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남의 여정-2016.2.4. 연중 제4주간 목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Feb 04, 2016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2016.2.4. 연중 제4주간 목요일                                                               열왕기 상2,1-4.10-12 마르6,7-13


                                                                         떠남의 여정


모든 것은 다 때가 있습니다. 꽃피고 연두잎 돋아나는 봄의 때가 있는가 하면 열매 익어가고 단풍물드는 가을의 때도 있습니다. 시작할 때가 있으면 끝날 때가 있고 청춘의 때가 있으면 노년의 때도 있습니다. 머무를 때가 있으면 떠날 때가 있습니다. 때에 대비하며 때에 따라 맞게 처신함이 지혜요 겸손입니다.


머무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떠나는 것도 중요합니다. 잘 떠날 때 아름답고, 많은 이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습니다.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도 있습니다. 물도 고이면 썩습니다. 끊임없이 흘러야 맑은 물이듯 끊임없이 떠남의 여정에 충실할 때 맑은 삶입니다. 밖으로는 산같은 정주定住에 안으로는 끊임없이 맑게 흐르는 강같은 영성을 소망하며 쓴 ‘산山과 강江’이란 시가 생각이 납니다.


-밖으로는 산山

 안으로는 강江

 산속의 강

 천년만년千年萬年 님 기다리는 산

 천년만년千年萬年 님 향해 흐르는 강-


정주의 제자리에서 끊임없이 님 향해 떠나는 내적內的 여정의 삶을 살아가는 분도회 수도자들입니다. 생각하면 잘 떠나는 것도 은총임을 깨닫습니다. 제가 원장직을 물러난 후 서품 은경축 때의 미사강론중 들었던 예가 지금도 생생합니다.


“너무 오랫동안 트랙을 돌다보니 이젠 지쳐 쓰러질 지경이었습니다. 아마 몇바퀴 더 돌면 쓰러졌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은혜로 다음 잘 준비된 주자走者에게 바톤 텃취를 잘 하게 되어 참 기쁩니다.”


요지의 강론 서두였습니다. 사실 혼자 계속 트랙을 돌 수는 없고 적절한 때 다음 주자에게 바튼을 전달할 수 있다면 본인은 물론 공동체를 위해서도 큰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주 예전 개신교 형제의 ‘소원이 무엇이냐?’에 대한 저의 명쾌한 대답도 잊지 못합니다.


“잘 살다가 잘 죽는 것입니다.”


말을 바꿔 ‘잘 살다가 잘 떠나는 것입니다.’로 말해도 좋습니다. 떠날 때 떠나지 못해 집착하여 추한 모습으로 남아있는 경우는 얼마나 많은지요. 자기 연출이, 역할이 끝났으면 무대에서 떠나줘야 하는데 계속 무대에서 얼쩡대며 머무는 것도 참 보기 민망스러운 것입니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어느 시인의 낙화라는 시의 첫 구절이 생각납니다. 떠나야 할 때 잘 떠나는 뒷 모습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과 제자들, 독서의 다윗과 솔로몬의 경우를 통해 떠남의 모범을 봅니다. 예수님의 일을 그대로 전달받아 떠나는 열두 제자들의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그러면서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시고, 신발은 신되 옷도 두벌은 껴입지 말라고 이르셨다.’


참 홀가분한 무소유의 떠남이요 물처럼 흐르는 떠남의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제자들은 떠나가서 회개하라고 선포하며 많은 마귀를 쫓아내고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부어 병을 고쳐주니 그대로 제자들을 통해 계속되는 스승 예수님의 일들입니다. 


다윗의 마지막 떠남의 죽음은 얼마나 장엄한지요. 참으로 치열하고 파란만장했던 다윗의 삶에 죽음 역시 참 아름답습니다. 잘 사는 것도 중요한지만 잘 죽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나는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을 간다. 너는 사나이답게 힘을 내어라.”


로 시작되는 다윗의 유언은 참 적절하고 감동적입니다. 과연 이런 유언을 남기고 떠나는 이들은 얼마나 될런지요. 하느님의 전사戰士답게 살다가 아름다운 전사戰死로 끝나는 다윗의 모습입니다. 어느 자매가 전해준 남편 임종시의 유언도 생각납니다. 세상을 떠나기전 자기 손을 붙잡고 한 세마디의 유언이 자기를 구원했다는 것입니다.


“고맙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참 따뜻한 사랑이 담긴 진정성 넘치는 유언으로 평생 배우자는 물론 하느님께도 이런 유언을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지요. 갑자기 아름다운 떠남은 없습니다.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하며 깨어 사는 것이지요. 소임所任에서의 떠남은 물론 삶에서의 마지막 떠남인 죽음의 귀가준비가 정말 중요합니다. 아버지의 집으로의 귀가歸家가 죽음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떠남의 여정에 충실하고 항구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십니다. 아멘.


Articles

75 76 77 78 79 80 81 82 83 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