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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9.22.연중 제25주일                                                     아모8,4-7 1티모2,1-8 루카16,1-13

 

 

 

하느님의 자녀답게 삽시다

-사랑, 기도, 정의, 지혜-

 

 

 

아주 예전 신학교 시절, 지금은 타계했지만 어느 교수 신부님의 말씀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인간답게 산다. 너무 막연합니다. 하느님의 자녀답게 산다. 아주 분명합니다. 하느님의 자녀답게 품위 있게 살아야 합니다.” 하여 제가 좋아하는 말마디는 미사중 ‘주님의 기도’에 앞선 “하느님의 자녀 되어, 구세주의 분부대로 삼가 아뢰오니”란 사제의 권고입니다.

 

이구동성의 말들이 살수록 어렵다고 합니다. 저도 ‘어렵다’, ‘힘들다’라는 말마디를 가급적 쓰지 않으려 하지만 저절로 나올 때가 많습니다. 첩첩산중이란 말마디를 기억할 것입니다. 산넘어 산, 하루하루 넘어야 할 산처럼 힘든 삶을 지칭하기도 합니다. 하여 얼마전 이런 글을 남긴적도 있습니다.

 

-“첩첩산중/하루하루/날마다/힘겹게/그러나 기쁘게 넘어야 할/산

첩첩산중/하루하루/새벽마다/힘겹게/그러나 기쁘게 넘어야 할/강론의 산

첩첩산중/하루하루/새벽마다/강론쓰는/맛으로/재미로/기쁨으로 산다”-

 

약간 과장도 있습니다만 진실입니다. 일단 스스로 고백의 덫에 스스로 매이고자 쓴 글입니다. 수도원을 방문하는 이들로부터 간혹 듣는 말마디중 하나가, ‘무슨 맛, 무슨 재미, 무슨 기쁨’으로 사느냐는 물음입니다. 며칠전 강론 하면서 확실한 답을 발견하고 기뻐한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두 말마디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저에게 매일 새벽마다 쓰는 강론은 매일의 영적 양식입니다. 저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맛으로, 사랑하는 기쁨으로 삽니다.”

 

제발 고백대로 살고 싶은 마음에 용감히 고백한 것입니다. 살다보면 참 재미있는, 참 오래 기억하는 이름들이 있습니다. ‘이기자’란 어느 미사 신청한 자매의 이름에 웃었습니다. 또 ‘현명한’, ‘신중한’ ‘정다운’이란 형제의 이름들이 생각납니다. 정말 현명한, 신중한 처신에 정다운 삶을 살며 ‘이기자!’ 다짐하며 영적 승리의 삶을 산다면 진정 하느님의 자녀다운 삶이겠습니다. 어떻게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 수 있을까요? 저는 네 측면에 걸쳐 답을 찾아 냈습니다.

 

첫째, 하느님만을 섬기는 삶입니다.

하느님만을 따르고 사랑하며 섬기는 삶입니다. 사랑하면 저절로 섬기게 됩니다. 하느님 사랑을, 하느님 섬김을 우선 순위에 두는 것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섬기는 맛으로, 기쁨으로 사는 것입니다. 바로 이 맛이, 이 기쁨이 영원합니다. 바로 우리 수도자들이 그러합니다. 오늘 복음의 결론 부분이 섬겨야 할 분은 하느님뿐임을 확인해 줍니다.

 

“어떠한 종도 두 주인을 섬길 수는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수는 없다.”

 

삶에 중심이 둘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중심이 둘이면 마음이 갈려서 복잡하고 혼란해 집니다. 불안하고 두렵습니다. 재물을 배척하라는 것이 아니라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라는 것입니다. 하느님만을 삶의 중심에 두고 나머지는 부수적인 것으로 여기라는 것입니다. 

 

노욕老慾, 노추老醜라는 말을 아실 것입니다. 살아갈수록 탐욕으로 아름답기가 힘듭니다. 하여 저는 노년의 품위유지를 위해, 아니 노년뿐 아니라 삶의 품위 유지를 위해 세조건을 언급하곤 합니다. ‘1.하느님 믿음, 2.건강. 3.돈’으로 절대 우선순위가 바뀌어선 안된다고 합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고 사랑하고 섬기며 살 때 참 행복임을 깨닫습니다.

 

둘째, 기도에 충실한 삶입니다.

기도는 사랑입니다. 테크닉 기술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기도해야 사람입니다. 기도해야 삽니다. 기도는 하느님의 모상대로 지음 받는 인간의 영적 본능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며 섬길 때 저절로 기도하게 됩니다. 이의 빛나는 모델이 예수님이시며 오늘 제2독서의 바오로입니다. 사랑하는 제자 티모테오에게 기도를 강조하는 바오로입니다. 티모테오뿐 아니라 그대로 미사에 참석한 우리를 향한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나는 무엇보다도 먼저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청과 기도와 전구와 감사를 드리라고 권고합니다. 그렇게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여, 우리가 아주 신심 깊고 품위 있게, 평온하고 조용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십시오.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의 구원자이신 하느님께서 좋아하시는 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깨닫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강조점은 ‘모든 사람’입니다.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무지의 병에 대한 유일한 치유약도 기도뿐임을 깨닫습니다. 이어 바오로는 “남자들이 성을 내거나 말다툼을 하는 일 없이, 어디서나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바랍니다.”로 서간을 끝맺습니다. 

