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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21. 연중 제29주간 금요일                                                                          에페4,1-6 루카12,54-59


                                                                       한계限界의 영성

                                                                  -지옥에는 한계가 없다-


어찌보면 사람은 하나하나가 경계境界지어진, 한계限界 지어진 외롭고 쓸쓸한 섬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로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수용하고 존중하는 것이 사랑임을 깨닫습니다. 사랑은 제자리를 견뎌내는 거리를 지켜내는 고독의 능력이란 시 대목도 생각이 납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도 있듯이 문제는 한계를 벗어나는 과욕, 과신, 과식, 과음, 과속에서 파생됨을 봅니다. 


어제 뜻밖에 떠오른 ‘한계’란 단어로 종일 화두로 삼아 깊이 묵상하며 지냈습니다. 5월 중순부터 뚜렷이, 까닭없이 불편해진 왼쪽 무릎 때문입니다. 물리치료, 침치료, 약물치료로 많이 개선된 듯 하지만 여전히 예전같지는 않습니다. 2년전 800km 2000리 산티아고 순례길을 나르듯 걷던 일을 생각하면 받아들이기가 참 쉽지 않습니다.


어제 왼쪽 무릎의 불편을 통해 떠오른 ‘한계’의 의미를 생각합니다. 예전에도 몇 번 강론한 적이 있습니다만 오늘 강론 주제는 ‘한계의 영성’이 되겠습니다. 더불어 떠오른 예전에도 인용했던 괴테의 파우스트에 나오는 ‘지옥에는 한계가 없다.’라는 말마디입니다. 만고불변의 참으로 깊고 깊은 통찰의 진리입니다. 


더불어 떠오른 주변의 무수한 예들입니다. 수도원 주변의 자연환경의 구조만 봐도 한계가 분명합니다. 하늘, 산과 배밭, 채소밭, 길, 성당과 숙소, 창고등 건물들의 한계의 선이 지어 지면서 아기자기 균형과 조화가 있고 각자의 자리가 주어 집니다. 이런 넓은 땅이 한계로 이루어진 자연이 아니라 한계가 없는 하나의 사막이라면 참 삭막한 지옥같을 것입니다.


하루의 일과표도 기도, 노동, 성독, 식사시간, 휴식시간, 잠시간 등 촘촘히 한계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이런 한계로 구분되지 않은 하루의 일과라면 참 무질서해질 것이고 곧 안팎으로 무너져 내릴 것입니다. 일과표의 한계가 우리의 중심과 질서를 잡아주는 것입니다. 일년이 한 계절뿐이라면 참 답답하고 무미건조할 것입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한계로 나뉘어 지니 얼마나 풍요롭고 넉넉한지요.


하느님과 공동체 앞에서 우리 수도승의 정주서원도 언제나 거기 그 자리의 한계에 충실하겠다는 서원이요, 순종서원 역시 주어진 한계에 충실하겠다는 서원입니다. 가난, 정결, 순종의 복음적 권고를 비롯한 모든 수행들 역시 무한한 욕망에 한계를 정한 것입니다. 결국 수도생활은 한계의 수련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오로처럼 그리스도를 위한 자발적 수인의 삶이 정주서원의 수도승 삶인 것입니다. 한계의 수련을 통한 부단한 깨달음에 깊어지는 내적 삶에 내적자유의 삶입니다. 


지옥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한계없이 자유로운 삶을 추구할 때 바로 거기가 지옥입니다. 한계에 매이기 싫어 결혼도 마다하고 자기실현을 위해 독신의 삶을 선택한다면 무의미한 지옥의 삶이 되기 십중팔구입니다. 자유롭게 범죄를 짓던 이들도 사회로부터 격리시켜 감옥의 한계에 가두는 것도 한계를 통한 깨달음을 위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계없이 자기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자유같지만 유혹이요 지옥에의 입문입니다. 한계의 수련을 통한 내적자유요 한계없는 자유는 환상이자 지옥의 실현입니다. 사회의 모든 혼란도 법과 상식의 한계를 벗어나 멋대로 행동하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에덴 동산의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하느님의 말씀도 분명한 한계를 정해준 것입니다. 자유라는 미명하에 한계를 허물어 가면서 지옥문도 서서히 열리는 것입니다.


자기를 아는 것이 겸손이자 지혜입니다. 자기 대신 한계를 넣어도 그대로 통합니다. 한계를 알아 받아들이는 것이 겸손이자 지혜입니다. 자기의 한계를 앎이 겸손이자 지혜요, 반대로 자기의 한계를 모름이 교만이자 무지입니다. 사실 세월이 흘러갈수록 쇠약해지는 심신에 이런저런 불편과 병고로 자기의 한계를 깨달아 가면서 철이나 겸손해지고 지혜로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 


비로소 삶은 당연한 권리가 아니라 하느님의 잠정적 선물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런 한계의 렌즈로 오늘 말씀을 보면 선명히 이해됩니다. 한계속에서 삶의 실상이, 삶의 진실이 잘 보이는 법입니다. 1독서 서두의 바오로 말씀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형제 여러분, 주님 안에서 수인이 된 내가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감옥 안의 수인이자 동시에 주님 안의 수인이 된 바오로의 혜안慧眼이 빛납니다. 구구절절 교회일치를 위한 금과옥조의 가르침입니다. 실제 공동생활 체험의 소산이기 보다는 감옥의 한계 안에서 깊이 터득한 지혜입니다.


“겸손과 온유를 다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사랑으로 서로 참아주며,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 주신 일치를 보존하도록 하십시오.”


교회공동체의 일치를 위한 구체적 지혜로운 처방입니다. 유엔 사무총장을 지낸 만델라의 관용과 지혜도 장기간의 수인생활의 한계의 소산이요, 다산 정약용의 무수한 저술도 강진에서의 18년의 유배 한계생활의 산물이요, 이미 타계한 신영복 선생의 지혜도 20여년 감옥 한계생활의 열매들임을 깨닫습니다.


바오로의 하나의 깨달음이 참으로 심오합니다. 교회일치의 근거도 바로 이 하나에 기인합니다. 희망도 하나,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 성령도 하나, 주님도 하나, 믿음도 하나, 세례도 하나, 만물의 아버지도 하나입니다. 바로 이런 하나의 복된 한계 안에서 다양성의 일치입니다.


“그분은 만물 위에, 만물을 통하여, 만물 안에 계십니다.”


옥중의 한계에서 이런 만물의 하느님을 깨달음으로 하느님 한계 안에서 자유를 누리는 바오로입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의 지혜로운 말씀도 한계영성의 열매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한계 안에 평생 투신해 온 삶에서 나온 지혜의 산물입니다.


“위선자들아,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 너희는 왜 올바른 일을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느냐?”


그대로 오늘의 우리를 향한 말씀입니다. 한계의 거점據點이자 중심中心을 잃었기에 시대를 보는 지혜의 눈을 잃은 것입니다. 평범한 일상이 구원입니다. 한계가 구원입니다. 한계없이는 구원도 없습니다. 삶은 무수한 한계들을 통과해 가야 하는 한계의 여정입니다. 마지막 가장 힘들고 중요한 통과해야 할 한계는 죽음일 것입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의 한계를 깨달아 각자 제자리의 한계 안에서 겸손과 지혜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행복하여라. 주님께 바라는 사람!”(시편34,9)


우리의 복된 궁극적 한계는 주님이심을 깨닫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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