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8.4. 연중 제18주일                                                                코헬1,2;2,21-23 콜로3,1-5.9-11 루카12,13-21

 

 

 

‘새 인간’의 삶

-허무, 사랑, 천상의 그리스도, 무욕, 새 인간-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까? 자유롭게 살고 싶습니까? 참 사람이, 새 인간이 되어 살고 싶습니까? 살 수 있습니다. 살아야 합니다. 품위를 지닌 인격의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선적으로 격格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에게 인격이 있듯이 나라에도 국격이 있습니다. 인격의 사람들이 모여 국격의 나라입니다. 

 

작금의 일본은 국격도, 일본의 대다수 지도자들과 국민들은 인격도 실종입니다. 참 부끄러운 일입니다. 돈만 많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원대하고 숭고한 비전도, 희망도, 꿈도 없고 인격도 국격도 없는 존재라면, 회개도 반성도 없는 군국주의의 향수와 사고의 잔재가 여전한 존재라면 말입니다. 

 

무엇보다 우리에게 시급한 것이 다양한 양상의 갑질을 근절하는 것입니다. 정말 품위없는 부끄러운 일이 갑질입니다. 고상한 인격을 추구하는 우리에겐 정말 어울리는 일이 아닙니다. 살만한 세상입니다. 한번뿐이 없는 유일회적 고유의 각자인생입니다. 무한한 삶이 아니라 인생 여정 끝나면 아버지의 집에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니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참되이, 착하게, 아름답게 참 사람이, 새 인간이 되어 고귀한 인격의 품위의 사람이 되어 행복하고 자유롭게 함께 사는 것입니다. 홀로의 인생여정이 아니라 “저닝 투게더(Journeying Together)!”, 함께의 여정입니다. 얼마전 수도원 뜨락, 아침마다 새날을 밝히는 야생화 달맞이꽃들을 보며 써놓은 글입니다.

 

-“아무도 가꾸고 돌보지 않아도

하늘님 친히 가꾸시고 돌보시는 꽃/달맞이꽃들!

그럼에도 불구하고/살만한 세상이라고/하느님께 희망과 신뢰를 두고 

사랑하며 살라고/밤새 활짝 깨어 피어있다가

아침마다/새날을 환히 밝히오는/청초한 아름다움의 달맞이꽃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우리 믿는 이들의 자랑스런 영원한 비전이자 희망이자 꿈이 하느님입니다.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영원한 비전의 하느님 나라를, 천국을 오늘 지금 여기서 앞당겨 사는 참 행복한 우리들입니다. 행복기도문 그대로입니다.

 

-“주님/눈이 열리니/온통 당신의 선물이옵니다

당신을 찾아 어디로 가겠나이까/새삼 무엇을 청하겠나이까

오늘 지금 여기가/하느님 나라/천국이옵니다”-

 

어떻게 오늘 지금 여기서 새 인간이 되어, 참 사람이 되어 하느님 나라 천국을 살 수 있겠습니까? 지금부터 오늘 말씀을 바탕으로 그 방법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첫째, 허무를 통과하십시오.

삶의 본질은 허무입니다. 허무한 삶입니다. 벚꽃같이 활짝 폈다지는 제행무상의 인생관이 일본인의 인생관이라 합니다. 그러나 허무가 마지막 대답은 아닙니다. 결코 비감미悲感美의 허무주의를 우리는 허용할 수 없습니다. 다음 코헬렛의 절규에 공감하지 않을 자 누구이겠습니까?

 

“허무로다, 허무! 코헬렛이 말한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 지혜와 지식과 재주를 가지고 애쓰고서는 애쓰지 않은 다른 사람에게 제 몫을 넘겨 주는 사람이 있는데 이 또한 허무요 커다란 불행이다.

 

그렇다. 태양 아래에서 애쓰는 그 모든 노고와 노심으로 인간에게 남는 것이 무엇인가? 그의 나날은 근심이요 그의 일은 걱정이며 밤에도 그의 마음은 쉴 줄을 모르니 이 또한 허무이다.”

