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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5. 주님 공현 대축일 후 수요일                                               1요한4,11-18 마르6,45-52

 

 

하느님 중심의 삶

-"기도, 사랑, 지혜, 용기"-

 

 

 

어제 대구 대교구 새 사제(강동협 요셉)의 여기 수도원 성전에서의 미사분위기가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사랑의 빛, 사랑의 힘 충만한 분위기 속에 참 아름다운 미사장면이라 사진에 담기도 했습니다. 미사 끝난후 즉시 새사제에게 준 격려의 덕담도 잊지 못합니다.

 

“평생, 살아 있는 그날까지 오늘처럼 미사하고 강론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미사 분위기 열정과 힘이 넘쳤고 참 좋았습니다.”

 

'하느님 중심의 삶’, 오늘 강론의 주제입니다. 하느님 중심의 삶을 이루는 기도와 사랑, 지혜와 용기입니다. 오늘 복음 장면을 보면 어제 복음의 예수님께서 오천명을 먹이신 기적에 이어 예수님의 기도가 그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음을 봅니다. 

 

‘그들과 작별하신 뒤에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에 가셨다.’(마르6,46)

 

예수님의 삶 한 복판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기도요, 그대로 하느님 중심의 삶임을 입증합니다. 늘 우리와 함께 하는 삶이었지만 삶의 중심에는 늘 홀로 아버지 하느님과 함께 하는 친교의 관상 기도가 자리하고 있음을 봅니다. 바로 여기 기도에서 샘솟는 사랑임을 깨닫습니다.

 

기도는 하느님 사랑의 표현입니다. 기도는 사랑입니다. 기도와 사랑은 함께 갑니다. 하느님을 사랑할수록 기도하게 되고 또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합니다. 하느님의 아가페 사랑을 체험할 때 비로소 이웃 사랑의 형제애요 하느님을 더욱 사랑하게 됩니다. 깊어지는 사랑과 더불어 하느님과의 일치도 더욱 깊어지고 하느님 중심의 삶도 확고해지기 마련입니다.

 

바로 하느님 중심의 삶의 모범이 예수님이요 예수님의 제자이자 사도인 요한입니다. 참으로 하느님 중심의 삶에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할수록 아가페의 형제애도 깊어질 수 뿐이 없습니다. 어제 제1독서에는 사랑이란 단어가 10회 나왔는데 오늘은 12회 나옵니다. 과연 사랑의 사도 요한이요 사랑은 사도의 모두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우리는 알게 되었고 또 믿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우리의 하느님 사랑에 앞서 우리에 대한 하느님 사랑이 전제되고 있음을 봅니다. 하느님께서 이렇게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하느님 사랑을 체험할 때 더욱 하느님을, 이웃을 사랑하게 되고 더불어 기도하게 될 것입니다. 

 

기도는 사랑의 샘입니다. 이런 사랑은 참으로 생명을 주는 사랑, 자유롭게 하는 초연한 사랑, 치유하고 위로하는 사랑, 그대로 하느님 사랑을 닮은 아가페 사랑입니다. 참으로 끊임없이 아가페 사랑으로 정화되어야 할 오염되어 불순한 이기적 육적 탐욕의 우리 사랑임을 봅니다. 기도와 사랑을 통해 하느님과 일치가 깊어질수록 자연스럽게 뒤따르는 지혜와 용기, 사랑의 기적입니다. 

 

예수님의 분별의 지혜는 그대로 기도와 사랑의 열매이자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오천명을 먹이신 기적후에 즉시 군중의 인기에 유혹되지 않고 즉시 이들을 떠나 산으로 홀로 물러나 아버지와의 깊은 친교의 기도 시간과 공간을 마련함으로 자신을 추스립니다. 기도를 통해 하느님 중심의 삶을 확고히 하며 아버지의 사랑으로 자신을 충전시키며 자신의 참모습과 사명을 새롭게 확인합니다. 그러니 기도는 사랑과 지혜의 샘임을 깨닫습니다.

 

참으로 기도의 힘, 사랑의 힘이 대단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바로 요한 사도의 깊은 하느님 체험을 반영하며 그 결정적 증거를 예수님에게서 보았음이 분명합니다. 예수님이야말로 하느님은 사랑이심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통해 하느님은 사랑이심을 깨닫게 된다면 이보다 더 좋은 복음 선포도 없을 것입니다. 늘 기도와 사랑으로 하느님과 일치되어 사셨던 예수님이셨습니다. 오늘 복음이 그 좋은 증거요 다음 대목이 이를 입증합니다.

