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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6.11.화요일 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사도11,21ㄴ-26;13,1-3 마태10,7-13

 

 

 

떠남의 여정

-버림, 비움, 따름-

 

 

 

어제는 참 행복했고 자유로운 날이었습니다. 수도원에도 연중 짧지 않은 정식 휴가가 있지만 휴가를 잊고 산 지 수십년입니다. 사실 요셉 수도원에서는 제 탓으로 제대로 휴가한 적은 거의 없습니다. 주님의 집인 수도원이 고향집처럼 편하여 머물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꼭 1년만의 1박2일 작년 이맘때처럼 참 우애 좋은 70대 전후의 사촌 형제들과의 휴가입니다. 제 아버지는 7남1녀의 일곱째가 되고 사촌 형제 자매들은 무려 55명이 됩니다. 세상 떠난 분이 대부분이고 평생 만나지 못한 사촌도, 평생 한 두 번 만난 사촌도 있지만 지금 사촌들과는 50년만에 만나 1년 1박2일 휴가 하기 올해로 4차례가 되었습니다.

 

어제는 비온 후라 날씨도 참 상쾌했습니다. 막상 수도원을 떠나니 나를 듯 자유로웠고 홀가분했습니다. 말하기 부끄럽습니다만 꼭 시간 감옥에서 출옥하는 느낌이었고 영적전투 치열한 최전방에서 잠시 휴가를 떠나는 참으로 오랜 만에 느낀 해방감이었습니다.

 

제가 싫어하는 것은 꼭 둘입니다. 포만감과 안도감입니다. 자칫 탐식으로 배불리 먹고 났을 때의 포만감은 수행자로서 늘 부끄럽고 후회됩니다. 하여 요즘은 구체적 수행으로 적당한 식사로 위를 가볍고 편하게 하고자 노력합니다. 법정 스님은 수행자는 출가할 때의 체중을 유지해야 한다했는데 저는 출가때의 체중을 한참 넘어섰습니다.

 

또 하나는 안도감입니다. 대부분 수도원에서 사제는 저 혼자였기에 어쩔 수 없이 매일미사에 매일강론을 쓰게 되었고 휴가를 잊었습니다. 한 때 사제는 둘이 있어 격주로 미사와 강론을 할 때, 한 주의 미사당번과 강론이 끝났을 때의 해방감과 안도감은 얼마나 홀가분하게 느껴졌는지요! 

 

그러나 이제는 미사주례가 아니라도 매일강론은 제 삶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미사주례가 끝났다 하여 안도감에 끈을 놔버린다는 것이 정말 내키지 않았고 유일무이한 날마다의 그날의 의미를 새롭게 새기고자 강론을 쓰게 되었습니다. 하여 언제 어디서나 오전 1:30-2시 사이에 기상하면 2-4시 사이에 매일 강론을 씁니다. 지금 강론 쓰는 곳은 제 고향 예산군 덕산면에 소재한 ‘덕원온천장’입니다. 

 

지금도 제 간절한 소원 셋은 변함 없습니다. 죽는 그날까지 1.매일 강론 쓰고 2.매일 미사하고, 2.매일 수도원길 하늘길을 주님과 함께 걷는 일 셋입니다. 어제는 휴가날이라 참 많이 걸었고 기록을 보니 14883보로 나와있었습니다. 

 

잘 살다가 잘 떠나는 죽음은 얼마나 중요한지요! 사부 성 베네딕도는 물론 사막교부들의 이구동성의 ‘날마다 죽음을 눈앞에 환히두고 살라’는 말씀입니다. 늘 떠날 준비를 하고 살라는 말씀입니다. 버리고 비우고 주님을 따라 떠나는 것입니다. 하여 강론 제목도 ‘떠남의 여정-버림, 비움, 따름-’으로 정했습니다.

 

5년전 2014년도 33일 동안의 산티아고 여정중에 가장 좋았던 것이 매일 새벽 배낭에 짐을 챙겨 넣은 후 떠날 때였습니다. 이때의 떠남의 기쁨을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곳이라 해도 하루만 지나면 참 견디기 힘든 지루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어제 역시 휴가를 떠날 때의 기쁨도 이와 같았습니다. 

 

삶은 귀가여정입니다. 이렇게 떠남이 기쁜 것은 주님의 집에로의 귀가인 죽음을 상징함에서 기원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믿는 이들에게 삶은 아버지의 집으로의 귀가여정입니다. 정말 그대로 믿는 다면 떠남의 여정이 깊어갈수록 기쁨도 커져야 할 것입니다. 하여 저는 자주 제 삶의 여정을 하루로 압축했을 때, 또 일년사계로 압축했을 때 어느 지점에 와 있는지 확인하며 귀가준비를 잘 하고 있는지 점검하기도 합니다.

