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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4.19. 주님 수난 성금요일(주님 수난 예식) 

                                                                                      이사52,13-53,12 히브4,14-16;5,7-9 요한18,1-19,42

 

 

 

죽음을 배웁시다

-진리, 순종, 비움-

 

 

 

가장 멀리 있는 듯 하지만 가장 가까이 있는 죽음입니다. 주변에서 갑작스런 죽음을 대할 때마다의 느낌입니다. 잘 죽는 것은 은총이지만 우리의 최선을 다한 노력 역시 필요합니다. 최선을 다해 노력했을 때 주님은 선종의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죽음도 배워야 합니다. 배움의 여정중에 있는 평생학인인 우리들입니다. 삶과 죽음은 함께 갑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질문은 ‘어떻게 살 것인가?’로 직결됩니다. 예전에 수도원을 방문했던 개신교 어느 목사님으로부터 진지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신부님의 소원은 무엇입니까?”

“잘 살다가 잘 죽는 것입니다.”

 

일언지하에 대답했고 내심 흐뭇했습니다. 후에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보다 더 좋은 대답이 있을까 하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지금 누가 물어도 이처럼 대답할 것입니다. 죽음을 앞두고 시한부 인생을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좀 더 진실하게 살았어야 했는데---”후회하며 세상을 떠난다 합니다. 삼백 여명의 암말기 환자들의 임종을 지켜본 어는 호스피스 자매는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인생을 한눈 팔지 않고 진지하고 성실하게 잘 살아 온 사람만이 결국 잘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언젠가 갑작스러 선종의 죽음은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사는 대로 죽습니다.”

 

분도 성인은 물론 사막교부들의 이구동성의 가르침도 들을 때마다 새로운 공감입니다.

 

“죽음을 날마다 눈앞에 환히 두라.”

 

이래야 환상이나 허상에서 벗어나 오늘 지금 여기서 단순하고 진실한 본질적 삶을 삽니다. 더불어 생각나는 어느 현자에 대한 일화입니다.

 

-어느 현자가 임종을 맞이했을 때, 그의 아내가 슬피 울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그 현자는 잠시 창밖을 바라보고 난후 그의 늙은 아내에게 말합니다.

“당신은 무엇 때문에 우는가? 나의 전생애는 오로지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배우기 위한 것이 었는데!”

그때 창밖에서는 몇 마리의 새가 날아가고 그 현자는 고요히 눈을 감고 세상을 떠났다.-

 

하루하루 날마다 죽음을 눈앞에 환히 두고 최선을 다해 살았던 현자임이 분명합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 수난 성 금요일 주님 수난 예식을 통해 예수님으로부터 죽음을 배웁니다. 어떻게 하면 오늘 요한의 수난복음의 예수님처럼 침착하게, 담담하게,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까요. 

 

첫째, 진리추구의 삶입니다.

첫째 키워드가 진리입니다. 진리의 아름다움입니다. 진리를 사랑하십시오. 예수님의 평생 비전이자 꿈이 하늘 나라였고 평생 추구한 것이 진리였습니다. 평생 진리를 추구한, 진리에 충만한 삶이었기에 주님은 수난과 죽음의 현장에서도 한치의 허점도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 역시 평생 진리의 하느님을 추구합니다. 참으로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진리입니다. 예수님과 빌라도의 대화입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다면, 내 신하들이 싸워 내가 유다인들에게 넘어가지 않게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

 

세상안에 살되 세상이 아닌 진리에 속한 진리의 사람, 진리를 사랑하여 진리만 추구했던 예수님의 대답입니다.

 

“나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왔다.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 목소리를 알아 듣는다.”

 

빌라도의 투박한 물음이 우리의 영원한 화두입니다.

“진리가 무엇이오?”

