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나라의 삶 --신망애와 진선미의 겨자씨처럼, 누룩처럼-2020.10.27.연중 제30주간 화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Oct 2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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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7.연중 제30주간 화요일                                                         에페5,21-33 루카13,18-21

 

 

 

하느님 나라의 삶

-신망애와 진선미의 겨자씨처럼, 누룩처럼-

 

 

 

밝고 따뜻한 미소가, 부드럽고 친절한 말 한마디가, 생명과 빛의 진리 말씀이 큰 나무로 성장한 겨자씨처럼 큰 기쁨의 하느님 나라를 선물할 수 있고, 기쁨의 누룩으로 크게 부푼 하느님 나라를 선물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제 졸저 제목입니다. 바로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떠오른 물음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느님의 나라를 살 수 있습니까?’ 물음이 되겠습니다. 바로 오늘 복음이 답을 줍니다. 겨자씨처럼, 누룩처럼 사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무엇과 같을까? 그들을 무엇에 비길까?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정원에 심었다. 그랬더니 자라서 나무가 되어 하늘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었다”

 

“하느님의 나라를 무엇에 비길까? 그것은 누룩과 같다. 어떤 여자가 그것을 가져다가 밀가루 서말 속에 집어 넣었더니, 마침내 온통 부풀어 올랐다.”

 

누구나의 궁극적 꿈이 하느님 나라의 실현입니다. 그대로 예수님의 영적 체험을 반영합니다. 그대로 예수님의 자화상이자 우리의, 우리 공동체의 간절한 꿈과 소망을 반영하는 두 비유입니다. 몸소 하느님의 나라를 사셨던 예수님이십니다. 겨자씨처럼, 누룩처럼 예수님의 삶자체가 그대로 하느님 나라의 실현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신망애, 진선미의 언행이 그대로 겨자씨와 누룩이 되어 주변을 하느님의 나라로 변화시켰듯이 우리 또한 그러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중심한 제자들을 통해 실현된 하느님의 나라였습니다. 여기서 하느님의 나라는 ‘장소’가 아닌 예수님과의 관계를 통해 성령의 힘으로 실현된 ‘관계의 그물망’을 뜻합니다. 가끔 신자분들과 주고 받은 말이 생각납니다.

 

“여기가 하느님의 나라 천국입니다.”

아름다운 경관의 수도원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장소가 좋아 하느님의 나라가 아니라 관계가 좋아야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아무리 장소의 환경이 좋아도 주님과의 관계, 서로의 관계가 나쁘면 거기가 지옥입니다. 그러나 사실 여기 수도원은 장소뿐 아니라 관계도 좋으니 하느님의 나라 천국임은 맞습니다.”

 

죽어서 가는 하느님의 나라가 아니라 오늘 지금 여기서 주님을 중심으로 활발한 사랑의 관계 속에 살아가는 이들을 통해서 도처에서 실현되고 있는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하여 함께 살아가는 개인이나 공동체가 바로 겨자씨같은, 누룩같은 하느님 나라의 실현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살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경우도 참 많습니다. 다음 고백 그대로입니다.

 

“주님, 

눈이 열리니 

온통 당신의 선물이옵니다. 

당신을 찾아 어디로 가겠나이까?

새삼 무엇을 청하겠나이까?

오늘 지금 여기가 하느님의 나라 천국이옵니다.”

 

더불어 즐겨 부르는 옛 노래중 한 대목입니다.

“낙원이 어디냐고 묻지 말게나

심으며 웃는 얼굴 어화 낙원이로구나

내가슴엔 비가 개어 하늘 푸르고

내가슴엔 언제나 봄바람 분다”-

주님을 모신 이런 분위기라면 바로 거기가 하느님의 나라, 낙원입니다.

 

어제 수시간에 걸쳐 총고백면담성사를 본 자매를 통해서도 파란만장한 고통과 시련중에도 하느님의 나라를 살아왔음에 감동했고 십자가 예수님과 함께 성호경을 그은후 기념촬영후 전송하며 드린 격려 메시지입니다. 성호경의 강복후 ;십자가의 예수님’과 함께 찍은 사진은 성화聖畫처럼 거룩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정말 기적처럼, 하느님의 보호아래 살아 오셨습니다. 연옥같은 세상 속에서 끝까지 책임을 다하면서 반듯하게 하느님의 나라를 사시면서 남편도 자식도 지켰으니 하느님도 기뻐하십니다. 이제부터도 사진처럼 밝고 멋지게, 씩씩하게 믿음으로 하느님의 나라를 사세요. 사랑하는 자매님!”

