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6.12.연중 제10주간 수요일 1열왕18,41-46 마태5,20ㄴ-26
주님의 전사(戰士)
“더불어(together) 영적승리의 삶”
“주님, 당신의 행로를 가르쳐 주시고,
당신의 진리로 저를 이끄소서.”(시편25;4.5)
오늘 복음 환호송 시편이 맘에 듭니다. 삶은 전쟁입니다. 삶은 영적전쟁입니다. 죽어야 끝나는 영적전쟁이요 참으로 수도자들은 물론 믿는 이들은 모두가 제대가 없는 평생 영원한 현역의 주님의 전사들이 됩니다. 이 주제는 수도사제생활 만35년 동안 강론시 계속되는 주제가 되었고, 되고 있으며 사는 날 동안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 주님의 빛나는 불굴의 전사 엘리야 예언자가 카르멜 산에서 바알 예언자들 450명과의 대회전에서, 1:450의 싸움에서 엘리야의 승리로 끝나는 신바람 나는 긴 장면을 읽으면서 순간 착안한 오늘의 강론 제목이 “주님의 전사, 더불어(together) 영적승리의 삶”입니다.
더 분명히 말하면 믿음의 전사, 희망의 전사, 사랑의 전사, 평화의 전사가 되겠고, 영적승리의 삶에 앞에 반드시 붙어야 할 ‘더불어(together)’란 말마디입니다. 영적승리의 삶은 혼자가 아닌 주님과 더불어의 삶, 영적전우들과 더불어의 삶을 통해 쟁취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옛 어른 다산과 맹자의 말씀도 오늘 강론 주제와 일치합니다.
“시련이 나를 태우는 불이라면, 노력은 나를 깨우는 망치다. 불굴을 품은 강철은 수없이 두드려져야 완성된다.”<다산>
“하늘이 큰 일을 맡기려 하면 반드시 먼저 뜻을 세우기까지 괴로움을 주고 피곤케하며 굶주리게 하고 궁핍하게 한다.”<맹자>
이런 깨달음에 도달한 다산과 맹자는 주님의 빛나는, 불굴의 전사라 해도 전혀 손색이 없겠습니다.
저보다 11세 연상의 87세 노시인이 출간한 시집이 흥미로워 구입했습니다. 유명한 단편소설 <소나기>의 저자 황순원의 큰 아들인 황동규 시인이 그 주인공입니다. 앞머리에 소개된 이채로운 말마디를 통해서도 이 시인 역시 불굴의 전사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시인 황동규는 노년의 삶을 이어가는 도정에도 여전히 삶과 현실의 한가운데서 세상 살기의 의미와 진실에 이르기 위해 하루하루 전력투구하고 있다.”
얼마전 “그냥 살라” 제 강론에 항의성 비슷한 메시지도 잊지 못합니다. 삶의 한복판에서 정말 치열히 살아가는 주님의 전사, 레지나 자매와 오고 간 메시지입니다.
“신부님, 정말 그냥 살아요. 눈뜨면 기도하고 일하고 일하고 일하고 기도하면 졸고 성체조배가면(21시-22시) 그냥 자고 자다가 집에 오면 또 자고 새벽부터 다시 시작...그래도 행복합니다. 졸지도 잠도 주무시지 않는 주님이 계시니까요.”
“자매님은 그렇게 치열히 사는 것이 아름답고 맞습니다. 그냥 주님의 전사로 치열히 사시다가 때로 주님 앞에서 그냥 쉬기도 하시구요”
어제 오후의 감동도 잊지 못합니다. 이런 축제와 같은 장례미사를 장례예식장에서 봉헌하기도 처음입니다. 포크레인 요한 형제의 모친 이순금 마르타 자매님의 장례미사였습니다. 그 아들에 그 어머니입니다. 수도원 초창기부터 한결같이 성실히 수도원 공사시나 온갖 허드렛일 봉사를 해준 포크레인 세례자 요한 형제를 통해 만나뵙지 못했지만 그 어머니의 인품과 신앙을 짐작할 수 있었고 적중했습니다.
장례미사시 30여명이 성체를 모셨고, 미사전에는 10여명 젊은 자손들이 고백성사를 봤고 유가족들이나 참석한 분들의 모습이 즐거워보이고 착해 보였습니다. 요한 형제가 9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당시 12살의 큰 형에 동생이 셋이니 어린 자식들 5명을 젊은 과부가 되어 산전수전 다 겪으며 훌륭히 키워냈고 끝까지 충실히 신앙생활에 충실하다가 90세로 선종한 것입니다.
말그대로 주님의 전사로서 더불어의 평생 영적전쟁을 승리로 끝낸 죽음으로 마침내 천국에 입장하셨다고 강론중 전했습니다. 그래서 어제 장례미사 강론 제목은 지체없이 “축하합니다! 주님의 전사, 마르타 자매님, 복된 선종의 죽음을!”으로 정했습니다. 미사후 수도형제의 “지난 주일미사 강론시 ‘생명선’(lifeline)이란 말마디가 무슨뜻인가요?” 질문이 고맙고 반가웠습니다.
