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하느님의 작품입니다 -믿음이 답이다-2020.10.19.연중 제29주간 월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Oct 1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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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9.연중 제29주간 월요일                                                             에페2,1-10 루카12,13-21

 

 

 

우리는 하느님의 작품입니다

-믿음이 답이다-

 

 

 

말씀 묵상중 문득 떠오른 피정지도시 제 단골 인용 말마디 둘입니다.

1.노년의 품위 유지를 위한 우선 순위는 믿음, 건강, 돈이다.

2.물보다 진한게 피이고 피보다 진한게 돈이고 돈보다 진한게 믿음이다.

말하면 거의 대부분 공감을 표시합니다. 하느님 믿음이 우리 인간의 품위에 얼마나 결정적인지 깨닫습니다. 이런 하느님 믿음이 없으면 도저히 무지의 탐욕에 대한 대책이 무망합니다. 탐욕을 제재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믿음뿐입니다. 

 

어제 오늘 주석을 읽으며 새롭게 공감한 진리가 있습니다. 읽을 때 마다 새롭게 느껴지는 진리입니다. 바로 ‘탐욕은 두려움의 표현’이란 것입니다. 사실 인간 생명은 허약하기에 이에 대한 두려움으로 무언가 본능적으로 안전을 확보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탐욕은 너무나 본능적이고 자연스런 인간의 방어, 보호 반응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원초적 두려움이나 불안감에서 기인하는 탐욕이요 소유를 통해 안전을 확보하려 함은 너무 자연스런 본능이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탐욕이 지나쳤을 때입니다. 이런 탐욕의 제동 장치가 바로 하느님 믿음인 것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도 이런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탐욕을 조심하여라’ 와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 두 부분으로 이뤄져 있는 복음입니다. 탐욕과 어리석음은 바로 무지의 표현입니다. 참으로 인간 영혼의 근원적 무지의 병이 탐욕과 어리석음입니다. 불가의 삼독인 탐진치貪瞋癡(탐욕, 분노, 어리석음)와 일맥상통합니다. 이런 우리를 일깨우는 주님의 죽비같은 말씀입니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요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바로 오늘 복음의 어리석은 부자는 우리 탐욕스럽고 어리석은 무지한 인간의 보편적 모습입니다. 어리석은 부자에게는 전혀 하느님 믿음이 없습니다. 완전히 자기 안에 차단된, 자기 안에 갇힌 수인囚人의 모습입니다. 하늘 위로 향한 문이 닫혔고 미래에 대한 문이 닫혔고 옆의 형제들에 대한 문이 닫혔습니다. 

 

참으로 고립단절된 하느님과 이웃과 무관無關한, 관계 맺지 못한 혼자만의 삶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믿음은 물론이요 희망도 사랑은 물론 이웃과의 나눔의 사랑도 없습니다. 무엇보다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이건 사람이 아닌 이기적 괴물입니다. 바로 이게 무지의 죄이자 지옥입니다. 바로 무지한 인간 모두의 가능성입니다.

 

참으로 실감나게 전개되는 부자의 독백과 하느님의 반응이 우리 자신을 비춰주는 참 좋은 묵상감이요 우리의 회개를 촉구합니다. 땅에서 많은 소출을 거둔 부자의 자기도취의 독백입니다. 정말 하느님을 믿는 이라면 우선 많은 소출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렸을 것입니다. 그대로 하늘에 보물을 쌓는 현자의 모습이 아니라, 땅에 보물을 쌓는 어리석은 이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해야지. 곳간들을 헐어내고 더 큰 것들을 지어, 거기에다 내 모든 곡식과 재물을 모아 두어야겠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해야지. ‘자,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사실 이런 노후의 안정된 삶은 누구나 바라는 소망일 것이나 과연 참 행복이, 참 자유가, 참 기쁨이 있을까요.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이웃과 서로 주고 받으며, 나누고 돌보며 사는 사랑입니다. 바로 이런 삶이 부자에겐 통째로 빠졌습니다. 이어지는 하느님의 반응입니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의 차지가 되겠느냐?’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

 

한 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인생입니다. 우리가 죽어서 갖고 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빈손이지만 평소 하느님과 이웃과 맺어 둔 우정의 관계, 사랑의 관계, 믿음의 관계라는 풍부한 내면만 지니고 그분 앞에 가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빈손으로 가도 하느님은 기뻐하고 반가워할 것입니다. 

 

그러니 이렇게 땅에 재물을 쌓으며 살다가 하느님 앞에 갔을 때 텅빈 하늘 창고를 본다면 얼마나 허망하겠는지요. 아무리 후회하고 한탄해도 이미 늦었습니다. 반면 지상에서는 부단한 선행과 자선과 나눔의 생활로 청빈하게 살다가 그분 앞에 가 내 하늘 보물 창고를 열었을 때 보물로 가득하다면 얼마나 흐뭇하고 행복할까요. 

 

요즘 배밭을 산책하다 보면 수확이 끝난 배나무들의 홀가분한 모습을 보면 텅 빈 충만의 행복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과연 하늘에 보물을 쌓는 ‘텅빈 충만’의 하느님 앞에 부유한 삶인지, 땅에 보물을 쌓는 ‘텅빈 허무’의 하느님 앞에 부유하지 못한 삶인지 현재의 우리를 살펴보게 합니다. 

 

오늘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에서 부자의 독백과 하느님의 반응은 꿈속에 일어났던 일화는 아닐까 하는 상상도 됩니다. 정말 이런 꿈을 꾼 어리석은 부자라면 잠을 깬후 미몽의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즉각적인 회개를 실천했을 것입니다. 땅에 보물을 쌓는 삶에서 사랑의 나눔으로 하늘에 보물을 쌓는 삶으로의 전환의 회개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에 대한 답을 제1독서에서 바오로가 줍니다. 오늘 복음의 결론이자 무지에서 벗어난 참으로 겸손하고 지혜롭고 자유로운 우리 본래의 참사람의 모습으로 복음의 어리석은 부자와는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는 여러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인간의 행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기 자랑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작품입니다. 우리는 선행을 하도록 그리스도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작품이자 하느님 은총의 선물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현재진행형중인 하느님과 내가 완성해가야할 미완성 작품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를 부단히 새롭게 창조하시어 하느님 작품의 완성에로 이끌어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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