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공부 -지혜로운 사람-2016.3.11. 사순 제4주간 금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Mar 11,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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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3.11. 사순 제4주간 금요일                                                               지혜2,1ㄱ.12-22 요한7,1-2.10.25-30


                                                                                  하느님 공부

                                                                               -지혜로운 사람-


오늘 지혜서를 묵상하며 하느님 공부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습니다. 정말 졸업이 없는 평생공부가 하느님 공부이며 하느님 공부와 더불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사람이라고 다 사람이 아닙니다. 하느님 공부에 항구한 사람이 실로 진실하고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요즘 신문이나 매스컴의 보도 내용을 보면 지혜로운 분별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합니다. 똑같은 사실에도 보는 시각은 정 반대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지혜서의 소제목은 ‘악인들의 삶과 생각’이며 많은 내용이 오늘 독서에는 생략되어 있지만 공감할 내용도 가득하여 일부 나눕니다. -그들은 옳지 못한 생각으로 저희끼리 이렇게 말한다-로 길게 전개되는 내용은 이렇습니다.


“우리의 삶은 짧고 슬프다. 인생의 끝에 다다르면 묘약이 없고 우리가 알기로 저승에서 돌아온 자도 없다. 우리의 한평생은 지나가는 그림자이고 우리의 죽음에는 돌아올 길이 없다. 자 그러니, 앞에 있는 좋은 것들을 즐기고 젊을 때처럼 이 세상 것들을 실컷 쓰자.”(지혜2,1-6참조).


모두가 공감되는 내용들이라 반박의 여지가 없습니다. 초월적인 모든 것에 대한 거부와 모든 도덕적 가치에 대한 멸시로 이루어진 내용입니다. 희망도 기쁨도 없습니다. 그대로 하느님을 잊은 현대인들의 모습입니다. 바로 이런 이들이 악인이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모르고 자기를 모르는 무지의 사람들이 바로 악인들이라는 것입니다. 악인은 별난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을 잊을 때 우리 모두의 가능성입니다. 새삼 하느님을 아는 지혜로운 사람이 참 사람의 의인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 공부 없이 참 사람의 의인이, 현인이 되는 길도 없습니다.


“의인에게 덫을 놓자. 그자는 우리를 성가시게 하는 자, 하느님을 아는 지식을 지녔다고 공언하며 자신을 주님의 자식이라고 부른다. 정녕 그의 삶은 다른 이들과 다르고 그의 길은 유별나기만 하다. 그러니 그를 모욕과 고통으로 시험해보자. 그러면 그가 정말 온유한지 알 수 있을 것이고, 그의 인내력을 시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자기 말로 하느님께서 돌보신다고 하니 그에게 수치스러운 죽음을 내리자.”


정말로 옳지 못한 악인의 생각입니다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대로 오늘 복음의 고통받는 의인, 예수님을 지칭하는 듯 합니다. 새삼 우리의 삶은 우리의 삶 됨됨이를 시험하는 시험장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은 악인들의 그릇된 생각을 다음처럼 적시하며 오늘 1독서를 끝냅니다.


“이렇게 생각하지만 그들이 틀렸다. 그들의 악이 그들의 눈을 멀게 한 것이다. 그들은 하느님의 신비로운 뜻을 알지 못하며 거룩한 삶에 대한 보상을 바라지도 않고, 흠없는 영혼들이 받을 상급을 인정하지 않는다.”(지혜2,21-22)


하느님께 눈먼 이들의 무지無知가 얼마나 치명적인 악惡이요 병病이요 죄罪인지 깨닫습니다. 하느님을 떠날 때 십중팔구 옳지 못한 생각입니다. 새삼 ‘악의 평범성’에 놀라게 됩니다. 지혜서 2,23절은 다음처럼 이어집니다.


“정녕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불멸의 존재로 창조하시고, 당신 본성의 모습에 따라 인간을 만드셨다.”


그러니 하느님 공부는 너무나 당연하고 자명한 우리의 의무입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의 모습은 그대로 악전고투의 의인의 모습입니다. 시시각각 죽음의 위험속에 있는 모습이 흡사 악에 포위된 사면초가의 모습같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상황 속에서 다음 화답송 시편 내용에 공감하셨을 것입니다.


“주님은 마음이 부서진 이를 가까이 하시고, 영혼이 짓밟힌 이를 구원해 주신다. 의인이 몹시 불행할 지라도, 주님은 그 모든 불행에서 구하시리라.”(시편34,19-20).


시편 말씀 그대로 예수님은 불행한 죽음으로 끝난 듯 했지만 그를 부활시키심으로 궁극의 승리를 안기신 하느님이십니다. 예수님의 궁극의 승리를 가능케 한 것은 무엇입니까? 하느님을 알았고 자기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 인생인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지점이 의인과 악인이 나뉘어 지는 갈림길입니다.


“나는 나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다. 나를 보내신 분은 참되신데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한다. 나는 그분을 안다. 내가 그분에게서 왔고 그분께서 나를 보내셨기 때문이다.”(요한7,28-29참조).


예수님은 이렇게 아버지의 아드님으로서 자기 신원에 정통했기에 악과의 영적싸움에 항구할 수 있으셨습니다. 하느님께로부터 와서 하느님께로 가는 인생임을 알았기에 흔들림 없이 의인의 삶을 사셨던 예수님이셨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당신과 앎의 관계를 깊게 해 주시며 지혜로운 삶을 살게 하십니다. 하느님 평생 공부에 매일 미사보다 더 좋은 공부도 없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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