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쓰십시오-사랑, 훈육, 회개, 비전-2016.8.21. 연중 제21주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Aug 21,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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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8.21. 연중 제21주일                                                  이사66,18-21 히브12,5-7.11-13 루카13,22-30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쓰십시오

                                                                -사랑, 훈육, 회개, 비전-


삶은 좁은 문입니다. 누구나 예외 없이 끝이 보이지 않는 좁은 문 인생입니다. 피할 수 없는 좁은 문입니다. 다 똑같은 좁은 문이 아니라 사람마다 양상과 정도가 다 다른 나만의 고유한 좁은 문입니다. 십여년 이상된 요셉수도원을 사랑하는 이들의 모임인 예수성심자매회가 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모임을 갖는 데 지난 8월 모임은 각별했습니다. 유난히 계속되는 여름 불볕 더위였기 때문입니다. 자매님들에게 미사중 언급한 말이 생생합니다.


“한 달 한 번 모임은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한 달간 이렇게 좁은 문을 잘 통과해 살아왔습니다.’하고 주님께 보고하는 시간이자 다음 한 달간 좁은 문을 잘 통과할 수 있도록 주님의 은총을 풍성히 받는 시간입니다.”


요지의 말에 모두 공감했습니다. 이렇게 주기적으로, 규칙적으로 주님을 만나 주님께 살아있음을 보고해야 좁은 문을 잘 통과하며 살 수 있습니다. 매월 1회 모임은 한 달간 좁은 문을 잘 통과해 온 삶을 주님께 고백하는 시간이자 한달 간 살아 갈 힘을 주님께 얻는 시간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매 주일 미사에 참여함은 주님의 집인 성전에 나와 참으로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은총의 시간이자, 또 다음 일주일 동안 좁은 문을 잘 통과하며 살아 갈 힘을 주님께 얻는 시간입니다. 오늘 주님은 우리 모두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오늘은 말씀을 중심으로 좁은 문을 잘 통과할 수 있는 방법을 나눕니다. 


첫째, 주님을 사랑하십시오.

마음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내 삶의 목표이자 방향이고, 내 삶의 중심이자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사랑하여 말씀을 깊이 공부할 때 주님을 알고 나를 알게 됩니다. 주님께 가까워 지면서 주님을 닮아 우리는 지혜롭고 자비롭고 겸손해 집니다. 

주님 역시 우리를 사랑하게 되어 우리가 누구인지 잘 아시게 됩니다. 특히 주님의 때를 잘 알아 언제 어디서나 깨어 내 삶의 자리에서 충실히 주님의 뜻을 실행하게 됩니다. 이렇게 살아있는 동안은 늘 열려 있는 오늘 지금 여기 구원의 좁은 문입니다. 구원의 좁은 문이 닫히면 모든 것이 끝입니다. 


“주님이 문을 닫아 버리면, 너희가 밖에 서서 ‘주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하며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여도, 주님은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하고 대답할 것이다.”


늘 열려 있는 구원의 문이 아닙니다. 때가 되어 닫히면 끝입니다. 이 주님의 때를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때를 놓쳐 문이 닫히면 만사 끝입니다. 주님과의 깊은 친교로 주님의 뜻과 주님의 때를 알았더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재차 호소합니다만 주님의 결심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입니다.


“저희는 주님 앞에서 마셨고, 주님께서는 저희가 사는 길거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집주인인 주님의 반응은 단호합니다.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모두 내게서 물러가라. 불의를 일삼는 자들아!” 하고 말합니다.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모른다.’ 두 번이나 거듭되는 주님의 반응이 가슴 철렁하게 합니다. 참으로 평생 열심히 주님을 믿고 살았는데 이런 결과라면 완전히 헛된 실패인생입니다. 주님께서 모르신다니 주님과 무관하게 내 뜻대로 산 인생임이 분명합니다. 아무리 열심히 살았어도 주님이 그들을 몰랐다 하니 그들 역시 주님을 몰랐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니 주님을 사랑해야 주님을 알 수 있고 주님 또한 우리를 사랑하여 우리를 아시게 됩니다. 이렇게 주님과 사랑의 친교가 깊어야 주님의 뜻과 주님의 때를 알아서 구원의 좁은 문이 닫히기 전 통과할 수 있습니다. 


둘째, 훈육의 기회를 잘 활용하십시오.

삶의 모든 순간이 훈육의 기회입니다. 우리가 겪게되는 일상의 크고 작은 모든 시련과 고통을 주님의 훈육으로 삼을 때 말그대로 전화위복轉禍爲福입니다. 이렇게 살아있는 동안은 늘 열려 있는 오늘 지금 여기 구원의 좁은 문입니다. 이런면에서 우리는 평생 주님의 훈련병이요 주님의 수련자들입니다. 죽을 때까지 주님의 훈육은 계속 됩니다. 바로 우리 모두를 향한 히브리서의 주님의 말씀입니다.