 

‘저녁이 되었을 때, 배는 호수 한가운데에 있었고 예수님 혼자 뭍에 계셨다. 마침 맞바람이 불어 노를 젓느라고 애를 쓰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새벽녘에 호수 위를 걸으시어 그들 쪽으로 가셨다. 그분께서는 그들 곁을 지나가려고 하셨다.’

 

그대로 예수님의 기적, 하느님의 기적, 사랑의 기적입니다. 산에서 기도하던중 사랑의 영안靈眼이 활짝 열려 호수 한 복판에서 폭풍으로 곤경중에 있던 제자들을 보셨으며 즉시 개입하신 주님이십니다. 유령인 줄로 생각하여 겁에 질려 비명을 지르는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말씀이 오늘 복음의 절정입니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평생 화두로 삼고 싶은 말씀입니다. 인생 항해 중 심한 격랑의 파도로 난파되거나 조난 중인 가정이나 인생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그대로 오늘 복음의 호수 한 복판에서 폭풍으로 곤경중인 제자들의 배는 오늘날 세상 바다에서 인생 항해중인 교회 공동체나, 온갖 공동체를 상징합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세상 바다에서 인생항해중 불안과 두려움속에 살아가는 지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측 불가능한 혼돈의 상황 속에서 기후위기와 코로나 및 내전상태를 방불케 하는 극심한 생존경쟁 중에 참으로 고단하고 힘들게 살아가는지요! 참으로 깊이 잘 들여다 보면 정도의 차이일뿐 누구나의 내면 깊이에는 불안과 두려움이 짙게 깔려 있음을 봅니다. 참으로 내외적 참 평화가 절실한 시절입니다. 바로 이런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주시는 사랑이신 주님의 복음 말씀입니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나다(I AM)’은 바로 탈출기에서 모세에게 계시되었던 하느님 이름입니다. 바로 예수님이 하느님이심을 천명하는 말씀입니다. 그대로 하느님과 사랑으로 일치된 예수님이기에 이런 사랑의 기적인 것입니다.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는 말씀은 수도원 십자로 중앙, 예수님 부활상 아래 바위판에 새겨진 성구입니다. 

 

성서에는 ‘두려워하지 마라’는 말씀이 무려 365회 나온다니 일년 365일 매일 이 말씀을 상기하며 살라는 가르침처럼 들립니다. ‘두려워하지 마라’는 말씀 뒤에는 거의 언제나 한결같이 ‘내가 너와 함께 있다’라는 말씀이 뒤따릅니다. 두려움 역시 무지의 결과입니다. 무지에 눈멀어 두려움입니다. 무지의 두려움에 대한 근원적 처방은 사랑뿐임을 오늘 사도 요한이 답을 줍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몰아냅니다. 두려워하는 이는 아직 자기의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사랑이셨기에 두려움 없이 폭풍 속 호수위를 걸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이 탄 배에 예수님이 오르시자 바람이 멎습니다. 참 중요한 상징적 장면입니다. 우리 공동체 중심에, 우리 마음 중심에 예수님을 모실 때 비로소 두려움의 폭풍은 평화로운 미풍으로 바뀐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우리 내면의 두려움은 아직도 우리 사랑의 부족을 알려주는 표지입니다. 사랑의 빛만이 두려움의 어둠을 몰아내고 사랑의 힘만이 폭풍을 미풍으로 바꿉니다. 그러니 두려움과 불안에 대한 근원적 처방은 사랑이신 주님과의 일치뿐임을 깨닫습니다. 이어지는 복음의 마지막 묘사도 우리를 각성케 하는 가르침이자 깨우침이 됩니다.

 

‘그들은 너무 놀라 넋을 잃었다. 그들은 빵의 기적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마음이 완고해졌던 것이다.’

 

망각忘却과 마음의 완고頑固함, 이 또한 무지의 결과입니다. 참으로 늘 끊임없는 기도와 끊임없는 회개를 통해 ‘깨달음의 여정’에 항구함으로 망각과 마음의 완고함에서 벗어나 사랑으로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이 거룩한 미사중 주님의 도움을 청합시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와 함께 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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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안젤로 2022.01.05 05:34
    "기도는 사랑의 샘입니다. 이런 사랑은 참으로 생명을 주는 사랑, 자유롭게 하는 초연한 사랑, 치유하고 위로하는 사랑, 그대로 하느님 사랑을 닮은 아가페 사랑입니다. 참으로 끊임없이 아가페 사랑으로 정화되어야 할 오염되어 불순한 이기적 육적 탐욕의 우리 사랑임을 봅니다. 기도와 사랑을 통해 하느님과 일치가 깊어질수록 자연스럽게 뒤따르는 지혜와 용기, 사랑의 기적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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