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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2.17. 연중 제6주일                                                          예레17,5-8 1코린15,12.16-20 루카6,17.20-26

 

 

 

참으로 행복하고 싶습니까?

-하느님 중심의 삶-

 

 

 

참으로 행복하고 싶습니까? 

오늘 강론 주제입니다. 참으로 행복하다 생각하는 분들은 얼마나 될까요? 평생을 살아도 참으로 행복했다 생각되는 날들은 얼마나 될까요? 어제나 내일이 아니라 오늘 지금 여기서 참으로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부자라고 해서 다 행복할까요? 가난하다 해서 다 불행할까요? 부자들중에도 불행하게 사는 사람들도 많고, 빈자들중에도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도 많을 것입니다. 어쩌면 빈자들중에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을지도 모릅니다. 

 

정말 살 줄 아는 ‘무욕無慾의 지혜’의 사람이라면 분명 가난한 중에도 행복하게 내적 자유와 내적 부유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가난한 중에도 이렇게 사는 사람이 진짜 아름다운 사람, 멋진 사람, 매력적인 사람, 향기로운 사람, 살 줄 아는 사람일 것입니다. 

 

바로 청빈낙도淸貧樂道(청렴결백하고 가난하게 사는 것을 옳은 것으로 여기고 즐김), 안빈낙도安貧樂道(가난한 생활을 하면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도를 즐겨 지킴)의 삶을 살았던 옛 선비들의 삶이 생생한 증거입니다. 옛 선비들이나 군자들뿐 바로 오늘의 우리 하느님의 자녀들이 살아야 할 이런 가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지금 여기서 하늘나라의 행복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여기서 행복을 살지 못하면 내일도 못삽니다. 오늘이 미래입니다. 오늘 행복하게 사는 이가 내일도 행복하게 삽니다.

 

행복은 누가 주지 않습니다. 내가 행복을 살아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행복하게 살라고 목숨받아 태어난 우리들입니다. 하느님의 단 하나의 소원도 우리가 행복하게 살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 갔을 때 주님의 물음은 단 하나 “너는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았느냐?”일 것입니다.

 

어제 읽은 “품위를 지키는 가난이 교회의 사랑실천이다”라는 인터뷰 기사를 보았습니다. 교회 대신 우리를 넣아 “품위를 지키는 가난이 우리의 사랑실천이다” 해도 그대로 통합니다. 이어지는 내용에도 전적으로 공감했습니다.

 

“자신도 가난해져야 할 뿐 아니라, 가난하게 사는 삶이 결코 불행한 삶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가 보여 주는 것이다. 가난하게 살아도 찡그리지 않고 살 수 있구나, 가난하게 살아도 누군가를 해치거나 탐욕스런 눈으로 다른 이들의 물건을 보지 않는구나. 이랬을 때 가난은 좋은 모범이 되고 좋은 모범은 다른 이들에게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품위있는 가난을 즐겨 택해 살자는 것입니다. 가난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은 가난을 사랑합니다. 최소한도의 소유로 만족합니다. 많이 소유해서 부자가 아니라 탐욕이 적을수록 부자입니다. 하여 가난하면서도 행복한 부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할 때 저절로 이렇게 됩니다.

 

“주님께 아뢰옵니다. ‘당신은 저의 주님, 저의 행복 당신 밖에 없습니다.”(시편16,2)

 

하느님이 바로 우리의 행복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이 진정 행복하고 부유하고 자유롭고 아름다운 사람들입니다. 이런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난을 사랑합니다. 이런 행복을 노래한 자작시가 생각납니다.

 

“방에 있는/TV, 그림, 사진---/대부분이 군더더기/쓸데 없는 짐

 이보다 더 좋은/임 만드신/창문밖 하늘 풍경

 살아 있는 그림/늘 봐도 새롭고 좋네---

 좋은 창 지닌/방 하나만 있어도/부러울 것 없겠네”-

 

하느님 사랑의 무욕의 행복을 노래한 시입니다.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가난중에도, 굶주린 중에도, 우는 중에도 인간 품위를 잃지 않고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살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할 때 하느님이 바로 답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참행복선언은 이들을 향합니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 너희는 배부를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우른 사람들! 너희는 웃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면, 그리고 사람의 아들 때문에 너희를 쫓아내고 모욕하고 중상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그날에 기뻐하고 뛰놀아라. 보라 너희가 받을 상이 크다.”

 

도대체 행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뻐하고 즐겁게 살 수 있습니다. 바로 하느님 친히 지금 이들의 배경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바로 예레미야를 통한 주님의 말씀이 이들을 지칭합니다.

 

“주님을 신뢰하고 그의 신뢰를 주님께 두는 이는 복되다. 그는 물가에 심긴 나무와 같아 제 뿌리를 시냇가에 뻗어 무더위가 닥쳐와도 두려움 없이 그 잎이 푸르고 가문 해에도 걱정없이 줄곧 열매를 맺으리라.”

 

바로 이것이 가난한 부자의 내면의 모습입니다. 참 행복선언에 이은 예수님의 불행선언입니다. 행복하다 여겨지는 사람들이 실은 불행하다는 참 역설적이나 참 진리입니다. 보이는 것이 전부요 하느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너희는 이미 위로를 받았다.

 불행하여라, 너희 지금 배부른 사람들! 너희는 굶주리게 될 것이다.

