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7.1. 연중 제13주일(교황주일) 

지혜1,13-15;2,23-24 2코린8,7.9.13-15 마르5,21-43



“어떻게 참으로 살 것인가?”

-지키라!, 찾으라!, 나누라!-



오늘은 7월 첫날이자 연중 제13주일입니다. 어제 6월의 끝은 오늘 7월의 시작입니다. 끝은 시작입니다. 늘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바로 파스카의 삶입니다. 어지럽고 혼란스런 세상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언제나 그러했습니다. 이런 와중에서 참으로 사람답게 사는 일이 중요합니다.


몇가지 예화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엊그제의 신선한 충격을 잊지 못합니다. 평범하여 묻힐만한 소재입니다만 저에게는 새로운 발견이었습니다. 어느 좋은 분이 프라스틱 포장의 자두를 선물했습니다. 포장지 안에 소개된 글입니다.


-“경남 산청; 지리산 자두; 정종태 농부”-


자기 신원을 ‘농부’라 밝힌 당당함이 참 통쾌했습니다. 이처럼 건강한 자부심을 지니고 사는 이들이라면 자존감 높은 참 좋은 사람일 것입니다.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15장1절,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예수님 말씀도 떠올랐습니다. 예수님의 당당함도 참 매력적입니다. 


어제 읽은 사막교부의 예화입니다. 한 제자가 사막의 교부 아르세니우스 압바를 찾아 묻습니다. 역시 에집트 농부들에 관한 것입니다.


-“세상 어디서도 얻을 수 없는 모든 교육에 방대한 지식을 지닌 우리와는 달리 어떻게 이 에집트 농부들이 그렇게 많은 덕을 지닐 수 있는 것입니까?” 그러자 압바 아르세니우스는 대답했습니다. “사실 우리는 세속의 교육으로부터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 그러나 이 에집트 농부들은 힘든 노동에 의해서 덕들을 얻은 것이다.”-


우리의 평범한 일상이 참 사람이 되는 교육장입니다. 지식을 모으는 공부가 아니라 깨달음의 지혜로 자기를 아는 겸손이 참 공부의 본령임을 깨닫습니다. 지식박사가 지혜와 겸손에는 바보일 수 있습니다. 얼마전 타계한 참으로 정치계의 거목이었던 분의 묘비명 마지막 부분도 잔잔한 감동이었습니다. 


“나이 90에 이르러 되돌아 볼때 89년이 헛되니 절로 한숨 짓는다. 숱한 질문에 그저 웃음으로 대답하던 사람, 한평생 반려자인 고마운 아내와 이곳에 누웠노라.”


살아 생전 인터뷰 내용도 귀중한 깨우침을 줍니다. 


“이 세상에 죽음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겨우살이를 준비하면서 죽음은 준비하지 않는다.”


저는 이를 일컬어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갈 준비로 죽음 준비를 ‘귀가歸家준비’라 즐겨 부르곤 합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의 물음은 저절로 그 반대의 ‘어떻게 참으로 살 것인가?’의 물음으로 직결됩니다. 바로 오늘 강론의 제목입니다. 저는 그 답을 오늘 말씀에서 찾았습니다. 제1독서에서 ‘지키라!’를, 복음에서 ‘찾으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2독서에 찾은 ‘나누라!’입니다. 이 순서대로 강론을 하겠습니다.


첫째, “지키라!”입니다.

무엇을 지킵니까? 자기 존엄한 품위를 지키는 것입니다. 세례받고 주님의 성체성혈을 모시는 우리들이 아닙니까? 그러니까 바로 ‘하느님 자녀답게’ 사는 것입니다. 그저 ‘사람답게’는 막연합니다. ‘하느님의 자녀답게’ 사는 것입니다. 이보다 건전하고 건강한 자부심도 자존감도 자존심도 없습니다. 가난해도 이렇게 살아야 무시받지 않고 존중받으며 살 수 있습니다.


백제의 미학이자 한국인의 미학으로 정의할 수 있는, 삼국사기에 나오는 김부식의 글귀도 생각납니다.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검이불루, 화이불치, 참 멋있고 매력적인 삶입니다. 옛 선비들의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이 아마 이랬을 것입니다.


하느님이 뜻하시는 바도 이런 고귀한 품위의 삶일 것입니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인간입니다. 하느님과 이웃만 사랑할뿐 아니라 나도 사랑해야합니다지혜서 저자는 ‘정녕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불멸의 존재로 창조하시고, 당신 본성에 따라 인간을 만드셨다.’고 고백합니다. 우리는 우연한 존재가 아니라 하느님께 불림받은 성소자聖召者입니다. 


그러니 불림 받은 존재답게, 하느님을 닮은 사람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얼마전 바오로의 ‘그러므로 사랑받는 자녀답게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에페5,1) 말씀도 생각납니다. 그 유명한 시편 8장 말씀도 기억할 것입니다.


-“우러러 당신 손가락이 만드신 저 하늘하며

 굳건히 이룩하신 달과 별들을 보나이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아니 잊으시나이까

 그 종락 무엇이기에 따뜻이 돌보시나이까


 천사들보다는 못하게 만드셨어도

 영광과 존귀의 관을 씌워 주셨나이다.”-


이처럼 존엄한 품위의 인간, 하느님의 자녀들인 우리들입니다. 그러니 존엄한 품위를 지키며 하느님의 자녀답게 자존감 높은 삶을 사는 것이 우리의 거룩한 첫째 의무입니다.


