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여정 -무지의 어둠에서 자비의 빛으로-2020.1.30.연중 제3주간 목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Jan 3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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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30.연중 제3주간 목요일                                                    사무하7,18-19.24-29 마르4,21-25

 

 

 

배움의 여정

-무지의 어둠에서 자비의 빛으로-

 

 

 

얼마전 읽은 내용이 생각납니다. 성인이 되려면 “1.완성된 인간을 꿈꾸라, 2.좋은 습관을 지녀라, 3,지식욕을 지니라”라는 권고입니다. 이중 세 번째 항목에 주목했습니다. 한마디로 끝없는 배움에 대한 열정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수도승의 기본적 자질도 ‘하느님께 대한 갈망과 배움에 대한 사랑’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배움을 좋아한 공자의 호학好學도 이와 일맥상통합니다.

 

배움의 여정입니다.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하는 여정입니다. 배움에는 끝이없습니다. 하여 평생 공부해야 하는 평생 졸업이 없는 배움터의 평생학인인 우리들입니다. 분도 성인도 당신의 수도공동체를 주님을 섬기는 배움터로 정의합니다. 도대체 배우지 않을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사랑도, 기도도, 섬김도, 모두도 평생 배워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강론은 언제나 영감의 원천이 됩니다. 어둠 속의 빛처럼 통찰을 줍니다. 교황님 역시 참으로 하느님을 찾으며 배움의 여정에 충실하고 항구한 주님의 평생 학인처럼 생각됩니다. 지난 1월27일 월요일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해방 75주년이 되는 날이었고, 이에 대한 교황님의 말씀중 한 대목입니다.

 

“기억은 본질적이다. 만일 우리가 기억을 잃어버린다면 우리는 미래를 파괴하는 것이다.”

(Memory is essential. if we lose our memory, we destroy future).

 

기억이 없으면 미래도 없다는 것입니다. 하여 끊임없이 기억하는 행위가 매일 평생 끊임없이 반복하여 거행하는 시편과 미사의 공동전례기도입니다. 배움의 여정에 끊임없이 기억하는 행위가 미래를 빛으로 열어줍니다. 그러니 배움의 여정에 기억하는 공부가 얼마나 본질적인지 깨닫습니다. 엊그제 다윗이 온힘을 다해 주님 앞에서 기쁨에 넘쳐 춤을 췄다는 내용에 영감 받은 교황님 강론의 한 대목입니다.

 

“기쁨이 없는 신자들은 인습의 수인들이다.”

(Christians without joy are prisoners of formalities)

 

다윗의 춤을 조롱한 기쁨이 없는 사울의 딸이 바로 이에 해당됩니다. 참으로 배움의 여정에 충실할 때 무지로부터 벗어나 기쁨의 자유인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니 배움의 여정은 무지의 어둠으로부터 벗어나 점점 밝아져 참나에 이르는 빛의 여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배움이 여정에 들음은 얼마나 결정적인지요! 잘 듣기 위한 침묵이요 잘 들을 때 겸손이요 순종입니다. 분도 규칙도 ‘들어라, 아들아!’로 시작되며 오늘 복음도 들으라는 말이 두 번 나옵니다.

 

“누구든지 들을 귀가 있거든 들어라.”

“너희는 새겨 들어라.”

 

두 대목입니다. 참으로 영성가는 들음의 사람임을 깨닫습니다. 어제는 다윗이 나탄으로부터 당신께 행한 업적의 나열을 들었습니다. 나탄 덕분에 하느님 주어간 된 제 삶의 성경책을 들으며 렉시오 디비나 한 다윗이 오늘은 감격에 벅차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참으로 감사할 때 무지로부터 벗어나 참나(眞我)의 빛에 이름을 봅니다. 겸손히 감사 기도를 바치는 다윗의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겸손과 감사는 하나입니다. 다윗의 겸손과 감사가 하나된 아름다운 기도문의 일부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참으로 하느님 앞에서 자기를 아는 겸손한 사람입니다.

 

“주 하느님, 제가 누구이기에, 또제 집안이 무엇이기에, 당신께서 저를 여기까지 데려 오셨습니까?---이제 주 하느님, 당신은 하느님이시며 당신의 말씀은 참되십니다. 이제 당신 종의 집안에 기꺼이 복을 내리시어, 당신 앞에서 영원히 있게 해 주십시오. 주 하느님, 당신께서 말씀하셨으니, 당신 종의 집안은 영원히 당신의 복을 받을 것입니다.”

 

흡사 우리 교회공동체를 위한 감사기도처럼 느껴지는 기도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 복음의 단절어를 이해합니다. 오늘 등불의 비유에 따른 단절어는 예수님의 체험을 반영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세상을 비추는 등불로 이해합니다.

 

“숨겨진 것은 드러나게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드러나게 되어 있다.”

 

하여 예수님처럼 끊임없는 배움의 여정에 항구하고 충실한 것이 제일입니다. 배움의 여정을 통해 예수님처럼 점차 주변을 밝히는 등불같은 나의 존재가 되기 때문입니다. 

 

무지의 어둠에서 벗어날 때 본래의 빛나는 등불같은 참 나의 존재입니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본래의 모습이 바로 사랑으로 빛나는 모습입니다. 얼마전 장자의 한 대목, ‘광이불요光而不耀’ 즉 빛나되 눈부시지 않다는, 또 노자의 ‘화광동진和光同塵’, 즉 빛을 부드럽게 하여 세상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성인의 존재를 묘사한 두 말마디가 생각납니다. 

 

참으로 예수님을 닮은 주님의 등불같은 참나의 존재가 광이불요, 화광동진의 모습일 것입니다. 어제 어느 자매님이 전해 준 메시지도 고마웠습니다.

 

“신부님은 고요하게 감싸주세요. 깜깜한데서 인도해주세요. 전 은하수銀河水 신부님이라고 불러요. 은하수같으세요. 깜깜한 밤에 은하수가 뜨잖아요? 얼마나 희망이 생겨요?”

 

참 아름다운 설명에 감동했습니다. 바로 이런 은하수가 광이불요, 화광동진에 대한 기막힌 상징입니다. 참으로 평생 삶의 지침으로 삼고 싶은 광이불요, 화광동진의 은하수같은 삶입니다. 이어지는 단절어입니다.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고 거기에 더 보태어 받을 것이다. 정녕 가진자는 더 받고 없는 자는 가진 것 마져 빼앗길 것이다.”

 

부익부 빈익빈의 진리가 영적 세계에도 그대로 해당됨을 보여줍니다. 배움의 여정에 충실하고 항구하여 이웃에 그 배움의 열매를 나눌수록 참 풍부한 영적 부익부의 삶이 된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광이불요, 화광동진의 빛의 사람이 바로 자유로운 사람, 부요의 사람, 배움의 사람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빛의 자녀가 되어 배움의 여정에 더욱 항구하고 충실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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