 

무지에 눈이 가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을 앞에 두고 진리가 무엇인가 묻습니다. 진리를 찾는 사람들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목마름은 바로 진리에 대한 목마름입니다. 주님께서 복음에서 처럼 저에게 "누구를 찾느냐?" 물으신다면 저는 지체없이 대답할 것입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당신을 찾습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임종어, “목마르다.”란 말마디가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임종순간도 하느님을, 진리를 목말라했던 주님이셨습니다. 진리추구에 항구하고 충실한 삶일 때, 분명 아름다운 선종의 은혜가 주어질 것입니다.

 

둘째, 순종의 삶입니다.

둘째 키워드가 순종입니다. 사랑의 순종입니다. 순종의 아름다움입니다. 그러니 순종을 사랑하십시오. 죽기까지,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순종한 예수님의 생애였습니다. 우리의 정주서원이 상징하는바 믿음의 순종입니다. 수십년만에 찾는 분들의 환호소리가 참 반가울 때가 있습니다.

 

“여전하시네요!”

 

여전하다, 바로 한결같다는 뜻입니다. 정주의 순종이 한곁같은 삶을 이루어 줍니다. 바로 '순종의 달인'이 분도수도회의 정주수도승들입니다. 삶은 순종입니다. 평범한 일상에서 크고 작은 이런 저런 순종 수행에 충실할 때 마지막 순종인 죽음도 잘 맞이할 수 있습니다. 죽음을 통해 환히 드러나는 순종의 정체요 죽음을 통해 비로소 완성되는 순종서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셨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그러니 일상의 모든 고난과 어려움은 순종을 배우는 계기로 삼는 것이 구원의 길임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임종어, "다 이루어졌다." 바로 순종의 완성을 의미합니다.

 

셋째, 비움의 삶입니다.

셋째 키워드는 비움입니다. 비움의 충만입니다. 우리 삶은 비움의 여정이자 비움의 수행입니다. 오늘 제1독서 이사야서는 주님의 종의 넷째 노래입니다. 바로 수난중인 예수님의 예표와도 같습니다. 주님의 종에게서 비움의 절정을 봅니다. 비움을 통해 드러나는 넘치는 하느님의 은혜입니다.

 

“그에게는 우리가 우러러볼 만한 풍채도 위엄도 없었으며, 우리가 바랄만한 모습도 없었다. 사람들에게 배척당한 그는 고통의 사람, 병고에 익숙한 이였다. 그렇지만 그는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

 

주님의 수난과 죽음의 십자가의 비움을 통한 한량없는 은혜를 상징합니다. 참으로 주님을 닮아 비움의 여정에 항구할 때 고통중인 이웃들도 우리를 통해 위로와 치유, 평화를 받을 것입니다. 비움의 여정에 항구하고 충실했을 때 주님의 모습은 바로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보라, 나의 종은 성공을 거두리라. 그는 높이 올라 숭고해지고 더없이 존귀해지리라. 그는 고난의 끝에 빛을 보고, 자기의 예지로 흡족해 하리라. 의로운 나의 종은 많은 이들을 의롭게 하고, 그들의 죄악을 짊어지리라.”

 

얼마나 고무적이고 위로와 격려, 힘이 되는 말씀인지요. 예수님은 물론 비움의 여정에 항구한 주님의 종들에게 주시는 주님의 축복입니다.잘 살아야 잘 죽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 수난 예식을 통해 잘 죽는 법과 동시에 잘 사는 법을 배웠습니다. 바로 진리추구의 삶, 순종의 삶, 비움의 삶에 항구하고 충실하는 것입니다.

 

죽으시고 부활하신 파스카의 예수님 친히 우리 모두 이렇게 잘 살다가 잘 죽을 수 있는 은총을 주십니다. 끝으로 ‘잘 살다 잘 죽을 수 있는 길’을 요약한 좌우명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의 마지막연을 나눕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일일일생(一日一生), 하루를 평생처럼,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살았습니다.

저에겐 하루하루가 영원이었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이렇게 살았고 내일도 이렇게 살 것입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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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안젤로 2019.04.19 09:23
    주님, 오늘 하루 삶속에서
    주위의 사람들에게 비움의 여정에 충실하여 예수님 죽음의 자세를
    닮아가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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