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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8.13. 연중 제19주간 목요일 

                                                                                                                           여호3,7-10ㄱㄴㄹ.11.13-17 마태18,21-19,1


                                                                      정주(定住;stability)생활의 축복

                                                                             -반복(反復)의 신비-


얼마전 한 자매의 면담성사중 들은 일화가 잊혀지지 않습니다. 참 파란만장한, 그러나 신심깊은 삶을 산 친정어머니였습니다. 선종전까지 70대 후반의 나이까지 10년간은 외동 딸인 그 자매가 모시고 살았다 했습니다. 어느날 아침이 되어도 내려오시지 않아 윗층의 방을 찾으니 어머니는 양손을 합장하고 앉아 계신채 선종하신 모습이었다 합니다.


“아, 듣고 보니 어머님은 선종하셨습니다. 마지막 자매님이 어머니를 모신 10년 동안은 어머님에겐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네요. 조금도 슬퍼하지 마십시오. 자매님은 마지막 효도를 참 잘하셨습니다. 기도하다 돌아가셨으니 선종이요 깨끗하고 아름다운 죽음입니다.”


위로해드렸습니다. 이젠 장수가 축복이 아니라 저주가 된 세상이 되었습니다. 어쩔수 없이 많은 고령의 노약한 노인들이 자식을 두고 현대판 고려장 같은 요양원으로 갑니다. 얼마전 성 도미니꼬 축일에 새삼스런 깨달음도 잊지 못합니다. ‘아, 성인들은 거의 대부분 영양실조로 돌아가셨구나. 제대로 잡수지 못하는데다 소임에 충실하면서 자주 단식, 밤샘기도등 고행을 하시다 보니 영양실조와 병으로 돌아가셨구나’ 하는 깨달음이었습니다. 아니 성인들뿐 아니라 옛 사람들의 수명이 40세를 넘기 힘들었음은 영양실조와 질병이 그 원인이었습니다. 이 둘이 해결되니 대부분 장수의 삶을 사는 현대인들입니다. 대신 많은 이들이 자살로 고단한 삶을 마감하기도 합니다.


아주 오랜 전에 들었고 지금도 잊지 못하는 말마디가 있습니다.

‘나이 30세에 죽어 70세에 묻힌다.’

참 의미심장한 말입니다. 제대로 된 삶이라면 나이 70세에 죽어 70세에 묻혀야 되는 것입니다. 그냥 목표없는 무의미한 삶을, 살아있다 하나 실상 죽은 삶을 의미하는 말마디입니다. 나이 먹어 간다는 것이 그냥 트랙경주때의 운동장 바퀴를 도는 것과 같아 생각없이 아무리 많은 바퀴를 돈다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기 요셉수도원에서 오랫동안 정주하면서 들은 몇마디 말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신부님은 늙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자매님의 진솔한 말이었습니다.

“어, 너 수도원에 살아도 늙는구나.”

역시 오래만에 만난 초등학교 동창 친구의 진솔한 말이었습니다.

“아, 신부님, 여전하십니다.”


가장 많이 듣는 기분좋은 말입니다. 늘 한결같이 여전한 모습에 신기해하고 반가워하는 모습을 보면 절로 기분이 좋아집니다. 모두 정주생활의 축복입니다. 나 자신은 물론, 형제들의 변화하는 삶의 역사를 한 눈에 보고, 자연과 세월의 흐름도 한 눈에 보게하는 정주생활입니다. 분도수도회 수도자들의 으뜸 서원이지만 깊이 들여다 보면 모두가 정주생활입니다. 아랫집 수녀님들도 우리와 똑같은 정주생활입니다. 오늘은 복음과 독서를 바탕으로 ‘정주생활의 축복-반복의 신비’-에 대한 묵상입니다.


우리는 무의미한 반복의 ‘안주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하느님을 찾는, 하느님 중심의 ‘정주의 삶’을 삽니다. 정주의 삶은 반복의 신비입니다. 매일이 반복의 훈련입니다. 반복의 신비를 몇가지 내적 측면에서 조명합니다. 모두가 주님의 은총의 열매들입니다.


첫째, ‘가까워짐’입니다.

