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7.7. 연중 제14주간 목요일                                                                  호세11,1-4.8ㅁ-9 마태10,7-15


                                                        거룩한 홈리스(homeless) 영성

                                             -자비하신 하느님은 우리의 본향本鄕이시다-


오늘 7.6일 새벽은 어제 7.5일을 회상하며 내일 7.7일 강론을 씁니다. 내일 7.7일에 프랑크푸르트 공항을 떠나면 7.8일 인천공항에 도착합니다. 길다 싶었던 순례여행도 막바지입니다. 흐르는 세월 속의 삶이, 하늘을 나는 비행기의, 물속을 다니는 물고기의 자취없음과 같고, 끊임없이 모래위의 흔적들을 지워버리는 파도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하여 기록을 남겨 기억하는 역사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문자의 기록물만 아니라 무수한 유적들이 우리를 기억하게 하고, 역사속의 지금 여기에서 허무를 극복하며 정체성을 깨달아 살게 합니다. 말그대로 ‘삶은 기억의 투쟁’입니다.


로겐스부르크, 아이히슈테트에 이어 어제 뷔르츠부르크, 로텐부르그 등 천년 이상된 고도를 순례했습니다. 여기는 수백년된 건물이 보통입니다. 어제 저녁식사를 한 수도원 앞 음식점도 1478년 지어진 건물이라 했습니다. 로맨틱가도, 즉 로마에 이르는 길의 출발도시가 뷔르츠부르크입니다. 정양모 신부님이 신학박사 학위를 받은 도시이기도 합니다. 중세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간직한 천년이상된 고도입니다. 


그 옛날 제대로 된 건축 설비도 없던 시대에 어떻게 이렇게 거대한 건축물들을, 또 마인강 돌다리를 만들었는지 참 불가사의입니다. 마리엔베르크 요새 기슭에 걸쳐있는 185m의 거대한 석교로 약1120년경 엘첼린 건축가가 세웠으며, 1886년까지 마인 강을 건널 수 있는 유일한 다리였다 합니다. 


이 다리위에는 뷔르츠부르크에 복음을 전파하다 순교한 성 키리안 등 이 고장과 관련된 성인 동상 12개가 서있습니다. 마침 방문한 날은 뷔르츠부르크 대성당에서 성 키리안 축제(2016.7.2.-10)중 이었습니다. 마인강 돌다리에 이어 시청사 및 마르크트광장, 노이뮌스터, 뷔르츠부르크대성당, 그리고 세계문화유산인 레지던스 정원을 순례했습니다. 


얼마나 잘 보존되어있는 유산이요 유물들인지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여기 사는 이들의 모습이 평화롭고 여유롭고 활기찼습니다. 인구이동이 전무한 독일의 천년고도千年古都의 사람들은 천년이상 대대손손 역사를 보고 배우고 기억하고 호흡하며 대를 이어 살았을 것이니, 시공을 초월한 영원한 삶도 이런 것이 아니겠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뷔르츠부르크에 이어 역시 로맨틱 가도변의 중세도시 로텐부르크를 순례했습니다. 관광이나 문화탐방이란 말마디보다 방문하는 모든 곳을 순례라 칭하고 싶습니다. 우리 순례도반들은 로텐부르크를 에워싸고 있는 전망좋은 성곽의 길을 걸었고 도시의 중심지인 시청사가 있는 마르크트광장에서 잠시 머물다가 함께 주변을 산책했습니다. 주마간산走馬看山식으로 다닐 수 뿐이 없다 보니 정확한 장소나 이름을 기억할 수 없지만 보고 느끼는 모두가 살아있는 역사 교육이었습니다. 하루를 꽉 채운 풍요로운 하루의 순례였습니다.