 

코헬렛과 대조를 이루는 욥입니다. 코헬렛이 물음이라면 욥은 그 대답입니다. 참 고질적 영혼의 병이 허무입니다. 그러나 허무는 대답이 아닙니다. 허무를 통해 삶의 환상에서 벗어날 때 본질 직시의 지혜입니다. 허무와 무의미를 통해 단련될 때 순수해 지는 마음입니다. 

 

바로 이런 허무는 역설적으로 하느님의 초대장입니다. 바로 우리를 부르시는 하느님의 신호입니다. 허무의 정화과정을 통해 하느님께 나아갈 때 참 지혜롭고 자유로운 삶입니다. 오늘 복음의 부자가 재물의 덧없음을 알아 허무를 체험했더라면 그렇게 끝까지 재물에 집착하는 탐욕의 어리석음에 빠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둘째, 사랑하십시오.

하느님을 온 마음으로 사랑하고, 이웃을 내 자신처럼, 또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허무에 대한 유일한 답은 사랑입니다. 사랑만이 허무한 인생을 충만한 인생으로, 고해인생을 축제인생으로 바꿉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노래하는 사람입니다. 노래는 사랑하는 사람의 전형적 특징이라고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말했습니다.

 

사랑은 고백입니다. 사랑은 찬미입니다. 시편 노래는 거의 모두가 주님 향한 사랑의 고백, 믿음의 고백, 희망의 고백입니다. 사랑의 찬미의 빛에 흔적없이 사라지는 허무와 무의미의 어둠입니다. 오늘 화답송 시편도 말씀에 어울리며 하느님 향한 우리의 사랑을, 믿음을, 희망을 고무합니다. 하느님 찬미의 시편의 사랑이 우리의 허무를 치유하고 참으로 지혜롭게 합니다.

 

“천년도 당신 눈에는 지나간 어제 같고, 한토막 밤과도 같사옵니다.

저희 날수를 헤아리도록 가르치소서. 저희 마음이 슬기를 얻으리이다. 돌아오소서, 당신 종들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아침에 당신 자애로 저희를 채워주소서, 저희는 날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리이다. 주 하느님의 어지심을 저희 위에 내리소서. 저희 손이 하는 일에 힘을 주소서. 저희 손이 하는 일에 힘을 실어 주소서.”(시편90장 참조).

 

오늘 복음의 부자의 문제점이 어디 있는지 드러납니다. 재물의 부가 아니라 탐욕으로 인한 불통이 차단이 문제입니다. 완전히 자기 안에 갇힌 모습입니다.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소유만 있지 참 나의 존재는 없습니다. 사랑이, 하느님과 이웃과의 주고 나누는 사랑이 통째로 빠졌습니다. 

 

사랑은 지혜입니다. 허무와 탐욕에 대한 답도 사랑뿐입니다. 무엇보다 끊임없는 하느님 사랑의 시편 찬미 노래를 권합니다.

 

셋째, 저 위에 있는 천상의 그리스도를 추구하십시오.

사랑의 찬미의 사람들은 저절로 저 위에 있는 천상의 것을 추구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해야 합니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십니다. 우리의 영원한 비전이자 도반이신, 영원한 화두이자 삶의 중심이자 의미이신, 우리의 모두가 되시는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니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을 생각하지 마십시오. 세상 것들의 거부가 아니라 초연한 이탈의 자유를 촉구합니다. 우리는 이미 죽었고, 우리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습니다.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우리도 그분과 함께 영광속에 나타날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바로 우리의 생명이라니 참 고맙고 놀랍습니다. 참 나의 정체가 밝혀집니다. 그리스도가 빠진 삶은 살아있다하나 실상은 죽은 삶입니다. 참으로 그리스도와 일치가 깊어질수록 생명력 넘치는 삶입니다. 

 

그러니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이 거룩한 미사야 말로 생명의 성체성사임을 깨닫습니다. 영육의 배고픔과 목마름은 바로 그리스도와 일치를 향한 생명의 근원적 욕구임을 깨닫습니다.

