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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8.28. 연중 제22주일 

                                                                      집회3,17-18.20.28-29 히브12,18-19.22-24ㄱ 루카14,1.7-14


                                                                   이런 사람이 될 수는 없을까?

                                                                        -진리의 연인戀人-


어제 8,27일은 성녀 모니카 축일이었고, 오늘 8.28일 주일이 아니었더라면 성녀 모니카의 아드님,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학자 기념미사를 봉헌했을 것입니다. 마침 어제 읽은 경향신문의 ‘내 인생의 책’이란 제하의 성염교수의 글 일부가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나이 서른에 그 진리를 발견하고는 “그토록 오래고 그토록 새로운 아름다움이시여, 늦게야 당신을 사랑했습니다!”라고 죽을 때까지 후회한 철학자가 또 있을까?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을 공부하고 가르치고 번역·주석하는 작업에 40여년 종사한 나는 이 교부를 ‘진리의 연인’이라 불러 손색이 없다고 단정하기에 이르렀다. 시인 사제 최민순 신부의 유려한 번역본(1965)을 읽어오다 이번에 원문번역을 감행하면서 <고백록>을 정독했다. ‘인간이라는 위대한 심연’을 들여다보다 “인간이란 사랑이다! 나의 중심은 나의 사랑. 사랑으로 어디로 이끌리든 그리로 내가 끌려간다”는 고백에 새삼 공감했다.-


지체없이 강론 제목은 ‘이런 사람이 될 수는 없을까?-진리의 연인’으로 택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호칭인지요. 참 욕심나는 사람이 ‘진리의 연인’입니다. ‘인간은 사랑이다. 나의 중심은 나의 사랑, 사랑으로 어디로 이끌리든 그리고 내가 끌려간다.’ 하느님은 사랑이심을 깨달은 성인의 고백입니다. 진리의 하느님이십니다. 진리의 연인은 하느님의 연인이란 말과도 그대로 통합니다. 


저절로 사람이 되는 게 아닙니다. 삶은 은총이자 과제입니다. 무엇보다 필생의 목표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진리의 연인, 하느님의 연인이 되어 사는 것입니다. 사랑할 때 닮습니다. 하느님을 항구히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닮아갈 때 비로소 진리의 연인, 하느님의 연인이 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진리의 연인’을 세 측면에 걸쳐 묵상했습니다.


첫째, 온유溫柔한 사람입니다.

온유溫柔, 온화溫和, 온후溫厚하다라는 말만 들어도 기분이 좋습니다. 진정 이런 사람이 진리의 연인, 하느님의 사람입니다. 예수님 역시 온유한 분이셨습니다. 집회서의 서두 말씀도 온유하라는 권고입니다.


“예야, 네 일을 온유하게 처리하여라. 그러면 선물하는 사람보다 네가 더 사랑을 받으리라.”


분노와 대척점에 있는 게 온유입니다. 에바그리우스 수도교부가 강조한 덕도 온유입니다. 어제 읽은 한 단락을 그대로 인용합니다.


-온유는 “프락티케의 꽃”이며, 그 토대는 “계명 준수”(프락티코스, 81장)로 이루어집니다. 온유는 ‘인식의 어머니’입니다. 관상가의 탁월한 덕은 ‘분노의 부재’, 곧 ‘온유’입니다. 이 두 가지 덕은 영성생활에서 핵심 위치를 차지합니다. 사실상 “기도는 분노의 부재와 온유의 싹”(기도론, 14장)입니다. 어떤 덕도 온유만큼 지혜를 낳지 못합니다. 에바그리우스는 온유를 ‘강한 자의 덕’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의 증언에 의하면 온유는 모세와 다윗, 그리고 그리스도의 탁월한 모습을 특징짓습니다.-


그렇습니다. 진정 따뜻하고 부드러운 온유한 자가 강한자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면 할수록 온유한 사람이 됩니다. 온유한 자는 화를 내지 않습니다. 화를 내면 무조간 집니다. 궁극의 승리는 온유한 자에게 있습니다. 월요일 3시경의 성경소구는 늘 읽어도 공감이 갑니다.


“누구든지 듣기는 빨리하고 말하기는 더디하십시오. 또 여간해서는 화를 내지 마십시오. 화를 내는 사람은 하느님의 정의를 이룰 수가 없습니다. 누구든지 자기가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도 자기 혀를 억제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자기 자신을 속이는 셈이니 그의 신앙생활은 결국 헛것이 됩니다.”(야고1,19ㄴ-20.26).


분노는 불과 같습니다. 온갖 선행의 업적들을 순식간에 태워버릴 수 있습니다. 산불같이 온 산을 태워버리는 분노라면 생명의 빛으로 온 산을 살리는 햇볕같은 온유입니다. 평생 온유의 수련자가 되어 살아야 함을 깨닫습니다. 


둘째, 겸손한 사람입니다.