뷔르츠부르크 성당 앞 계단에 앉아 잠시 도반이 사준 과일을 먹는 장면을 찍은 사진이 재미있었습니다. 어느 자매의 홈리스 같다는 표현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예수님도 홈리스였습니다. 아니 지상에 잠시 순례중인 우리 모두가 하느님 눈엔 홈리스입니다. 예수님도, 오늘 복음의 예수님 제자들도 모두 홈리스였습니다. 우리의 순례여정 역시 홈리스 체험입니다. 

홈리스homeless와 더불어 홈시크homesick, 향수鄕愁란 말이 생각납니다. 고향에서 고향을 그리워한다는 ‘homesick at home’란 말마디를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영원한 참 고향인 천상고향 하느님을 그리워하는 우리는 모두 애당초 홈리스뿐일 수 없습니다.”


이런 생각을 잠시 나누며 웃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도들 역시 거룩한 홈리스였습니다. 하늘나라의 고향을 향한 삶이기에 늘 희망에 넘친 역동적 삶이었습니다. 마침 여기 수도원에서 순대 기술을 배우고 있는 한국 왜관수도원의 야곱수사님의 진솔한 고백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한국 왜관수도원이 가고 싶지 않습니까?”

“왜요? 여기서 계속 살라하면 벌써 못 살았을 것입니다. 내년에 왜관수도원에 돌아간다는 희망으로 삽니다.”


이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본향이 아니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평범한 진리의 말입니다. 알고 보면 우리는 천상고향을 그리워하는 지상의 홈리스 사람들입니다. 과연 천상고향에 희망을 두고 사는 우리들인지 잠시 성찰했습니다.


“가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여라. 앓는 이들을 고쳐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환자들을 깨끗하게 해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져 주어라.”


거룩한 홈리스 사도들의 사명입니다. 바로 하늘나라가 우리 홈리스 들의 참 고향입니다. 홈리스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하느님의 자비가 사도들을 통해 그대로 실현됩니다. 하느님의 능력으로 가득 채워야 할 거룩한 홈리스 사도들이었기에 안팎으로 자기를 비움은 필수입니다.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이보다 철저한 홈리스도 있을 수 없습니다. 텅 빈 충만의 홈리스 영성에서 샘솟는 평화의 선물입니다. 소유가 아닌 존재의 삶을 살기 위해 홈리스 영성을 생활화함이 중요합니다. 늘 하느님을 그리워하여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래야 세상 우상에 노예가 되지 않습니다. 홈리스 영성을 잃었기에 타락한 이스라엘입니다. 하느님을 잊은 이스라엘 사람들에 대한 아모스의 탄식은 그대로 하느님의 마음을 반영합니다.


“이스라엘이 아이였을 때에 나는 그를 사랑하여, 나의 그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 내었다. 그러나 내가 부를수록 그들은 나에게서 멀어져 갔다. 그들은 바알들에게 희생 제물을 바치고, 우상들에게 향을 피웠다.”


바로 본향인 하느님을 잊었을 때의 인간의 모습입니다. 이 또한 우리의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하며 하느님만을 찾는 거룩한 홈리스의 영성을 살라는 것입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진복팔단의 첫째 말씀이 바로 홈리스의 영성을 요약합니다. 호세아 예언자를 통해 자비하신 하느님의 진면목이 잘 드러납니다.


“내 마음이 미어지고, 연민이 북받쳐 오른다. 나는 타오르는 내 분노대로 행동하지 않고, 에프라임을 다시는 멸망시키지 않으리라. 나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이다.”


‘나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이다.’라는 대목에서 끝까지 인내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이 잘 드러납니다. 연민의 하느님, 자비의 하느님입니다. 진정한 홈리스 영성을 통해 우리 가난한 마음에 가득 채워지는 하느님의 연민과 자비의 사랑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의 참 고향인 당신을 미리 맛보게 하시고, 우리 모두 당신 사랑과 믿음과 희망으로 충만케 하시어, 거룩한 홈리스의 영성을 살게 하십니다. 


“주님, 당신 얼굴을 비추소서. 저희가 구원되리이다.”(시편80,4ㄴ참조).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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