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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8. 연중 제32주일                                                       열왕기상17,10-16 히브9,24-28 마르12,38-44


                                                                     “Because it’s 2015”

                                                                      -“2015년 이잖아요!”-


오늘 강론 제목이 특이합니다. 어제 감동적인, 신선한 충격의 기쁜 소식을 듣고 지체없이 강론 제목을 택했습니다. ‘한국판 트뤼도는 어디에 있나?’라는 제하의 기사(프레시안)에 이어 경향신문(2015.11.7.27면) 사설 첫째 부문은 ‘캐나다의 성평등, 다문화, 소수자 내각이 전하는 메시지’란 같은 소재를 다루고 있었습니다. 길다 싶지만 너무 반가워 사설 전반부를 그대로 인용합니다.


-지구반대편 캐나다에서 들려온 소식이 신선하다. 지난 4일 취임한 저스틴 트뤼도(43세) 총리가 캐나다 역사상 처음으로 남녀 15명씩 동수의 ‘성평등 내각을 출범시켰다. 이뿐만이 아니다. 난민 출신과 이민자, 원주민과 장애인을 장관으로 발탁했다. 연령을 30-60대로 다양하게 구성했고, 10개주와 3개 준주 출신 인사를 모두 망라하여 지역 안배를 이뤘다. 트뤼도 총리는 ’다문화 사회 캐나다를 닮은 내각’이라 표현했다. 개방과 관용, 다양성에 기초한’드림 내각으로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트뤼도 내각의 참신함을 상징하는 인사는 민주개혁부를 맡게된 여성 장관 매리엄 몬세프다. 30세로 최연소인 그는 아프카니스탄 난민 출신이다. 20년전 어머니와 함께 파키스탄, 요르단을 거쳐 캐나다에 정착한 난민 소녀가 장관에 오른 것이다. 하지트 싱 사잔 국방부 장관은 터번을 쓰고 긴 수염을 기른 시크교도이다. 5세때 인도에서 이민 온 그를 비롯해 시크교도 여러 명이 내각에 포함됐다. 법무부 장관으로 기용된 여성 조디 윌슨-레이보울도는 캐나다 역사상 최초의 원주민 장관이란 기록을 세우게 됐다. 켄트헤르 국가보훈부 장관등 2명은 장애인이다. 트뤼도 총리는 성평등 내각을 구성한 이유를 묻자 “Because it’s 2015!(2015년 이잖아요!)”답했다고 한다. 간결하면서도 명쾌하다.-


놀라운, 꿈같은 기적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실현입니다. 축복받은 캐나다 국민입니다. 온세계에 하느님의 놀라운 꿈을, 희망을, 비전을 선사한 캐나다 국민입니다. 제 강론에 사설을 길게 인용하기는 처음입니다. 전세계에 전하는 하느님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하느님의 꿈의 실현입니다. 하느님은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마침내 예언자들 통해 선포된 만인 평등 사회가 현실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참 신비롭고 놀라운 것이 지구촌의 현실입니다. 천국과 지옥이, 미래와 과거가, 빛과 어둠이, 희망과 절망이, 생명과 죽음이 공존하는 현실입니다. 우리나라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캐나다 국민의 쾌거입니다. 아마 전 지구로 희망의 빛이 되어 서서히 퍼져나갈 것이며, 누룩이 되어 지구촌을 점차 변화시킬 것입니다. 지구 반대편 희소식이지만 기쁜 마음에 저절로 오늘 미사중 화답송 후렴과 시편을 통해 하느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내 영혼아, 하느님 찬양하라, 알렐루야!”


“주님은 소경의 눈을 열어 주시며, 주님은 억눌린 이 일으켜 주시며, 주님은 의로운 이를 사랑하시며, 주님은 나그네를 지켜주신다.”(시편146,8-9ㄱ)


주님은 의로운 트뤼도 총리를 사랑하시며, 그를 통해 억눌린 이를 일으켜 주시고 나그네를 지켜 주시어 보잘것 없는 이들을 장관들로 기용하셨습니다. 장애인복지 장관은 시각 장애인이고, 국방부 장관은 지체 장애인이고, 몇몇 장관은 난민에 원주민 출신들입니다. 얼마나 놀랍고 신선한 꿈같은 복음인지요! 어제 저녁성무일도 성모 후렴에 이은 아침 성무일도 즈가리야 후렴이 오늘 복음을 요약합니다.


“그 과부는 구차한 중에도 있는 것을 다 바쳤으니, 다른 많은 사람보다 더 많이 넣은 것이로다.”


오늘 복음의 주인공은 가난한 과부입니다. “Because it’s 2015!(2015년 이잖아요!)” 강론 제목처럼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가난한 과부입니다. 가난하지만 역설적으로 내적 부요의 가난한 과부입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우리 대통령을 ‘가난한 대통령(poor president)’이라 불렀다지만 복음의 가난한 과부는 결코 가난하지 않았습니다. 산상수훈 중 진복팔단의 덕목중 둘이 그대로 가난한 과부에게 해당되니 말입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아, 이런 이들이 진정 부자며 행복한 복자들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조롱을 받는 율법학자들과 예수님의 칭찬을 받는 가난한 과부가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뚜렷한 두 인간상을 보여줍니다.


“율법학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긴 겉옷을 입고 나다니며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즐기고,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잔치 때에는 윗자리를 즐긴다. 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 먹으면서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길게 한다.”


도대체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자기중심적’ 인간의 전형입니다. 아, 바로 이런 사람입니다. 외적인간, 육적인간, 속이 텅 빈 허영과교만한 인간입니다. 자기안에 갇힌 인색하고 편협한 부자유의 인간입니다. 남을 의식한, 자기 중심의 참 공허한 착각과 환상속의 삶입니다. 진실과 겸손이 없습니다. 자기를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하느님을 떠난 업보입니다. 하느님께 가까이 있어야 할 율법학자들의 이런 모습이 참 불가사의입니다.


부자인 듯 하나 내적 가난의 사람이요, 많은 신학적 지식을 지녔어도 삶과는 유리된 쓸모없는 지식이 되어 버렸습니다. 반면 오늘 복음의 예수님은 물론 가난한 과부나 1독서의 엘리야 예언자와 사렙타의 과부는 모두 하느님 중심의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인정을 받은 하느님 중심의 참 너그럽고 넉넉하고 자유로운 영혼, 가난한 과부입니다. 내적인간이자 영적인간이요 진실하고 겸손한 사람, 가난한 과부입니다. 참으로 주님만으로 행복한 부자富者요 복자福者요 자유인自由人, 가난한 과부입니다. “2015년 이잖아요!” 캐나다 트뤼도 총리의 말은 바로 이런 가난한 과부로 대변되는 참 좋은 인간상을 회복하라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입니다.


히브리서의 말씀처럼, 우리의 대사제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려고, 단 한 번 당신 자신을 바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고대하는 우리을 구원하시려고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오십니다. 주님은 당신 말씀과 성체의 은총으로 우리 모두 복음의 가난한 과부처럼 하느님 중심의 내적인간, 넉넉하고 너그럽고 자유로운 인간, 진실하고 겸손한 인간으로 변모시켜 주십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네.”(시편23,1-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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