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중심의 삶 -중용의 지혜, 분별의 지혜-2022.11.5.연중 제31주간 토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Nov 05,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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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5.연중 제31주간 토요일                                                         필리4,10-19 루카16,9ㄴ-15

 

 

하느님 중심의 삶

-중용의 지혜, 분별의 지혜-

 

 

“주님, 저에게 생명의 길 가르치시니, 

 당신 얼굴 뵈오며 기쁨에 넘치리이다.”(시편16,11)

 

새삼 베네딕도 성인의 위대함에 감탄하게 됩니다. 불멸의 영적 고전, 마르지 않는 영성의 샘같은 성 베네딕도의 수도규칙입니다. “기도하고 일하라”, 모토의 베네딕도회 영성을 저는 '목운동의 영성'이라 부르곤 합니다. 기도하고 일하고, 하늘보고 땅보고, 하느님보고 사람보고, 관상하고 활동하고, 결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우선순위의, 주종관계의 문제요 균형과 조화의 문제입니다.

 

베네딕도 수도영성은 극단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가난을 정결을 크게 강조하지 않으며 수도서원도 가난, 정결, 순종이 아니라, 정주, 수도자다운 생활, 순명의 세서원을 말하며 가난, 정결을 포함한 모든 수행들은 수도자다운 생활의 서원에 종속시킵니다. 

 

중용의 대가, 분별의 대가, 참 지혜로운 분이 베네딕도 성인입니다. 지극히 영적이며 현실적인 분이셨으며 이상주의적 현실주의자라 할 수 있습니다. 단순한 삶보다는 지혜로운 삶에 역점을 둔 성인입니다. 하느님이 이상이라면 민생에 직결된 돈, 빵, 집, 일은 현실입니다. 하느님 중심의 삶이지만 늘 현실에도 민감했던 성인입니다.

 

그래서 베네딕도회 수도원에서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이는 원장과 재무수사 둘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영성도 챙겨야 하지만 동시에 돈도 챙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물, 생명의 돈입니다. 돈의 흐름은 물의 흐름과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물이 흘러야, 물이 있어야 식물이 살 수 있듯이, 돈이 흘러야, 돈이 있어야 사람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땅속의 물이 보이지 않듯이 수도원 역시 보이지는 않지만 날마다 나가고 들어오는 돈의 흐름은 계속됩니다. 

 

결코 단순한 삶이 아닙니다. 삶도 몸도 안으로는 얼마나 복잡한지요! 그래서 죄도 많고 병도 많습니다. 돈의 흐름이 원활치 못하면 공동체의 평화도 위협받습니다. 그래서 원장과 재무는 돈의 현실에도 민감하며 그럴수록 더욱 하느님 중심의 삶, 기도의 삶에 힘쓰게 됩니다. 아빠스에 버금가는 재무의 자질이며, 베네딕도 규칙중 수도원의 ‘당가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 31장은 사랑과 지혜의 결정체같은 내용들로 가득합니다. 우선 앞부분 일부만 인용합니다.

 

“수도원의 당가로 선정될 사람은 공동체에서 지혜롭고, 성품이 완숙하고, 절제있고, 많이 먹지 않고, 자만하지 않고, 부산떨지 않으며, 욕을 하지 않고, 느리지 않으며, 낭비벽이 없고, 오히려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는 전체 공동체를 위하여 아버지처럼 해야 한다. 그는 형제들을 슬프게 하지 말 것이다. 만일 어떤 형제가 무엇을 부당하게 청하더라도, 무시함으로써 그를 슬프게 하지 말고, 부당하게 청하는 사람에게 겸손되이 이치에 맞게 거절할 것이다.”

 

바로 좋은 인성의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재무의 우선적 자질입니다. 화답송 후렴도 이와 일치합니다.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는 이!

 잘되리라, 후하게 꾸어주고, 자기 일을 바르게 처리하는 이!

그는 언제나 흔들리지 않으리니. 영원히 의인으로 기억되리라.”