둘째, “찾으라!”입니다.

무엇인가 끊임없이 찾는 인간입니다. 찾아야 답도 나옵니다. 묻지 않으면 답도 나오지 않습니다. 누구를, 무엇을 찾습니까? 제대로 찾아야 합니다. 오직 찾을 분은 딱 한분 예수님이십니다. 죽고 부활하시어 늘 우리와 함께 계신 파스카의 예수님이십니다. 


오늘 사랑하는 딸의 죽음에 직면한 야이로 회당장은 제대로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간절한 믿음으로 찾았기에 예수님을 만났고 그의 간곡한 청은 그대로 응답되었습니다. 야이로 회당장의 죽은 딸을 살리는 파스카의 예수님의 모습은 언제나 감동적이고 힘이 납니다.


“탈리타 꿈!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예수님을 만날 때 죽음에서 생명으로의 부활입니다. 죽음에 대한 생명의 승리입니다. 우리 구원자 그리스도 예수님은 죽음을 없애시고, 복음으로 생명을 환히 보여주셨습니다(2티모1,10). 지혜서에 대한 답을 예수님이 주셨습니다.


“그러나 악마의 시기로 세상에 죽음이 들어와, 죽음에 속한 자들을 그것을 맛보게 된다.”


정작 무서운 죽음은 육신의 죽음이 아니라 영혼의 죽음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때 죽음에서 벗어나 영원한 생명의 구원입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죽음에 대한 유일한 답은 파스카의 예수님뿐임을 깨닫습니다.


“탈리타 쿰!-일어나라!” 소녀뿐 아니라 우리 모두를 향한 말씀입니다. 의기소침해 있을 때, 좌절감이나 절망으로 무너져 내릴 때, 즉시 ‘탈리타 쿰!’ 하며 예수님의 손을 붙잡고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넘어지는 게 죄가 아니라 일어나지 않는 것이 대죄입니다.


열두해 동안 하혈병 앓던 여자도 제대로 간절한 믿음으로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숱한 고생을 하며 많은 의사의 손에 가진 것을 모두 쏟아 부었지만 아무 효험도 없이 더 나빠졌지만 마침내 최고의 명의名醫 예수님을 만남으로 영육의 온전한 치유의 구원을 받았습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그리고 병에서 건강해져라.”


그대로 이 거룩한 미사에 참석하고 있는 우리 모두를 향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간절한 믿음으로 당신을 찾는 우리를 치유해 주시고 살려주십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셋째, “나누라!”입니다.

가진 것을 나누는 것입니다. 나눌 것 없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사랑만 있으면 나눌 것은 무궁무진입니다. 마음이 담긴 따뜻한 위로의 미소, 따뜻한 격려의 말도 있습니다. 섬김, 떠받침, 돌봄, 나눔의 사람들, 참 좋은 사람들입니다. 무엇보다 물질을 나누는 자선의 사랑을 절실히 필요로 합니다.


빈부의 양극화 현상이 사회불안과 사회통합의 주범입니다. 독점욕과 소유욕의 탐욕은 끝이 없습니다, 나눔이야 말로 하늘에 보물을 쌓는 일입니다. 지키는 것만으로, 찾는 것만으로 부족합니다. 나눠야 비로소 완성입니다. 참으로 사는 것이 됩니다. 


옛 교회 교부들은 부자들이 사용하고 남은 것은 모두 가난한 사람에게 자선으로 베풀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권고했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입니다. “부자의 잉여물이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필수품이다. 당신에게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간에 결코 당신의 것이 아니다.” 주님은 바오로의 입을 빌어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부유하시면서도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어, 여러분이 그 가난으로 부유하게 되도록 하셨습니다.”


부요하신 예수님께서 가난하게 되시는 나눔으로 우리 모두 영적 부요의 행복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풍요가 어려운 이들의 궁핍을 채워 주고, 나중에는 그들의 풍요가 우리의 궁핍을 채워준다면, 균형을 이루게 됩니다. 서로 사랑의 나눔으로 공평한 균형과 조화의 삶이라면 얼마나 아름답겠는지요. 


하느님께서 실현되기를 꿈꾸는 세상은 바로 다음 탈출기 16장18절을 근거로한 제2독서 코린 2서 8장 15절 말씀이 아름답게 요약하고 있습니다.


“많이 거두는 이도 남지 않고, 적게 거두는 이도 모자라지 않았다.”


참으로 공평한 균형과 조화를 이룬 유토피아 이상향을 보여 줍니다. 주님은 7월 첫날 연중 제13주일, ‘어떻게 참으로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주셨습니다.


1.하느님 자녀답게 품위를 ‘지키라!’입니다.

2.궁극의 답이신 예수님을 ‘찾으라!’입니다.

3.가진 것을 궁핍한 이들과 ‘나누라!’입니다.


바로 이것이 참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아야 본기도 내용대로 ‘빛의 자녀’가 되어 오류의 어둠에서 벗어나 ‘진리의 빛’ 속에 살게 됩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이렇게 ‘지키고, 찾으며, 나누며’ 살 수 있도록 힘을 주십니다. 아멘.


  • ?
    안젤로 2018.07.01 09:53
    새로이 시작하는 7월에도
    어지럽고 혼란스런 세상에서도 빛의 자녀가 되도록 저희가 늘
    지키고 찾으며 나눌수 있도록 하게 하소서 아멘
  • ?
    오늘사랑 2018.07.01 17:35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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