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며 하느님께 감사기도를 드리니 이 또한 하느님 체험의 반영입니다. 철부지 제자들의 주님 체험에 감격해 바치는 다음 예수님의 감사기도입니다. 막연한 종교의 하느님 체험이 아니라 구체적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된 하느님 체험입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루어졌습니다.”

 

이어지는 아버지와 아드님의 일치 체험의 고백과 더불어 제자들은 물론 우리 모두를 향한 행복선언입니다. 바로 오늘 지금 여기서 지상천국의 하늘나라 신비를 사는 우리 모두임을 깨달으라는 말씀입니다.

 

“너희가 보는 눈은 행복하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이들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려고 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들으려고 하는 것을 들으려고 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

 

하느님 체험만이 무지의 눈을 열어 하느님을 뵙게 하고, 무지의 귀를 열어 하느님 말씀을 듣게 합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한결같이 용기와 지혜, 기쁨과 평화, 찬미와 감사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오늘 교회는 수호천사 기념일로 지냅니다. '가톨릭 기도서'에는 없지만 전통적으로 바쳐온 수호천사 기도문으로 강론을 마칩니다. 새삼 하느님의 모든 천사들은 하느님 자비의 현현이자 그리스도 예수님의 현존임을 깨닫게 됩니다.

 

 

“언제나 저를 지켜주시는 수호천사님!

인자하신 주님께서 저를 당신께 맡기셨으니

오늘도 저를 비추시고 인도하시고 다스리소서.”-아멘.

 

아침 시작과 더불어 바치는 가톨릭 교회와는 대조적으로 동방정교회에서는 하루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기전 수호천사께 다음 기도문을 바칩니다. 

 

“우리와 일생을 같이해 주시는 거룩한 천사님! 

이 죄인을 멀리하지 마소서. 만일 당신이 떠나신다면, 제 마음의 빈자리를 악마가 차지하고 온갖 흉계로 나를 지배코자 할 것이니, 저를 떠나지 마시고, 제 손을 이끌어 구원의 길로 인도하여 주소서. 

하느님의 거룩한 천사여!

당신은 우리 영혼과 육신의 수호자이시니, 제가 지날날 당신을 걱정케 한 일들과 오늘 지은 여러 가지 죄들을 용서하소서. 그리고 이 밤에도 악마의 침범에서 감싸주시어, 하느님의 꾸중을 받지 않도록 하소서. 그리고 언제나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선한 믿음을 가진 종의 자세를 잃지 않도록 간구하여 주소서.“- 아멘.

 

 

 

 

 

 

 

 


Articles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