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닮의 여정 -무지, 성령, 자유, 온유, 겸손-2021.6.10.연중 제10주간 목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Jun 10,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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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6.10.연중 제10주간 목요일                                            2코린3,15-4,1.3-6 마태5,20ㄴ-26

 

 

 

예닮의 여정

-무지, 성령, 자유, 온유, 겸손-

 

 

 

“주님. 당신이 내리신 빛과 진리가 나를 이끌게 하시고,

당신의 거룩한 산, 그 장막으로 나를 들게 하소서.“(시편43,3).

 

아침 3시경시 마음에 와닿은 시편 성구입니다. 제대로 바로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간의 본질은 허무라 믿으면 허무한 인생이 되는 것이고, 인간의 본질은 사랑이라 믿으면 사랑의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참으로 믿는 이들의 삶은 참 사람이 되어가는 예닮의 여정, 사랑의 여정, 온유와 겸손의 여정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얼마전 어느 신부님의 책을 선물받았습니다. 면담고백성사를 드렸던 분입니다. 성사를 드리면서 ‘아, 지극한 나이에도 참 성실하게 사시는 분이구나!’하는 느낌을 지녔던 분입니다. ‘사랑하기 위하여 기도를 배운다’, ‘내적인 삶으로 초대’ 라는 책명에서 보다시피 영적 삶과 직결되는 책이었습니다. 책 표지 안에 글귀도 좋았습니다.

 

“환대와 친절에 감사드리며 신부님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즉시 핸드폰 전화를 확인해 수도원 십자로 예수 성심상 사진과 함께 감사의 답신을 드렸습니다.

“감사합니다. 신부님, 귀한 책 잘 받았습니다. 틈틈이 읽어보려 합니다. 예수님 감사인사 받으시고 행복하세요.”

곧 신부님의 답신이 있었습니다.

“아닙니다. 신부님, 제가 오히려 감사드립니다. 온유와 겸손의 처방을 잘 실천하여 예수성심을 닮고자 하겠습니다.”

 

참 지금도 기분 좋은 여운으로, 향기처럼 남아 있는 만남이었습니다. 6월은 예수성심성월입니다. 그러고 보니 내일 6월11일은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입니다. 계속된 대축일이 내일 예수성심 대축일로 마감되는 느낌입니다. 마침 면담고백성사시 신부님께 써드린 처방전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마태11,29)

 

예수성심의 사랑이 바로 온유와 겸손입니다. 예닮의 여정, 즉 예수님을 날로 닮아가는 여정은 바로 점차 온유와 겸손의 여정이기도 합니다. 제가 2014년 안식년때 산티아고 순례 여정후 참 많이 강론에 인용했던 주제가 ‘여정’입니다. 아마 남은 평생도 끊임없이 반복될 주제가 여정입니다.

 

늘 강조하는 내용입니다. ‘우리 인생 여정을 일일일생 하루로 압축해 보자, 또 일년사계로 압축해 보자. 일일일생 하루중 어느 시점에, 일년사계 봄, 여름, 가을, 겨울 어느 지점에 위치해 있겠나’하는 물음입니다. 참 절박해지는 물음에 정신 번쩍 들게 합니다. 제 경우는 하루중 오후 4시쯤, 계절로 하면 초겨울에 접어든 느낌입니다. 

 

믿는 이들 누구나 예닮의 여정중에 있습니다. 살아갈수록 날로 온유와 겸손의 예수 성심을 닮아가고 있는지요. 예수님을 사랑하여 알아 닮아갈수록 역설적으로 참나의 성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에 대한 답이 됩니다. 제가 ‘삶의 여정’과 더불어 참 많이 강조한 것이 ‘무지無知의 병’입니다. 동방영성에서 극히 강조하는 바, 마음의 병이 바로 무지입니다. 

 

무지에서 기인하는 온갖 탐욕, 교만, 어리석음, 완고, 분노, 질투, 허무 등 끝없이 이어지는 무지의 부정적 현실들입니다. 바로 이런 무지에 대한 답이 예수님의 온유와 겸손뿐입니다. 참으로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성심을 닮아갈수록 무지의 치유요 자유로운 삶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바로 무지에서 벗어나 온유하고 겸손해지는 것이 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는 것이겠습니다. 무지에서 기인한 살인이요, 형제에게 분노입니다. 예수님은 살인에 앞서 마음의 분노를, 형제를 바보, 멍청이라 무시하는 살인의 근원적 뿌리를 뽑아 버릴 것을 명하십니다. 형제들에 대한 무시와 차별이 정말 큰 죄이며 이 또한 무지에서 기인합니다. 참으로 제대로 된 인성의 사람이라면 ‘존경과 사랑’은 못해도 ‘존중과 배려’는 기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형제가 생각나거든,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

 

하느님과의 관계 회복에 전제되는 바, 회개와 화해를 통한 이웃과의 관계 회복입니다. 형제들과의 화해와 더불어 하느님과의 화해, 바로 이것이 무지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이자 율사와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는 구체적 처방임을 봅니다.

 

바로 온유와 겸손의 예수성심을 닮아가는 예닮의 여정에 결정적 도움이 되는 것이 바로 성령입니다. 오늘 제1독서 바오로 사도의 말씀이 예닮의 여정의 묘사처럼 생각됩니다. 여기서 너울은 무지의 너울이라 해도 좋겠습니다. 무지에 눈이 가려 제대로 실상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무지의 너울에 눈이 가려 주님은 물론 자기도 모르고 이웃도 모릅니다. 헛것같은 유령의 삶을 사는 이들도 많습니다. 성령의 은총으로 주님의 온유와 겸손을 닮아갈수록 무지의 너울도 치워질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 돌아서기만 하면 그 너울은 치워집니다. 주님은 영이십니다. 그리고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너울을 벗은 얼굴로 주님의 영광을 거울로 보듯 어렴풋이 바라보면서, 더욱더 영광스럽게 그분과 같은 모습으로 바뀌어 갑니다. 이는 영이신 주님께서 이루시는 일입니다.”

 

우리 궁극의 희망이자 목표요 예닮의 여정에 관한 묘사입니다. 그대로 미사은총에 대한 묘사같습니다. 감히 무지의 병, 무지의 악, 무지의 죄에 대한 유일한 처방은 매일 미사 은총뿐이라 고백하고 싶습니다. 미사은총이 우리를 주님의 온유와 겸손을 닮아가면서 무지의 너울을 치워주기 때문입니다. 율사와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여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유일한 길입니다. 여기서 주님의 영이 얼마나 결정적 도움을 주는 지 깨닫습니다. 

 

주님은 날마다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무지의 너울을 점차 엷게 해주시어 더욱더 영광스럽게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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