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김의 삶-2016.4.21. 목요일 성 안셀모 주교 학자(1033-1109)기념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Apr 21,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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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4.21. 목요일 성 안셀모 주교 학자(1033-1109) 기념일                                       사도13,13-25 요한13,16-20


                                                                              섬김의 삶


우리 믿는 이들의 삶을 정의하면 ‘섬김의 삶’하나뿐입니다. 봉사보다는 섬김이란 우리말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당신은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다고 선언하셨고 평생을 하느님과 이웃을 섬기는 삶에 전력을 다하셨습니다. 하여 분도수도공동체를 일컬어 ‘주님을 섬기는 배움터’라 정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주님과 이웃을 섬긴다 해도 ‘영원한 초보자’ 학인임을 깨닫습니다.


우리 믿는 이들에게 영성이 있다면 ‘종servant과 섬김service’의 영성이 있을 뿐입니다. 섬김의 권위요 섬김의 리더십입니다. 섬김의 겸손, 섬김의 사랑입니다. 겸손한 사랑의 핵심에 자리잡고 있는 섬김의 삶입니다. 섬김의 가장 아래 밑바닥에서 주님을 만납니다. 오늘 복음은 바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다음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요한13,16-17).


주님의 종인 우리들은 주님보다 높지 않고 주님께 파견된 우리는 파견한 주님보다 높지 않습니다. 바로 제자들의 발을 씻어 드림으로 섬김의 모범을 보여주신 당신을 본받으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진정 섬김의 삶을 사는 이들이 당신의 제자들이요 참 행복한 사람들임을 말씀하십니다.


섬김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고 나는 나이신 하느님을 만납니다. 섬김의 원조는 바로 ‘나는 나이신(I AM)’ 하느님 아버지임을 깨닫습니다.


“일이 일어날 때에 내가 나임을 너희가 믿게 하려는 것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 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고,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맞아들이는 것이다.”(요한13,19ㄴ-20).


오늘 복음의 서두 말씀과 일맥상통하는 구절입니다. 섬김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바로 거기 예수님이 계시고 나인 나이신 분, 하느님 아버지가 계십니다. 그러니 바로 이웃을 환대로 섬기는 것이 예수님을 환대로 섬기는 것이요, 예수님을 환대로 섬기는 것이 바로 하느님 아버지를 환대로 섬기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섬김의 자리에서 예수님을, 하느님을 만난다는 놀라운 진리입니다. 하느님의 우리 위한 섬김의 사랑이 온 세상을 지탱합니다. 바로 사도행전의 바오로 일행은 이런 하느님을 선포합니다. 바오로 일행의 복음 선포의 선교활동도 깊이 보면 하느님의 섬김의 활동에 동참임을 깨닫습니다. 


바오로는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하느님의 섬김의 활동을 낱낱이 예를 들어 말합니다. 하느님의 섬김의 활동을 그대로 전수받은 예수님이 출현으로 마침내 이스라엘의 역사는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이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예수님을 구원자로 보내셨습니다.”


누구보다 예수님의 신원을 알아차린 세례자 요한입니다. 아버지의 섬김의 삶을 그대로 이어받은 예수님이심을 깨달은 세례자 요한의 감격에 벅찬 고백입니다. 


“나는 그분이 아니다. 그분께서는 내 뒤에 오시는 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진정 거룩한 삶은, 권위있는 삶은 아버지와 그의 아드님 예수님을 닮은 섬김의 삶뿐임을 깨닫습니다. 겸손과 사랑의 섬김, 그 낮은 자리에서 바다가 되었을 때 예수님을 아버지이신 하느님을 만납니다. 마침 제 소망이 담긴 ‘바다가 되었다-수평선水平線-’라는 자작시를 다시 나눕니다.


-아래로 아래로 

 흘러 바다가 되었다

 넓고 깊은 바다가 되었다

 모두를 받아들인 바다가 되었다

 하늘에 닿은 바다가 되었다-


섬김의 사랑, 섬김의 겸손을 통해 아래로 아래로 흐르는 삶이요, 마침내 바다가 될 때 하늘이신 주님과 만나는 수평선水平線의 행복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당신의 크신 자애로 우리를 섬기시고, ‘섬김의 사람들’로 세상에 파견하십니다.


“주님, 당신 자애를 영원히 노래하오리다.”(시편89.2ㄱ참조).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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