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의 여정 -찬양과 감사의 기도와 삶-2020.10.15.목요일 예수의 데레사 동정 학자(1515-1582) 기념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Oct 1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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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5.목요일 예수의 데레사 동정 학자(1515-1582) 기념일 

에페1,1-10 루카11,47-54

 

 

 

회개의 여정

-찬양과 감사의 기도와 삶-

 

 

 

어제에 이어 계속 이어지는 예수님의 불행선언입니다. 비단 예수님 당대의 일부 바리사이들과 율법 교사들뿐 아니라 오늘 교회 지도자는 물론 모든 신자들을 향해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예나 이제나 여전히 우리 안에 내재해 있는 부정적 성향이기에 회개하여 단斷, 끊어버리지 않으면 악순환의 역사가 계속 되기 때문입니다. 

 

복음뿐 아니라 눈만 열리면 온통 회개를 촉구하는 회개의 표징들로 가득합니다. 어제도 배수확하는 일에 전념하는 수도원 초창기부터 거의 30년동안 한결같이 일하는 자매들의 모습 또한 저에겐 회개의 표징입니다. 30대 초반의 처녀같았던 모습들이 60대 초반 초로初老의 나이에 들어섰지만 한결같이 밝고 성실한 모습이 참 감동적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오늘 기념하는 아빌라의 대 데레사로 불리는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또한 강렬한 회개의 표징입니다. 희망의 표징, 구원의 표징으로 우리에게 무한한 위로가 격려가 되고 감사와 감동을 주는 성녀입니다. 여성 최초로 교회학자로 선포된 분으로 만67세 선종하기 까지 참 치열히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스페인 아빌라 출신의 신비가 대 데레사였습니다.

 

성녀는 이상주의자일뿐 아니라 땅의 현실에 깊이 뿌리내린 현실주의자였습니다. 성녀는 일과 조직화의 큰 능력을 그녀의 상식과 현명, 하느님 섭리에 대한 신뢰와 결합시킴으로 성녀가 직면했던 모든 장애물들을 극복한 참 지혜롭고 용감했던 영적 여장부였습니다. 

 

성녀는 수녀 지원자들을 선택하는데 있어 지성과 좋은 판단력을 강조했습니다. ‘지적인 사람들(inteliligent people)’은 자기의 과오를 잘 알 수 있고, 또 안내되어야 할 필요성을 잘 알 것이란 성녀의 확신때문이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어리석은 수녀들로부터 보호해 주신다!(God preserve us from stupid nuns!)”, 성녀의 의미심장한 말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새벽에 언뜻 눈에 띈 영성생활 60호 잡지에 기고한 분들의 면면이 또한 회개의 표징입니다. 제 대학때 은사이셨던 어느 학자 수녀님은 70대 중반을 훨씬 넘어섰는데도 여전히 깊고 풍부한 글을 연재하고 계셨고, 수십년전 수도원에 피정왔던 어느 수녀님은 15년 동안이나 이 잡지의 편집위원으로 매 편집회의에 참석하여 한결같이 성실히 활동하고 있다니 이 또한 저에겐 회개의 표징입니다. 참으로 깨어 회개의 여정에 충실해야 겠다는 깨우침을 줍니다.

 

그뿐 아닙니다. 굿뉴스 오늘 묵상란에 매일 한결같이 묵상글을 올리는 사제분들 역시 저에겐 끊임없이 분발케 하는 회개의 표징입니다. 사실 눈만 열리면 온통 회개의 표징들로 가득한 세상임을 깨닫습니다. ‘이렇게 살아도 되나?’ 자문하면서 영적 전의戰意를 새로이 하게 됩니다. 답은 단 하나 회개를 통해 늘 새롭게 시작하는 파스카의 삶뿐입니다. 오늘 복음 역시 우리 무딘 마음을 강렬히 두드리는 회개의 표징입니다.

 

“세상 창조 이래 쏟아진 모든 예언자의 피에 대한 책임을 이 세대가 져야 할 것이다. 아벨의 피부터 즈카르야의 피에 이르기 까지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조상들이 죽인 예언자들의 무덤을 꾸미면서 예수님과 예언자들을 박해하는 현실을 개탄하는 것입니다. 악순환의 역사를 반복하는 당대의 바리사이들과 율사들 및 종교지도자들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과연 우리는 교회 안팎의 이런저런 예언자들을 박해하지는 않는지, 또 예언적인 말씀에 귀기울이며 회개로 응답하는지 성찰하게 합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율법 교사들아!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리고서, 너희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여전히 반복되는 유사한 경우는 얼마나 많은지요. 알게 모르게 이런 부정적 모습의 신학자들이나 사제들 또한 오늘의 현실입니다. 이 또한 무지의 소산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 크게 꾸중을 들은 이들은 독한 앙심을 품고 많은 질문으로 그분을 몰아대었고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그분을 옭아매려고 노렸다 합니다. 참으로 회개가 절실한 무지無知와 악의惡意의 사람들입니다.

 

회개의 구체적 실천에는 찬양과 감사가 제일입니다. 회개할 때 저절로 샘솟는 찬양과 감사입니다. 회개의 여정에 끊임없이 바치는 찬미와 감사의 공동전례 기도 은총이 얼마나 큰지 상상을 초월합니다. 회개의 삶에서 샘솟는 찬미와 감사의 기도와 삶이요, 찬미와 감사의 기도와 삶이 우리를 더욱 회개의 여정에 충실하게 합니다. 그러니 이 둘은 함께 갑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답은 제1독서 에페소서 하느님 찬양이 주고 있습니다. 참 주목할 것이 그리스말 본문에서는 에페1,3-14절 까지가 한 문장으로 되어있는 장중한 문체로 그야말로 숨을 멈추지 않고 단숨에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베푸신 은총을 노래합니다. 우리 수도자들은 매주간 월요일 저녁성무일도때 이 찬미가(에페1,3-10)를 신나게 노래합니다. 우리의 ‘무지의 어둠’을 환히 밝혀주는 ‘빛의 찬미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온갖 영적인 복을 우리에게 내리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없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아드님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총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은총을 우리에게 넘치도록 베푸셨습니다.”

 

참 고무적이고 감동적인 찬미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동사의 주어로 등장하시며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은총과 축복을 우리에게 내려주십니다. 우리 삶의 문장의 주어는 하느님이시며 그리스도 예수님은 하느님 은총과 축복의 통로임을 깨닫습니다. 이런 하느님을, 그리스도를 잊었기에 무지속에서 방황하며 불행한 삶을 살게 됩니다. 스스로 자초한 재앙이요 불행의 비극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바리사이와 율법 교사가 그러합니다. 같은 바리사이였지만 바오로는 회개하여 그리스도 예수님을 만났고 그리스도 안에서 이렇게 그리스도를 통하여 베풀어진 하느님의 은총을 에페소 신자들과 함께 노래합니다. 오늘 에페소서 찬미가의 축복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그대로 실현되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회개의 여정에, 또 찬미와 감사의 삶에 항구하고 충실하도록 도와 주십니다.

 

“주님의 자애를 영원히 노래하오리다. 제 입은 당신의 진실을 대대로 전하오리다.”(시편89,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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