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26. 연중 제34주일 그리스도왕 대축일(성서주간)

                                                                                        에제34,11-12.15-17 1코린15,20-26.28 마태25,31-46



최후의 심판

-심판의 잣대는 사랑-



오늘은 연중 마지막 주일이자 온 세상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입니다. 또 한국 가톨릭교회는 특별히 1985년부터 해마다 연중 시기의 마지막 주간을 ‘성서주간’으로 정하여, 신자들이 일상생활중에 성경을 더욱 가까이 하며 자주 읽고 묵상하기를 권장합니다. 여기 요셉수도원은 해마다 연중 마지막 주간을 연피정으로하며 한해를 정리하는데 이번 피정은 주로 복음성서를 바탕으로 하기에 성서주간의 취지에도 기막히게 잘 들어 맞습니다.


쏜살같이 지나는 세월이요 강물같이 흐르는 세월입니다. 세월은 여지없이 흘러 연중 마지막 주일입니다. 우리 죽음의 종말도 이렇게 올 것입니다. 예나 이제나 끊임없이 반복되는 역사같습니다. 물론 서서히 진보하는 역사임을 믿습니다만 외관은 반복처럼 보입니다. 바로 92년전, 그리스도왕 대축일이 제정되던 1925년 상황이 그러했습니다. 당시 교황 비오 11세는 날로 확산되어가는 극단적 민족주의와 세속주의에 대항하는 조치로 온 세상의 왕인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기리는 축일을 제정했습니다. 


1969년 교황 바오로 6세는 축일의 기념날자를 10월 마지막 주일에서 연중 시기의 마지막 주일이자 대림 제1주일 전 주일로 옮겨 기념토록 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는 천상교회와 지상교회의 구분없이 모두를 다스리는 왕이며, 전례력으로 새해가 시작되는 대림 제1주일이 되기 전 지난 한 해를 모두 정리한다는 의미에서 였습니다. 


오늘은 우리에게 참좋은 꿈과 용기를, 위로와 평화를 주는 그리스도왕 대축일입니다. 권위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온 세상의 그리스도왕이야말로 진정 우리가 영원히 섬겨야 할 참권위입니다. 우리 수도형제들은 ‘왕중의 왕이신 그리스도께 어서 와 조배 드리세’로 하루를 열었으며, 방금 우리는 온 마음을 다해 화답송 후렴을 노래했습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노라.”


우리의 왕이신 그리스도는 바로 이런 착한목자이십니다. 제가 산책중 가장 많이 노래하는 시편입니다. 때로 ‘아쉬울 것 업노라’ 대신 ‘두려울 것 없노라’, ‘부러울 것 없노라’도 넣어 부르기도 합니다. 대축일 아침기도의 찬미가와 후렴 셋도 참 흥겹고 아름다웠습니다.


-예수여 놀라우신 임금이시여 우리의 위대하온 승리자시여

 말로다 표현못할 감미이시며 온전히 갈망할 수 있는님이여-


-1.보라, 떠오르는 태양이라 일컬러 지는 분을, 그는 옥좌에서 앉아 다스리시며 모든 민족에게 평화를 전하리라.-

-2,그분은 땅 극변까지 찬양을 받으시고 평화를 이룩하시리라-

-3.만왕의 왕, 군주의 군주이신 예수께 영광과 주권이 세세에 영원히 있으리라.-


얼마나 좋으신 그리스도왕이십니까? 말 그대로 인류의 태양, 영혼의 태양같으신 그리스도왕이십니다. 우리 모두를 사랑으로 섬기시는 겸손하고 온유하신 섬김의 왕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에제키엘서의 좋은 목자에서 바로 우리는 그리스도왕을 만납니다.


“내가 몸소 내 양떼를 먹이고, 내가 몸소 그들을 누워 쉬게 하겠다. 잃어버린 양은 찾아내고 흩어진 양은 도로 데려오며, 부러진 양은 싸매 주고 아픈 것은 원기를 붇돋워 주겠다.”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님의 평생 삶을 요약하고 있지 않습니까? 바오로 사도의 그리스도왕 고백은 얼마나 장엄하고 고무적입니까? 온 세상, 온 역사의 왕이신 그리스도의 모습이 유감없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러고는 종말입니다. 그때에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권세와 모든 권세와 모든 권력과 권능을 파멸시키시고 나서 나라를 하느님 아버지께 넘겨 드리실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모든 원수를 그리스도의 발아래 잡아다 놓으실 때까지는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셔야 합니다.”


이런 주 그리스도왕께서는 영원히 살아계시며 지금도 우리를 다스리십니다. 오늘 복음에서처럼 최후에 우리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어떻게 최후의 심판을 통과하여 의인들처럼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으로 갈 수 있을까요? 그 비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첫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꿈꾸십시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십시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갈망하십시오. 답은 이것 하나뿐입니다. 사랑의 꿈, 사랑의 갈망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원한 꿈이자 희망이자 사랑입니다. 꿈있어야 사랑도 믿음도 샘솟고 기쁨과 평화도 샘솟습니다. 꿈 있어야 진정 산 사람이고 꿈 없으면 죽은 사람입니다. 


꿈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다면 이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꿈, 하늘나라의 꿈, 그리스도의 꿈을 키우고자 끊임없이 찬미와 감사의 미사전례에 참석하고 성서말씀을 공부하는 우리들입니다. 제가 이처럼 꿈을 첫 자리에 놓는 것은 어제 읽은 신문 덕분입니다. 잠시 인용합니다.


