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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8.18.연중 제20주일                                                                  예레38,4-6.8-10 히브12,1-4 루카12,49-53

 

 

 

삶은 무엇인가?

-여정, 열정, 인내, 평화- 

 

 

 

삶은 신비의 여정입니다. 수도원에서 30년 이상 정주하면서 참 무수한 분들을 만납니다. 한분한분의 삶의 여정이 기적같습니다. 어제 수십년간 수도원과 관계를 맺어온, 오랜만에 만난 분들과의 면담과 고백성사가 있었습니다. 참으로 한결같이 산전수전 다 겪어온 삶이 고맙고 반가워 안아 드리며 치하했습니다.

 

“믿음의 승리입니다. 믿음의 여장군입니다. 믿음의 별을 달기로 하면 별 몇 개씩을 달아 드려도 되겠습니다.”

 

덕담을 드렸습니다. 사실 제 주변에는 믿음의 여장군들이라 칭할 수 있는 분들이 무수합니다. 새삼 삶은 무엇인가?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믿음이 없으면 그 힘든 세월을 어떻게 지냈을까 싶습니다. 한분은 얼굴이 까맣기에 물었습니다.

 

“남편과 공터마다 농사를 짓기 때문입니다. 남편도 경비직을 떠난 후 하루 종일 얼마나 농사짓기에 바쁜지 모릅니다. 함께 일하다 보니 얼굴이 까맣게 됐습니다.”

 

참으로 늘 부지런히 성공적 인생을 살고 있는 부부였습니다. 한분은 예전에 꼬마 넷을 어떻게 키울까 걱정했었는데 둘은 결혼 시켰고 하나는 12월에 결혼하고 하나는 영국에서 공부하고 있다며 자식 자랑을 했습니다. 참으로 곤경 중에도 믿음으로 최선을 다하며 수십년간 믿음의 도반으로 살아 온 분들이었습니다. 믿는 이들에게 삶은 무엇인가? 다시 묻게 됩니다.

 

첫째, 삶은 여정입니다.

주님과 함께, 주님을 향한 여정입니다. 혼자의 여정이 아니라 함께의 여정입니다. 히브리서가 삶의 여정을 역동적으로 묘사합니다. 걷는 것이 아니라 목표지점을 향해 달려가는 것으로 묘사합니다. 흡사 마라톤 경기를 연상케 합니다. 오늘 히브리서 12장 서두 말씀은 11장 ‘믿음의 전사들’에 이은 결론같은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많은 증인들이 우리를 구름처럼 에워싸고 있으니, 우리도 온갖 근심과 그토록 쉽게 달라 붙는 죄를 벗어 버리고, 우리가 달려야 할 길을 꾸준히 달려갑시다.”

 

흡사 옛날 초등학교 가을 운동회때 달리기 장면이 연상됩니다. 관중들의 박수를 받으며 힘껏 뛸때의 모습입니다. 삶은 마라톤 경기와 같습니다. 매일매일 계속되는 삶의 마라톤입니다. 집착과 죄의 짐을 비우고 버려 가능한 가벼운 몸차림으로 달리는 것입니다. 달리지 못하면 부지런히 걷는 것입니다.

 

역시 평가는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입니다. 기록은 문제가 아니고 각자 제 페이스대로 완주하면 모두가 1등입니다. 예수님만을 바라보며 예수님과 함께 끝까지 완주하는 것입니다. 다음 말씀 또한 무한 격려가 됩니다.

 

“그러면서 우리 믿음의 영도자이시며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둘째, 삶은 열정입니다.

하느님을 찾는 열정입니다. 열정있을 때 마음의 순수입니다. 안으로는 타오르는 불이 되어 사는 것입니다. 열정의 불이 꺼지면 살았다 하나 실은 죽은 것입니다. 사랑의 불, 말씀의 불, 성령의 불입니다. 또 불은 하느님의 현존을 상징합니다. 열과 빛을 내는 불입니다. 

 

과연 내적으로 끊임없이 타오르는 불입니까? 꺼진 불입니까? 성령의 불, 기도의 불, 말씀의 불 꺼지면 인생은 무겁고 어둡고 차겁고 거칠고 힘듭니다. 예수님은 평생 불로써 사셨고 지금도 현존하셔서 끊임없이 우리들 영혼에 사랑의 불을 붙여 주시니 바로 이 거룩한 미사시간입니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우리 모두를 향한 주님의 소원을 알아채야 합니다. 당신을 닮아 타는 불로 살라는 것입니다. 성령의 불, 사랑의 불이, 말씀의 불, 기도의 불이 되어 지칠줄 모르는 열정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이래야 죽음은 물론 세례로 상징되는 온갖 고통과 시련중에도 좌절하지 않고 성공적으로 통과합니다.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

 

분명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염두에 두고 계십니다. 사람마다 십자가의 양상과 무게는 다 다릅니다. 예수님뿐 아니라 각자의 고뇌도 참 다양합니다. 이 모든 시련을 감당하여 통과할 수 있음도 하느님을 향한 타오르는 열정의 불이 있어 가능합니다. 