(시편112,1ㄴ.5-6)

 

얼마나 섬세하고 디테일에 강한 베네딕도 성인인지요! 성인은 결코 세상 재물을 경시하거나 무시하지 않았고 최대한 하느님 중심의 삶안에서 이들을 지혜롭게 선용했습니다. 재물의 주인 역할에 충실한 중용의 지혜를 지닌 성 베네딕도 였고, 이런 성인의 영성을 고스란히 전수받은 재무의 영성입니다. 

 

바로 이런 성 베네딕도의 영성은 오늘 복음의 예수님의 가르침과 일치합니다. 예수님 역시 재물을 경시하지 않았지만 재물의 마성魔性 때문에 늘 재물의 위험성을 경계했습니다. 그래서 불의한 재물이라 말합니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들을 만들어라.”

 

불의한 재물이라 무시할 것이 아니라 하늘에 보물을 쌓는 자선활동에 잘 선용함으로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거처로 맞아들이게 하라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먼저고 돈은 다음입니다. 인색하지 말고 종부리듯 재물을, 돈을 잘 활용하라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말씀도 아주 작은 일같은 재물 활용에 성실을 다하라는 충고입니다. 

 

참으로 재물의 선용에 능숙한, 작은 일에 성실한 사람은 하느님을 섬기는 참된 일에도 성실하다 하십니다. 작은 일에나 큰 일에나 한결같이 성실한 마음, 진실한 마음, 절실한 마음으로 지혜롭게 책임을 다하라는 말씀입니다. 한마디로 하느님 중심의 삶에 충실하라는 말씀입니다. 참으로 영적일수록 현실적인 삶이요, 이게 참된 영성입니다.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한 사람은 큰 일에도 성실하고, 아주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은 큰 일에도 불의하다. 그러니 너희가 불의한 재물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참된 것을 맡기겠느냐? 또 너희가 남의 것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너희의 몫을 내주겠느냐?”

 

지혜롭고 충실한 주님의 일꾼이 되어 영성관리는 물론 재물 관리에도 철저하라는 말씀입니다. 형이상학도 중요하지만 형이하학도 무시해선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어 하느님 중심의 삶을 확고히 하라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어떠한 종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수 없다.”

 

하느님과 재물의 우선순위를, 주종관계를 분명히 하라는 말씀이요, 재물 중심이 아니라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섬겨야 할’ 분은 주님이고 ‘부려야 할’ 대상은 재물입니다. 그래서 제가 늘 강조하는 바, 노년의 품위유지를 위한 우선순위는 하느님 믿음, 건강, 돈입니다. 가장 먼저 오는 게 하느님이요 그 다음 건강과 돈입니다. 하느님이 빠지면 건강과 돈은 곧장 우상으로 돌변합니다.

 

돈을 좋아하는 바리사이들은 이 모든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비웃습니다만 일고의 가치도 없습니다. 그러나 경계를 늦춰서는 안될 바 돈의 유혹, 돈맛입니다. 돈을 좋아하는 돈맛은 얼마나 사람을 오염시키고 변질시키는 지요! 돈맛에 중독되면 약이 없습니다. 돈맛에 살것이 아니라 하느님맛에 살 때 비로소 영적 건강의 삶입니다.

 

다음 바오로 사도의 고백처럼, 그의 무욕의 초연한 삶, 이탈의 자유로운 삶, 매사 감사하는 삶의 비결은 순전히 하느님 중심의 삶에 기인함을 깨닫습니다.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합니다. 나는 어떠한 처지에서든지 만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나는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 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배고프거나 넉넉하거나 모자라거나 그 어떠한 경우에도 잘 지내는 비결을 알고 있습니다.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주님 안에서” 가 답입니다. 주님 안에서, 주님 중심의 삶에 한결같이 충실할 때, 날로 주님맛을 맛들일 때, 참으로 지혜로운 삶, 자유로운 삶, 평화로운 삶, 행복한 삶입니다. 그대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하루 삶의 중심과 질서를 잡아 주며 이렇게 주님맛으로 살도록 해줍니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복되다, 그분께 몸을 숨기는 사람!”(시편34,9).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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