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2016.6.14.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열왕기상21,17-29 마태5,43-48


                                                                      하느님의 정의와 사랑


어제는 11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님의 기일을 맞이하여 성묘를 다녀왔습니다. 이미 오래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와 합장된 어머니의 묘소 앞에서 두분을 위해 연도를 바쳤고, 내려오는 도중에 작은 어머님의 묘에 들려 잠시 기도를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5년 전에 돌아가신 요셉 큰 형님의 묘소 앞에서 또 현충원에 모셔진 8년 전에 돌아가신 베네딕도 둘째 형님을 위해 기도를 드렸습니다. 참으로 평화로운 하루의 일정이었습니다. 모두가 주님 안에서 편안히 잠들어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살아있다는 것과 죽어있다는 차이가 무엇인가?”


라는 생각이 불연 듯 일어났고 어제 하루의 화두였습니다. 어찌보면 별 차이가 없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생사일여生死一如라는 말도 있듯이 삶과 죽음의 차이가 참으로 모호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잠시 땅에 몸붙여 하루하루 살다가 언젠가는 모두 세상을 떠날 사람들입니다. 살아있다 하나 그냥 생각없이 하루하루 산다면 실상 죽어있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나이 30에 죽어 70에 묻힌다.’는 말마디가 다시 떠올랐습니다.


‘참으로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지금 여기 ‘하느님 앞에서’ 깨어 사는 것입니다. 하여 제가 피정자들에게 항상 강조하는 것이 늘 하느님을 기억하는 것과 죽음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죽음을 늘 기억할 때 모든 환상은 걷히고 오늘 지금 여기를 참으로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루하루를 평생처럼, 처음처럼 감사하며 참으로 살 수 있습니다.


살아있음과 죽어있음의 분별의 잣대는 하느님 의식입니다. 하느님의 현존의식 안에 있는 이는 진정 살아있는 자요, 하느님을 잊고 살아가는 이들은 살아있다 하나 실상은 살아있는 것이 아닌 죽은 자들입니다. 그러니 세상에 살아있다 하나 하느님도 자기도 모른 채 죽어 사는 이들은 얼마나 많겠는지요.


오늘 독서와 복음의 대조가 우리 모두를 하느님 앞에 깨어있게 합니다. 어제에 이어 오늘 열왕기상권 21장이 끝납니다. 양일간 읽고 묵상하면서 하느님의 정의에 전율했습니다. 독서의 주제가 하느님의 정의라면 복음은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이런 정의가 우리 내면의 죄악에 민감하게 하여 오늘 화답송 후렴의 자비송을 끊임없이 바치며 더욱 하느님 사랑에 박차를 가하게 합니다.


“주님, 당신께 죄를 지었사오니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시편51,3ㄱ).


어제 독서는 아합과 그의 아내 이제벨의 공모가 완전 범죄처럼 성공한 듯 보였습니다. 나봇을 죽게 만들었고 그의 포도밭도 차지했습니다. 이들의 악행에 소름끼치는 전율을 느꼈습니다. 사람이 얼마나 악해질 수 있는지 악의 끝없는 심연을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하느님 앞에 완전 범죄는 없습니다. 


하느님의 그물은 성긴 듯 해도 이 그물을 빠져 나갈 자 아무도 없습니다(천망회회 소이불루(天網恢恢 疏而不漏). 어디로 도망쳐도 하느님은 거기 계십니다. 오늘 열왕기상 21장 후반부는 엘리야를 통해 아합임금에 대한 하느님의 준엄한 선고가 뒤따릅니다. 물론 회개한 아합은 생전에 벌은 유보되지만 그 자손들과 이제벨에 내린 심판은 피할 수 없습니다.


이런 하느님의 정의의 심판이 우리를 참으로 회개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살길은 회개뿐이 없습니다. 끊임없는 회개의 여정에 충실하며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평생과제에 충실하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은 복음에서 참으로 살 수 있는 길을 분명히 보여주십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예수성심을 통한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과제입니다. 감상적인, 감정적인 사랑이 아니라 아무리 원수라해도, 박해하는 자라도 잘 되기를 바라는 아가페 사랑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다운 사랑은 이런 것입니다. 


