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6.13.토요일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 학자(1195-1231) 기념일

열왕기상19,19-21 마태5,33-37

 

 

 

참되고 지혜로운 삶

-진실과 겸손-

 

 

 

 

“주님의 자비는 영원하시다.”

 

언제들어도 감미로운 오늘 새벽 독서기도 시편(136,1-26) 계속된 후렴입니다. 이어지는 아침시편기도의 고백도 감미로웠습니다.

 

“좋으니이다 지존하신 님이여, 주님을 기려높임이, 

그이름 노래함이 좋으니이다.

아침에는 당신의 사랑, 밤이면 당신의 진실을 알림이 좋으니이다

주님, 하신 일로 날 기쁘게 하시니, 손수 하신 일들이 내 즐거움이니이다

주님, 하신 일들이 얼마나 크옵시며, 생각하심 얼마나 깊으시니이까”(시편92,2-3.5-6).

 

이런 좋으시고 자비하신 주님을 사랑함이 참삶의 열쇠입니다. 주님을 사랑할수록 주님을 닮아 참되고 지혜로운 삶에, 진실과 온유의 삶입니다.어제 어느 자매로부터 받은 카톡 메시지입니다.

 

“오늘 새벽에 잠이 깨었는데 느닷없이 ‘하느님이 다 알고 계시는데 왜 기도해야 하지?’ 생각이 머물렀습니다. 그런데 신부님이 작년에 보내 주신 7.28일자 ‘기도와 삶’ 이란 제목의 강론이 생각나서 바로 열어 보았습니다. ‘하느님은 다 알고 계시는데 무슨 기도가 필요합니까? 우리가 아쉬워서 기도하는 겁니다’ 읽는 순간 저절로 웃음이 나왔습니다. 마치 저의 생각을 알고 답해 준 것 같았어요.”

 

읽으며 다시 공감했습니다. 바로 우리가 아쉬워서 필요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전혀 아쉬울 것이 없습니다. 참으로 기도할수록 하느님을 알고 나를 알아감으로 무지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지혜로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 기도할수록 필요한 것이 뭣인지 알게 되고 참 나를 알게 됩니다. 그러니 내가 아쉬워서 필요해서 하는 기도요 바로 하느님이 원하시는 일입니다.

 

어제 읽은 기사 내용도 소개합니다. ‘독일의 행동경제학 연구 집단 브리크 연구소의 최근 조사 연구가 꽤 흥미롭다. 78개국 샘플중 한국은 자신에게 호의를 베푼 상대방의 은혜에 보답하려는 ’긍정적 호혜성’은 55위를, 반면 상대방이 자신에게 피해를 입힌 상황에서 이의 처벌 욕구가 강한 ‘부정적 호혜성’은 2위를 기록했다. 한 해 연구기관의 결과가 참조 이상의 의미는 없겠으나 적어도 우리 사회가 대단히 초개인주의적으로 바뀌었고 시민들 사이 공생의 관계 밀도가 크게 악화된 상태란 해석은 해볼수 있겠다.‘

 

몰라서 무지로 인한 불평이요 원망이지 참으로 깨달아 안다면 하느님과 이웃에 감사요, 긍정적 호혜성 높은 삶일 것입니다. 말그대로 살 줄 몰라 불행이요 살 줄 알면 행복입니다. 하여 참되고 지혜로운 삶이 우리 삶의 우선적 목표가 됩니다.

 

옛 사막 수도자들이 사막의 고독과 침묵을 찾았던 까닭은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서 였고 ‘참으로 잘 살기 위해서’ 였습니다. 참 나를 살 때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매일 수도자가 누구인지 묻는 자가, 왜 내가 수도원에 왔는가 묻는 자가 수도자라 했습니다. 하느님을 찾는 것과 참 나를 찾는 것은 동전의 양면같습니다. 하느님을 찾아 알아갈수록 참 나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새삼 성소의 중요성을 생각하게 됩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함으로 참으로 나를 알아 살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부질없는 가정의 질문이지만 주님의 부르심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 어디서 어떻게 지낼런지요. 새삼 주님은 우리의 운명이요 사랑임을, 우리 삶의 모두임을 깨닫게 됩니다. 

 

바로 오늘 제1독서 열왕기 상권의 엘리사의 성소를 통해서 우리 성소를 되돌아 보게 됩니다. 열두 겨릿소를 앞세우고 밭을 갈고 있던 엘리사 곁을 지나가면서 엘리아가 겉옷을 그에게 걸쳐 주자 즉각 따라나서는 엘리사입니다. 참으로 극적인 엘리사의 성소요, 운명적 만남입니다. 마지막 대목이 인상적입니다.