 

넷째, 모든 탐욕을 경계하십시오.

무욕無慾의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극기, 절제, 이탈의 무욕이 지혜입니다. 만악의 근원이 탐욕입니다. 탐식, 탐애, 탐욕의 인간입니다. 삶은 탐욕입니다. 탐욕의 뿌리에 식욕, 성욕, 물욕이 있습니다. 탐욕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무절제의 지나침에 있습니다. 우리 모두를 향한 주님의 권고입니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요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사람의 생명은 재산이 아닌 그리스도께 달려 있습니다. 허무도 문제였지만 탐욕도 문제입니다. 허무는 지혜롭게 하지만 탐욕의 무지는 눈멀게 합니다. 복음의 부자는 그대로 탐욕스런 인간의 전형입니다. 아무도 그를 탓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회개를 촉구하는 반면 교사 역할을 하는 부자입니다. 자족, 자만하는 부자에 대한 주님의 조롱입니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찾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복음의 목표하는 바는 바로 오늘의 독자讀者들이요 청자聽者들인 우리들입니다. 탐욕의 인간들에 대한 죽비같은 회개를 촉구하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바로 사랑의 나눔으로 하늘에 보물을 쌓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만을 위해 땅에 보물을 쌓는 어리석은 탐욕의 사람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부유한 사람이 참 행복하고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참으로 천상의 것들을 추구함으로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와 일치가 깊어질 때 저절로 탐욕으로부터의 해방이요 사랑의 나눔도 깊어집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지체없이 저절로 실행에 옮깁니다. 

 

“여러분 안에 있는 현세적인 것들, 곧 불륜, 더러움, 욕정, 나쁜 욕망, 탐욕을 죽이십시오. 탐욕은 우상숭배입니다.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마십시오.”

 

탐욕을 경계하라, 탐욕을 죽이라 하시니 탐욕의 만악의 뿌리임을 깨닫습니다. 바로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와 사랑의 일치가 허무는 물론 탐욕에 대한 최상의 답임을 깨닫습니다. 그러고 보니 허무와 탐욕에 대한 참 좋은 유일한 처방은 이 거룩한 성체성사의 파스카의 은총뿐임을 깨닫습니다.

 

다섯째, 새 인간으로 사십시오.

마지막 우리의 궁극 목표가 새 인간입니다. 존엄한 품위의 새 인간으로 참 인간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의무요 책임이자 권리입니다. 이렇게 살라고 부름 받은 우리들입니다. 그러니 옛 인간을 그 행실과 함께 벗어 버리고, 새 인간을 입은 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새 인간, 완성된 인간이 아니라 영원한 현재 진행형의 인간입니다. 매일 매일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옛 인간은 매일매일 낡아가지만 새 인간은 나날이 내적으로 새로워지면서 주님을 닮아갑니다. 

 

새 인간은 자기를 창조하신 분의 모상에 따라 끊임없이 새로워지면서 참 지식에 이르게 됩니다. 하느님을, 그리스도를, 참 나를 알아가면서 참 지식의 원천이신 그리스도와 깊어지는 일치의 여정중에 있는 우리들입니다. 바로 이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에서 제외될 자 아무도 없습니다. 바오로의 말씀 그대로입니다.

 

“여기에는 그리스인도 유다인도, 한국인도 일본인도, 할례받은 이도 할례 받지 않은 이도, 야만인도, 문명인도, 종도, 자유인도 없습니다.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이며,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

 

종파를 초월하여 살아 있는 모든 인류의 구원이 바로 그리스도께 달려 있다는 엄중하면서도 장엄한 선언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생명, 우리의 사랑, 우리의 평화, 우리의 기쁨, 우리의 행복, 우리의 모두입니다. 

 

바로 이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뤄주는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새 인간으로 변모시켜 주시어 참 새롭고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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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안젤로 2019.08.04 11:30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참되이, 착하게, 아름답게 참 사람이, 새 인간이 되어 고귀한 인격의 품위의 사람이 되어 행복하고 자유롭게 함께 사는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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