겸손한 사람이 진리의 연인, 하느님의 연인입니다. 모든 덕의 어머니가 겸손입니다. 흙(humus)을 닮은 겸손(humilitas)이요, 흙같아 사람(homo)입니다. 겸손도 사람도 같은 어원 흙에서 기인합니다. 오늘 제 1독서 집회서도 온유에 이어 겸손을 권합니다. 


“네가 높아질수록 자신을 낮추어라. 그러면 주님 앞에서 총애를 받으리라. 정녕 주님의 권능은 크시고. 겸손한 이들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신다.”


온유의 적이 분노였듯이, 겸손의 적은 교만입니다. 모든 악덕의 뿌리가 교만입니다. 무지에서 기인한 교만과 탐욕입니다. 역시 다음 집회서의 말씀에 공감합니다.


“거만한 자의 재난에는 약이 없으니, 악의 잡초가 그 안에 뿌리 내렸기 때문이다. 현명한 마음은 격언을 되새긴다. 주의 깊은 귀는 지혜로운 이가 바라는 것이다.”


현명한 사람, 지혜로운 사람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입니다. 말씀의 빛이 무지의 어둠을 몰아냄으로 비로소 교만과 탐욕으로부터의 해방이 가능합니다. 다음 주님의 말씀도 겸손하라는 권고입니다. 겸손이 지혜요 교만이 어리석음임이 단박 드러납니다.


“초대를 받거든 끝자리에 가서 앉아라. 그러면 너를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여보게, 더 앞자리로 올라앉게’ 할 것이다. 그때에 너는 함께 앉아 있는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자신을 낮추는 겸손이 오히려 역설적으로 높아지는 길임을 깨닫습니다. ‘겸손한 자 의를 따라 걷게 하시고, 겸손한 자 주님의 도를 배우게 하십니다.’(시편25,9). 예수성심의 사랑도 온유와 겸손으로 요약됩니다. 성 아우구스티노의 고백록에서 메모해둔 글도 생각납니다. 


“마음이 겸손한 자들이야말로 당신께서 머무시는 집입니다.”


겸손은 비굴도, 자기 비하도 아닌, 하느님 앞에서 자기를 아는 지혜요 모든 인간에 대한 존중입니다. 위장이나 위선, 허식이 없는 있는 그대로의 참 나의, 참 자유인의 모습입니다.


셋째, 환대하는 사람입니다. 

환대하는 사람이 진리의 연인, 하느님의 연인입니다. 주님 역시 언제나 가슴 활짝 열고 우리를 환대하십니다. 환대의 사랑, 환대의 기쁨입니다. 정주생활을 하는 분도수도자들의 핵심적 영성도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을 그리스도처럼 맞이하라는 환대의 영성입니다. 


잘 난 사람을, 가진 사람을 환대하는 것은 누구도 합니다. 진정한 환대에는 차별이나 무시가 없습니다. 없는 이들에 대한 환대가 정말 하느님다운 환대입니다. 주님은 특히 다음 같은 이들을 환대하라 하십니다.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그들이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


아니 이런 이들을 차별없이, 무시함 없이 환대한다면 이미 지금 여기서 하늘 축복을 받습니다. 이런 환대의 사랑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가이없는 사랑입니다. 한결같은 환대의 사람을 소개합니다. 제가 춘천에 갈 때 마다 시간을 내어 환대해 주시는 한 교수 자매입니다. 


때로 동행한 분들이 있을 때 그분들에게 대하는 것이나 저에게 대하는 것이나 한결같이 똑같습니다. 누구에게나 활짝 열려있는,  전혀 차별이 없이 있는 그대로 순수한 마음으로의 환대입니다. 누구나 하느님의 자녀이자 형제자매로 맞이하는 환대의 자매입니다. 


참 화통하고 자유롭고 똑똑하고 용기있는 한 교수 자매입니다. 참 환대의 사랑은 순수요 자유요 용기임을 깨닫습니다. 30여년간 대학 교수로 있지만 교수티는 전혀 없는 분입니다. 자기가 교수라는 것도 잊은 듯이 보이는 그런 소탈하고 겸손한 분이기도 합니다. 만날 때 마다 진정성 가득한 참 사람을 만나는 기분입니다. 


진리의 연인, 이런 사람으로 살 수는 없을까? 

오늘 연중 제22주일에 주님은 그 답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1.온유한 사람, 2.겸손한 사람, 3.환대하는 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런 이들이 히브리서 말씀 그대로 바로 오늘 지금 여기서 시온 산의 행복을, 천상 예루살렘을 사는 이들입니다. 


“여러분이 나아간 곳은 시온 산이고 살아 계신 하느님의 도성이며 천상 예루살렘으로, 무수한 천사들의 축제 집회와 하늘에 등록된 맏아들들의 모임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또 모든 사람의 심판자 하느님께서 계시고, 완전하게 된 의인들의 영이 있고, 새 계약의 중개자 예수님께서 계십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은연중 이런 진리를 앞당겨 체험케 하시고, 우리 모두 당신을 닮은 온유와 겸손, 환대의 사람으로 변모시켜 주십니다.


“주님,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 위해 간직하신 그 선하심, 얼마나 크시옵니까!”(시편31,20참조).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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