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은 '주님의 십자가’ 하나 뿐이다-2016.3.25. 주님 수난 성금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Mar 25,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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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3.25. 주님 수난 성금요일 

                                                                                 이사52,13-53,12 히브4,14-16;5,7-9 요한18,1-19.42


                                                               답은 '주님의 십자가’ 하나 뿐이다


오늘은 주님의 수난 성금요일입니다. 우리는 방금 요한복음의 긴 ‘예수님의 수난사’를 들었습니다. 예수님의 수난사 안에 우리 삶의 모든 답이 들어 있습니다. 이어 있게 될 십자가 경배 때의 사제의 선창이 이를 입증할 것입니다.


“보라, 십자나무, 여기 세상 구원이 달렸네. 모두 와서 경배하세.”


오늘 만이 아니라 늘 경배해야 할 십자가의 주님입니다. 바로 주님의 십자나무에 세상 구원이, 우리 구원이 달렸기 때문입니다. 답은 '주님의 십자가' 하나뿐입니다. 우리 삶의 영원한 중심이 십자나무의 주님이십니다.


수난사를 통한 예수님의 삶과 죽음은 우리 삶과 죽음의 신비를 깨닫게 해 줍니다. 죽음은 삶과 별개의 것이 아니라 삶의 일부입니다. 죽음을 날마다 눈앞에 환희 두고 살라는 분도 성인의 말씀도 바로 죽음은 삶의 일부임을 입증합니다.


어떻게 죽음을 날마다 눈앞에 환히 두고 살 수 있습니까?

십자가의 주님을, 십자가 너머 부활의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열렬한 사랑의 눈으로 십자가의 주님을, 부활의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 죽음을 눈앞에 환히 두고 사는 것입니다. 죽음을 눈앞에 환히 두고 살 때 환상은 걷히고 주님만이 투명히 드러납니다. 얼마전 써놓은 ‘당신을 바라보듯 숨쉬듯’이란 시를 나눕니다. 당신이 가리키는 바 ‘십자가와 부활의, 파스카의 주님’입니다.


"하늘을/대지大地를 

 바라봄이 참 좋습니다


 당신을 바라보듯

 하늘을/대지를 바라봅니다


 당신을 숨쉬듯

 하늘을/대지를 숨쉽니다


 넉넉하고/편안한

 맑고 향기로운 당신이십니다."


이렇게 십자가와 부활의, 파스카의 주님을 바라볼 때 계시되는 우리 삶과 죽음의 신비입니다. 오늘 수난사의 주님의 삶과 죽음을 통해 우리 삶과 죽음의 신비가 환히 드러납니다.


첫째, 고통과 고난의 신비입니다.

우리의 모든 고통과 고난은 하느님 ‘은총의 신호’입니다. 주님의 고통과 고난에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우리의 고통과 고난입니다. 이사야서의 주님의 종처럼 십자가의 주님은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가시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지십니다.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주님은 십자가를 지셨고, 십자가의 주님으로 우리는 나았습니다. 우리의 고통과 아픔도 누군가의 고통이나 아픔을 짊어졌기에 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좌우간 우리 혼자 겪는 고통과 고난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후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우리 모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 삶은 일상의 크고 작은 고난을 통해 순종을 배우는 ‘순종의 학교’임을 깨닫습니다. 고난을 통해 순종을 배워갈 때 비로소 밝혀지는 고난의 신비입니다.


둘째, 삶과 죽음의 신비입니다.

예수님의 두 임종어, “목마르다” “다 이루어졌다.”가 예수님은 물론 우리 삶과 죽음의 신비를 밝혀줍니다. 늘 진리에 목말라했던 주님이셨습니다. 진리를 증언하려고 태어나셨으며,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오셨고 늘 진리를 목말라하셨기에 진리로 충만한 삶을 사셨습니다.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진리이신 주님을 깨달아 알아갈 때 부단히 자기를 놓아버리고 비워감으로 자유로워지는 우리의 삶입니다. 진리의 길이 자유의 길이며 자유에 이르는 길은 진리의 길 하나뿐입니다. 


우리 역시 진리 말씀에 항구하고 충실할 때, 늘 진리를 목말라하여 진리를 살아갈 때, ‘목마르다’ ‘다 이루어졌다.’는 우리의 임종어가 될 것입니다. 며칠전 쓴 자작 고백시도 생각납니다.


“새벽마다

 그분에

 목말라/눈떴고

 눈뜨면/목말랐다

 지금도 그렇다/여한餘恨이 없다“


우리의 영원한 갈증을 해결해 주실 그분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뿐입니다.


셋째, 우리 삶의 자리에 대한 신비입니다.

바로 오늘 주님의 십자가 아래 성모 마리아 곁에 선 주님의 사랑받던 애제자가 상징하는바 우리 믿는 이들이요, 애제자의 그 자리가 우리의 복된 제자리입니다. 주님은 애제자는 물론 우리 모두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그때부터 그 제자는 성모님을 자기 집에 모셨듯이 우리 역시 늘 모시고 살아가는 성모님이십니다.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볼 때는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기도’를, 성모님을 바라볼 때는 ‘성모송’을 바치며 주님은 물론 성모님과의 친교의 사랑을 깊이 하시기 바랍니다. 


끝으로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기도’와 더불어 ‘성모송’을 바치며 강론을 마칩니다. 주님의 십자가 아래 성모님 곁 우리 삶의 제자리에서, ‘십자가의 길’ 기도와 더불어 끊임없이 바쳐야 할 두 기도문입니다.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주 예수 그리스도님,

 죄인인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닌 여인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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