 불행하여라, 지금 웃는 사람들! 너희는 슬퍼하며 울게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좋게 말하면, 너희는 불행하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거짓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외화내빈의 삶입니다. 부유한 듯 하나 내면은 가난하고 황폐한 진짜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생각없고, 의식없고, 영혼없고, 뿌리없고, 삶의 깊이도 없는 천박한, 얕고 가벼운 사람들입니다. 세상 것들로 가득차 있어 하느님께서 머무실 내적 공간이 없습니다. 그러니 굳이 하느님을 찾을 필요도 없습니다.

 

하느님 빠진 삶의 필연적 귀결입니다. 이것들은 저주도 아니고 형벌의 선고도 아니라 탄식이며 경고입니다. 이것들은 가난하고 굶주리고 우는 이들과 사랑으로 연대하여 살라는 회개의 촉구이기도 합니다. 바로 예레미야를 통한 주님의 말씀이 이들을 지칭합니다.

 

“사람에게 의지하는 자와 스러질 몸을 제힘인 양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그의 마음이 주님에게서 떠나 있다. 그는 사막의 덤불과 같아 좋은 일이 찾아드는 것도 보지 못하리라. 그는 광야의 메마른 곳에서, 인적없는 소금 땅에서 살리라.”

 

그대로 불행한 부자들, 현세적인 것들로 만족한 이들의 황폐한 내면을 반영합니다. 그의 마음이 주님에게서 떠난 자업자득의 업보입니다. 하느님 중심이 아닌 사람 중심, 세상 중심, 현세 중심, 재물 중심의 삶을 산 결과입니다. 제가 늘 강조하는 노욕老慾, 노추老醜의 삶이 되지 않고 품위있는 노년의 삶을 위한 세 조건이 생각납니다.

 

1.하느님 믿음, 2.건강, 3, 돈입니다. 절대로 우선 순위가 바뀌면 안됩니다. 하느님 믿음이 빠져도 안됩니다. 하느님이 빠지면 그 중심 자리에 건강이, 돈이 우상처러 자리잡습니다. 자연히 품위를 잃고 비루한, 추한 삶이 뒤따릅니다. 하여 나이 들면 입은 다물고 귀와 지갑은 열라는 적절한 충고도 생각납니다.

 

그러니 영원토록 우리 삶의 중심인 하느님께 희망을, 부활하신 그리스도께 희망을 두어야 합니다. 하느님이, 그리스도가 영원한 희망이 될 때 온갖 불행중에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하며 살 수 있습니다. 

 

참으로 이런 하느님 향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향한 희망을 지닐 때 행복한 부자로, 자유롭고 아름답게 하느님 자녀로서의 품위를 유지하며 살 수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 역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 희망을 두라는 간곡한 당부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덧없고 여러분 자신은 아직도 지은 죄 안에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이들도 멸망하였을 것입니다. 우리가 현세만을 위하여 그리스도께 희망을 걸고 있다면, 우리는 모든 인간 가운데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 나셨습니다.”

 

부활하시어 우리와 늘 함께 계신 주 그리스도님이 우리의 영원한 행복의 원천이자 도반이요 반려자요 수호자이십니다. 마태복음 마지막 구절을 상기하시기 바랍니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28,20ㄴ).

 

살만한 세상입니다. 주님께서 함께 계시기에 참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우리들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온갖 좋은 것, 온갖 필요한 것을 주시어 우리 모두 행복하게 살게 하십니다. 주님 사랑의 은총으로 행복하고 부유하고 자유롭고 아름답게 살 수 있게 된 우리들입니다. 

 

제 자작 행복기도로 강론을 마칩니다. 누구나 끊임없이 바칠 때 행복해지는 기도, 성인이 되게 하는 기도입니다. 주님을 감동시켜 온갖 필요한 선물을 받게 하는 기도입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찬미합니다

감사합니다

기뻐합니다

차고 넘치는 행복이옵니다

이 행복으로 살아갑니다

 

 주님

눈이 열리니

온통 당신 은총의 선물이옵니다

당신을 찾아 어디로 가겠나이까

새삼 무엇을 청하겠나이까

오늘 지금 여기가 하늘 나라 천국이옵니다

 

 

곳곳에서

발견하는 

기쁨, 평화, 감사, 행복이옵니다

살 줄 몰라 불행이요

살 줄 알면 행복임을 깨닫나이다

 

 

끊임없는

찬미와 감사의 삶중에 당신을 만나니

당신은 말씀으로 우리를 위로하시고 치유하시며

기쁨과 평화, 희망과 자유를 선사하시나이다.

 

 주님

당신은 저의 전부이옵니다

저의 생명, 저의 빛, 저의 사랑, 저의 진리, 저의 기쁨, 저의 행복이옵니다

하루하루가 감사와 감동이요 감탄이옵니다

날마다 새롭게 시작하는 아름다운 선물의 하루이옵니다.

 

 이제 당신을 닮아

온유와 겸손, 인내의 사람이 되는 것이

제 소망이오니 간절히 청하는 제 기도를 들어주소서

당신께 영광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 ?
    고안젤로 2019.02.17 09:58
    주님 선택으로 이루어진 제가 가지고 있는 모든것 또한 지금 처해있는 모든 현실에 대해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
    하느님 사랑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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