 

‘엘리사는 엘리야를 떠나 돌아가서 겨릿소를 잡아 제물로 바치고, 쟁기를 부수어 그것으로 고기를 구운 다음 사람들에게 주어서 먹게 하였다. 그런 다음 일어나 엘리야를 따라 나서서 그의 시중을 들었다.’ 

 

과거와의 철저한 결별입니다. 엘리아를 만남으로 무지와 무의미의 삶에서 벗어나 참 삶의 길을 찾은 엘리사입니다. 엘리사가 엘리아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평생 겨릿소를 부리며 단조롭고 무의미한 일상의 삶이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엘리사의 즉각적인 응답을 보면 그의 내면은 하느님을 찾는 열정으로 가득했음을 봅니다. 

 

이제 엘리사에게는 엘리야를 따라 하느님만을 찾는 늘 새로운 시작의 삶이 있을 뿐입니다. 엘리사뿐 아니라 우리 역시 한 번의 부르심과 따름이 아니라 매일 평생, 새롭게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따르는 삶만이 있을 뿐입니다. 바로 참되고 지혜로운 삶입니다. 바로 이의 전형적 모범이 오늘 기념하는 그 유명한 전설적인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입니다.

 

성인의 생몰연대를 보니 만 36세의 불꽃같은 참 치열한 삶이었습니다. 비교해 보니 저는 성인의 거의 배를 살고 있습니다. 더욱 우리를 분발케 하는 성인입니다. 아우구수티노 참사회원이었지만 아프리카 모로코의 선교 열망에 작은 형제회로 옮겼다가 여정중 파선되어 시칠리아 섬에 머물렀다 이태리의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에게 안내됩니다. 1224년 프란치스코 성인은 회원들의 교육을 안토니오에게 위임합니다.

 

성인은 탁월한 설교와 성경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유명하였으며, 당대에 그를 능가할 만한 설교가는 나오기 힘들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성인은 이례적으로 선종후 다음해 성인을 ‘신약의 방주’라 칭찬한 교황 그레고리오 9세에 의해 성인으로 시성되었으며 1946년 교황 비오 12세로부터 교회학자로 선언되었습니다. 안토니오는 흔히 젊은 프란치스코회 수도자의 모습으로 그려지며, 특히 잃어 버린 사람이나 물건을 찾는 사람들의 수호성인이기도 합니다.

 

파도바의 안토니오뿐 아니라 우리 가톨릭 교회는 무수한 성인들로 가득한 살아있는 보물창고라 할 수 있습니다. 밤하늘에 무수히 반짝이는 별들처럼 교회 하늘에 찬연히 빛나고 있는 성인들은 가톨릭 교회의 자랑입니다. 참되고 지혜로운 삶을 살았던 성인들은 우리 삶의 지표가 됩니다. 얼마나 많이 살았느냐의 삶의 양이 아닌 어떻게 살았느냐의 삶의 질이 성덕을 가늠하는 잣대가 됩니다. 성인 축일은 성인을 기억하고 기념할 뿐 아니라 각자 성인이 되라고 부단히 우리를 분발케 합니다.

 

성인들의 공통점은 진실과 겸손입니다. 이 또한 하느님을 사랑한 사랑의 열매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사랑하여 따를수록 주님을 닮아 진실과 겸손의 열매입니다. 진실과 겸손의 사람이 바로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오늘 복음은 맹세하지 마라는 가르침입니다. 참으로 정직하라는, 진실하고 겸손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느님을 모르고 자기를 모르는 무지로 인해 맹세이지 정말 하느님을 알고 자기를 아는 진실과 겸손의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절대로 맹세할 수도 없고 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님 다음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여 실행할 것입니다.

 

“너희는 말할 때에 ‘예’할 것은 ‘예’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 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

 

잘 말하기는 얼마나 어렵고 힘든지요. 참 말을 위해, 또 말로서 죄짓지 않기 위해 강조하는 침묵입니다. 남의 말만 하지 않아도, 뒷담화만 하지 않아도 성인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사랑하여 따라 닮아갈수록 진실과 겸손의 참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진실과 겸손의 사람이 되어 참되고 지혜로운 삶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

 

 

 

 

  • ?
    고안젤로 2020.06.13 08:46
    주님을 사랑할수록 주님을 닮아 참되고 지혜로운 삶에, 진실과 온유의 삶입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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