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과 일치의 여정 -사랑이 답이다-2021.9.16.목요일 성 고르넬리오 교황(+253)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258) 기념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Sep 16,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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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9.16.목요일 

성 고르넬리오 교황(+253)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258) 기념일

1티모4,12-16 루카7,36-50

 

 

주님과 일치의 여정

-사랑이 답이다-

 

 

하느님의 효자孝子이자 믿음의 사람인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참 좋은 믿음과 사랑의 본보기입니다. 4일간(9,12-15)의 슬로바키아 사목방문을 마치고 어제 귀국하신 교황님은 어김없이 출국하실 때나 귀국하실 때나 꼭 성전에 들려 성모님 이콘 앞에 고요히 앉아 인사를 드리는 모습이 참 아름답고 감동적이었습니다. 이또한 지극정성의 하느님 향한 믿음과 사랑의 표현입니다. 문득 예전 효자이시던 셋째 숙부가 할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조석朝夕으로 안방으로 찾아 뵙고 큰 절하며 문안인사 드리던 모습도 연상되었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순교자들의 교회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빼놓을 수 없는 영성이 순교영성입니다. 자랑스러운 순교자들의 후예인 우리들이요 9월은 순교자들을 기리는 순교자 성월이기도 합니다. 죽어서 만이 순교가 아니라 살아서도 순교적 삶을 살아가는 이들 또한 많습니다. 어제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미사때 은혜로웠던 복음 환호송도 기억하실 것입니다. 

 

“동정 마리아님, 복되시나이다. 당신은 주님의 십자가 아래서 죽음 없이 순교의 월계관을 받으셨나이다.”

 

사실 죽음 없이 순교의 월계관을 받은 분들도 많을 것이며 앞으로도 받으실 분은 계속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 기념 미사를 봉헌합니다. 우리 삶의 영원한 좌표가 되는 순교 성인들입니다. 순교는 성체와의 결합입니다. 주님과 사랑의 일치의 절정을 보여주는 순교의 사랑이요 믿음입니다.

 

두 순교 성인은 그리스도와 교회를 충실히 섬겼던 친구들이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참다운 우정임을 깨닫습니다. 수도형제들의 깨끗한 사랑의 우정도 이러할 것입니다. 카르타고의 주교였던 치프리아노는 용기있게 순교의 죽음을 맞이했음은 그의 백성들이 증언합니다. 그의 순교는 장엄한 전례와도 같았고 카르타고의 교회의 믿음에 결정적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는 일찍이 친구인 교황 고르넬리오에게 이런 편지를 쓴적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중 하나를 곧 죽게 할 은총을 주신다 해도, 우리의 우정은 주님 앞에서 계속될 것입니다.”

 

성 고르넬리오 교황은 짧은 3년 동안(250-253) 교황직을 수행하는 동안 그가 이룬 업적은 박해중에 배교를 선언했던 신자들과의 화해 정책이었습니다. 그는 배교자들에게 엄격할 것을 요구한 노바티아누스를 중심으로 모인 엄격파들을 단죄하여 교회의 평온을 회복했으나, 그 이후 갈루스 황제의 박해가 재개되자 체포되어 유배되었다가 모진 고문으로 253년 순교적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교황의 친구였던 치프리아노 주교는 이보다 5년후 258년 참수형의 순교의 죽음을 맞이하는데 이때의 장면이 또 감동적입니다. 외투를 벗어 깔고 무릎을 꿇은후 온마음을 다해, “하느님께 감사합니다!(Thanks be to God!)” 마지막 임종 기도후 참수됩니다. 

 

말그대로 주님을 위한 사랑의 순교입니다. 역시 우리 믿는 이들의 삶의 여정은 주님과 믿음과 사랑의 일치 여정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과연 날로 주님과 깊어가는 신뢰와 사랑의 관계인지 자문하게 됩니다. 주님 앞에 갔을 때 역시 지니고 갈 것은 이 사랑의 관계 하나일 뿐입니다. 얼마전 가난한 병고중의 자매가 양말 두켤레를 선물하며 약소하다 하며 미안해 했을 때 덕담이 생각납니다.

 

“자매님 자체가, 자매님 정성이 최고의 선물입니다.”

