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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6.14. 연중 제11주일                                                                                                          에제17,22-24 2코린5,6-10 마르4,26-34


                                                                                               하느님의 나라

                                                                               -기다림(望), 내맡김(信), 보살핌(愛)-


여러분은 꿈이, 희망이 있습니까?

꿈이, 희망이 있다면 무슨 꿈, 무슨 희망입니까? 꿈 없이는, 희망 없이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살아도 살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죽어서 가는 하느님의 나라가 아니듯 죽어서 가는 지옥이 아닙니다. 희망과 기쁨이 넘치는 곳, 바로 그곳이 하느님의 나라이고 희망과 기쁨이 없는 곳, 바로 그곳이 지옥입니다.  


아, 꿈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희망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살아갈수록 꿈도, 희망도 사라져 병고病苦와 노쇠老衰로 죽음만 기다리며 절망 중에 살아가는 이들은, 목숨을 끊는 자살자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태양 같은 희망입니다. 태양 빛 사라진 하늘처럼, 태양 빛, 희망의 빛 사라지면 캄캄한 절망의 어둠입니다. 살아갈수록 태양처럼, 밤하늘의 별들처럼 빛나는 희망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가장 좋은 희망, 영원한 희망을 선물하겠습니다.


하느님이 우리의 영원한 희망입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우리의 영원한 희망입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영원한 희망입니다.

이런 희망을 지닌 이들이 진정 강한, 내적 힘을 지닌 사람들입니다. 이 셋이 우리의 영원한 희망입니다. 이 셋을 제외한 세상의 모든 희망은 진정한 희망이 아닙니다. 곧 허무하게 사라질 덧없는 희망입니다. 그러나 이 셋은 별개의 희망이 아니라 궁극엔 하나의 실재를 가리키는 희망입니다. 


"이스라엘아.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 희망을 하느님께 두어라.“(시편131,3).

하느님 대신, 하느님의 나라를, 그리스도를 넣어도 그대로 통합니다. 오늘은 우리의 영원한 희망인 '하느님의 나라'에 대해 집중적으로 나누겠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를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하느님의 나라의 비유입니다. 바로 예수님의 영원한 희망이자 꿈은, 필생의 화두는 하느님의 나라였습니다. 예수님의 선포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회개하라,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입니다.


어제도 내일도 아닌 오늘 지금 여기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느님의 나라를 살아야 합니다. 아,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를 사는 것, 바로 여기에 영원한 생명이, 영원한 행복이 달렸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를 사는 것은 우리의 마땅한 권리요 의무요 책임입니다. 오늘 지금 여기가 하느님의 나라, 꽃자리입니다.


첫째, 항구히 기다리십시오. 

희망의 기다림입니다. 희망을 지니고 하느님을, 하느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기다림의 행복, 기다림의 기쁨입니다. 영원한 희망인 하느님의 때를, 하느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오늘 여기서 시작된 하느님의 나라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이미 시작된 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의 계획대로 중단되는 일이 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저절로 자라는 씨의 비유나, 겨자씨의 하느님 나라의 비유를 통해 완성의 그날을 내다봅니다. 아, 이런 희망이, 꿈이 있어야 기다릴 수 있습니다. 희망이 없이는 기다릴 수 없습니다. 억지로 기다리다간 얼마 못가 포기하여 내적으로 무너져 내립니다. 


참으로 이런 하느님 나라의 희망을 지닌 이들이 부자요 행복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처럼 성서의 모든 예언자들이 영원한 꿈의, 영원한 희망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영원한 희망을 지닐 때 나이에 상관 없이 영원한 청춘의 사람들입니다. 에제키엘 역시 희망의 사람이었습니다. 1독서는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에제키엘 예언자를 통해 하느님 친히 희망의 메시지를 선포하십니다. 


"내가 손수 높은 향백나무의 꼭대기 순을 따서 심으리라. 가장 높은 가지들에서 연한 것을 하나 꺾어, 내가 손수 높고 우뚝한 산위에 심으리라. 이스라엘의 드높은 산위에 그것을 심어놓으면, 햇가지가 나고 열매을 맺으며 훌륭한 향백나무가 되리라. 온갖 새들이 그 아래 깃들이고, 온갖 날짐승이 그 가지 그늘에 깃들이리라.“


바로 이것이 하느님의 나라의 비전이자 꿈이자 희망입니다. 예수님도 여기서 영감 받았음이 분명합니다. 이미 에제키엘의 예언은 예수님의 하느님의 나라를 통해, 이어 위대하고 거룩한 가톨릭 성교회를 통해, 또 우리의 삶을 통해 실현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서서히 실현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체가 되어 하시는 일이라 아무도 막거나 방해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할 일은 깨어 준비하며 희망을 지니고 때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세상에 기다림의 인내, 기다림의 희망없이 되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사실 많은 일이나 문제들이 기다려 때가 될 때 해결되거나 해소됩니다. 그러니 가을의 때가 되어야 둥글게 익어가는 원숙圓熟한 배 열매이듯이 하느님의 나라가 익어갈 때까지 우리도 희망을 지니고 항구히 기다려야 합니다.


둘째, 항구히 내맡기십시오.

