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7.5.연중 제14주일

한국 순교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1821-1846) 순교자

2역대24,18-22 로마5,1-5 마태10,17-22

 

 

거룩하고 아름다운 순교적 삶

-회개, 희망, 인내-

 

 

우리는 오늘 연중 제14주일에 한국 순교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신심미사를 봉헌합니다. 이미 순교의 죽음을 당하셨지만 영원히 우리와 함께 살아 계신 것처럼 생생한 느낌을 갖게 하는 순교 성인입니다. ‘늘 옛스러우면서도 늘 새롭게’(ever old, ever new) 느껴지는 성인입니다. 마침 어제 써놓은 산나리 들꽃을 보며 써놓은 글도 생각납니다.

 

-“늘 거기 그 자리

누가 보아 주든 말든

알아 주든 말든 무슨 상관이랴

 

하루를 살아도 

하늘님 가득 담고 영원을 사는

하늘님만으로 충만한 행복의 들꽃들인데!”-

 

하느님만으로 충만한 행복을 살았던 순교성인들입니다. 2세기 순교영성의 시대, 참으로 주님 사랑 때문에 순교를 갈망했던 무수한 사랑의 순교자들입니다. 참으로 중요한 것은 ‘얼마나’의 산 햇수가 아니라 ‘어떻게’ 주님을 치열히 사랑하며 살았느냐가 관건임을 깨닫습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은 고작 만25세에 순교하셨으니 얼마나 짧은 생애이셨는지요. 그러나 성인은 영원히 살아 있어 여전히 생생한 감동에 우리를 부끄럽게 합니다. 얼마전 고통중에도 깨끗한 죽음을 맞이한 어느 분을 운구한 분의 추도사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몸이 너무 가벼워 나비처럼 자연의 일부가 되어 날아 가신 것 같았습니다. 선생님께서 사주신 밥, 대략 70끼니가 넘는 것 같습니다. 밥값하는 삶을 살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의 빈자리는 무엇으로 메꿔야 합니까?”

 

죽음은 삶의 요약입니다. 길게 살았던 짧게 살았던 얼마나의 삶의 양이 아니라 어떻게 살았느냐가 중요합니다. 참으로 믿는 이들 누구나의 소원은 잘 죽는 것일 겁니다. 제 간절한 단 하나의 소원 역시 병원에서가 아닌 영적전쟁터인 내 삶의 자리에서 치열히 사랑하며 ‘주님의 전사戰士’로 살다가 영적전투중에 조용히 전사戰死하여 자취없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참으로 전사戰死해야 전사戰士임을 깨닫습니다.

 

결국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문제는 ‘어떻게 죽어야 하는가?’의 물음으로 직결됩니다. 얼마전 거룩하게 살다가 선종한 어느 수녀님에 대한 일화도 생각납니다. ‘수녀님은 누가 보고 싶어요?’라고 임종전 어느 수녀가 물었다 합니다.

 

“하느님이 보고 싶어요!”

 

평생 하느님만을 사랑하고 찾고 그리워하며 사셨던 분이심이 분명합니다.  그대로 한평생 순교적 삶을 사셨던 분입니다. 최민순 작사, 이문근 작곡의 ‘성 안드레아 김대건 노래’(성가287)는 언제 부르고 들어도 감동입니다. 성인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순교적 삶에 순교의 죽음입니다.

 

-“서라벌 옛터전에 연꽃이 울어라, 선비네 흰옷자락 어둠에 짙어갈제

진리의 찬란한 빛 그몸에 담뿍 안고, 한떨기 무궁화로 피어난 님이여

 

한강수 굽이굽이 노들이 복되도다, 열두칼 서슬아래 조찰히 흘리신 피

우리의 힘줄안에 벅차게 뛰노느니, 타오른 가슴마다 하늘이 푸르러라

 

가신님 자국자국 남긴 피 뒤를 따라, 싸우며 끊임없이 이기며 가오리니

김대건 수선탁덕 양떼를 돌보소서, 거룩한 주의 나라 이 땅에 펴주소서.”

 

간절한 기도와 같은 성가가 심금을 울리며 우리 모두 순교적 삶을 살도록 북돋아 주며 고무합니다. 성인의 순교직전 마지막 장문의 옥중서간 역시 구구절절 얼마나 감동적인지요. 고작 25세에 이런 편지를 썼다니 참 경이로울 뿐입니다. 

 

임종을 앞뒀던 어느 분의 “인생무상人生無常, 이보다 진실이 없어요!”란 고백도 잊지 못합니다. 바로 인생무상에 대한 유일한 답이 거룩하고 아름다운 순교적 삶임을 깨닫습니다. 과연 어떻게 하면 거룩하고 아름다운 순교적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첫째, 회개의 삶입니다.

거룩하고 아름다운 순교적 삶의 첫째 조건입니다. 오늘 제1독서 역대기 하권에서 착안했습니다. 요아스의 변절과 즈카르야의 살해에 관한 내용이 바로 우리의 회개를 촉구합니다. 주 저희 조상들의 하느님의 집을 저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다른 우상들을 섬긴 죄로 인해 이들 유다와 예루살렘에 주님의 진노가 내렸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을 당신께 돌아오게 하시려고 그들에게 예언자들을 보내셨지만 그들은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즈카르야를 죽이기까지 합니다. 즈카르야의 순교 직전의 임종어가 긴 여운으로 남아 우리의 회개를 촉구합니다.

