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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2.11. 연중 제5주간 수요일(성모영보수녀원 7일째)

                                                                                                                                   창세2,4ㄴ-9,15-17 마르7,14-23


                                                                          발효(醱酵)인생

                                                                            -무념(無念)-


두서없이, 자유롭게 이런저런 묵상으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오늘 말씀 묵상 중 떠오른 옛 강론 주제, '발효(發效)인생이냐, 부패(腐敗)인생이냐' 였습니다. 예전에 이런 내용을 어느 기사에서 읽었을 때 정신 번쩍 나게 하던 신선한 충격이 지금도 새롭습니다. 


발효와 부패, 외관상 비슷해 보이지만 내용은 정반대입니다. 잘 살아, 잘 익어 발효인생일 때는 향기(香氣)이지만, 잘못 살아 썩어 부패인생일 때는 악취(惡臭)입니다. 미국 뉴튼수도원에 머물 때, 나르다 자매님의 홍어회 무침에 대한 설명이 저에겐 새로운 깨달음이었습니다.


"홍어를 고를 때는 잘 냄새를 맡아야 되요. 썩은 것은 고린내가 나지만 잘 삭힌 것은 톡쏘는 향기가 납니다. 썩은 것을 가지고 삭힌 것으로 말할 때 속아넘어가면 안됩니다.“


썩는 냄새, 삭힐 때의 향기가 판이하다는 것입니다. '냄새'와 '향기'의 차이입니다. 삭히는 것도 일종의 발효입니다. '마음을 삭힌다'는 마음의 발효과정의 의미를 새롭게 깨닫습니다. '삭히다'라는 말뜻이 얼마나 신비한지요. 정말 영적 삶의 기술을 터득한 이들은 썩게 방치하지 않고 부단히 삭히고 발효시켜 향기로운 인생으로 만듭니다.


어제의 체험도 참 각별했습니다. 옛 동료교사이자 현직교장(민경숙루치아)님의 정년퇴직을 앞둔 개인전 마지막날, 수녀원의 양해를 구해 오전 강의가 끝나는 즉시 '갤러리수'를 찾아 도착하니 오전 11시, 방금 철거가 끝났다 했습니다. 작품이 빠져버린 '텅 빈 공간'이 가벼운 충격이요 새로운 깨달음이었습니다. 


"요셉수도원으로 50호, '무념(無念)'이라는 작품을 보냈어요. 오늘 낼중 들어갈 거예요. 묵상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제가 그린 작품중 최고라 하고 작품성도 높다고 평가받는 그림입니다. 수도원에 연락해서 받도록 조치해주시면 고맙겠어요. 하느님께 드리는 것이니 불편해하지 마세요. 늘 감사하는 루시아 드림.“


곧 이어 받은 자매님의 카톡 메시지입니다. '무념(無念)'이라는 그림 제목처럼 작품이 아닌 철거된 텅 빈 공간에서 역설적으로 무념을 체험했으니 작품 감상은 제대로 한 셈입니다. 이 또한 강렬한 잊지 못할 체험입니다. 그림을 통해 자매님의 깊고 맑은 심성이 그대로 표현되었음이 분명합니다. 


무념(無念), 무욕(無慾), 무아(無我), 무심(無心), 무상(無常), 모두가 불교의 말마디이지만 우리 식으로 말하면 자기를 비운 '텅 빈 충만(充滿)'의 초탈(超脫)의 경지요, 깨끗하고 순수한 마음의 경지입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아, 바로 이것이 우리에겐 하느님이 함께 하시는, 사랑을 배경한 무념, 무욕, 무아, 무심, 무상의 경지입니다. 투명한 '호수 거울' 같아 '있는 그대로'의 실재를 반영하는 마음입니다. 평생 발효의 여정을, 삭힘의 여정을 살아갈 때 이런 마음입니다.


마음의 신비입니다. 우리 모두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아담의 후손들입니다. 아담이 상징하는바 우리 인간들입니다. 에덴에 생명나무만 있고, 선악과의 나무만 없었더라면, 유혹했던 뱀이 없었더라면 상상할 수도 있지만 다 부질없는 일입니다. 


자유가 있어 인격이요 사람입니다. 자유없이는 인격도 사람도 없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하느님 주신 위대한 자유의 선물을 제대로 시험할 기회가 없는 참 재미없는 삶일 것입니다. 선악과의 나무가 상징하는바 얼마나 심오한지요. 우리 마음의 에덴동산에도 유혹하는 뱀이 있고, 또 선악과 나무, 생명 나무가 있습니다.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밖에서 들어오는 음식이 아니라 외부의 온갖 비난, 비방이 아니라, 선악과의 나무에서 기인하는, 안의 마음에서 배설되는 악한 것들입니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안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 등 이런 악한 것들이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


아, 바로 우리의 실존적 체험입니다. 바로 갈라디아서(5,19)의 육의 열매와 흡사합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음으로 부패인생의 결과 이런 악취나는 것들이 안에서 나와 우리를 더럽힙니다. 


아래의 항문에서 배설되는 것은 화장실에서 정화조로 가서 처리되는데 위의 입에서 배설되는 오물 같은 말들은 화장실도 정화조도 없어 나오는 그대로 공해(公害)가 되어 공동체를 오염(汚染), 부패시키니 그 피해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답은 단 하나 부패인생을 발효인생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발효되어 순수한 마음일 때 여기서 나오는 성령의 열매들이 사람을 깨끗하게 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선의, 성실, 온유, 절제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막는 법은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 속한 이들은 자기 육을 그 욕정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사는 사람들이므로 성령을 따라갑시다.“


아, 이런 성령의 효소가 마음을 순화시켜 부패인생을 발효인생으로 바꿉니다. 바로 여기서 나오는 성령의 열매들입니다. 효소의 효능이 어떤지는 누구나 잘 알 것입니다. 모두를 발효시켜 맛있고 향기로운 음식이나 술로 바꾸는 효소입니다. 


성령의 효소에 이어 말씀의 효소가 또 제일입니다. 말씀을 통한 믿음의 효소, 사랑의 효소, 희망의 효소가 마음을 순화, 성화하여 사람을 깨끗하게 합니다. 순수한 마음에서 나오는 순수한 생각, 말, 행동, 즉 성령의 열매들이기 때문입니다. 다음 시편이 이를 잘 표현합니다.


'의인의 입은 지혜를 자아내며 그의 혀는 올바른 것을 말한다.

자기 하느님의 가르침이 그의 마음에 있어, 그의 걸음이 흔들리지 않는다."(시편37,30-31).


바로 에덴동산의 생명나무가 상징하는바 예수님이요 십자가와 부활의 나무입니다. 세례성사로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나 에덴동산 미사 중 생명나무의 열매인 말씀과 성체를 모시는 우리들입니다. 하여 생명나무의 말씀과 성체의 생명의 열매를 맛본 우리들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거들떠 보지도 않습니다.


말씀과 성체의 효소를, 생명나무 열매를 '먹음(食)'으로 비로소 맛있고 향기로운 발효인생을 살게 된 우리들입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를 깨끗하고 거룩하게 하시어, 성공적 발효인생을 살게 하십니다.


"주님, 당신 말씀은 진리이시니,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소서."(요한17,17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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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자아빠 2015.02.11 05:49
    아멘! 신부님 말씀 감사합니다.
    오늘도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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