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공부 -하느님께 대한 갈망, 배움에 대한 사랑-2021.12.7.화요일 성 암브르시오 주교 학자(340-397) 기념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Dec 07,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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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7.화요일 성 암브르시오 주교 학자(340-397) 기념일

이사40,1-11 마태18,12-14

 

 

하느님 공부

-하느님께 대한 갈망, 배움에 대한 사랑-

 

 

 

제주도에 머물고 있는 수녀님으로부터 아름다운 노을 사진을 보고 주고 받은 메시지입니다. 한가지 아쉬움은 사람없는 자연의 아름다움이었고 웬지 허전한 느낌이었습니다. 사람을 배경한 아름다운 자연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모두가 수녀님 작품입니까? 참 신비로운 아름다움입니다. 일출이죠? 이렇게 사세요! 사랑하는 수녀님!”

“아니요, 일몰입니다. 오늘 저녁 서쪽 애월바닷가에서 이렇게 멋진 모습을 봤어요.”

“내 노년의 아름다움도 이런 일몰의 아름다움 같기를 소망합니다!”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은 노을보다 더 아름다운 분이십니다.”

 

일몰을 일출로 착각했습니다. 한결같은 아름다움의 일출시 노을이요, 일몰시 노을입니다. 마지막 수녀님 말씀이 마음에 큰 위로와 격려가 되었습니다. 애월바닷가가 아닌 저는 늘 집무실 창밖 불암산 애기봉을 바라봅니다. 또 바다를 바라보듯 불암산 배경의 하늘을 바라봅니다. 하느님 공부가, 하느님께 대한 갈망과 배움에 대한 사랑이, 사람을 하느님을 닮아 위대하고 고결하게 합니다. 탈속의 기품을 지니고 초연한 삶을 살게 합니다. 

 

“위로하여라,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예루살렘에 다정히 말하여라.”

 

위로와 연민, 사랑의 하느님께서 우리 예루살렘 백성을 위로하라 말씀하십니다. 더불어 며칠전 읽은 글 내용도 생각납니다. 단테의 신곡을 읽은 후 결론같은 내용과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속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지옥의 죄인에게 조차 연민을 가질 때, 인간의 사랑은 신에 가까워진다.”

 

“사람들의 죄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사랑하라, 왜냐하면 그것은 하느님의 사랑을 닮는 것이고 지상에서 가장 고귀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모든 하느님의 창조물을, 그 안에 있는 모래알 하나하나와 전체를 사랑하라. 잎새 하나하나를, 하느님의 모든 빛의 광선을 사랑하라, 동물들을 사랑하라. 식물을 사랑하라. 모든 것을 사랑하라. 당신이 모든 것을 사랑하면, 그것들 안에서 당신은 거룩한 신비를 알아볼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당신은 모든 것을 품는 사랑으로 전 세계를 볼 것이다.”

 

새삼 우리 인생은 평생 사랑을 배우라 있는 ‘사랑의 학교’임을 깨닫습니다. 졸업이 없는 평생 사랑의 학인으로서의 우리 인생입니다. 요즘 대림시기 계속되는 이사야서 말씀이 하느님 사랑 공부에 참 좋은 도움이 됩니다.

 

첫째, 주님의 길을 닦는 광야 인생 수행에 충실하는 것입니다.

 

“너희는 광야에 주님의 길을 닦아라. 우리 하느님을 위하여, 사막에 길을 곧게 내어라.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거친 곳은 평지가 되고, 험한 곳은 평야가 되어라. 이에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리니, 모든 사람이 다 함께 그것을 보리라.”

 

광야가 상징하는 바 세상이요 우리의 내면입니다. 평생 날마다 하루하루 우리 하나하나에 주어진 내적 과제의 수행입니다.

 

둘째, 초연한 사랑을 배우라 있는 광야 인생입니다.

 

“모든 인간은 풀이요, 그 영화는 들의 꽃과 같다. 주님의 입김이 그 위로 불어오면,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든다. 진정 이 백성은 풀에 지나지 않는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지만, 우리 하느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있으리라.”

 

하느님 말씀에 대한 한결같은 사랑, 민초에 대한 애잔한 사랑이 우리를 초연한 사람이 되게 합니다. 김수영의 대표적 ‘풀’이란 시가 더욱 민초民草같은 인생에 대해 초연한 사랑, 연민의 애정을 더 합니다. 

 

“풀이 눞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눞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눞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셋째, 시온처럼, 예루살렘처럼 복음을 선포하며 광야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시온아, 높은 산으로 올라가라. 기쁜 소식을 전하는 예루살렘아, 너의 목소리를 한껏 높여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라. ‘너희의 하느님께서 여기에 계시다.’하고 말하여라.”