믿음의 내맡김입니다. 그냥 건드리지 않고 놔두는 것입니다. 이건 무관심의 방관이 아니라 바라보고 지켜보는 섬세한 배려의 사랑입니다. 하느님이 하실 일을 내가 다 하려니 삶이 복잡하고 힘들고 혼란스럽고 안식이 없습니다. 늘 불안하고 두렵습니다. 바로 내어 맡기는 믿음 부족 때문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은총의 선물입니다. 하느님께서 친히 펼쳐가는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믿음으로 하느님께 겸손히 내 맡기는 것뿐입니다. 저절로 자라는 씨앗의 비유를 보십시오. 우리가 할 일은 다만 열린 믿음의 눈으로 진행되는 하느님의 나라를 바라보는 것뿐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하느님 하시는 일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와 같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으면,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는 싹이 터서 자라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되는 데, 처음에는 이삭이 나오고 그 다음에는 이삭에 낟알이 영근다. 곡식이 익으면 그 사람은 낫을 댄다. 수확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더디더라도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진행되는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사람이 개입할 여지가 없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믿음으로 내맡기는 일입니다. 이런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깨닫지 못할 때 무모無謀한 개입입니다. 비단 하느님의 나라만이 신비가 아니라 세상 모두가 신비입니다. 우리의 삶 모두가 신비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의 비극은 바로 이런 신비감각을 잃어감에 있습니다.


그러니 신비의 원천인 하느님께 겸손히 내맡기는 믿음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이건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하시는 일에 잘 협력하기 위함입니다. 맹목적 눈먼 열정이 하느님의 나라에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자기의 무능을 인정하는 것이, 하느님나라의 실현에 지혜롭게 협력하는 것이 겸손한 믿음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믿음의 확신은 그대로 우리의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확신에 차 있습니다. 보이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몸을 떠나 주님 곁에 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함께 살든지 떠나 살든지 우리는 주님 마음에 들고자 애를 씁니다."


아, 주님 마음에 드는 것이 분별의 잣대입니다. 우리는 보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믿음으로, 하느님 희망으로 살아갑니다. 예수님은 물론 바오로 사도 역시 현자賢者요 각자覺者입니다. 천상 지혜를 지니신 분들입니다. 믿음의 눈이 활짝 열린 분들입니다. 예수님은 모두가 다 놓쳐버린 저절로 자라는 씨앗에서, 겨자씨의 자람에서 하느님의 나라의 표징을 발견發見합니다. 발견의 기쁨, 발견의 행복입니다. 


믿음의 눈만 열리면 세상의 모두가 하느님 나라의 빛나는 표징의 선물들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표징의 선물들로 가득한 세상임을 깨닫습니다. 믿음의 눈이 닫혀서, 몰라서 슬픔이요 불행이지, 믿음의 눈만 열리면 하느님 주시는 기쁨의 선물, 행복의 선물 가득한 세상임을 깨닫습니다. 저에게 하늘은 하느님의 표징입니다. 얼마 전 써놓고 행복했던 시가 있습니다.


하늘을/바라볼 때마다

마음을/들어 올린다.

온갖 생각들/하늘 구름에 띄워 보낸다

마음은/다시 푸른 하늘이 된다/푸른 믿음이 된다.


셋째, 항구히 보살피십시오.

사랑의 보살핌입니다. 진인사대천명입니다. 지성이면 감천입니다. 깨어있는 항구한 보살핌의 사랑으로 하느님의 일에 협력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이웃을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그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사랑할 때 눈이 열려 알게 되고 보이기 시작합니다. 사랑하는 만큼 알고 아는 만큼 보입니다. 


오늘 두 비유에서 씨뿌리는 어떤 사람은 바로 사랑의 '보살핌의 대大家'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사랑의 눈이 닫혀 있어 얼마나 많은 하느님 나라의 표징을 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우리들인 지요. 너무나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들이 하느님의 나라의 표징들입니다. 온 세상 가득한 하느님의 나라 표징들이 더욱 하느님의 나라를 살도록 우리를 자극하고 격려합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땅에 뿌릴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작다. 그러나 땅에 뿌려지면 자라나서 어떤 풀보다도 커지고 큰 가지들을 뻗어,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다.“


아, 바로 이것이 예수님의 하느님 나라의 빛나는 꿈이자 비전입니다. 이 꿈을, 비전이나 희망을 현실화할 때 바로 오늘 지금 여기가 하느님의 나라가 됩니다. 에제키엘의 원대한 꿈은 예수님을 통해 실현되고 예수님의 황홀恍惚한 하느님 나라의 비전은 바야흐로 당신의 교회를 통해 실현되고 있습니다.


겨자씨의 성장은 하느님 나라의 성장의 표지입니다. 사랑의 성장입니다. 비단 교회만 아니라 우리의 내적 사랑의 성장도 겨자씨의 자람과 같습니다. 비록 외적 육신肉身의 성장은 멈춰 노쇠해 가도 하느님의 나라의 실현인 우리의 내적 사랑의 성장은 죽을 때까지 계속되어야 합니다. 이래야 진정 아름답고 품위있는 삶이요 죽음입니다. 죽음은 구원이자 심판이요 새로운 시작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죽비 같은 말씀입니다.


"우리 모두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서야 합니다. 그래서 저마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이 몸으로 한 일에 따라 갚음을 받게 됩니다."


우리 모두 신비가神祕家로 불림 받았습니다. 

오늘 지금 여기서 하느님의 나라를 살라고 신비가로 불림 받은 우리들입니다. 하느님의 나라의 꿈이, 비전이, 희망이 우리의 유일하고 영원한 꿈이자 비전이자 희망입니다. 항구한 기다림의 희망이, 항구한 내맡김의 믿음이, 항구한 보살핌의 사랑이, 바로 신망애 향주삼덕이 우리 모두 오늘 지금 여기서 하느님의 나라를 살게합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당신 말씀과 성체의 겨자씨 같은 은총을 선사하시어 하느님의 나라를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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