 

새벽 인터넷 톱 뉴스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고 김대중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가 10일 오후 밤에 별세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97세로 소천하시기 까지 여성운동가, 민주화운동가, 평화운동가로 평생 참 치열히 하늘 우러러 부끄러움 없이 살았던 어른이었습니다. 새삼 잘 떠나는 죽음이 얼마나 남은 이들에게 좋은 선물인지 깨닫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의 떠남이 참 홀가분하고 자유로워 보입니다. 무소유의 가난한 자 같으나 실은 최고로 자유롭고 풍요로운 행복한 부자들입니다. 소유의 쾌락을 사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기쁨을 사는 제자들입니다. 소유에 노예되어 존재를 잊고 생각없이 표류하며 살아가는 이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외화내빈이요 사상누각의 현대세상같습니다. 겉은 화려한데 속은 텅비어 허무와 무의미만 가득합니다. 대부분이 밖으로만 앞으로만 향하고 있습니다. 삶의 깊이와 여유를 잃었습니다. 그러니 영육은 물론 내적으로도 허약하고 삶도 얕고 가볍습니다. 우직, 묵직, 눌직, 충직, 솔직의 덕목으로 삶의 깊이와 여유를 회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제자들의 자유와 행복의 비결은 단 하나 늘 주님을 모셨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바라는 것은 단 하나 주님뿐입니다. 영원한 참 보물이신 살아계신 주님을 모셔 성령과 평화가 충만했기에 자발적 무소유의 삶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말 그대로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는 삶입니다. 참으로 참 좋은 선물 주님을 모실 때 저절로 이탈이요 삶의 짐들은 저절로 버리게 됩니다. 또 어디든 빈손으로 맨몸으로 가도 주님의 사람들이기에 신자들의 환대입니다.

 

산티아고 순례 때도 배낭속에 미사가방이 있어 늘 든든했고, 알베르게 숙소에 도착하면 우선 보아두는 것이 미사드릴 제대요 강론쓸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어디서든 강론을 쓰고 미사를 봉헌할 수 있어 참 행복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어제 휴가때도 온천장에 도착하여 우선 한 것도 이와 똑같았습니다.

 

어제는 참 좋은 분들인 사촌 형제들과 함께 한 행복했고 자유로운 날이었습니다. 제 사촌 형님 한 분은 이번에도 필요한 데 쓰라 거금을 선물하셨습니다. 고향땅에 도착하여 편안히 육계장을 먹은 후 대흥의 의좋은 형제의 생가터를 방문하여 옛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왔던 ‘의좋은 형제’의 이야기가 바로 실화임도 알게 되었습니다. 예당호를 관통하는 한국에서 최고 길다는 402m의 출렁다리도 건넜고, 64m 높이의 주탑에도 올랐고 함께 사진도 찍었습니다.

 

덕원 온천장에 여장을 풀은 후 따뜻한 온천물에 충분한 시간 여유있게 목욕하기도 처음입니다. 이어 수덕사 입구에서 산나물 더덕 비빔밥에 더덕 막걸리 한 잔, 그리고 숙소에 도착한 후에는 치유의 숲길도 한 시간 걸었습니다. 

 

해마다 가던 노래방도 이번은 생략하고 하루를 마감하여 쉬게 되니 얼마나 기쁘던지요. 사실 형제들도 노래방에서 노래할 여력도 떨어진 듯 했습니다. 자유로운 시간, 자유로운 공간에서 편안히 잘 쉬고 잘 먹고 잘 씻으니 참 심신이 행복했습니다. 

 

무엇보다 주님과의 일치가 깊어질수록 그 삶자체가 하늘나라의 현존이자 이웃에겐 최고의 선물입니다. 삶자체로 이웃에 위로와 치유가 되고 평화를 선사하기 때문입니다. 부단히 버리고 비워 주님으로 가득할 때 텅 빈 충만에서 샘솟는 기쁨과 평화, 찬미와 감사입니다. 바로 복음의 사도들이 그랬고 오늘 축일을 지내는 제1독서 사도행전의 바르나바가 그렇습니다.

 

안티오키아 교회 신자들에게 하느님의 은총이 내린 것을 보고 기뻐하며 모두 굳센 마음으로 주님께 충실하라고 격려하는 바르나바의 사심없는 순수한 마음은 그대로 주님과의 일치를 반영합니다.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과도 일치되는 바르나바 사도입니다. 다음 말마디가 그대로 바르나바의 인품을 요약합니다.

 

‘사실 바르나바는 착한 사람이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수많은 사람이 주님께 인도되었다.’

 

향기 그윽한 꽃에 벌들이 찾아오듯 주님과 일치가 깊어져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매력적인 영혼들일 때 저절로의 복음선포입니다. 그대로 하늘나라의 실현, 주님의 현존이 된 바르나바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당신과의 일치를 날로 깊게 해 주시어 참으로 자유롭고 평화롭고 행복한 삶을 살게 해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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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안젤로 2019.06.11 13:31
    제자들의 자유와 행복의 비결은 단 하나 늘 주님을 모셨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바라는 것은 단 하나 주님뿐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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