 

그러니 두려워 말고, 우리 삶자체로 오늘 지금 여기에 계신 하느님을 알리며 우리 친히 예수님을 닮아 고단한 이웃에게 참 고향집이 되어 천국이 되어 광야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넷째, 늘 새롭게 찾아 오시는 착한 목자 주님과 함께 광야 인생 살아갈 때 참 행복입니다. 대림시기 바로 우리가 기다리는, 맞이하는 분은 이런 착한 목자 예수님입니다. 대림시기는 물론 날마다 우리를 찾아 오시는 착한 목자 주님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보라, 주 하느님께서 권능을 떨치며 오신다. 당신의 팔로 왕권을 행사하신다. 그분께서는 목자처럼 당신의 가축들을 먹이시고, 새끼 양들을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어미 양들을 조심스럽게 이끄신다.”

 

다섯째, 작은 이들을 업신여기지 않는 광야 인생의 사랑입니다. 절망만 큰 죄가 아니라 작은 이들에 대한 무시나 업신 여김도 큰 죄입니다. 마침내 자살에 이르는 절망의 대죄요 타살에 이르게 하는 무시의 대죄입니다. 작은 이들에 대한 연민과 존중, 배려에 대한 사랑이 진짜 사랑입니다. 

 

복음의 착한 목자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관심의 초점은 양 백마리중 길잃은 양 하나입니다. 작은 이들 하나도 착한 목자 예수님께는 우주보宇宙寶같은 소중한 생명입니다. 다음 두 예수님 말씀이 그대로 착한 목자 하느님 마음을 반영합니다.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

 

“이와같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참으로 믿는 이들의 공동체 책임자들은 작은 이들 하나도 잃지 않도록 참으로 디테일에 강해야 함을 깨닫습니다. 지옥의 불쌍하고 가련한 작은 영혼들 마지막 하나까지 구원될 때까지 하늘의 천국문은 아마도 열려 있을 것입니다.

 

오늘은 서방 4대 교부들중 한 분인 성 암브로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입니다. 57세 선종하기까지 참 치열한 삶을 사셨던 분입니다. 주교로 중의가 모아지자 일주일후 세례, 견진후 주교로 서품된 분입니다. 주교가 된 직후 성인의 고백입니다.

 

"학생도 되기 전에 스승이 되었구나. 배워야할 내가 가르치게 되었구나!"

 

그리하여 몇십배로 부지런히 공부한 성인입니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15권중 14권은 ‘그리스도의 승리’란 책 제목에 사진은 황제가 아닌 성 암브로시오 사진이 나오는 것으로 봐도 성인의 위상이 황제를 능가함을 봅니다. 성인 아우구스티노의 회심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분으로 성인의 고백록을 통해 성 암브로시오에 관한 일화를 소개합니다.

 

“성인은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사람들과 있지 않을 때는 꼭 필요한 요기로 몸을 돌보거나 독서로 정신을 가다듬었습니다. 그가 책을 읽을 때에도 눈은 책갈피를 더듬어 나가고 마음은 터득한 바를 되씹고 있었지만 목소리와 혀는 쉬고 있었습니다. 가끔 저희가 그를 찾아갔는데 누구든지 들어가지 못하게 금하는 법도 없었고 또 누가 찾아왔다고 자기에게 알리게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가 소리없이 책을 묵독하고 있음을 보았고, 그럴 때면 저희도 하릴없이 소리 내지 않고 한참동안 말없이 그냥 앉아 있다가 가만히 자리를 뜨곤 하였습니다. 그처럼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 사람에게 누가 번거로움을 끼칠 엄두가 나겠습니까? 그는 그 적은 시간에 자기 머리를 회복하려고 애쓰는 중이려니 짐작했고, 딴 사람들의 사정에서 오는 소란에서 잠시 놓여나는 중이므로 딴 일에 마음을 쓰기 싫어하려니 짐작했던 것입니다.”

 

얼마나 바쁜 성인의 일과요 금쪽같은 시간이었던지 한눈에 짐작케 합니다. 마지막 눈을 감기전 임종어도 얼마나 고단한 인생이었는지 애잔한 느낌조차 듭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날이 어찌 이리 많이 남았단 말인가! 오, 주여! 어서 빨리 오소서! 지체하시지 마시고 저를 거절하지 마옵소서.”

 

평생공부가 하느님 사랑 공부입니다. 평생 사랑 학교에 최우등으로 졸업한 성 암브로시오 주교입니다. 졸업이 없는 사랑의 학교에서 평생 주님의 학인, 사랑의 학인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지칠줄 모르는 갈망과 배움에 대한 지칠줄 모르는 사랑이 하느님 공부에 끊임없이 샘솟는 원천源泉이 됩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사랑의 학인, 사랑의 전사로서 한결같은 삶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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