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7.26.화요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부모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 기념일

예레14,17ㄴ-22 마태13,36-43

 

 

 

참 깊고 신비로운, 아름답고 품위있는 

노년과 죽음을 위해서

 

-‘가라지의 비유’를 바탕한 묵상-

 

 

 

어제 날씨는 참 청명하고 좋았습니다. 수도원 주변의 경관도 아름다워 어디나 사진 찍어도 아름다운 작품이었습니다. 새삼 사진은 빛의 예술임을 실감했습니다. 햇빛에 따라 빛과 그림자가 절묘하게 조화된 신비롭고 아름다운 풍경이었습니다. 그래서 어제는 곳곳의 카톡 사진을 많이 찍었습니다.

 

빛이 있기에 가능한 빛의 예술 사진이듯이, 하느님 은총의 빛과 우리의 죄의 그늘이 조화된 신비롭고 아름답고 품위있는 인생, 빛의 예술인 인생임을 깨닫습니다. 흑백 사진은 물론 빛과 그늘이 잘 조화된 천연색 사진도 깊고 신비롭고 아름답듯 인생도 그렇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새삼 깊고 신비롭고 아름답고 품위있는 인생, 특히 노년의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오늘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부모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 기념일입니다. 정경에는 없으나 2세기 위경 야고보 복음에 나오는 두 인물로 이미 우리 가톨릭 교회에서는 전승되어 기념하는 믿을만한 성인들입니다. 

 

안나 성녀에 대한 공경은 6세기부터 동방교회에서 시작되어 10세기에는 서방교회에 널리 퍼지기 시작했고, 요아킴 성인에 대한 공경은 훨씬 뒤에 이루어졌습니다. 전승의 요지인즉 성녀 마리아의 어머니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었으나, 요아킴 성인이 광야에서 40일 동안 단식한뒤 하느님의 섭리로 마리아가 탄생하였다는 일화입니다.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의 노부부를 묵상하면 참 깊고 신비롭고 아름답고 품위있는 노년의 모습을 연상케 됩니다. 분명 이런 삶에 죽음도 또한 그러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이 아름다운 노부부의 모습에서 영감을 받아 오늘 기념일 가까이 있는 7월24일 연중 제17주일을 제2차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 기념일로 정해 온 교회가 기념하도록 했습니다. 날로 늘어나는 노년 인생들을 위해 참 시의적절時宜適切한 결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날의 기도문도 아름다워 전문을 그대로 인용합니다.

 

“주님, 

저에게 장수의 복을 베풀어 주시고,

주님께 피신하는 이들이

언제나 열매를 맺게 하시니

감사하나이다.

 

오, 주님,

저의 체념과 절망을 용서하시고

저의 기력이 쇠하여도

저를 버리지 마소서.

 

주님께서 저에게 주신 미래를

주님께서 저에게 맡기신 사명을

희망으로 바라보도록 가르치시고

제가 끝없이 주님을 찬미하게 하소서.

 

저를 주님의 온유함의 혁명을 이루는 장인으로 삼으시어

저의 손주들과

주님 안에서 쉴 곳을 찾는 모든 어린이들을

사랑으로 지키게 하소서.

 

오, 주님,

프란치스코 교황을 보호하시고

주님의 교회가 세상을 외로움에서 구하게 하소서.

또한 저희의 발걸음을 평화의 길로 이끄소서.

아멘.”

 

참 좋은 기도문입니다. 누구나 맞이할, 누구나 피할 수 없는 미래의 노년이요 죽음입니다. 언젠가 갑자기 이런 깊고 신비롭고 아름답고 품위있는 노년이나 죽음은 없습니다.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하루하루 날마다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루하루 일일일생, 하루를 평생처럼,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자세로 최선을 다하여 살아가는 것이 바로 유일한 답이자 처방입니다.

 

바로 우리 87세 고령의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이런 삶의 참 좋은 본보기입니다. 참 놀랍고도 자랑스러운 일은 지난 7월24일 주일부터 7월30일 토요일까지 일주간 카나다의 원주민들을 위해 제37차 해외 사목방문의 여정중이라는 것입니다.  이곳 원주민들에게 과거 교회가 저질렀던 과오에 대해 용서를 청하고 이들과의 치유와 화해와 일치를 위한 주목적의 방문이기에 “참회의 순례여행(penitential pilgrimage)”이라 명명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사목방문이요, 얼마나 아름다운 가톨릭 교회의 모습이요, 얼마나 아름다운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노년의 모습인지요! 이런 깊고 신비롭고 아름답고 품위있는, 훌륭한 노년과 죽음을 위해 오늘 가라지의 비유는 참 좋은 가르침과 깨우침을 줍니다. 

 

밀과 가라지의 비유라 하지 않고 가라지의 비유라 명명한 것도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밀이 아닌 가라지가 초점입니다. 앞서의 가라지 비유는 ‘인내’를 중점에 두고 있다면 오늘 가라지 비유에 대한 우의적 설명은 초대교회 공동체의 현실을 반영하며 여기서는 ‘심판’에 중점을 둡니다.