 

“너희가 주님을 저버렸으니 주님도 너희를 저버렸다. 주님께서 보고 갚으실 것이다.”

 

참으로 반복되는 우상숭배의 변절의 인간들이요, 여전히 반복되는 순교의 죽음입니다. 인간의 본질은 변하지 않고 계속되는 악순환의 반복입니다. 이렇게 가다간 하나뿐이 공동의 집인 지구도 위태합니다. 어느 생태전문가의 절실한 고백도 생각납니다.

 

“이 세계를 그냥 이대로 망해가는 대로 내버려 두면 안될 것 같습니다. 너무 아깝습니다.”

 

참으로 생태적 회개는 물론 전방위적 내외적 영적 혁명의 철저한 회개가 화급, 절박한 때입니다. 멀리서가 아닌 지금 여기 나부터입니다. 생명과 사랑의 하느님께 돌아가는 회개의 삶입니다. 

 

둘째, 희망의 삶입니다.

거룩하고 아름다운 순교적 삶의 둘째 조건입니다. 바로 제2독서에서 착안했습니다. 회개할 때 비로소 참사람의 시작입니다. 무엇보다 사랑과 희망이 선물로 주어집니다. 회개를 통해 본래의 사랑과 희망의 회복입니다. 궁극의 하느님께 대한 희망입니다. 이런 희망이 있기에 자발적 사랑의 순교적 삶입니다. 이런 희망이 없어 혼란 복잡한 삶이요 타락에 인간성 상실입니다. 희망이 없는 곳이 지옥이요 사람의 내면은 날로 황폐화되어 인성도 거칠어 지고 사나워집니다. 희망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입니다. 오늘 바오로의 제2독서 말씀은 오로지 희망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믿음 덕분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은총 속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환난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이 바로 궁극의 진짜 참 희망입니다. 이런 희망이 참으로 아름답고 매력적인, 고결하고 기품있는 사람으로 살게 합니다. 성령을 통하여 우리 마음에 부어진 사랑에서 샘솟는 이런 희망입니다. 참으로 예언자들은 물론 성서의 모든 사람들이 희망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새 이스라엘인 우리 모두를 향한 시편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아,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 희망을 하느님께 두어라.”(시편131,3).

 

셋째, 인내의 삶입니다.

거룩하고 아름다운 순교적 삶의 셋째 조건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에서 착안했습니다. 희망이 있어 인내도 가능합니다. 하느님께 희망을 둘 때 무한한 인내입니다. 참으로 희망이 있을 때 인내의 믿음입니다. 이런 믿음이 걱정과 두려움중에도 좌절함이 없이, 흔들림 없이 주님의 길을 가게 합니다.

 

요셉수도원 초장기 때 당시 원장수사와의 대화를 잊지 못합니다. 수도생활에 필요한 덕이 저는 ‘사랑’이라 대답했을 때 당시의 원장 수사는 ‘인내’라 대답했습니다. 정말 마지막 승리는 끝까지 희망을 지니고 기다리며 인내하는 자에게 있습니다. 

 

정주의 인내요 정주의 믿음입니다. 언제나 거기 그 자리의 '인내의 대가' 불암산에서 배운 것도 항구한 인내였습니다. “불암산이 떠나면 떠났지 난 안 떠난다.” 다짐하며 요셉수도원에 정주한지 32년째입니다. 일희일비 반응하지 않고 담아두고 인내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자주 다음 자작시를 되뇌이며 미소짓곤 합니다.

 

-“산이 산에 가다니요

 그냥 있으세요

 당신은 산보다 

 더 좋은 깊고 고요한 산이예요”-

 

산같은 정주요 인내의 믿음입니다. 침묵의 인내, 인내의 수련, 인내의 노고입니다. 인내하며 기다리다 보면 문제의 해결解決이 아닌 저절로 문제의 해소解消임을 깨닫게 됩니다. 지나고 나면 별것도 아닌데 유혹에 빠져 참지 못하고 행위함으로 자초하는 화는 얼마나 많은지요. 성 베네딕도 역시 ‘형제들의 육체나 품행상의 약점들을 지극한 인내로 참아 견디라’(성규72,5)는 공동체 삶의 귀한 가르침을 주십니다. 오늘 복음 말씀도 인내로 결론을 맺습니다.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마태10,22).

 

주님은 오늘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심기념미사 강론을 통해 거룩하고 아름다운 순교적 삶을 위한 귀한 지침을 주셨습니다. 바로 회개의 삶, 희망의 삶, 인내의 삶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이렇게 살도록 도와 주십니다. 끝으로 아빌라 성녀의 기도의 선물로 강론을 마칩니다.

 

-“아무것도 너를 어지럽히지 않게(Nada te turbe)

아무것도 너를 놀라게 하지 마라(nada te espante)

모든 것이 다 지나가지만(Todo se pasa)

하느님은 변치 않으시는 분(Dios no se muda)

인내가(la paciencia)

모든 것을 얻게 하리니(todo lo alcanza)

하느님을 소유한 사람은(quien a Dios tiene)

부족한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nada le falta)

오직 하느님만으로 넉넉하도다(solo Dios basta)”-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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