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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6. 화요일 성 브루노 사제 은수자(1035-1101) 기념일              

                                                                                                                                           요나3,1-10 루카10,38-42


                                                                                     고독과 회개, 그리고 환대

                                                                                         -필요한 것 한가지-


오늘은 ‘연중 제27주간 화요일’이지만 우리 베네딕도회 수도승들은 ‘성 브루노 사제 은수자’ 기념 미사를 봉헌합니다. ‘위대한 침묵’이란 영화로 유명해진 카르투시오 수도회의 창립자인 성 브루노입니다. 성인은 만 66세를 사셨습니다. 성인들의 산 햇수를 비교할 때 마다 '주님의 집'으로의 귀가인 죽음 준비는, 귀가 준비는 잘 하고 있는 지 생각하게 됩니다. 본기도 내용을 그대로 소개합니다.


“아버지, 당신은 성 브루노를 고독중에 당신을 섬기라 부르셨으니, 그의 기도에 응답하여 세상의 변천속에서도 우리가 당신께 충실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고독이란 말마디가 새삼 반갑게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사막수도자들이나 관상수도공동체의 수도자들의 특징은 한결같은 침묵과 고독에 대한 사랑입니다. 이 수도자들에게 침묵과 고독은 바로 회개에로 부르는 하느님 사랑의 표지였습니다. 대만을 대표하는 지성, 장쉰 작가의 고독에 대한 통찰은 수도승과 일치합니다. 대화중 몇 중요한 단락을 인용합니다.


“외로울 고孤는 고아라는 단어에 사용됩니다. 홀로 독獨은 돌봐줄 이 없는 홀로된 노인을 부르는 독거노인에 쓰입니다. 이 두 단어 고독은 우리를 애잔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서양의 고독인 ‘solitude(솔리튜드)’의 어근인 sol은 원래 Sole, 태양에서 왔어요. 태양처럼 유일한 존재, 저는 이 동서의 고독을 연결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고아나 독거노인, 소외된 이들의 존엄도 서양의 고독이라는 단어 solitude가 품고 있는 그 자긍심이 담긴 위치까지 끌어올려져야 한다는 거죠. 누구나 완전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고독과 외로움은 다릅니다. 외로움은 고독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고독은 고독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고독은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고독한 상태가 좋지 않다면 당신은 고독을 두려워하는 거지요. 그것이 외로움입니다. 외롭기 때문에 사람을 찾고 싶어져요. 만약 당신이 햇볕과 바람을 느끼며 나무 아래 있다면, 일종의 만족감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점점 채워지면서 외로움은 녹아 내리고 고독은 자신과 더 함께 있고 싶은 겁니다.”


“떠나라! 이 주류사회로부터 고독하게 돌아서라. 고독해 진다면 거부할 수 있어요. 고독은 원래 하나의 기량을 키우는 요소입니다. 스스로와 함께함으로써 자신이 사고할 수 있다고 믿을 수 있게 됩니다. 고독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두려움은 외로움과 황량함을 부릅니다.”


고독의 깊이에서 하느님을 만날 때 텅 빈 충만의 행복이요 기쁨입니다. 바로 예언자의 고독이 그러합니다. 하느님 없는 고독은 사람을 황폐하게 할 수 있지만 하느님과 함께 하는 고독은 축복입니다. 토마스 머튼은 현대인들에게 고독은 사치품이 아니라 필수품이라 설파합니다. 고독과 더불어 깊어지는 영혼입니다. 또 고독孤獨해야 연대連帶의 필요성을 절감합니다. ‘홀로’ 있을 때 ‘함께’의 가치를 깊이 실감합니다. '홀로'없이 '함께'만 있으면 삶은 얕고 가벼워져 피상적이 됩니다. 아주 예전에 써놓은 '둥근달'이란 자작시가 생각납니다.


-푸르른 밤하늘/휘영청 밝은 달 하나

 온누리 환히 밝힌다.

 푸르른 고독이/휘영청 밝은 달 하나

낳았구나/푸르른 고독이!-


수도자의 고독은 이와 같습니다. 고독할 때 하느님을 찾고 기도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의 공통적 특징은 고독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1독서에서 요나 예언자는 주님의 명령에 따라 죄악이 만연된 도시 니네베에서 회개할 것을 촉구합니다.


“이제 사십일이 지나면 니네베는 무너진다.”


회개의 선포에 앞선 요나의 행적이 중요합니다. 바로 사흘 낮과 밤을 큰 물고기 뱃속의 고독 중에 기도하고 회개하여 살아난 요나입니다. 회개하고 살아난 요나이기에 자신감에 넘쳐 니네베 사람들의 회개를 촉구했고, 놀랍게도 임금을 비롯한 성읍의 모든 사람들의 거족적이며 즉각적인 회개의 응답입니다. 마침내 하느님은 그들이 악한 길에서 돌아서는 모습을 보시고 마음을 돌리시어 재앙을 내리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제자리로의 귀환이 회개입니다. 바로 우리가 거행하는 이 거룩한 성전안에서의 모든 공동전례시간은 공동회개시간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깨닫는 바 회개와 환대의 긴밀한 관계입니다. 회개는 바로 주님이 당신께 돌아온 우리를 환대하는 것이요, 우리 역시 마음을 활짝 열어 주님을 환대하는 것입니다. 회개의 열매가 바로 환대의 사랑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 한가지'가 하느님 사랑이요 회개입니다. 주님을 환대하여 주님께 귀기울이는 것입니다. 마르타가 예수님을 모셔들였을 때의 마리아의 모습이 바로 ‘회개의 표지’이자 ‘환대의 표지’입니다. 회개는 환대의 사랑으로 환히 드러납니다.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마르타 역시 나름대로 시중드는 일로 분주하며 주님을 환대하지만 우선순위가 바뀌었습니다. 손님이신 주님에 맞춘 환대가 아니라 자기식의 일방적 환대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바 우선 말씀의 경청후 음식대접의 환대입니다. 하여 우리를 환대하시는 주님의 미사 전반부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는 ‘말씀의 전례’이고 후반부는 주님의 성체와 성혈을 모시는 ‘성찬의 전례’입니다. 다음 말씀 역시 마르타의 회개를 촉구합니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 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주님은 우선 말씀을 경청함으로 당신을 환대하는 것이 누구나에게 ‘필요한 것 한가지’뿐임을 주지시킵니다. 마르타뿐 아니라 활동에 분주하여 하느님을, 기도하기를, 말씀 경청하기를 잊은 모든 이들의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하여 우리 분도수도회의 모토도 ‘기도하고 일하라’이지, ‘일하고 기도하라’가 아닙니다.


회개의 자연스런 응답이 주님을 사랑으로 환대하는 것입니다. 환대할 때 넘치는 감사와 찬미와 기쁨의 선물입니다. 감사에서 샘솟는 찬미요 찬미에서 샘솟는 기쁨입니다. 회개-환대-감사-찬미-기쁨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회개한 우리를 환대해 주시고 우리 또한 회개로 활짝 열린 마음으로 주님을 환대하는 시간입니다. 주님의 환대와 우리의 환대가 만나는 축복의 시간입니다. 이런 환대의 은총이 우리 모두 찾아오는 모든 이들을 그리스도처럼 환대하게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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