 

바로 그 좋은 본보기가 제1독서의 예언자입니다. 하느님은 정의와 열정의 예언자 예레미야를 살려 내십니다. 사면초가의 죽음의 궁지에 몰린 예레미야를 에벳 멜렉을 통해 살려내시는 주님이십니다. 절망은 없습니다. 하느님의 도구가 된 치드키야 임금은 에벳 멜렉에게 명령합니다.

 

“여기 있는 사람들 가운데 서른 명을 데리고 가서, 예레미야 예언자가 죽기 전에 그를 저수 동굴에서 꺼내어라.”

 

시편은 이에 화답하여 주님께서 구원하심을 노래합니다. 참으로 한결같은 열정의 사람과 함께 하시는 주님이시며 흡사 예레미야의 고백처럼 들리는 화답송 시편입니다.

 

“외치는 내 소리 들어 주셨네. 나를 멸망의 구렁에서, 더러운 수렁에서 꺼내 주셨네. 반석 위에 내 발을 세워 주시고. 발걸음도 든든하게 잡아 주셨네.”

 

셋째, 삶은 인내입니다.

인내와 시련입니다. 시련과 유혹이 없는 삶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시련을 통해 복종하는 법을 배우셨습니다. 삶에서 오는 온갖 시련들을 인내하며 비움의 계기, 겸손의 계기로 삼을 때 내적 성장에 성숙입니다. 끝까지 믿음으로 견뎌 내는 자가 구원의 승리자가 됩니다. 바로 우리의 영도자이시며 완성자이신 예수님이 우리의 희망이자 빛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앞에 놓인 기쁨을 내다 보시면서, 부끄러움도 아랑곳 하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견디어 내시어, 하느님의 어좌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바로 이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기쁨을 내다 보면서, 기쁘게 자발적으로 각자 십자가의 시련을 지극한 인내로 견디어 내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어좌 오른쪽에 앉아 계신 주님은 힘을 주십니다. 

 

그러니 형제자매 여러분! 시련을 겪을 때 마다 죄인들의 적대 행위를 견디어 내신 예수님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낙심하여 지쳐 버리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어제 믿음의 여장군같은 자매에게 반가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얼마전 60대 중반의 나이에 야학으로 고등학교 검정시험에 합격한 백절불굴 ‘믿음의 여전사’입니다. 바로 막내 아들이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는 소식입니다. 온갖 십자가의 시련을 믿음으로 견뎌낸 결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준호를 통해 영광 받으소서. 준호 사도요한이 9급 행정직 시험에 최종 합격입니다. 감사미사 부탁합니다. 신부님, 다음 주일 준호와 함께 뵈러 갈께요.”

 

고등학교 졸업후 얼마동안 집중 노력하여 기적처럼 합격한 것입니다. 자매가 이 아들을 낳았을 때 저에게 부탁하여 이름도 세례명도 제가 지어 주었으니 하느님 친히 사제를 통해 하신 일입니다. 즉시 새벽에 답신을 보냈습니다.

 

“경사가 겹쳤네요! 하느님께 감사합니다! 축하드립니다. 준호가 집안의 희망이, 빛이 되었네요. 기적입니다. 오늘 아침 감사미사 봉헌합니다.”

 

넷째, 삶은 평화입니다. 

가짜 거짓 평화가 아니라 진짜 참 평화입니다. 참으로 우리 삶은 평화의 여정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잘 알아들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경계한 것은 거짓 평화입니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예수님 자체가 참 평화입니다. '평화로 가는 길은 없습니다. 평화가 곧 길입니다', 제 말이 아니라 노신과 신영복 선생님의 말입니다. 바로 예수님을 지칭합니다. 예수님은 판별의 잣대입니다. 예수님은 진리요 빛이요 평화요 생명입니다. 예수님 앞에 진리와 거짓, 빛과 어둠, 참평화와 거짓평화, 생명과 죽음이 저절로 드러나기에 분열은 자명합니다. 

 

이런 분열은 과정상의 분열이요 참 평화에 이르는 창조적 분열입니다. 결코 값싼 평화는 없습니다. 나쁜 평화가 좋은 전쟁보다 백배 낫습니다. 작금의 한반도의 평화가 바로 그러합니다. 얼마나 지난한 인내의 과정입니까? 그러나 마침내 한반도에 참 평화가 도래할 것을 믿습니다. 참 평화이신 파스카의 예수님이 한반도 한 복판에서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분열이 답이 아니라 평화가 답입니다. 한반도내의 분열이 참으로 심각한 상황이지만 답은 지극한 인내와 지혜로 궁극의 참평화가 도래하기 까지 노력하며 분열의 시련을, 십자가를 견뎌내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만한 세상입니다. 파스카의 예수님이야 말로 우리의 빛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기쁨이요 평화요 감사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당신 열정의 사람, 인내의 사람, 평화의 사람, 기쁨의 사람, 감사의 사람이 되어 각자 주어진 삶의 여정에 충실하고 항구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십니다.

 

“주님께는 자애가 있고 풍요로운 구원이 있네.”(시편130,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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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안젤로 2019.08.18 09:05
    주님, 주님께서 저희를 구원하시려고
    지금까지도 십자가에 매달려 못 박혀 계시는 고통을 보면서 세상속 어떤 시련이 있어도 주님만 보고 가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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