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아름다운 사람-2015.12.22. 대림 제4주간 화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Dec 22,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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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22. 대림 제4주간 화요일                                                                사무상1,24-28 루카1,46-56


                                                                   참 아름다운 사람


오늘은 참 아름다운 사람에 대한 묵상 나눔입니다. 오늘 복음의 주인공인 예수님을 잉태한 마리아와 사무엘 아이를 봉헌하는 한나를 보면서 스친 말마디가 참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두분의 감사와 찬미의 노래가 이를 입증합니다. 오늘 화답송 시편의 한나가 하느님께, 또 복음은 마리아가 하느님께 드리는 감사와 찬미의 기도입니다. 


특히 마니피캇이라 불리는 성모찬가는 우리 가톨릭 수도자는 물론 모든 신자들이 저녁기도때 마다 성모님과 함께 즐겨 부르는 기도입니다. 두 분 다 성서의 가난한 사람들인 아나빔의 영성을 대변합니다. 예나 이제나 아나빔의 영성을, 정신을 사는 이들이 아름답습니다. 고귀하고 존엄한 품위의 사람입니다. 얼마전 읽은 글이 생각납니다.



“8,852미터의 에베레스트를 정복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있다. 정상을 1,000미터 앞둔 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고도가 아니라 태도라는 사실이다 ”-존 맥스웰의 ‘태도’ 중에서 -


이건 제가 산티야고 순례중에도 깨달은 사실이고 우리의 영성생활에도 직결되는 진리입니다. 산티야고 2000리 장거리 순례의 성공 비결은 체력도, 정신력도 아닌 ‘간절함’이란 영혼의 태도요 자세라는 것입니다. 수도생활이나 기도 역시 관건은 '있고 없음'의 소유의 유무가 아닌 시종일관 하느님을 찾는 간절한 자세가 우선임을 깨닫습니다.


마리아와 한나의 영혼에서 빛나는 아름다움이 바로 이런 간절함의 자세입니다. 이런 간절함이 시류와 야합하지 않고 정신적, 영적 귀족으로 한결같은 품위의 봉헌의 삶을 살게 합니다. 마니피캇 서두의 고백은 늘 들어도 신선합니다. 아나빔의 고귀한 정신이 잘 들어납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 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 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아나빔의 영성을, 자세를 사는 이가 진정 자유롭고 행복하고 아름답습니다. 온전히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 신뢰와 겸손, 희망과 기쁨을 두는 삶의 자세입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모두 성모님을 닮은 아나빔의 후예들입니다. 새벽에 얼핏 읽은 어느 일간지의 2016 신춘문예 시詩에 대한 예심 결과의 평중 일부가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세월호나 세 모녀의 자살 사건, 시리아 난민 이야기 등 유난히 시사적인 소재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세계의 비참이라는 무게감에서 미적美的으로 승화昇華되는 부력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올해의 경우 역시 잘 쓴 시들은 많은데 '울림' 있는 시들은 찾기가 쉽지 않았다.”


주목할 말마디가 '미적美的 승화'와 ‘울림’입니다.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합니다. 아름다움이 감동을 주고 마음을 정화합니다. 바로 울림을 주는 아름다운 시들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반면 성모님의 마니피캇은 늘 불러도 아름다운 감동입니다. 한나의 고백 역시 역시 우리 마음을 울립니다. 


“제가 기도한 것은 이 아이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제가 드린 청을 들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도 아이를 주님께 바치기로 하였습니다. 이 아이는 평생을 주님께 바친 아이입니다.”


눈물겹도록 가난하고 아름다운 영혼의 한나입니다. 이어 터져 나오는 한나의 하느님 감사 찬미가가 바로 방금전에 바친 화답송입니다. 부전자전이 아니라 모전자전, 그 어머니에 그 아들들임을 깨닫습니다. 


한나에 사무엘이요 엘리사벳에 세례자 요한, 마리아에 예수님입니다. 비단 성서의 예뿐 아니라 주변에서도 수없이 확인되는 바 이런 어머니들의 모범적 삶의 자세입니다. 어머니의 신앙과 사랑등 삶의 자세는 그대로 자녀들에게 유전됨을 봅니다. 끝으로 어제 읽은 재미난 구절과 이에서 영감 받아 쓴 ‘하느님의 두 젖가슴’이란 시를 나눕니다.


-아비가일이 얼마나 아름다운 여인이였는지 보여 주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하루는 다윗과 아비가일이 어두운 골짜기를 걷고 있었다. 달도 비치지 않는 컴컴한 밤이었다. 그때 다윗이 아비가일에게 청했다.

“그대의 젖가슴을 풀어 헤쳐 그 빛으로 우리가 가는 길을 비추어 주오.”(사랑. 분도출판사, 88쪽)-


전 여기 아비가일에게서 주위를 환히 밝히는 마리아와 한나의 아름다운 영혼의 빛을 묵상했고, 불암산을 바라보며 다음과 같은 ‘하느님의 두 젓가슴’이란 시를 썼습니다.


-날마다/수없이 바라보는

 하느님의/두 젖가슴


 한쪽은 크고 한쪽은 작고/짝째기다

 불룩한/불암산 두 봉우리-


그러고 보니 하느님의 거대한 두 젖가슴 불암산 두 산봉우리 사이에 위치한, ‘아나빔의 영성’을 살아가는 여기 요셉수도원이요, 여기서 환히 퍼져 나가는 ‘하느님 자비의 빛’임을 깨닫습니다. 마침 어제 수도원 본관의 명칭 공모에도 대다수 형제들이 ‘자비관’이란 명칭에 압도적 지지를 보냈습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성모 마리아를 닮아 감사와 찬미, 신뢰와 겸손, 희망과 기쁨의 아나빔의 영성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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