“여러분의 시련을 훈육으로 여겨 잘 견디어 내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자녀로 대하십니다. 아버지에게서 훈육을 받지 않은 자녀가 어디 있습니까? 모든 훈육이 당장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것으로 훈련된 이들에게 평화와 의로움의 열매를 가져다줍니다.”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말도 있고, 눈물로 씨뿌리는 사람들은 기쁨으로 곡식을 거두리라는 시편말씀도 있습니다. 모든 시련과 고통을 주님의 훈육으로 알아 지극한 인내로 견디어 낼 때 기쁨과 평화, 의로움의 열매입니다. 이렇게 하여 매순간 구원의 좁은 문을 성공적으로 잘 통과하게 됩니다. 그러니 다시 일어나 맥풀린 손과 힘 빠진 무릎을 바로 세워 바른 길을 달려가십시오. 살아있는 동안 계속되는 주님의 훈육이요 우리는 주님의 훈육을 받는 자녀이자 학생입니다.


셋째, 끊임없이 회개하십시오.

우리 삶은 회개의 여정입니다. 오늘 복음의 문이 닫힌 다음 주님께 문을 열어달라는 이들은 그대로 우리의 회개를 촉구하는 ‘회개의 표지’입니다. 평생 열심히 주님을 믿고 살았는데 문은 닫히고 ‘나는 너희를 모른다.’하면 얼마나 황당하고 절망스럽겠는지요. 


끊임없는 회개를 통해 자기를 비워갈 때 참 나를 알게 되고 하느님을 알게 됩니다. 회개의 열매가 하느님 찬미이며 하느님 찬미가 끊임없이 우리의 회개를 촉발시킵니다. 회개와 찬미는 함께 갑니다. 회개를 통한 사랑의 찬미가 운명을 바꿉니다. 슬픔을 기쁨으로, 불화를 평화로, 미움을 사랑으로, 절망을 희망으로, 불신을 신뢰로, 어둠을 빛으로,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는 회개의 찬미, 사랑의 찬미입니다. 고통스런 구원의 좁은 문을 내적으로 기쁨 가득한 넓은 문으로 바꿔줍니다. 어제 새로 구입한 농 기구 축복시 수도형제들이 함께 부른 시편성가 54장도 새삼 은혜로웠습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나는 아무것도 아쉽지 않네

 푸른 풀밭 시냇가에 쉬게 하사/나의 심신을 새롭게 하네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바른 지름길로 인도하시고

 죽음의 골짜기를 간다해도/주님 계시니 두렵지 않네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나의 한평생 축복하시고

 선하심과 자비하신 은총으로/주님 궁에서 사오리다.-


찬미의 기쁨, 찬미의 축복입니다. 우리를 끊임없는 회개로 이끄는 사랑의 찬미보다 좁은 문 통과에 더 좋은 것은 세상에 없습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세 젊은이들은 입을 모아 하느님을 우러르며 '주님 찬미 받으소서' 하고 부르짖으며 바빌론 불가마 좁은 문을 통과했습니다. 그러니 회개의 찬미, 사랑의 찬미가 늘 입술에서 떠나지 않게 하시기 바랍니다.


넷째, 늘 하느님 나라의 비전을 지니고 사십시오.

성서의 사람들은 모두가 하느님 비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하느님 비전, 하느님 나라의 비전이, 꿈이, 희망이 있어야 좁은 문을 수월히 통과할 수 있습니다. 다음 구원의 좁은 문 통과가 좌절된 자들은 하느님의 나라의 비전이 없었음으로 자초한 화임이 분명합니다.


“너희는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모든 예언자가 하느님의 나라 안에 있는 데 너희만 밖으로 쫓겨나 있는 것을 보게 되면, 거기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도대체 이보다 큰 불행은 없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비전을 잃었을 때 모두의 가능성입니다. 과연 여러분의 비전은, 꿈은, 희망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물론 제자들의 평생 비전은 하느님의 나라였습니다. 제1독서의 이사야의 평생 비전 역시 똑같습니다.


“나는 모든 민족들과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을 모으러 오리니, 그들이 와서 나의 영광을 보리라.”


그대로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실현되는 하느님의 나라요 주님의 영광을 보는 우리들입니다. 그러나 이 미사는 궁극의 하느님 나라 비전의 희미한 예표일뿐입니다. 다음 하느님 나라의 비전을 지니고 그 비전의 실현에 항구했던 자들에 대한 묘사입니다. 


‘그러나 동쪽과 서쪽, 북쪽과 남쪽에서 사람들이 와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보라,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는 이들이 있고,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하느님 나라에 구원의 보장은 없다는, 우리의 경각심을 일깨우는 말씀입니다. 끝까지 하느님 나라의 비전에 충실할 때 마침내 구원의 좁은 문을 통과해 오매불망 꿈에 그리던 하느님 나라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뵈올 때 거기 있으리라 희망하던 사람들이 있지 않음에 놀랄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우리가 무시했던 다른 부류의 사람들, 즉 불자, 힌두인, 무슬림, 불신자, 미신자 등 이방인들로 간주하던 이들이 거기 있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라벨을 붙이던, 이들은 예수님이 했던 대로 다른 사람들을 위해 보살핌과 나눔의 사랑을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바로 이런 이들이 예수님이 인정하는 종파에 관계없이 좁은 문을 통과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명시적으로 예수님을 믿은 이들은 아니지만, 실제로 예수님을 따른 사람들입니다.


연중 제21주일, 주님은 우리 모두 구원의 좁은 문을 통과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훈육의 기회를 잘 활용하는 것이요, 회개의 여정에 충실하는 것이요, 늘 하느님 나라의 비전을 지니고 사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 모두 구원의 좁은 문을 잘 통과할 수 있는 은총과 힘을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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