 

사실 착하고 순수한 사람은 빈손으로 와도 반갑듯이, 주님께서도 참으로 당신과 깊은 신뢰와 사랑의 관계에 있던 이들에게 그러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 용서받은 주인공인 죄녀가 시공을 초월하여 우리에게 감동을 선사합니다. 말그대로 살아있는 사랑의 순교자요 주님은 죄녀의 이런 사랑과 믿음에 감동하십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도 있듯이 참으로 주님을 감동케 하는 것은 우리의 지극정성의 사랑이요 믿음임을 깨닫습니다. 예수님을 환대했던 바리사이 시몬과 죄녀가 주님과 사랑의 깊이에서 첨예한 대조를 이룹니다. 다음 그림같은 죄녀의 주님 사랑 장면은 얼마나 감동적인 아름다움인지요!

 

‘그 여자는 향유가 든 옥합을 들고서 예수님 발치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분의 발을 적시기 시작하더니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고 나서,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어 발랐다.’

 

과연 어디서 이런 감동적인 장면을 만날 수 있을 런지요! 이어 주님의 시몬에 대한 말씀과 죄녀에 대한 말씀이 우리의 부족한 사랑을, 믿음을 되돌아 보게 하니, 이 또한 우리에게는 회개의 표징이 됩니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그대로 미사장면을 보는 듯 합니다. 이런 죄녀와 같은 주님과 사랑의 관계로 미사에 참례한다면 그대로 구원체험일 것입니다. 죄에 대한 답은 사랑뿐입니다. 죄책감에 마음 아파할 것이 아니라 죄를 지을수록 열정적으로 주님을 사랑하면 됩니다. 죄녀가 죄를 용서받은 것은 죄녀의 지극정성의 주님께 대한 사랑이었습니다. 

 

사랑과 죄는 양립할 수 없습니다. 똑같은 사람안에 사랑과 죄가 공존할 수 없습니다. 죄녀가 주님을 사랑하는 순간 죄인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시몬은 이것을 몰랐습니다. 그의 죄에 대한 개념은 순전히 법률적이지만 예수님의 관점은 관계적입니다. 죄의 잣대는 법률이 아니라 사랑임을 몰랐습니다. 인정머리 없는 것이 진정 큰 죄입니다. 

 

하느님이 보시는 바 과거나 미래가 아닌 오늘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회개한 어제 한 일은 전혀 문제가 안됩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내가 오늘 지금 하고 있는 일, 즉 주님과 또 이웃과 어떻게 관계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생각은 우리와 다릅니다. 주님은 회개한 자들의 과거는 결코 묻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용서했는데 어리석게도 본인이 과거를 끄집어 내고 휘저어 놓아 자초한 마음의 혼란입니다. 고요하고 깨끗한 물을 휘저어 놓아 흙탕물이 되게 하는 이치와 똑같습니다. 그러니 남은 물론 자기의 지난 과거도 휘젓지 마십시오. 바로 이것은 악마가 즐기는 것이니, 절대 이런 유혹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느님께서 예수님 안에 원하시는 바는 처벌이 아니라 관계 회복입니다. 하느님의 바램은 우리 모두가 주님 안에서 온전해지는 것이며 내적평화와 조화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꽃마다 색깔과 향기가 다 다르듯이, 주님을 사랑하는 색깔과 향기 역시 다 다릅니다. 복음의 죄녀같은 비상한 사랑이 있는가 하면 제1독서에서 바오로가 가르치는 그리스도의 훌륭한 일꾼으로 살아가는 평범한 모범적 사랑도 있습니다. 그대로 우리를 향한 말씀입니다.

 

“그러니 말에서나, 행실에서나, 사랑에서나, 믿음에서나, 순결에서나, 믿는 이들의 본보기가 되십시오. 그대가 받은 은사를 소홀히 여기지 마십시오.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관심을 기울이고 전념하십시오. 

 

그리하여 더욱 나아지는 모습이 모든 사람에게 드러나도록 하고, 그대 자신에 주의를 기울이고 그대의 일을 지속해 나아가십시오. 이렇게 하면, 그대는 그대뿐만 아니라 그대를 보는 이도 구원할 것입니다.”

 

약간 각색했지만 본뜻은 그대로입니다. 이런 충실한 삶 또한 주님 사랑의 표현입니다. 이런 평범한 모범적 사랑보다 더 좋은 강론講論도 없을 것입니다. 주님의 시詩이자 강론講論같은 사랑의 인생입니다. 

 

사랑밖엔 길이, 답이 없습니다. 인생 무지와 허무에 대한 답도 사랑뿐입니다. 평생을 살아도 주님과 무관無關한 사랑없는 삶이라면 참 허무하고 헛된 유령幽靈같은 삶일 것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당신과 사랑과 믿음의 일치를 날로 깊게 해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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