“대학 2학년, 나눔문화에 처음 왔을 때 박노해 시인이 ‘꿈이 뭐냐’고 물으셨습니다. ‘언론인이 되고 싶다’ 고 하니 빙그레 웃으시면서 다시 ‘꿈이 뭐냐’고 물으셨습니다. ‘아!’하고 깨달았습니다. 꿈이 직업보다 훨씬 큰 거라는 걸! 내 인생에서 결정적인 질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직업보다 훨씬 큰 꿈은, 영원히 추구해야 할 꿈은, 영원히 갈망해야 할 꿈은 무엇입니까? 바로 하느님의 꿈, 하늘나라의 꿈,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꿈입니다. 이래야 영원한 생명의 참행복의 구원의 길입니다.


둘째, 작은 이가 되는 것을 필생의 과제로 삼아 실행하십시오.

이 또한 사랑의 발로입니다. 사랑할 때 저절로 자기를 비워 작아지게 됩니다. 가장 작은 이들을 알아보기 위해 가장 작은 이가 되는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가장 작은 이가 가장 큰 이입니다. 그리스도왕이야 말로 세상에서 가장 작은 분이십니다. 끊임없이 자기를 비우는 섬김의 삶으로, 순종과 겸손의 삶으로 무가無가 되다시피 작은 분이 되신 예수님이십니다.


누가 구체적으로 작은 이들입니까? 참으로 곤궁중에 있는 이들이 작은 이들입니다. 굶주린이, 목마른이, 나그네, 헐벗은이, 병든이, 감옥에 있는 이가 참으로 외롭고 불쌍한 작은 이들입니다. 어찌 이들뿐입니까? 눈만 열리면 온통 작은 이들뿐입니다. 곳곳에 널려 있는 외롭고 쓸쓸한, 약하고 가난한 작은 이들 천지입니다. 바로 이들 가운데 가장 작은 분 그리스도왕께서 계십니다. 그리스도왕은 이들과 자신을 동일시 합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


우리가 끊임없이 사랑의 겸손과 섬김으로 비워져 작아질 때 만나는 작은 이들이요 그리스도왕이십니다. 참으로 그리스도를 꿈꾸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영원한 사랑, 영원한 꿈으로 간직한 이들은 작아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래야 환상 속의 거짓 그리스도가 아니라 참 그리스도를 만납니다. 사랑의 성체와 하나될수록 비워져 작아지는 우리들입니다. 진짜 사랑의 신비가는 작아져서 작은 이들을 통해 그리스도왕을 만나는 이들입니다.


셋째, 작은 이들과 연대하십시오.

연대의 사랑입니다. 연대하면 살지만 단절되면 죽습니다. 작은 이들과 연대하여 이들을 살리라 있는 우리 몸의 손과 발입니다. 오늘 복음의 곤궁중에 있는 이들은 바로 고립단절되어 있는 한없이 외롭고 불쌍한 존재들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주지 않은 것이다.”


참으로 곤궁중에 있던 가장 작은 이들에 무관심하여 단절되어 있던 이들이 심판을 받습니다. 작은 이들과 연결하는 사랑, 연대하는 사랑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도와 드리는 일입니다. 우리의 고독은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깊은 연대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혼자서는 못 살기 때문입니다. 혼자 살면 폐인이나 괴물이 되기 십중팔구입니다. 


사랑의 일치, 사랑의 연대입니다. 일치하면 살지만 분열되면 죽습니다. 연대하면 살지만 단절되면 죽습니다. 정작 대죄는 무시와 차별로 인한 분열과 단절을 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작은 이들과 사랑으로 일치하고 사랑으로 연대해야 합니다. 이래서 사랑의 일치와 연대를 이뤄주는 공동체 미사은총이 그리도 고마운 것입니다. 


작은 이들에게 해주는 것이 바로 주님께 해드리는 일입니다. 이래야 둘 다 모두 구원입니다. 혼자서는 절대 구원받지 못합니다. 곤궁중에 있는 이들과 연대가 없는 사랑은, 우리 모든 수행은 십중팔구 환상이자 착각입니다. 마왕이라 일컫는 고 신해철 형제의 촌철살인의 글을 나눕니다. 제 강론과도 일치합니다.


"세상을 바꿀 힘은 없어도 세상의 일부인 자신을 바꿀 힘은 있지 않겠냐. 닥치고 힘내라."

"네가 무슨 꿈을 이루었는지 대해 하느님은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하지만 행복한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엄청난 신경을 쓰고 있다."


끝은 새로운 시작입니다. 오늘 복음의 충격적 최후심판 이야기는 비유가 아닌 예언적 서술로 우리의 회개를 촉구합니다. 주님은 연중 제34주일 그리스도왕 대축일, 우리 모두에게 최후의 심판을 통과하여 영원한 생명의 구원에 이르는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1. 그리스도를 꿈꾸십시오. 사랑의 꿈입니다.
  2. 작은 이들이 되십시오. 사랑의 작은 이들입니다.
  3. 작은 이들과 연대하십시오. 사랑의 연대입니다.


사랑밖엔 길이 없습니다. 최후심판 잣대는 사랑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작은 이들을 위한 사랑실천에 충실하고 항구할 수 있게 하십니다. 새벽 독서기도중 영원하신 그리스도왕을 상징하는 아름다운 시편이 있어 나눕니다.


“해처럼 그는 오래오래 살으리이다/달처럼 만세를 누리리이다

 햇풀 위에 비인 듯 그는 내리고/땅 적시는 소나기인 듯 그는 내리리니

 정의가 꽃피는 그의 성대에/저 달이 다하도록 평화넘치리이다.”(시편72,5-7)


이런 그리스도왕을 모신 우리는 참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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