 

우리의 현실 삶에서는 인내와 심판 둘을 다 고려해야 온당한 결론에 이를 수 있습니다. 가라지 악의 존재는 참 불가사의不可思議요 신비롭습니다. 오늘 비유에 대한 설명에서는 노골적으로, 참 순진하게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사람의 아들인 예수님, 좋은 씨는 하늘 나라의 자녀들, 가라지들은 악한 자의 자녀들,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악마, 수확때는 세상 종말, 일꾼들은 천사로 비유합니다. 아주 실감나는 비유에 대한 설명으로 어느 정도 공감이 갑니다.

 

분명한 것은 최후의 심판입니다. 누구나 맞이하는 노년의 삶에 죽음입니다. 죽음이 누구엔가는 절망의 심판이 될 수 있고, 누구엔가는 희망의 구원이 될 수 있을 것임인 오늘 복음의 마지막 묘사가 분명히 합니다. 심판의 지옥에 대한 묘사에 이은 희망의 구원인 천국에 대한 묘사입니다.

 

“사람의 아들이 천사들을 보낼 터인데, 그들은 그의 나라에서 남을 죄짓게 하는 모든 자들과 불의를 저지르는 자들을 거두어, 불구덩이에 던질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그때에 의인들은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처럼 빛날 것이다.”

 

복음의 마지막 구절,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라는 말씀이 우리 무지의 어둠을 일깨우는 하느님의 우레소리 같습니다. 참으로 오늘 복음을 경청하여 어느쪽인지 분별하고 부단히 선의 밀쪽을 선택하여 분투의 노력을, 훈련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영원한 지상 삶이 아닙니다. 우리의 순례여정은 아버지의 집으로의 귀가 여정입니다. 심판이냐 구원이냐? 은총과 더불어 우리의 노력에 달렸습니다.

 

가라지는 하느님의 몫입니다. 우리의 영역이 아닙니다. 밀과 가라지에 대한 우리의 판단은 위험하기 짝이 없습니다. 가라지는 엄연한 현실이요 이에 대한 우리의 자세는 심판은 하느님께 맡기고 지극한 인내와 기다림중에 이들과 평화로운 공존의 지혜와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라지를 제거하기 보다는 내 자신이 변질되거나 변절하여 가라지가 되지 않고 한결같이 선한 밀이 되어 살 수 있도록 죽는 그날까지 하느님의 구원에 희망을 두고 분투의 인내와 노력과 훈련을 다하자는 것입니다. 내 자신의 선의 역량을 강화하여 지혜와 사랑, 순수와 열정의 삶을 살자는 것입니다. 가라지를 제거하지 않아도 가라지 악의 세력을 약화시키는 방법이 최상의 처방일 것입니다.

 

채소밭의 이치만 봐도 곧장 들어납니다. 특히 여름철 밭농사는 풀과의 전쟁입니다. 가꾸지 않아도 줄기차게 무성히 자라나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 가라지 존재와 같은 잡초들입니다. 하여 제초제를 뿌립니다만 땅과 유익한 미생물이 죽습니다. 참 좋은 방법은 부단히 채소를 잘 돌보고 가꾸어 잡초가 무성히 자라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며 채소를 튼튼히 키우는 것입니다. 참 부지런해야 하는 밭농사이듯 참 부지런해야 하는 영성생활입니다.

 

채소가 튼튼히 자라나면 잡초들은 저절로 서서히 약화되어 시들어 갑니다. 이래서 영성생활에, 특히 노년과 죽음을 잘 맞이하기 위해 선의 역랑 강화를 위한 영적훈련이, 한결같은 수행자의 삶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어제 피정중 고백성사를 보기 위해 잠시 방문한 사제에게 들은 일화입니다.

 

“예전 신학교 학생들은 정신적으로 정상과 좀 문제가 있는 학생의 비율이 7:3이었다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반대로 바뀌어 3:7이라 합니다.”

 

바로 병든 사회 현실을 반영합니다. 참으로 어른은 물론이고 아이들도 심신이 온전한 사람들, 찾아보기 힘듭니다. 대부분 약하고 병들어 있는 총체적 위기 현실입니다. 당장 공동의 집인 지구가 병들어 시름시름 앓고 있습니다. 땅도 공기도 물도 많이 오염되어 있는데 사람이 독야청청 건강할 수 없습니다. 정말 이러다간 밀밭이 가라지밭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보십시오. 광야 세상, 온통 가라지밭처럼 보이기도 하고 성인들보다는 괴물들이, 폐인들의 가라지들로 변질되는 사람들 같기도 합니다.

 

이래서 비상한, 끊임없는 기도와 회개를 통한 내적 혁명의 삶이, 삶의 방식의 전환이 시급합니다. 오늘 제1독서 예레미야 예언자의 탄원에 공감이 갑니다. 이런 극단적인 불행은 아녀도 우리는 우리의 탐욕과 무지로 자초한 총체적 불행을 겪고 있습니다. 회개와 더불어 하느님 중심의 삶을 회복해야 할 때입니다.

 

“주님, 저희의 사악함과 조상들의 죄악을 인정합니다. 참으로 저희가 당신께 죄를 지었습니다. 하늘이 스스로 소나기를 내릴 수 있습니까? 그런 분은 주 저희 하느님이신 바로 당신뿐입니다. 그러기에 저희는 당신께 희망을 둡니다. 당신께서 이 모든 것을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유일한 출구는 단 하나, 하느님께 희망을 두는 것이요, 지혜와 사랑, 지극한 인내와 분투의 노력으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한결같이 선한 밀같은 존재로 의인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바로 주님의 거룩한 미사은총이 결정적 도움을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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