무의미한 반복의 정주가 아니라 날로 주님과 가까워지는 정주의 삶입니다. 이런 모두는 내적 현상이라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주님께 가까이 가는 귀가의 여정입니다. 인생사계, 일일일생이란 말도 있듯이 살아갈수록 주님의 집에로의 귀가의 죽음도 가까워집니다


둘째, ‘닮아감’입니다.

정주생활중 일상의 반복을 통해 주님을 닮아갑니다. 주님과 가까워지면서 주님을 닮아갑니다. 무엇을 닮아가느냐에 따라 형성되는 삶의 꼴입니다. 끊임없는 기도에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살다보면 온유하고 겸손하신 주님을 닮아갑니다. 마지막 심판때도 주님인 당신을 얼마나 닮았나로 구원의 등급을 정하실 것입니다.


셋째, ‘알아감’입니다.

정주생활중 일상의 반복을 통해 주님을 알아가고 자기의 부족을 알아갑니다. 몰라서 판단이지 주님을 알고 나를 알아갈수록 판단하지 않고 용서합니다. 일흔일곱번이 아니라 매일 평생 용서합니다. 오늘 복음의 무자비하고 인색했던 종은 자비하신 주님을, 또 얼마나 탕감받은 은총의 존재인 줄 몰랐기에 이처럼 어리석은 처사로 주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이, 악한 종아,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

주님의 자비를 모르고 자비를 입은 자신을 몰라 자초한 심판의 화입니다.


넷째, ‘깊어짐’입니다.

외적으로 보면 단조로운 일상의 평면적 삶같으나 내적으로는 하느님 중심을 향해 날로 깊어지는 삶입니다. 이또한 정주생활의 축복입니다. 활동의 넓이의 삶이 아니라 관상의 깊이의 삶입니다. 하느님 중심에 깊이 뿌리 내렸을 때 안정과 평화요 깊이 뿌리 내리지 못했을 때 두려움과 불안입니다. 자본주의, 물질주의 사회가 날로 우리의 삶을 깊고 두텁게가 아닌, 얕고 엷게 천박淺薄하게 합니다.


다섯째, ‘넓어짐’입니다.

주님은 너그러우시고 자비로우십니다. 깊어짐과 넓어짐은 함께 갑니다. 내적시야도 주님을 닮아 날로 깊어지면서 넓어집니다. 일흔 일곱 번이 아니라 평생 끊임없는 용서로 넓어지고 넓어져 연민의 바다같은 마음이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의 무한한 은혜를 입고도 은혜를 베풀줄 모르는 종처럼, 우리의 편협하고 옹졸한 마음이 문제입니다.


여섯째, ‘받아들임’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받아들임이 믿음이요 지혜요 겸손입니다. 넓어진 마음은 저절로 받아들임의 마음이 됩니다. 결국 사람은 살아온대로 살아갑니다. 스스로 은총으로 깨달아 알기 전까지는 누구도, 자신도 바꿀 수 없습니다. 모르면 알려줘도 모르고 오히려 상처받고 반발합니다. 충고나 조언도 백해무익 도움이 안됩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으로 받아들일 때 때가 되면 회개의 깨달음입니다.


일곱째, ‘새로워짐’입니다.

삶은 반복입니다. 무미건조한 따분한 반복이 아니라 늘 새로운 반복이 정주생활의 축복입니다. 매일이 새 하늘과 새 땅이요 새 날입니다. 매일이 새로운 시작의 출발입니다. 모세는 홍해바다를 건너 죽음과 압제의 이집트를 벗어나 생명과 자유에 이르렀고 오늘 여호수아 역시 요르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에 이르렀습니다. 여호수아나 예수나 같은 ‘하느님은 구원하신다’라는 똑같은 이름입니다. 여호수아는 요르단 강을 건넜고 예수님은 요르단강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모세와 여호수아가 강을 건넌 것은 바로 파스카의 원형이자 세례성사를 상징합니다. 이미 세례성사로 구원의 강을 건넌 우리들이요 매일 성체성사의 은총으로 늘 새로운 부활의 삶, 파스카의 삶을 사는 우리들입니다. 성체성사의 주님께서 오늘도 세상 바다를 가르시어 우리 모두 마른땅을 밟고 걸어가듯 하루를 살게 하십니다. 정주생활의 축복에 미사은총이 얼마나 결정적 역할을 하는지 깨닫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새 하늘과 새 땅을, 새 날과 새 생명을 선사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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