 

참으로 기도하여 마음이 온유해지고 겸손해진 이들은 성을 내거나 말다툼을 하지 않을뿐더러 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천박하거나 비열한, 냉혹하거나 무자비한 언행도 뚝 그칠 것입니다. 참으로 끊임없이, 간절히 항구히 기도할 때 하느님을 닮아감으로 하느님의 자녀다운 품위도 확보될 것입니다. 

 

셋째, 정의로운 삶입니다.

기도하여 하느님을 닮을 때 정의로운 삶입니다. 정의로운 삶 역시 기도의 열매입니다. 정의로운 사람은 연민의 사람, 자비의 사람입니다. 결코 빈곤한 이를, 가난한 이를 업신여기기는커녕 오히려 이들을 사랑합니다. 정의와 사랑은 분리된 것이 아닙니다. 정의로운 사랑이 참 사랑이며 바로 하느님의 사랑이기도 합니다. 정의와 사랑의 예언자 아모스의 말은 그대로 하느님 심중을 반영합니다.

 

-“빈곤한 이들 짓밟고 이 땅의 가난한 이들 망하게 하는 자들아, 이 말을 들어라! 너희는 말한다.---힘없는 자를 돈으로 사들이고, 빈곤한 자를 신 한 켤레 값으로 사들이자.---주님께서 야곱의 자만을 두고 맹세하셨다. 나는 그들의 모든 행동을 결코 잊지 않으리라.”-

 

아모스 예언자를 통한 주님의 말씀이 참으로 엄중합니다. 우리의 정의에 대한 무디어진 감각을 일깨웁니다. 그대로 가진자들, 권력자들의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나는 그들의 모든 행동을 결코 잊지 않으리라.” 주님 말씀을 참으로 무겁게, 무섭게 마음에 새겨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을 모르는 무지에서 기인한 교만이요 탐욕이요 힘없는 이웃에 대한 무자비한 착취입니다. 오늘날도 여전히 반복되는 악순환의 현실입니다. 무지야 말로 불치의 악이자 죄이자 병입니다. 무지에 대한 유일한 치유는 하느님의 사랑뿐입니다. 참으로 하느님만을 사랑하여 섬길 때 비로소 하느님을 알고 나를 아는 겸손과 지혜로 비로소 무지의 어둠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정의롭고 자비로운 삶입니다. 

 

참으로 머리는 좋아도 하느님도 모르고 자기도 모르는 무지의 교만과 탐욕, 무자비의 사람들이 널린 세상입니다. 하느님을 모르니 회개도 없고 겸손도 있을 리 없습니다. 하여 무지에서 벗어나고자 끊임없는 기도를, 끊임없는 회개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넷째, 지혜로운 삶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사랑하여 기도할 때 정의로운 삶에 분별력의 지혜입니다. 비둘기 같이 순박하면서도 뱀같은 지혜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알고 나를 알아갈수록 겸손과 자비, 지혜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인의 추궁을 예상한 불의한 집사의 처신은 얼마나 신속하고 민첩하고 과감한지요. 생존의 지혜입니다. 때로 삶이 절박할 필요도 있습니다. 여기서 어떤 부자인 주인이 상징하는 바 주님이십니다. 주님이야 무궁한 부자가 아닙니까? 주님이야 웬만한 손해는 문제도 되지 않습니다. 

 

어찌보면 내가 지닌 것은 주인인 주님의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인색하지 않게 자비를 베푸는 것입니다. 복음의 주인은 내심 불의한 집사의 처사를 묵인하며 기뻐하며 고마워했을 것입니다. 주인의 심중을 알아서 주인의 뜻대로 잘 처리해줬기 때문입니다. 주인이 이렇게 하라고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니 알아서 해야하는 것입니다. 절박한 위기에서 발휘된 불의한 집사의 너도 살고 나도 사는 생존의 지혜입니다.

 

주님으로 상징되는 주인은 불의한 집사를 칭한했으니 그가 영리하게 대처하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세상의 자녀들이 저희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자녀들보다 영리합니다. 바로 빛의 자녀들인 우리가 배워야 할 지혜입니다. 깊이 들여다 보면 우리가 지닌 재물은 불의한 재물입니다. 모두가 주인인 하느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참으로 우리 모두 불의한 재물을 지혜롭게 사용할 것을 권고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들을 만들어라. 그래서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거처로 맞아들이게 하여라.---너희가 불의한 재물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참된 것을 맡기겠느냐?”

 

작은 일에 성실한 사람은 큰 일에도 성실하고,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은 큰 일에도 불의합니다. 성실이 바로 지혜입니다. 우리가 지닌 주님의 것들인 유형무형의 불의한 것들을, 할 수 있는 한 많이 성실하게 필요로 하는 이들과 나누라는 것입니다. 바로 하늘에 보물을 쌓는 일입니다. 그때 주님은 참된 것, 바로 참 보물인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맡길 것입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시간 주님은 당신 만을 사랑하여 섬기는 우리 모두에게 참된 것, 바로 참 보물이신 파스카의 예수님 당신 자신을 맡기십니다. 참된 분 주님과 일치함으로 부유하고 행복한, 충만한 삶을 살게 된 우리들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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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안젤로 2019.09.22 08:50
    사랑하는 주님, 주님 주신 성사를 통해 빛의 자녀가 된것을 되새기며 오늘 하루도 주님 말씀대로
    살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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