원수도 박해하는 자도 필시 나름대로 무슨 까닭이 있을 것이며 치명적 사랑의 상처나 결핍 중에 악에 사로잡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이들을 사랑하고 기도할 때 보복의 악순환도 끊어질 것이며 우리의 원수나 박해자도 악의 수중에서 해방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주시는 공평무사公平無私, 대자대비大慈大悲하신 하느님을 닮으라는 것입니다. 모두에게 차별없는 연민의 사랑, 자비의 사랑, 아가페 사랑을 쏟으라는 것입니다. 악인이든 선인이든, 의로운 이든 불의한 이든 하느님께는 모두가 불쌍한 연민의 대상인 당신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주님께서 우리에게 제시한 평생과제는 단 하나입니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


주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바라시는 기대수준은 이처럼 높습니다.` 하루하루 평생 이 목표에 충실하며 하느님의 완전성을, 온전성을, 자비하심을 닮아갈 때 비로소 살아있다 할 수 있으며, 세상에 태어난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끊임없는 회개로 하느님의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며 살게 하십니다. 아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103 지혜로운 삶 -찬양, 종말, 이웃-2020.10.1.목요일 한가위 1 프란치스코 2020.10.01 118
2102 참된 제자의 삶 -진리와 사랑-2020.9.30.수요일 성 예로니모 학자(340-420) 기념일 1 프란치스코 2020.09.30 629
2101 우리 모두 하느님의 천사들이다 -찬미와 심부름-2020.9.29.화요일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와 모든 거룩한 천사 축일 1 프란치스코 2020.09.29 135
2100 하느님의 종 -믿음의 대가;예수님과 욥-2020.9.28.연중 제26주간 월요일 1 프란치스코 2020.09.28 118
2099 참 멋지고 아름다운 삶 -끊임없는 회개-2020.9.27.연중 제26주일(이민의 날) 1 프란치스코 2020.09.27 106
2098 기억하라, 사랑하라, 찬미하라 -창조주 하느님, 파스카 예수님을!-2020.9.26.연중 제25주간 토요일 1 프란치스코 2020.09.26 105
2097 때를 아는 지혜 -모든 것은 다 때가 있다-2020.9.25.연중 제25주간 금요일 1 프란치스코 2020.09.25 100
2096 충만한 삶 -허무와 무지에 대한 답은 하느님뿐이다-2020.9.24.연중25주간 목요일 1 프란치스코 2020.09.24 122
2095 파견된 복음 선포자의 삶 -선물, 비전, 믿음, 환대, 활동-2020.9.23.수요일 피에트첼치나 성 비오 사제(1887-1968) 기념일 1 프란치스코 2020.09.23 117
2094 멋지고, 맛있고, 아름다운 삶 -말씀 예찬-2020.9.22.연중 제25주간 화요일 1 프란치스코 2020.09.22 118
2093 부르심의 여정 -부르심, 들음, 따름-2020.9.21.월요일 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 프란치스코 2020.09.21 112
2092 구원의 여정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2020.9.20(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1821-1846)와 성 정하상 바오로(1795-1839)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 1 프란치스코 2020.09.20 149
2091 참된 수행자의 삶 -희망, 간절함, 항구함, 인내-2020.9.19.연중 제24주간 토요일 프란치스코 2020.09.19 107
2090 더불어 여정 중의 공동체 -중심(믿음), 비전(희망), 역할(사랑)-2020.9.18.연중 제24주간 금요일 1 프란치스코 2020.09.18 106
2089 부활 은총의 삶 -사랑, 만남, 회개, 용서, 구원-2020.9.17.연중 제24주간 목요일 1 프란치스코 2020.09.17 133
2088 선물이냐 짐이냐? -하느님이, 기도와 사랑이 답이다-성 고르넬리오 교황(+253)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258) 기념일 1 프란치스코 2020.09.16 128
2087 아, 어머니! 고통의 성모 마리아님! -관상, 연민, 비움, 초월-2020.9.15.화요일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1 프란치스코 2020.09.15 190
2086 성 십자가 예찬 -기도와 회개의 표징이자 구원의 이정표-2020.9.14.월요일 성 십자가 현양 축일 1 프란치스코 2020.09.14 170
2085 어떻게 살 것인가? -사랑하라, 화내지 마라, 자비로워라-2020.9.13.연중 제24주일 1 프란치스코 2020.09.13 137
2084 반석 위의 인생 성전聖殿 집 -말씀과 기도, 성찬례 실행의 생활화-2020.9.12.연중 제23주간 토요일 1 프란치스코 2020.09.12 114
Board Pagination Prev 1 ... 60 61 62 63 64 65 66 67 68 69 ... 170 Next
/ 170
©2013 KSODESIGN.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