 

듣고 보니 영적 성장의 겨자씨처럼, 주변을 성화시키는 누룩처럼 하느님의 나라를 사셨던 분입니다. 겨자씨 비유가, 누룩의 비유가 상징하는바 개인은 물론 공동체의 영적 성장과 성숙을 뜻합니다. 참으로 어떤 환경중에도 신망애의 겨자씨와 누룩이 되어, 또 진선미의 겨자씨와 누룩이 되어 끊임없이 성장 성숙하여 왔다면 바로 하느님 나라의 실현입니다. 

 

그 구체적 본보기가 바로 요셉 수도원 공동체입니다. 수도 형제 하나하나가, 또 공동체 자체가 그대로 성장중인 겨자씨 같은 하느님 나라를 상징합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의 깃들 수 있는 아름드리 나무들의 숲으로 변한 수도공동체인지요! 또 세상의 중심에서 세상에 속화俗化되지 않고 세상을 성화聖化한 하느님 나라 누룩 수도 공동체임을 깨닫습니다. 밖으로 나가 찾을 하느님의 나라가 아니라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살아야 할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저는 성지순례를 안한지 참 오래됩니다. 굳이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 어디나 하느님 계신 거룩한 오늘 지금 여기 정주의 자리가 성지聖地인데 굳이 성지를 찾아 나갈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여 매일 성지순례를 하듯 수도원 경내를 산책하니 하느님의 나라의 경우와 똑같습니다. 오늘 지금 여기가 성지이듯 하느님의 나라인데 굳이 하느님을, 하느님의 나라를 찾아 어디 나갈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오늘 지금 여기서 하느님을 만나지 못하면 어디서도 못만납니다.

 

겨자씨가 영적 성장의 하느님의 나라를 상징한다면, 끊임없이 내외적 변화를 이뤄 성숙케 하는 누룩의 효소 역시 하느님 나라의 영적 변화를 상징합니다. 신망애의, 진선미의 누룩이란 효소가 끊임없이 부패인생이 아닌 발효인생의 하느님의 나라를 살게 하고 이어 하느님 나라 공동체를 실현시켜 줍니다. 세상에 변질되어 속화됨이 없이 부단히 개인은 물론 공동체를 정화하고 성화하는 누룩의 효소같은 존재가 바로 하느님의 자녀들인 우리들입니다. 하느님께서 성령을 통해 하시는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자녀들인 우리 하나하나가, 또 우리가 몸담고 있는 공동체가 바로 하느님 나라의 실현입니다. 이상적인 부부 가정 공동체 역시 영적 성장의 겨자씨 같은, 영적 성숙의 누룩 같은 하느님 나라 공동체입니다. 끊임없이 영적성장과 성숙이 펼쳐지는 하느님 나라 부부 공동체입니다. 

 

바로 제1독서의 바오로 사도가 꿈꾸는 하느님 나라 부부공동체입니다.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처럼 남편과 아내의 관계도 그러합니다, 상호 사랑과 순종을 통해 끈임없이 성장하고 성숙하는 겨자씨같은, 누룩같은 하느님 나라 부부공동체입니다.

 

남녀가 한 몸이 되는 것은 큰 신비입니다.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처럼 부부관계의 신비도 그러합니다. 그러니 남편도 아내도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서로 사랑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끊임없는 상호 사랑과 순종의 누룩이 영적 성장과 성숙의 하느님 나라 부부 공동체를 실현시켜 줍니다. 이 모두를 가능케 하는 성령의 은총입니다.

 

과연 우리 하나하나가, 또 우리가 몸담고 있는 공동체가 겨자씨처럼, 누룩처럼  끊임없이 성장 성숙중인 신망애, 진선미의 하느님 나라 공동체인지요. 예수님을 중심한 제자들 공동체가 그대로 성장하는 겨자씨처럼 세상 사람들이 머문 하느님 나라 공동체였고, 세상을 하느님 나라로 변화시켜주는 누룩과 같은 하느님 나라 공동체였습니다. 우리 또한 그러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신망애와 진선미의 하느님 나라 공동체의 꿈을 실현하며 살게 하십니다. 이를 위해 말씀의 겨자씨로, 성체의 누룩으로 우리 안에 오시는 성체성사의 주님이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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