“공동체 울타리가 바로 공동체에 속한 이들을 보호해주는 생명선입니다. 공동체 울타리 생명선이 없은 노숙자나 행려자들 얼마나 위태한 삶을 살아갑니까? 더불어의 울타리 생명선이 무너져 혼자될 때 절망과 좌절에 자살하기도 합니다. 우리 수도형제들 수도원의 울타리 생명선에서 벗어나 세상 한복판에서 혼자 살아간다면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 몇이나 되겠습니까? 얼마전 어느 선배가 후배에게 주었다는 충고도 잊지 못합니다. ‘직장이 전쟁터라고? 밀어내기 전까지는 살아 남으라. 밖은 지옥이다!’”
영적전투의 승리에 공동체 더불어의 품 울타리, 생명선(lifeline) 안에 머무름이 얼마나 결정적으로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천하무적, 하느님의 전사 엘리야가 최종 승리에 이르기까지 그의 믿음 충만한 언행을 소개합니다. 흡사 다윗과 거인 골리앗의 전투를 연상케 합니다. 그대로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 주님의 전사들인 우리를 향한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언제까지 양다리를 걸치고 절뚝거릴 작정입니까? 주님께서 하느님이시라면 그분을 따르고 바알이 하느님이라면 그를 따르시오. 주님의 예언자라고는 나 혼자 남았습니다. 그러나 바알의 예언자는 450명이나 됩니다.”
최선을 다한후 생사가 달린 절박한, 절체절명(絶體絶命)의 대 전투에서 만반의 준비를 다한후 마지막으로 하느님께 기도하는 주님의 전사 엘리야 예언자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신 주님, 당신께서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시고 제가 당신의 종이며, 당신의 말씀에 따라 제가 이 모든 일을 하였음을 오늘 저들이 알게 해 주십시오. 저에게 대답하여 주십시오, 주님! 저에게 대답하여 주십시오. 그리하여 주님, 이 백성이 당신이야말로 하느님이시며, 바로 당신께서 그들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셨음을 알게 해주십시오.”
간절하고 절박한 기도에 이어 지체없는 하느님의 응답입니다. 그러자 주님의 불길이 내려와, 번제물과 장작과 돌과 먼지를 삼켜 버리고, 도랑에 있던 물도 핥아 버리니, 엘리야의 승리, 하느님의 승리, 정말 통쾌한, 유쾌한, 상쾌한 삼쾌의 빛나는 승리입니다. 그대로 빛나는 영적승리의 삶을 상징합니다. 하느님이 친히 배경이, 동반자가 되어 주시는 더불어의 영적전투일 때, 천하무적의 주님의 전사임을 깨닫습니다.
예수님의 예표와 같은 엘리야를 훨씬 능가하는 오늘 복음의 예수님 역시 불세출의 주님의 전사입니다. 얼마나 하느님을 사랑한 철저한 주님의 전사 예수님인지 다음 대목에서 확인됩니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은 율법이나 예언서들 모두에 대한 사랑을 통해 드러납니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얼마나 예수님의 확신이 단호한지요! 모세의 십계명을 업그레이드 하여 진복팔단의 참행복을 선보인 주님께서는 이어 참으로 모든 율법을 포괄하면서도 그들을 훨씬 업그레이드 된, 6개의 대당명제를 제시합니다. 주님의 전사, 사랑의 전사로서 완전한 영적승리를 위한 최고의 처방을 제시하십니다. 내일부터의 복음이 소상하게 이를 밝히 보여줄 것입니다.
전능하시고 자비하신, 살아 계신 하느님과 함께 할 때, 공동체의 영적전우들과 함께 할 때, 천하무적의 주님의 전사로써 영적승리의 삶이 뒤따를 것입니다. 날마다 이 거룩한 주님의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영적승리의 삶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끝으로 읽을 때 마다 영적전의를 새롭게 하는 제 좋아하는 담쟁이 시로 강론을 마칩니다. 26년전 1998년 나이 50에 쓴 시이지만 여전히 새롭게 읽혀지는 제 좋아하는 자작시중 하나입니다.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다
작년 가을 붉게 타오르다 사라져 갔던 담쟁이
어느새 다시 시작했다
초록빛 열정으로 힘차게 하늘 향해
담벼락, 바위, 나무 타오르기 시작했다
마침내 붉은 사랑으로 타오르다
가을 서리내려 사라지는 날까지 또 계속이다
해마다 반복되는 제자리 정주의 삶에도 지칠줄 모르는 초록빛 열정
다만 오늘 하늘 향해 타오를뿐 내일은 모른다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일이다
타오름 자체의 과정이 행복이요 충만이요 영원이요 구원이다
하루하루 날마다 오늘 하루만 사는 초록빛 영성, 주님의 전사이다”
<1998.6.3.>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